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경 미래여성연구원장
정부가 ‘제1차 저출산 고령화 기본계획 시안’이라는 거창한 계획을 발표했다. 마치 개발독재시대에 ‘제몇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 운운했던 돌진적인 구호를 보는 듯하다. 그러나 정부의 눈물겨운(?) 대책발표를 접한 주변 젊은 여성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냉담’이다.

사실 최근처럼 한국사회가 20, 30대 젊은 여성들의 삶과 가치관에 주목한 적이 있었나 싶다. “도대체 왜 아이를 안 낳겠다는 거야?” 그러고서는 곧바로 “요즘 여자들이 이기적이라서 그렇다”고 결론까지 내버린다. 과연 요즘 여자들은 과거의 어머니들에 비해 이기적이라서 아이 낳기를 접은 것일까?

필자는 13년간 각 기업에서 일하는 신입사원부터 과장, 차장 등의 여성들과 세미나, 워크숍 등을 통해 거의 매일 만남을 가져왔다. 그들의 눈물겨운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기’를 지켜보면서 갖게 된 확신 하나는 추락하는 출산율을 우리 사회는 결코 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첫째, 임신기간 동안 여성은 아무런 보호대책 없이 혼자의 힘으로 견뎌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직장여성들이 임신을 하면 우선 상사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 대놓고 입덧 한번 제대로 할 수 없다. 호르몬이 뒤집어져 졸음이 쏟아져도 혹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될까봐 내색하지 말아야 한다. 겨우 할 수 있는 정도가 화장실 변기뚜껑을 덮어놓고 몰래 새우잠을 자는 정도로 그 힘든 임신기간을 버텨야 한다.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커리어를 관리하는 수단으로 외국 출장, 승진시기 등을 고려해 임신을 조절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둘째, 왜 아이는 낳은 사람이 길러야 하는지 반문한다. 매일 아이를 둘러업고 새벽 6시부터 분유통 들고 놀이방에 아이 맡기고, 저녁 8시 되기 전에 허둥지둥 아이를 찾기 위해 뛰다 보면 ‘낳기만 하십시오, 국가가 길러드리겠습니다’란 말을 들을 때마다 분노가 치민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당연히 육아에 대한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남성들에 비해 직장에 몰두할 수 있는 절대 시간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어쩌다 회식자리에 가도 놀이방에서 혼자 남아 울고 있을 아이를 생각하면 술이고 밥이고 넘어가질 않는다. 고위간부들과의 친밀한 정서를 키워갈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하는 여성들은 네트워킹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셋째, 집의 남자, 밖의 남자 양측면 공격으로 여성들은 녹다운 일보직전이다. 남편들은 여성에게 가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만큼만 일을 하라고 요구한다. 직장상사들은 결혼이 직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라고 요구한다. 이러한 상반된 두 남성들의 요구 사이에서 여성들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면서 노력해도 결국은 둘 중 누군가로부터 비판을 받는다. “나는 당신이랑 왜 결혼했냐? 내 친구 부인은 매일 아침에 밥해준대….” “그러게 내가 여직원 우리 부서에 보내지 말랬지?”

많은 한국 남성들은 아내의 일에 대한 욕구와 인간적인 성장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주지 않는다. 아직도 많은 남성들은 가정의 1차적인 책임은 아내에게 있다고 생각하며, 설거지, 청소를 자신의 일이라고 여기며 분담하지 않는다. 직장은 아내가 스스로 자처한 고생길이니 집안일과 아이들 교육에 소홀하다면 그것은 아내의 책임이라고 떠 넘긴다.

재앙에 가까운 출산율 ‘1.08명’. 그러나 시작에 불과하다. 출산율 추락은 가속을 더해 달려갈지도 모른다. ‘안 낳는 것이 그나마 상책’이라는 나름의 자구책에 몸을 숨기고 있는 우리의 딸들이 공동체의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제 우리 공동체가 대답을 내놓아야 할 때다. 특히 우리 기성세대는 정책적인 지원뿐만이 아니라 그들에 대한 정서적, 문화적인 지원을 고민해야 한다. 어쩌면 여성의 사회생활 전반을 통제하고 있는 정서와 불문율로 인해 여성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출산율 1명 이하’를 예고해 왔는지 모른다. 이 땅의 남성들만이 귀기울이지 않았을 뿐이다.

김미경 · 미래여성연구원장
입력 : 2006.06.08 19:09 49' / 수정 : 2006.06.09 03:0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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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6-06-09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핵심을 찌르는 글이다. 곧 결혼을 앞둔 남자로서 많이 부끄러워진다. 문제는 알면서도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못함에 있지만...

우기부기 2006-06-11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건 정말로 내가 고민하는 문제야.
회사에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지. 아아..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