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공존 - 하랄트 뮐러의 反 헌팅턴 구성
하랄트 뮐러 지음, 이영희 옮김 / 푸른숲 / 2000년 2월
평점 :
품절


 

새뮤엘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 나온지도 벌써 10년이 된 것 같다. 문명의 충돌이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그 책을 사서 읽어보았다. 내가 고등학교나 대학교 1,2학년 때였던 것 같다. 벌써 꽤 오래전 일이라서 자세한 내용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당시에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이 복잡한 세상을 나름대로 잘 쪼개 놓았구나...라는 생각과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들을 나름대로 설득력있게 제시한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물론 그때도 우리나라를 중국문명의 한귀퉁이에 넣어 한국의 독자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으면서도 일본은 독자 문명으로 나누었던 것에 대해 반감과 함께 약간의 의구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랄트 뮐러의 ‘문명의 공존’을 읽게 된 것은 새뮤엘 헌팅턴의 ‘미국’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그의 문명의 충돌과 관련하여 책장에 오랫동안 처박혀 있던 ‘문명의 공존’에 눈이 갔기 때문이다.(문명의 충돌은 내 친구에게 빌려주었는데 그 친구는 책도 돌려주지 않고 지금 미국에서 유학중이다. 그 친구는 놀랍게도 헌팅턴의 사상과 맥이 통한다고 볼 수 있는 보수적인 연구소에서 공부하고 있다. 이런 우연의 일치가...) 각설하고 문명의 충돌에 대한 막연한 기억만 가지고 문명의 공존을 읽게 되었는데 문명의 공존은 그렇게 쉽게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문명의 공존을 읽다보면 적어도 한가지는 분명해진다. 문명의 충돌이 경험적 사실에 반하는 오점 투성이의 이론이라는 것 말이다.


헌팅턴은 국제적인 사회, 문화, 정치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세계의 수많은 국가들을 대여섯개의 문명권으로 나눈다. 그리고 각 문명권에는 문명권을 이끄는 핵심국가가 존재하고 각 문명권은 근본적인 문명적 차이 때문에 서로 대립하고 충돌한다는 것이 그 주장의 핵심이다. 그렇지만 이는 하랄트 뮐러가 지적하듯이 지나치게 단순하여, 그래서 잘못된 결론으로 이끄는 사고의 틀이다.


단적인 예로 중국의 유교문명권에 포함되어 있다는 우리나라가 중국과 항상 함께 행동하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 충돌을 일으킬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가? 물론 헌팅턴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듯한 증거들이 곳곳에 눈에 띄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9.11.테러 이후 헌팅턴의 주장이 더 힘을 받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헌팅턴의 주장에 부합하지 않는, 그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의 이론이 전혀 타당하지 않음을 가리키는 훨씬 더 많은 증거들이 있음을 이 책은 상세히 보여준다. 특히 표면적으로는 헌팅턴의 이론대로 문명의 충돌이 있는 듯한 지금의 사회현상도 한꺼풀만 역사적 배경을 벗겨보면 문제의 본질이 전혀 다른 곳에 있는 경우가 많음을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어 좋았다.(아프리카, 이슬람의 사례등)


문명의 충돌이나 문명의 공존이 나온 이후 세상이 점점 더 문명의 충돌에 나온 것처럼 변해가는 것 같아 씁슬한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명의 충돌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미국과 이슬람권과의 대립이 점점 격화되고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요즘의 상황을 보면, 세계의 지도자들이 헌팅턴의 잘못된 사고의 틀을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사태가 점점 악화되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문명의 공존에서의 하랄트 뮐러의 충고가 더욱 값지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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