분단시대의 피고들 범우 한국 문예 신서 19
한승헌 / 범우사 / 1994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인권변호사 한승헌 변호사의 환갑을 기념하여 한승헌 변호사가 변론을 담당한 주요 사건의 피고인들이 당시 사건을 되새기며 쓴 글을 모아놓은 책이다. 한승헌 변호사가 담당한 사건이 주로 공안사건이었기 때문에 이 책에 원고를 제출한 사람들은 모두 공안사건의 피고인들이다. 그렇기에 이 책의 제목 ‘분단시대의 피고들’은 정말로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기 전부터 한승헌 변호사에 대하여 잘 알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권문제나 반독재투쟁과 관련하여 이분의 성함은 몇 번 들어보았던 것 같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과거 우리사회에서 반정부투쟁(민주화 운동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을 한 사람들에 대하여 정권이 어떤 식으로 탄압을 했으며 그러한 탄압에 법조계가 어떤 식으로 대응해 왔는가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과거 독재정권 하에서 공안사건의 피고인으로 형사절차를 온몸으로 체험한 사람들이 직접 당시 상황을 기억하며 쓴 책이다. 따라서 기억이 일부 왜곡되었거나 서술이 주관적인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이 책에 실린 모든 글에 내가 공감한 것도 아니었다(어떤 글은 자신의 민주화운동 치적만을 과시한 듯한 느낌을 주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다르다는 말을 실감하게 한 경우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 책에 원고를 낸 사람들이 직접 겪은 공안사건들이 지금은 대부분 역사적으로 당시의 법적인 단죄와는 정반대의 입장에서 재조명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고, 이 책에 실린 글을 쓴 사람들이 당시에 가졌던 민주화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당시에 겪었을 상상하기 힘든 고초를 고려하면 그 정도의 흠결을 트집 잡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책을 읽다 보면 웬만한 공안사건의 피고인들은 죄다 등장한다. 그만큼 한변호사가 민주화 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다는 반증도 되리라.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가장 큰 인상을 남긴 것은 과거의 독재정권이 얼마나 무자비하고 비열한 방법으로 국민들을 억압했으며 검사, 판사로 대변되는 법조계가 얼마나 충실하게 권력의 주구(약간은 과격한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노릇을 했는가 하는 것이었다. 대학에서 배운 온갖 법원칙들을 주장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나 인권보호가 기본적 책무라는 검사가 공안당국이 짜놓은 틀에 맞추어 그것을 기소하여 유죄판결을 받는 것에만 온힘을 쏟는 모습이라든지(책 중간 중간에 실린 국가보안법위반 사건의 공소사실을 보면서 씁슬한 미소를 띠게 되는 것은 왜인지...) 공안당국(사실 여기에는 공안검사도 포함된다고 볼 수도 있겠다)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하는 판사의 모습을 보면서 법조계의 어두운 과거를 생생하게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면을 떠올리면 지금 현 법조계의 일부 폐습도 이해할 수 있었다(법조계의 인적 구성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내가 당시 공안사건의 검사나 판사가 되었다면 과연 공정한 판단과 그에 따른 소신있는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평소에 투철한 신념과 끊임없는 수련이 없이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 나온 피고인들과 한승헌 변호사가 더욱 존경스럽게 느껴진다. 내 자신이 그러한 상황에 있지 않음에 감사하면서 그러한 상황이 닥쳐올 때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평소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이 나온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정권도 바뀌고 해서 이 책에 피고인으로 나온 사람들이 이제는 여권에 있는 사람도 있고 야당의 지도자로 있는 사람도 있다. 또한 이 책에 나온 피고인들과 공안검사로 악연을 맺은 사람들 중에도 이한동, 최연희 등 낯익은 이름이 꽤 많다. 과거 정권시절 공안사건의 피고인과 공안검사의 위치에 있던 사람들, 그리고 심지어 그 주요한 원인을 제공한 사람의 딸(-.-;;)의 현 위치와 그들의 활동을 보면 그래도 우리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는 가고 있다는 생각과 함께 아직도 어두운 과거의 그림자를 떨쳐 내려면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