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해방전후사의 재인식>에 대한 <…인식>의 반론

<해방전후사의 인식>(이하 인식)은 냉전 역사인식을 크게 변화시킨 1980년대 인문사회과학의 대표적 베스트셀러였다. 그런데 20여년이 흐른 지금 뒤늦게 이를 비판적으로 겨냥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재인식)이 출간되었다. <인식> 필진의 한 사람으로서 필자는 ‘해전사’ 시절의 향수와 함께 식민지사 중에 빠진 부문도 있구나, 이런 각도로 역사를 볼 수도 있구나 하는 사관 다양성의 흥미를 느낄 수 있었다. 초창기 선물시장의 생생한 풍경을 잡은 ‘하바꾼…’, 봉건적 가부장제 잔재와 위안부 사태의 다른 내면, 비밀해제된 소련측 문서 등이 인상 깊다. 좌우 역사인식의 격렬한 대립이라는 항간의 소문은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 <인식>의 흔적들은 곳곳에 산재해 있어서 <재인식>은 <인식>을 계승, 보완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친일소설 ‘야국초’를 신여성 페미니즘의 함축미로 읽어내려는 친일문학 재론 시도 등, 민족문제에 대한 논리적 비약이 종종 눈에 거슬려 당혹스럽다.

<재인식>은 사회생활사 발굴 등 착취 피착취 관계의 천편일률적 식민지 역사해석을 지양한다. 그중 몇 개의 주제는 <인식> 당시의 시대정신을 기본 배경으로 학술적 다양성을 모색한다. 그러나 그 편집의 본 목적은 소문대로 <인식>의 역사인식을 통째로 바꾸겠다는 공격성이며 이것은 결국 인식과 재인식간의 피할 수 없는 인식차이, 쟁점일 수밖에 없다. <재인식>은 기본적으로 (좌파) 민족주의에 반대하며 이를 기초로 책이 편집되어 있다. 그러나 <재인식> 필진 전체가 반민족주의를 공감하는 것은 아니다. 크게 박지향, 김철, 이영훈(서울대) 등 <인식>을 본격 비판하는 ‘주편집진’과 그렇지 않은 쪽으로 구분된다. 그러므로 반민족주의 문제는 주로 전자의 것이다.

친일문학 재론 시도 당혹

쟁점에 들어가기 앞서 먼저 <재인식>의 편집진에 정치적 편가르기 목적의 해방전후사 이용을 자제할 것을 제안한다. 최근 일제 잔재의 청산문제가 정치판에서 거칠게 전개되어서 억울한 측면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현실 정치의 역학관계상의 문제이지 <인식>과는 관계없는 것이다. 80년대 <인식>의 의미는 과거사를 이용해서 반대파를 청산하는 저급한 수준이 아니었다. <인식>은 적어도 그보다 더 큰 목표, 동시대를 지배했던 냉전이데올로기 편향에 도전한다는 역사적 소명에서 진행된 것이다. 분단체제의 발단으로써 해방전후사의 다양한 실제 모습, 예컨대 점령군으로서 미군행태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기만 해도, 미국을 절대 ‘선’으로 생각했던 당시 분위기로서는 충격이었다. 아마도 <인식>의 가장 큰 기여는 세계사를 보는 시각교정, 즉 각국의 이해관계가 세계정세의 기초라는 단순한 진리를 비로소 전 사회에 경각시킨 것이 아니었을까. 80년대 <인식>의 판금조처와 수난은 이러한 <인식>의 읽기/쓰기 운동에 대한 탄압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인식>의 필진 전체를 북한 동조세력으로 간주하는 <재인식>의 인신공격성 주장은 아무리 대승적 견지로 생각하려 해도 이해하기 힘들다. 이런 정도라면 <재인식> 문제제기는 80년대 공안검사 검열과 유사하며, 역사인식을 오히려 크게 후퇴시켰다고 보여진다. 논문의 상당수가 친일과 냉전의식 등 민족갈등 자극의 첨예한 소재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될 주제들을 유형별로 분류하면 권두논문의 반민족주의 문명사관, 식민지 경제의 착취성 판정 여부, 식민지 소설 및 친일파(이광수) 재해석, 북한 해석, 냉전과 한국전쟁, 그리고 대담 내용(주편집진) 등이다. 예컨대 한국전쟁 롤백이론(김영호)은 전쟁기원론 중 극단적 전통주의(소련 음모설) 입장에 가까운 것으로서, 수정주의설(미국의 전쟁유인설) 등을 소개한 <인식>을 목적의식적으로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재인식> 편집 경향으로 해방전후사를 조합하면 대략 이렇다. ‘민족주의는 위험하다. 일제는 다민족국가를 지향하고 민족의 말살을 기도하지 않았다. 일제시대는 문명의 진정한 융합과정이며, 우리나라는 프랑스 레지스탕스처럼 쓸 만한 항일 독립운동은 없고, 오히려 민족주의진영는 제국과 길항하고 타협한다. 민족주의 진영은 그들끼리 경쟁하고 견제하는 제국의 파트너였다. 이광수의 친일내셔날리즘처럼 일제에 의존한 성장론을 주장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것이었는지 모른다. 친일적이고 민족주의적으로 자기를 발견하는 김성수 같은 인간형이 식민지 조선의 중심이며, 더 적절하다. 해방직후사는 소련이 한반도 북쪽에 진주하는 영토적 야욕 때문에 매우 어지러워졌고 그 결과 분단과 전쟁이 일어났다.’

‘재인식’은 반민족주의에 공감?

▲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온 김구와 이승만. 악수를 하고 있지만 활동무대(워싱턴-상하이)나 즐거입은 옷(양복-한복) 만큼이나 정치노선이 판이했던 두 사람은 해방정국에서 뚜렷이 대비되는 두 세력의 거멀못이었다. 이들의 노선과 행태에 대한 평가는 분단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변화 만큼이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양상을 달리하고 있다.
<재인식>은 중고 교과서의 변경 추진을 다음 과제로 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경향의 교과서를 조만간 보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런데 <재인식>은 과연 이를 진실로 청소년들에게 읽히려는 것인가. 안타까운 것은 <재인식> 측이 민족문제를 너무 좌우 이데올로기 경향으로 생각해 좋은 발상마저도 사장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종종 민족주의 개념혼란, 객관성의 자기합리화 등으로 엉뚱하게 나타난다. 예컨대 ‘역사기술의 목적은 객관적 사실을 표명하는 데 있으며, <인식>은 이를 위반했다’ 라고 비판하면서 정작 본인들은 오히려 친일성을 더 강하게 주장하거나, 친일하고 타협하는 김성수 식 민족주의를 유일한 상으로 제시하고 다른 유형은 확 무시하는 분리주의 행태를 서슴치 않는다. 그렇게까지 무리해서 얻으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재인식>의 반민족주의 스펙트럼은 이영훈이 가장 강한 편인데 그의 문명사관을 요즈음 방식으로 말하면 세계동화주의의 일종이 될 것이다. 그런데 세계동화주의를 무조건 강조한다고 사태가 다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해방직후 좌우파를 막론하고 조선의 모든 단체는 해방군을 환영했다. 하지만 정작 점령군의 파트너 선택조건은 자국의 이해에 누가 더 적절한가였다. 당시의 이승만은 이 방면의 승부사였다. 남한지역에서는 민족주의보다 반공주의가 우세할 것으로 냉전사태를 냉정하게 읽었고, 현실적으로 단독정부 노선을 채택해서 정치적으로 승리했다. 이런 이승만 노선은 옳은 것인가. <재인식>의 관점에서는 결과적으로 옳다. 그러나 동족상잔과 민족 전체로 보면 이는 실패한 노선이다. 왜냐하면 개별의 이해가 민족 전체의 이해를 침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식>이 김구의 민족주의통일노선을 이승만의 북진통일론보다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민족성이 개별에 우선한다는 원리에 근거한다.

<재인식>의 반민족주의관은 굳이 분류하자면 국수주의(patriotism)로 이해할 수 있다. 필자는 수년전 이영훈의 정신대 비하 발언 파동 시절부터, 그 기묘한 논리를 개인적으로 추적한 바 있는데, 일본 소농론과 극단적 시장주의에서 출발하는 그의 세계동화주의는 지나치게 굴종적이다. 아마도 그의 반민족주의관의 기원은 이 부문 어디일 것이다. 민족문제의 기본은 제국주의(팽창주의적 국수주의)와 민족해방운동이다. 이 두 가지 다른 민족문제는 세계사적으로 동전의 양면이며, 해방전후사의 중심은 이를 처리하는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전쟁의 비극에서처럼 이 문제는 피한다고, 또는 한쪽으로 편중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이렇게 중요한 문제에 세계동화주의처럼 적극 대응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결국 제국주의에 순종하겠다는 것과 같다. 필자가 <재인식>의 반민족주의의 정체성을 심하게 염려하는 것은 원인없는 결과란 없기마련이어서 친일주장의 뒤에는 누군가 있을지 모른다는 순진한 추측 때문이다. 이 단순함이 잘못된 판단이기를 바란다.

이영훈씨 논리 제국주의 순종 뜻

▲ 백일/울산과학대 교수·경제학
<인식>을 특정 정파로 생각하고 그를 공격한다면 학문의 자유가 있는 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민족주의에 항상적으로 냉전 이데올로기로 대응하는 <재인식>의 역사인식은 결코 동의할 수 없다. 환경이 아무리 바뀌어도 분단 모순이 해제되지 않는 한 해방전후사 기본구도는 민족문제라고 생각한다. 사람과 환경은 변하기 마련이므로 오늘날 <인식>의 필진 중에는 80년대의 문제인식과 생각을 달리하는 인사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재인식>이 무엇을 주장하든 <인식>을 직접 겨냥했고, 자료 환경도 많이 바뀐 만큼 <인식>은 다시 한번 정비된 역사인식으로 거듭나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인식>은 치열한 시대 쟁점의 산물이다. 새로운 쟁점이 붙은 만큼 냉전해제 이후시대를 맞이한 새로운 <인식> 운동이 곧 탄생할 것이다. 다시 태어날 <인식>의 목표는 아마도 <재인식>과 같은 마지막 남은 냉전이데올로기의 완전한 종식일 것이다.

http://book.hani.co.kr/arti/BOOK/10442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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