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0억 빚 탕감' 정부쪽 묵인없인 불가능
[중앙일보 2006-04-15 05:19]    

[중앙일보 김종문] 현대차의 정.관계 로비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됐다.

"다음 주부터 비자금 사용처에 대한 수사에 나서겠다"는 검찰의 계획이 조금 앞당겨진 것이다.

연결고리는 김동훈(구속) 전 안건회계법인 대표다. 검찰은 김씨가 2001년부터 2002년까지 위아.아주금속 등 현대차 계열사의 부실 채권 중 550억원을 탕감받게 해 주는 과정에서 산업은행과 금감원.자산관리공사(캠코) 측에 금품 로비를 벌인 정황을 포착했다.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은 "여러 사람이 교묘하게 관여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사건이다. 이는 말도 안 되는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로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라고 말했다.

◆ 빚 탕감 어떻게 했나=검찰에 따르면 채무를 탕감받는 수법은 철저한 각본 아래 이뤄졌다는 것이다. 기업 구조조정 전문회사(CRC.corporate restructuring company)를 내세워 캠코와 산업은행 등이 보유하고 있는 담보부 채권을 저가에 낙찰받도록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낙찰 승인가격을 알아내기 위한 로비는 필수적인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이날 검찰에 긴급체포된 박상배 전 산업은행 부총재와 이성근 산은캐피탈 사장 등은 김씨에게서 금품 로비를 받은 혐의다.

검찰은 거액의 채무가 탕감되면 이는 국민의 조세 부담을 초래해 결국 공적자금으로 충당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현대계열사가 탕감받은 550억원의 빚은 그만큼의 세금을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같은 채무조정은 산업은행과 캠코는 물론 정부 쪽의 묵인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올 1월 말 현재 공적자금 회수액은 76조1000억원으로 1997년 11월부터 투입된 전체 공적자금 168조2000억원의 45.3%다.


이에 대해 산업은행 측은 "위아 등에 대한 채무 조정은 정상적인 매각과정을 거쳤다"며 "당시의 일은 로비와는 무관하게 처리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또 정건용 당시 산업은행 총재도 "현대차 계열사의 부실 채무 탕감 로비에 대해선 전혀 아는 게 없다"며 "당시 일이 총재까지 올라오는 결재 사안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 로비 수사 어디까지 이뤄질까=검찰이 이날 현대차의 이정대 재경본부 부사장과 김승년 구매총괄본부장 등을 체포하면서 현대차의 비자금 조성과 로비 혐의에 대해서도 수사가 확대될 전망이다.

검찰은 최근 현대차에 대한 압수수색과 임직원에 대한 조사과정에서 비자금의 실체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현대차가 관리해 온 국내 금융기관의 비밀계좌 존재를 추적 중"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김 본부장이 현대차의 비자금 조성과 집행에 깊숙이 개입한 단서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이날 금융기관 관계자 등 10여 명에 대해 추가로 출국금지 조치를 내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검찰은 특히 이들을 통해 정.관계 인사들의 연루 혐의도 상당 부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채동욱 수사기획관은 "사용처에 대한 수사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몇 달간 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문 기자 j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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