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시기에 부모를 잃은 나는, 전쟁 후 너나 할 것 없이 몹시도 가난했던 그 시절에, 한참 먹성좋은 소년기를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게 보냈다. 부모를 잃은 외로움이나 무서움보다는 굶주림 때문에 더 외롭고 무서웠다. 오직 한번 쌀밥을 실컷 먹어보는 것이 소원 중의 소원이었다. 남의 집살이, 국민학교와 중고등학교의 급사, 고아원생활, 부잣집 가정교사 등등 해보지 않은 짓이 없이 살면서도 푼돈이 모이면 책을 샀고 밤이면 전기불이 켜져 있는 공동변소에 가서 냄새를 이기며 책을 읽곤 했다. 학교 급사시절 심부름을 다닐 때에는 길을 걸으며 책을 읽다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기도 했다. (p136)

실제 경험을 해본 사람만이 말할 수 있는 소위 가난에 대한 '참무리'와 독서에 대한 열정이 느껴진다. 한편으로 지금 내가 정말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음에도 열심히 독서하고 있지 않다는 부끄러운 마음도 든다.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감옥의 죄수들에게도 저 야만적인 삼청교육대에서와 같은 '순화교육'을 시켰다. '교육'은 언제나 '국기에 대한 맹세'라는 의식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게양대에 오른 국기를 향해 일제히 차려 자세로 오른손을 가슴 위에 올려놓고 다음과 같은 '맹세문'을 낭송하게 했다.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p140)

왜 이 부분을 읽으면서 국기에 대한 맹세에서 '충성'이라는 문구와 군대에서의 경례구호가 동시에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해왔던 이 의식의 본질이 - 이 의식의 긍정적 기능이 일부 있음을 부인할 수 없기는 하지만 - 군국주의적 의식의 고취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국가'가 '내 나라'로 여겨지고 '국익'이라는 말이 '내 나라의 이익'으로 되려면 적어도 다음 세 가지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첫째, 이른바 국익이 나와 내 가족의 안전과 인간다운 삶의 보장이라는 사익과 균형있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고, 둘재, 국가의 구성 및 운영 원리가 '민주주의, 정의, 복지, 평화'등 삶의 기본적 가치와 이념 또는 철학에 부합해야 하며, 셋째, 그 국가가 표방, 선전하는 문화 가치가 나와 내가 속한 공동체의 고유한 문화전통 및 생활정서를 존중하고 함양하는 것이어야 한다.(p141)

이 글을 쓴 필자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참 타당한 기준을 제시한 것 같다. 한미 FTA는 위 기준에 비추어 '내 나라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한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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