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낸시 랭입니다. ”


처음 만난 사람에게 자신을 아티스트라고 소개하고 대통령처럼 과장된 몸짓으로 악수를 나누는 사람, 낸시 랭(27·한국명 박혜령). 연예인인지 디자이너인지 사람마다 아리송한 ‘답안’을 내놓는 이 사람, 요즘 TV만 틀면 여기저기 나온다. 초고속통신망 광고에서 머리에 깃털을 달고 고양이 캐릭터와 탭댄스를 추고, 패션브랜드 광고의 지폐뭉치 속에서 웃고 있다. KBS의 ‘파워 인터뷰’에 고정패널로 나와 몇 차례 돌출발언으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더니 슬며시 사라졌다.


그러더니 이번엔 케이블 음악채널 M.net에서 지난 3일부터 월∼금요일 오후 6시30분 ‘낸시 랭의 트렌드 리포트 必’에 진행자로 매일 저녁 나오며 카메라 앞에서 퍼포먼스도 하고 토크쇼도 한다. 

 

본인 말대로 “연예인에게 오는 CF, 영화 등의 섭외는 다 들어온다”는 이 사람의 정체는 무얼까.


◆그녀에 대한 오해


낸시 랭이 광장에 나온 건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거리 퍼포먼스. 초대받지 않은, 가난한 아티스트 낸시 랭은 얼굴에 분칠을 하고 란제리 차림으로 하이힐을 신고 바이올린을 켰다. 이름하여 “초대받지 않은 꿈과 갈등 : 터부 요기니 시리즈’. 이 파격적인 공연 이후 그는 2000년대 한국 현대 미술계에서 논쟁적인 인물로 떠오른다. 하지만 그는 “퍼포먼스를 한 건 단지 돈이 없어서였다”고 설명한다.


그를 만났을 때 가장 묻고 싶었던 말, 지난해 11월 KBS ‘파워 인터뷰’에 고정 패널로 출연했을 때의 문제의 발언을 되짚었다. 당시 그의 발언, “(천정배) 장관님도 여자 나오는 술집에 가보셨나요?” “저 엘리트 너무 좋아하거든요” 등은 그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큰 오해를 낳았다. “엘리트는 누구나 되고 싶어하는 거잖아요. 많이 가진 만큼 베풀지 않는 한국 엘리트의 현실이 문제이지, 엘리트가 문제는 아니잖아요? 전 명품도 좋아해요. 루이 뷔통부터 크리스천 디올까지, 좋아하는 순위별로 댈 수도 있죠. 누구나 원하는 걸 제가 굳이 숨기지 않은 게 잘못인가요.” 그녀는 ‘파워 인터뷰’에서도 “패널이 아닌 아티스트 낸시 랭으로 출연한 것뿐”이었다며 얼굴을 붉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가 똑같지 않으면 불안해해요. 튀어나오면 못박고 싶어하죠. ”


미국에서 태어나 필리핀에서 보낸 국제 고등학교 시절 “전략적으로” 변호사를 사서 바꾼 이름이 낸시 랭(본명 박혜령)이다. ‘랭’은 그가 “비주얼과 타이포그래피, 국제성까지 감안해 만들었다”는 성이다.


◆걸어다니는 팝아티스트 낸시 랭


아티스트 낸시 랭은 요즘 매일 출근을 한다. 매일 그가 아트디렉터로 있는패션브랜드 쌈지에 출근을 하고 M. Net 아이디어 회의와 녹화도 병행한다. 4월 말 출간 준비중인 책과 개인전, 또 최근 쌈지가 후원하는 입주 프로그램 작가로 선정돼 활동도 벌여야 한다. 도대체 언제 그 많은 일들을 수습할까. “꿈 속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는 그는 침대 머리맡, 화장실, 핸드백 곳곳에 노트를 놓고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적어놓는 ‘기록광’이라고 했다.


그녀의 아이디어는 ‘낸시 랭’ 상표의 옷과 가방들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그가 디자인한 핸드백 안쪽엔 ‘메이드 인 차이나’ 대신에 ‘메이드 인 헤븐’이라고 씌어진 상표가 붙어 있다. 드라마 ‘’에서 윤은혜가 들었던 알루미늄 하드케이스의 핸드백 ‘매직박스’도 그의 작품.


대중의 기호를 따라가면서 아티스트 고유의 세계를 지키는 일이 가능할까.“국내에서 아티스트가 방송프로그램 진행을 통째로 맡는 건 처음이죠. 팝 아티스트가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대중매체를 이용하는 건 자연스런 작업인데도 말이죠. 방송을 통해 트렌드를 만들고 전달하며 재해석하는 아티스트 낸시 랭의 세계를 생생하게 보여줄 겁니다. ”


“낸시 랭은 비즈니스를 예술과 접목시키는 걸 즐기는 사람이”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는 “미술가도 잘 되는 것 보여줘야 다른 분야처럼 관심과 투자를 받을 수 있지 않겠냐”고 한다. 낸시 랭은 오는 6월 대대적으로 자선 기부파티를 벌일 계획도 털어놓는다. 작품 대신 계획서를 받아 13명의 젊은 예술가들을 뽑은 후 그들을 후원해 주겠다는 생각이 낸시 랭답다.


그가 꿈꾸는 예술가는 피카소, 달리, 앤디 워홀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천재적 재능과 다작을 남겼다는 것. 그리고 부와 명성을 ‘일찍이’ 누렸다는 거죠. 고흐는 싫어요. 우울하고 고통스럽게 살며 명작을 남겼지만, 사후에야 유명해졌잖아요?”


작품보다 작가가 유명해지는 것에 불만은 없을까. “지난해 말 쌈지에서 낸시 랭 개인 전시회할 때 사람들이 밖에서 줄서서 기다리다 들어왔어요. 쌈지 전시장 개장 이후 그렇게 성황인 건 처음이라 그러던데요.” “나르시시즘이 내 작품 키워드 중 하나”라는 그녀의 무한한 자신감과 솔직함이 부러워졌다.


글 김은진, 사진 이제원 기자 jisland@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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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6-04-09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녀가 누군지는 잘 모르지만,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분방함과 있는 그대로를 숨기지 않고 드러낼 수 있는 자신감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