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노조,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삭발투쟁 강행
[오마이뉴스 2006-05-02 10:28]    
[오마이뉴스 신종철 기자]
▲ 법원노조 곽승주 위원장이 삭발하는 동안 법원경비대원들에 둘러쌓인 노조간부들이 사법개혁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06 신종철

서울남부지법 A판사가 법원직원을 감금했다는 논란으로 사법부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있다.

법원공무원노동조합(법원노조)의 법원행정처장과의 면담요구를 대법원이 계속 거부하면서 급기야 사법사상 처음으로 지난달 27일 대법원 청사에서 대법원장 규탄대회를 연 데 이어, 1일에는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노조간부의 삭발투쟁이 벌어지는 등 극한 상황으로 번지고 있다.

대법원도 사태수습을 위해 A판사에게 사실상 사과를 권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원의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대법관까지 A판사에게 전화를 걸어 유연하게 처리해 줄 것을 주문했다는 것. 그러나 법원직원들이 이용하는 법원내부 통신망을 폐쇄하면서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으로 확산되고 있다.

법원노조, 삭발 투쟁 단행

1일 오후 4시 서울중앙지법 법원노조 사무실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법원행정처장에 대한 면담요구가 계속 거부당하자 삭발투쟁을 선언하고 나섰기 때문.

전국법원 각 지부장과 지역본부장들을 소집해 긴급 회의를 가진 법원노조 곽승주 위원장은 "대법원의 공식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오늘도 법원행정처장에게 면담요청을 했다"며 "위원장이 결연한 자세로 임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인 만큼 사법민주화를 위해 삭발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투쟁결의를 다졌다.

이들은 회의가 끝난 뒤 삭발식을 위해 4시 35분 서울법원종합청사 중앙로비로 향했다. 중앙로비에는 서울법원청사 경비책임자인 비상계획관과 경비대원 20여명이 나와 있었고, 곽승주 위원장에게 다른 장소를 이동해 줄 것을 요청하다가 법원노조와 충돌을 빚기도 했다.

법원노조는 곽승주 위원장과 이성철 사무총장의 삭발식을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저지하려는 법원 경비관리대와 몇차례 몸싸움이 벌어졌으며, 또한 경비관리대는 방송사의 촬영을 막으려다 "취재를 방해하는 것이냐"는 항의를 받기도 했다.

출입문 굳게 닫은 대법원

삭발식 후 법원노조는 '언론탄압과 노조탄압책동 분쇄를 위한 투쟁 삭발식'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대법원으로 향하면서 "사법개혁 한다는데 대화거부 웬 말이냐"를 외치며 행진했다.

법원노조가 대법원 청사 정문에 도착한 시각은 5시 10분. 하지만 면담요청에도 불구하고 대법원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닫힌 문 안쪽에서는 법원행정처 직원 30여명이 밖을 내다볼 뿐이었다.

김대열 법원노조 서울가정법원지부장은 이에 대해 "자유·정의·평등을 자랑스럽게 대리석에 새겨놓은 대법원이 대화를 하자고 찾아온 법원가족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닫고 있다"며 "우리가 불량배냐"고 말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곽승주 위원장도 "법원가족들의 목소리를 들으려하지 않고 문을 꼭 닫으면서 직원의 인권탄압을 일삼는 대법원장이 어찌 국민을 섬기는 법원을 만들 수 있겠느냐"며 "이래서는 법원이 최후의 인권 보루가 될 수 없으니 대법원장은 각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법원노조와 법원행정처장과의 면담을 위해 행정관리실장과의 전화연락이 수 차례 오고가던 중 대표자 몇 명만 행정관리실장과 만나기로 협의되자, 교섭단체장 5명만 남고 5시 43분 법원노조사무실로 향했다.

"대법관까지 나서 해당 판사에게 '원만한 해결' 주문"

▲ 대법원이 청사 정문을 열어 주지 않자 법원노조 간부들이 면담을 요구하며 연좌시위를 벌이고 있다.
ⓒ2006 신종철
이날 기자는 대법원의 입장을 듣기 위해 법원노조와 만난 행정관리실장을 만나려 여러 차례 전화통화를 시도했으나 대법원도 긴급 회의를 소집해 만날 수 없었다. 더욱이 대법원 언론창구인 공보관조차도 민감한 사안이라는 이유로 입장표명을 피했다.

계속해서 법원행정처장의 입장을 들으려 시도했으나 "민감한 사안이고, 아직 정리된 입장이 없다"는 이유로 이 역시 성사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대법원 내부에 정통한 소식통을 만나 현재 대법원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이날 저녁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법원가족간에 이런 사태로 번져간 것에 대해 대법원도 참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으며, 문제의 해결을 위해 사법 수뇌부들도 상당히 고심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기자가 "초기에 사과만 했으면 사태가 커질 일이 아니었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원만한 해결을 위해 그 동안 A판사에게 유연하게 처리해 줄 것을 여러 루트를 통해 주문했으나 쉽지 않았고, 심지어 대법관까지 판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기도 한 것으로 안다"며 사태 악화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또한 "대법원이 법원내부통신망을 닫아버린 것이 사태확산에 기름을 부은 것 같다"고 말하자, 그는 "내부통신망을 막아 버린 것은 정말 잘못이다, 언제까지 닫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지시가 있었으니 내일은 글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서는 행정관리실장을 만난 노조대표로부터도 확인할 수 있었다.

법원공무원들의 의사소통 공간인 법원내부 통신망을 닫아버리자 답답한 것은 대법원도 마찬가지. 그는 "대법원도 법원노조 홈페이지나 언론보도가 나간 이후에는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고 있다"며 "무엇보다 이번 일로 인해 사법부 이미지가 크게 훼손된 것이 아쉽다"고 안타까워했다.

기자는 또 "대법원 누구도 입장 밝히기를 꺼리니 답답하다"고 하자, 그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기사를 써야하는 기자의 입장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너무 민감한 사안이어서 현재로선 어느 누구도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이해해 달라, 오늘 오후 긴급회의를 가졌으니 조만간 어떤 결과가 나오지 않겠느냐"고 대법원이 곧 입장표명이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

초유의 법원 충돌... 사태 왜 악화됐나

▲ 삭발식을 마친 법원노조원들이 법원행정처장과 면담하기 위해 서울법원종합청사를 나오며 사법개혁을 외치고 있다.
ⓒ2006 신종철
법원노조는 서울남부지법 사태를 판사의 '불법감금'과 '인권유린'으로 규정하면서 A판사의 공식사과와 대법원 차원의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하고 했다. 이에 법원행정처도 신속하게 진상조사를 벌여 A판사를 전보조치 했으나 법원노조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선 것.

대법원이 지난달 27일 공식사과 없이 A판사에 대한 전보조치를 발표하자, 법원노조는 즉각 대법원 청사 로비에서 사법사상 처음으로 대법원장 규탄대회를 가졌다. 물론 이날 법원노조를 저지하려는 대법원 경비관리대와의 물리적 충돌도 있었다.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 것은 대법원이 법원노조의 면담요구를 거부한 것.

이런 사실들이 법원내부통신망을 타고 급속도로 퍼져나가자 법원공무원들이 대법원을 비난하는 글들을 봇물처럼 쏟아내기 시작했고, 법원노조 홈페이지에도 평소 방문자의 2∼3배가 넘는 사람들이 방문하며 수많은 글을 올렸다.

하지만 대법원은 법원공무원들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진상조사결과를 발표한데 이어 지난달 27일부터는 법원내부통신망을 원천 봉쇄하면서 법원공무원들의 분노를 더욱 크게 만들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대법원이 통신망에 올라 온 글들을 삭제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으나, 27일부터는 자유게시판 글을 무단 삭제하는 수준을 넘어 글쓰기 기능 자체를 막아버렸다. 이에 법원공무원들도 이미 올려져 있던 글을 수정해 투쟁 속보와 비난 글을 올리자 이번에는 그 글도 삭제하고 수정 기능도 마비시켰다.

대법원은 더 나아가 메일기능도 통제했다. 법원노조에 따르면 노조위원장이 이 같은 부당성을 알리는 메일을 노조원들에게 27일 오후 6시 30경 발송하고 28일 오전에 확인해 보니 한번 발송하는데 200명까지 가능했던 것을 10명만 발송되도록 제한했다.

이에 자극된 법원공무원들은 급기야 경조사란에 '코트넷 사망'이라고 올리자 법원공무원들의 경조사를 올릴 수 있는 이 공간마저도 글쓰기 기능을 28일 삭제했다. 뿐만 아니라 법원제안 코너도 마찬가지.

이에 격분한 법원노조는 즉각 보도자료를 통해 "인권의 최후 보루인 법원에서 언론탄압의 망령을 되살리는 법원행정처는 즉각 중단하라"며 맹비난 하고 나섰다.

법원노조는 이날 투쟁결의문을 통해 "단순한 판사의 직원 핍박에서 시작된 투쟁이 법원가족간의 걷잡을 수 없는 불신으로 번지고 있고, 심지어 인권의 최후 보루인 법원에서 헌법상 권리인 표현의 자유를 심각히 훼손하는 행위가 발생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원노조는 또한 ▲법원내부 통신망 폐쇄를 중단하고, 법원공무원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한 책임자 처벌 ▲서울남부지법 사태에 대해 법원직원들이 수긍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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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6-05-02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법원에 있는 선배로부터 들은 사건의 전말로는 이렇게까지 커질 사건은 아니었는데 한 판사의 섣부른 처신이 사건을 키운 듯하다. 그렇다고 법원에서 삭발식까지 하는 것은 좀 오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 개인도 이 이슈에 관하여 완전히 객관적으로 보기는 힘들것이다. 단지 누리던 특권이 조금씩 없어지는 것일 수도 있고, 법원내부로까지 투쟁과 반목의 불길이 번진 것일 수도 있고...쉽게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암튼 여러모로 씁슬한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