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한 협상을 5일 시작했다. 양국은 이날(현지시간) 워싱턴에서 1차 FTA 본협상을 열고 지난달 교환한 500쪽 분량의 협정문 초안에 대한 기본적인 의견을 교환했다. 상품과 서비스.투자의 개방 계획에 관한 구체적인 논의는 7월 10~14일 서울에서 열리는 2차 협상 때 이뤄진다. 9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협상에 정부는 김종훈 수석대표를 비롯, 23개 부처에서 158명으로 구성된 사상 최대 규모의 협상단을 파견했다. 미국 측에선 웬디 커틀러 수석대표를 포함해 178명의 대표단이 참석한다.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원정 시위대를 보내 워싱턴 현지에서 반대 시위를 벌였다. 한.미 FTA 협상을 계기로 그동안 제기됐던 주요 쟁점들을 정리한다.
미국에 예속? "한국 경쟁력 무시한 선동"
서비스업.농업과 일부 중소 제조업계에서 많이 제기되는 의문이다. 경량급인 한국이 헤비급 챔피언과 맞붙어 승산이 있겠느냐는 걱정도 많다. 이 같은 시각은 특히 대미 수출이 전체의 90%에 이르는 멕시코의 사례를 근거로 삼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규모는 이미 세계 10위권에 든 데다 대미 무역흑자도 지난해 161억 달러에 달한다. 이미 상당한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박태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미 FTA를 맺으면 경제속국이 된다는 말은 현실을 무시한 선동적인 발언일 뿐"이라고 말했다.
실제 시장개방에 대한 격렬한 거부 반응에도 불구하고 개방 후에는 반대의 결과가 나온 경우도 많다.
한국을 삼켜버릴 것 같던 일본의 대중문화 시장에 오히려 한류(韓流)가 불고 있는 것이나, 한때 일부 부유층이나 암암리에 사먹던 미국의 칼로스쌀이 이젠 공개적으로 팔아도 안 팔릴 정도로 외면당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결국 미국의 첨단산업이 들어와도 우리가 하기 나름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빗장 다 푸나? 미국, 호주 등에 예외 인정
한.미 FTA 협상은 상품 무역, 농업, 원산지.통관, 무역구제 등 모두 17개 분야로 나뉘어 진행된다. 이들 분야가 FTA 체결로 모두 개방되는 건 아니다.
정부는 일단 농수산물 분야를 방어해야 할 최우선 분야로 꼽고 있다. 교육.보건.의료.복지 등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한 공공 분야도 협상 대상에서 제외할 방침이다. 이경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한.미 FTA는 향후 10년에 걸쳐 대미 개방을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진행해온 개방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물론 미국은 '예외 없는 개방'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와 FTA를 맺을 땐 예외도 적지 않았다. 예컨대 미국은 호주와 FTA를 체결하면서 설탕을 관세 철폐 예외 품목으로 정했다. 또 미국은 개성공단의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하는 데 반대하지만 이스라엘과의 FTA에선 요르단 지역 공장의 제품을 이스라엘산으로 인정해 줬다.
내년이 시한? 타결돼도 국회 비준 남아
양국은 미 의회가 행정부에 협상 권한을 위임한 무역촉진법(TPA)이 만료되는 내년 7월까지 모든 절차를 끝내기로 했다.
미 의회는 협상 타결 직후 90일 동안 심의를 거쳐 협상 비준 투표를 한다. 이 때문에 FTA 협정이 7월 미 의회에서 비준을 받으려면 3월 말까지 협상이 타결돼야 한다. 그러나 이는 정부 간에 정한 시한일 뿐 한국 국회의 비준도 이때까지 이뤄져야 하는 건 아니다. 내년 3월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국회는 내년 이후로 비준을 미룰 수도 있다.
한.칠레 FTA 때도 정부 간 협상 타결 이후 국회 비준에만 1년4개월이 걸렸다. 미국도 의회 비준을 미루기도 한다. 다만 3월 말까지 정부 간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미국 측의 협상권이 미 의회로 넘어간다. 이렇게 되면 정치적 입김이 강한 이익단체들의 개입으로 협상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특별취재팀=홍병기.김종윤.김준현.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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