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전후사의 재인식’ 출간
‘좌편향 현대史’ 균형 잡는다
1979년 첫 권이 나온 이래 6권까지 발간되며 한국 현대사에 대한 좌파 수정주의 사관을 학계와 일반인에게 확산시킨 ‘해방전후사의 인식’(이하 ‘해전사’). 이 책의 ‘오류와 편향을 바로잡은’ 새 책이 8일 출간됐다.
서울대 박지향(서양사), 이영훈(경제사), 연세대 김철(국문학), 성균관대 김일영(정치학)교수 4인이 책임편집을 맡고 28명의 학자가 집필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총 2권·책세상·이하 ‘재인식’)이다. 20여 년간 연구성과를 총결집한 이 역사서의 출간으로 한동안 소강상태였던 현대사의 주요 쟁점들을 둘러싼 좌우 진영 간의 학술논쟁도 활발해질 전망이다.
먼저 ‘해전사’는 민족지상주의와 민중혁명론이라는 70년대 한국 좌파 지식인들의 코드에 맞춘 우리 현대사에 대한 인식을 집대성한 책이다. 80년대 386 운동권들의 필독서였고 80년대 말 사회주의 붕괴 이후에도 대표적인 현대사 교양서로 자리잡았다.
‘재인식’의 1권은 일제시대와 북한 친일파 청산의 실상을 재조명한다. 일제하 조선인들의 삶을 다양한 각도로 조명하면서 독립운동가/친일파라는 이분법으로 도저히 잡아낼 수 없는 다수 민초들의 삶을 보여주는 데 초점이 있다. 한편으로는 자기이익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인이라는 숙명에 좌절해야 했던 이중성이 대다수 주민들의 실상이었다는 것이다.
‘재인식’은 현재 몇몇 좌파 진영에서 진행중인 ‘친일 청산’에 대해서도 비판의 화살을 날린다. 이영훈 교수는 “현재의 법에 따르면 30~40%가 넘는 고리대에 시달리던 조선 농민들에게 7~8%의 저리대출을 해주는 업무를 했던 식산은행의 근무사실만으로도 친일파로 몰아세운 법이 제대로 시행될 리 없다”고 말한다.
‘북한은 친일 청산을 완벽하게 했다’는 세간의 믿음도 ‘해전사’에서 비롯됐다. 이에 대해 ‘재인식’은 그것은 “만들어낸 역사일 뿐”이라고 반박한다. 북한의 경우 친일파라도 사회주의에 동조할 경우 문제삼지 않았고, 더불어 방조의 형식으로 지주 자본가 계급을 대거 남쪽으로 내려보냄으로써 ‘완벽한 친일 청산’이라는 허구를 창조해냈다는 것이다.
‘해전사’에 비해 ‘재인식’이 특징적으로 다른 점은 50년대 이승만 시대에 대한 적극적 해석이다. 편집 책임자인 박지향 교수조차 “나도 이승만 하면 부정선거와 4·19만을 떠올렸으나 이번에 작업을 하면서 그가 정치적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고 경제적으로 미국의 달러를 끌어들여 수입 대체화 산업을 일으켰으며 사회적으로는 민주주의에 대한 훈련과 국민교육에 많은 기여를 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고 털어놓았다.
‘재인식’은 또 이광수에 대한 새로운 해석, 친일파 청산문제, 분단의 책임문제, 농지개혁의 성공, 좌익노조인 전평(조선노동조합 전국평의회)의 실패 원인, 부산정치파동의 배경 등을 둘러싼 새로운 자료와 해석을 내놓음으로써 다양한 논쟁들을 발화시킬 전망이다.
이번 ‘재인식’은 단순히 좌편향 ‘해전사’에 대한 우파의 반격이라는 의미를 훨씬 넘어선다. 무엇보다 국내외 일류학자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카터 에커트(하버드대 한국학), 기무라 미쓰히코(아오야마가쿠인대 국제정치경제학) 등 외국학자들을 비롯해 연세대 유영익 석좌교수(한국사), 이만갑 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 이정식 미 펜실베이니아대 명예교수(정치학) 등 국내 원로학자들과 동국대 김낙년, 서울대 전상인, 충남대 차상철 교수 등 중진 학자는 물론이고, ‘해전사’의 필자였던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완범 교수(정치학)와 연세대 신형기 교수(국문학), 그리고 커밍스의 부인인 우정은 교수(미국 미시간대 정치학)가 쓴 글까지 들어 있다.
입력 : 2006.02.08 18:33 51' / 수정 : 2006.02.09 01:32 53'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출간… ‘편향된 역사접근’ 바로잡기
한국 사회, 특히 현 집권세력과 이른바 386세대의 현대사 인식에 큰 영향을 끼친 ‘해방전후사의 인식’(약칭 해전사)으로 상징되는 ‘좌파적 역사인식’의 편향성을 극복하고 현대사 해석의 균형추를 바로잡겠다는 취지의 책이 우여곡절 끝에 8일 출간됐다.
‘해전사’식 역사인식의 좌편향성과 이분법적 접근을 비판하며 한국현대사 이해의 중층성과 복합성, 역동성을 강조하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약칭 재인식·책세상)이다.
서울대 박지향(朴枝香·서양사학), 이영훈(李榮薰·경제사), 연세대 김철(金哲·국문학), 성균관대 김일영(金一榮·정치외교학) 교수가 편집위원으로 참여한 ‘재인식’은 ‘해전사’가 민족지상주의와 민중혁명 필연론에 사로잡혀 있다는 문제의식 아래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국내외 논문 28편과 편집위원의 대담을 정리했다.
박지향 교수는 서문에서 “‘해전사’를 읽고 피가 거꾸로 흘렀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노 대통령이 2004년 8월 25일 독립유공자 초청 오찬에서 ‘반민특위의 역사를 읽는 많은 젊은 사람이 가슴 속에 불이 나고 피가 거꾸로 도는 경험을 다 한 번씩 한다’고 발언한 것을 지칭한 것으로 보임)을 보도를 통해 접하고, 우리 사회의 역사인식을 이대로 두고 본다는 것은 역사학자의 ‘직무유기’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재인식’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왜곡된 역사인식을 조금이라도 교정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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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인식’은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의 삶과 광복 후 친일 청산 문제를 다룬 1권(15편의 논문·780쪽), 광복 이후 분단과 6·25전쟁의 책임 및 이승만 정권에 대한 평가를 다룬 2권(13편의 논문과 편집위원 대담·696쪽)으로 이뤄져 있다.
필자 중에는 ‘해전사’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수정주의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명예교수의 부인인 우정은 미시간대 정치학과 교수, ‘해전사’의 필자였던 이완범(李完範·정치학)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와 신형기(辛炯基·국문학) 연세대 교수도 있다.
‘재인식’은 그 책의 내용 못지않게 기획과 출간과정에서 우리 지식인 사회가 이념과 비지성적인 편견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함을 확인시켜줬다.
이 책의 편집위원들은 처음부터 “‘해전사’의 역사인식의 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정치색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는 글들만 엄선한다”는 원칙을 앞세웠다.
그러나 필자 섭외 과정에서 많은 학자들이 기고를 회피했다.
박지향 교수는 “준비 과정에서 외국에서 발표된 훌륭한 연구물을 실으려 했는데 거절당한 경우가 있었다. 연구자가 국내 반응과 분위기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라며 “사실을 사실대로 탐구하는 연구조차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라고 대담에서 밝혔다.
최근엔 한 언론이 ‘역사 연구가 특정 이념이나 정책적 목표의 수단으로 사용되어선 안 된다’는 재인식 출간 취지를 무시한 채 ‘뉴라이트판 해전사’라고 보도해 필자들이 크게 반발하고 책이 인쇄돼 나올 때까지 언론과의 접촉을 거부하기도 했다.
현대사에 관한 한 좌파적 역사관이 득세하며 성역처럼 군림하고 있는 지식인 사회의 굴절된 단면은 책 출판 과정에서도 엿보인다. 이 책은 2004년 11월 본보가 그 출간 기획 소식을 처음 보도한 뒤 학계와 출판계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당초 책을 내기로 했던 출판사로부터 두 번이나 보이콧을 당했다.
지난해 초 출판의사를 밝혔던 한 출판사는 기획과정에서 “정치색이 너무 뚜렷해지는 바람에 진보적 시각을 유지해온 우리 출판사의 기조와 맞지 않는다”며 출판을 거부했다. 또 다른 출판사는 출판계약까지 해놓고는 책이 발행되기 보름 전에 돌연 이를 덮어버렸다. 일부 편집위원들의 반대로 책 출간을 포기한 또 다른 한 대형 출판사 관계자는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일부 위원들이 역사해석에 동의할 수 없다며 반대했다”고 전했다. 출판계에서는 이들 출판사가 민족주의와 통일지상주의 성향이 강한 역사학 필진을 의식해 이를 거부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이완범 교수“재인식 출간 정치적악용 말아야”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재인식)을 꼭 ‘해방전후사의 인식’(해전사)에 대한 공격과 비판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해전사’가 열어젖힌 지성사적 사건의 연장선에서 한 차원 높은 학문적 논의의 출발점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해전사’와 ‘재인식’에 모두 필자로 참여한 이완범(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두 책이 갖는 의미를 이렇게 평가했다. 이 교수는 ‘해전사’에 3편의 글을 기고해 임헌영(任軒永·국문학) 중앙대 교수와 함께 가장 많은 글을 기고한 학자다. 그는 ‘해전사’의 마지막 책인 6권 기획에도 참여했다.
“저는 ‘해전사’가 처음 출간된 1979년에 대학에 들어갔으니 영락없는 ‘해전사’ 세대라고 해야겠지요. ‘해전사’를 대학 1학년 시절 처음 읽었을 때 감동은 아직도 제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교수는 “그동안 흐른 세월을 감안한다면 ‘해전사’는 이제 박물관에나 가야 할 책이 되지 않았느냐”며 ‘재인식’의 출간을 비판이 아니라 창조적 극복으로 바라봤다.
이 교수는 “‘재인식’의 출간이 너무 정치적으로 해석되고 이를 이용하려는 것이 오히려 문제”라면서 “이 책의 출간을 좌우를 아우를 수 있는 균형 잡힌 역사 인식을 잡아 가려는 노력으로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출간]‘해방전후사의 인식’과 다른점
《8일 출간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약칭 재인식)에 실린 논문들은 ‘탈(脫)민중민족주의’ ‘이데올로기에 치우치지 않은 실증을 바탕으로 한 역사관’을 공통의 기조로 내세운다. 1979년부터 발간된 ‘해방전후사의 인식’(약칭 해전사)의 역사해석이 민족·민중주의적 관점의 지향성이 뚜렷한 반면 ‘재인식’은 상대적으로 다양한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해전사’와 ‘재인식’이 대비되는 주요 주제는 농지개혁, 분단과 6·25전쟁의 원인, 이승만 정권 평가 등이다. ‘해전사’가 한국사의 질곡으로 지적해 온 대상들에 대해 ‘재인식’은 오히려 근대화를 이루게 한 성과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 같은 까닭에 ‘해전사’와 ‘재인식’은 상호 보완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때 제대로 된 독법(讀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친일과 일제 잔재 청산=‘해전사’는 친일 군상의 실태를 고발하면서 일제 잔재의 미청산을 역사 왜곡의 가장 큰 원인으로 주목했었다. 반면 ‘재인식’은 일제강점기의 사회상이 친일-반일의 도식적인 구도로 쉽게 이분화되지 않을 만큼 복합적이었다고 주장한다.
한 예가 조선어학회를 중심으로 펼쳐진 한글운동에 대한 평가다. 이 운동이 민족주의 운동의 최후의 보루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지만 ‘재인식’에서 이혜령(국문학) 성균관대 강사는 조선어학회가 추진하는 철자법 개정, 교과서 개정 등 조선어문 통일을 조선총독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했다고 지적했다.
해방 이후 남한에서는 미군정이 형식적 민주주의를 도입했을 뿐 일제 잔재를 남겨 놓았지만 북한에서는 일제 잔재 청산이 철저히 이뤄졌다는 진보학계의 시각에 대해 ‘재인식’에서 기무라 하쓰히코(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 국제정치경제학부) 교수는 “농업 부문의 생산책임제 강제수매제 등 일제가 구축한 전시 통제경제 체제가 해방 후 북한에서 거의 모습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계승됐다”고 지적했다.
신형기(국문학) 연세대 교수는 “해방 후 북한에서는 모든 사람이 ‘혁명적 신인간’으로 다시 태어나야 했지만 그것은 결국 일제가 전시에 내걸었던 ‘혁신적 국민’과 다를 바 없었다”며 “일제로부터의 해방이 동원체제로부터의 해방을 뜻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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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지개혁=‘해전사’는 미군정의 토지정책이 반봉건적 지주제를 온존시켰으며 이를 원형으로 한 정부 수립 이후의 농지개혁은 지주의 이익을 대변한 타협적 해소책에 불과했고 영세소농경영체제의 고착이라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재인식’에서 김일영(정치외교학) 성균관대 교수는 “이승만 대통령은 지주를 대변한 것이 아니라 지주가 산업자본가로 전신(轉身)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려 했다”며 “이 대통령의 농지개혁은 봉건적인 지주-소작인 관계의 해체를 꾀한다는 점에서 분명 개혁적이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북한이 6·25전쟁 때 점령정책으로 토지개혁을 통해 농민들의 호응을 유도하려 했지만 이미 1950년 3∼5월에 농지를 분배받은 남한의 농민들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분단과 6·25전쟁=‘해전사’는 분단의 원인에 대해 북한이나 소련보다는 남한 단독정부를 수립한 이승만 정권과 미군정에 더 비중을 두었다. 6·25전쟁의 원인에 대해서도 ‘북한의 남침’보다 북한을 오판하여 남침하도록 만들었다는 ‘함정설’ 또는 ‘제한전쟁설’ 등이 더욱 중요하게 다뤄졌다.
그러나 ‘재인식’에서 이정식(정치학) 펜실베이니아대 명예교수는 1945년 9월 20일 ‘소련이 점령한 북한지역에 단독정부를 수립할 것’을 지시한 스탈린의 지령 등 새로 공개된 소련문서를 통해 6·25전쟁이 미소(美蘇) 냉전에서 결정적인 승기를 잡기 위한 스탈린의 세계 전략에 기인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스탈린은 중소(中蘇)방위조약을 체결한 다음, 미국의 봉쇄선인 38선을 돌파하여 남한을 소련의 영향권으로 편입함으로써 미국의 국제 위신에 심대한 타격을 가하고자 했다”며 “스탈린의 이러한 세계 전략을 부추긴 것은 김일성의 무력통일 의지였고, 여기에 중국의 참전 의지가 전달됨으로써 6·25전쟁이 실천에 옮겨졌다”고 말했다.
▽이승만 정권 평가=‘해전사’는 이승만 대통령이 민족 분열과 분단에 앞장서고 남한의 미국 종속화를 낳은 친미주의자이며, 개인적 탐욕과 장기집권으로 민중의 심판을 받은 지도자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재인식’은 이 대통령이 확고한 반공, 반일주의자였고 북진통일과 한미방위조약, 수입대체 산업화라는 목적을 위해 기회와 자원을 최대한 활용했던 마키아벨리스트였다고 평가했다. 흔히 이승만의 독재정치가 시작되는 계기로 알려진, 6·25전쟁 중 임시수도 부산에서 벌어졌던 ‘정치파동’과 ‘발췌개헌’에 대해 김일영 교수는 “북진통일을 목표로 한 이승만이 미국의 전쟁 수행과 동아시아 정책을 놓고 미국의 영향하에 있는 의회 및 야당의 지도자와 정치적 헤게모니를 다툰 사건”으로 정치사적 의미를 해석했다.
특히 대표적 수정주의 이론가인 브루스 커밍스 미 시카고대 교수의 부인인 우정은(정치학) 미시간대 교수는 ‘재인식’에서 “이승만이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담보로 초강대국인 미국으로부터 최대한의 ‘지대(rent)’를 우려냈고 그렇게 얻어낸 자본을 강한 국가 유지를 위해 재투자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1979년 제1권이 출간된 뒤 10년간 6권이 발간된 ‘해방전후사의 인식(해전사)’은 1970년대까지 학계에서 외면해 온 1945∼53년의 광복과 대한민국 건국 과정을 본격 조명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현대사를 외세에 의한 분단, 친일파 청산의 좌절, 민족 통일의 염원을 외면한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 등 오욕이 점철된 역사로 각인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해전사’는 1980년대 대학가에서 ‘의식화 교육’의 필독 교재로 쓰이면서 386세대에게 큰 충격과 함께 현실 변혁의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자극이 됐다. 학술논문을 편집한 책이었지만 1권이 40만 부 이상 팔렸다. 1권은 초판 출판 직후 판매금지 조치를 당해 원고 일부를 삭제한 뒤 1980년 신군부의 검열을 통과했다. ‘해전사’ 기획을 주도한 학자들 가운데는 강만길(姜萬吉)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2권), 최장집(崔章集) 전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4권), 이종석(李鍾奭) 통일부 장관 내정자(5권) 등이 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뉴라이트판 '해전사' 나왔다
"해전사 읽고 피가 거꾸로 흘렀다는 노무현 대통령 발언 접하고 사회의 역사인식 두고 볼 수 없었다"
"2004년 초가을,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읽고 '피가 거꾸로 흘렀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언급을 지면을 통해 접하고, 우리 사회의 역사인식을 이대로 두고 본다는 것은 역사학자의 직무유기라는 생각이 들었다."('해방전후사의 재인식' 머리말에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책세상.이하 '재인식')이 8일 출간됐다. '재인식'은 '해방전후사의 인식'(한길사.이하 '해전사')을 비판할 필요성에 공감한 국내외 학자 28명이 1년 넘게 준비해 내놓은 책이다. 그들이 비판하고자 한 '해전사'는 1979년 발간된 진보.좌파적 시각의 역사 논문집이다. '해전사'는 진보적 성향의 386세대들이 역사교과서처럼 중시했던 책이다.

'재인식' 발간에 앞장선 학자는 보수.우파 지식인 모임인 뉴라이트 네트워크 소속 이영훈(서울대).김일영(성균관대) 교수와 탈민족주의 이론가인 박지향(서울대) 교수 등이다. 이영훈 교수는 총론 격인 첫번째 논문 '왜 다시 해방전후사인가'에서 '해전사'식 역사인식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 교수는 '해전사'를 80년대 좌파 운동권과 주사파 탄생의 배경이라고 진단했다.'해전사'를 읽은 80년대 진보세력들이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수립된 남한 정권을 '반혁명 세력'으로 규정하고, 반대로 김일성이 소련의 사주를 받아 만든 북한 정권을 민족통일을 위한 '민주기지'로 여겼다는 지적이다. 진보세력이 '해전사'식 역사인식에 따라 민주기지(북한)와 연대해 반혁명세력(남한)을 몰아내는 '인민민주주의 혁명'을 꾀했다는 결론이다.
머리말을 쓴 박지향 교수는 "지난 20여 년간 학계의 부단한 연구로 '해전사'에서 제기된 주장들의 잘못이 지적되고 수정돼 왔는데도 그런 사실이 일반 대중에는 알려지지 않았다"며 '재인식' 출간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박 교수는 "'재인식'은 '해전사'의 민족지상주의와 민중혁명 필연론이 우리 역사 해석에 끼친 폐해에 대한 우려를 담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창립된 뉴레프트(신진보) 싱크탱크인 '좋은정책포럼'의 김형기(경북대 교수.노동경제학) 공동대표는 "과거 '해전사'에 어떤 편향이 있었다면 본격 논쟁을 통해 편향을 해소하며 보다 발전된 대안을 모색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만 '재인식'도 특정 이념에 집착해 비판하는 것이라면 또 하나의 편향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경계했다.
배영대 기자<balanc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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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전후사의 '인식' 뒤집는 '재인식' 출간
현대사 해석 놓고 논쟁 본격화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말한다. 과거를 보는 눈이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국현대사를 보는 눈도 마찬가지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이하 해전사)은 한국인의 역사 보는 눈을 진보.좌파 쪽으로 바뀌게 한 중요한 역사논문집이다. 해전사 이전 우리 현대사는 주로 반공 이데올로기 중심의 우편향적 시각에서 쓰여졌다. 1979년 반독재 민주화투쟁의 연장선에서 등장한 해전사는 이전의 냉전 반공 이데올로기로서의 역사관을 뒤흔들었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하 재인식)은 27년간 번창해 온 진보적 역사관을 다시 진단하고 해체하려는 시도로 풀이될 수 있다. 해전사의 좌파 논리를 정면으로 비판한다는 점에선 보수.우파 성향으로의 선회라 볼 수 있다. 하지만 탈민족주의를 주요 논리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이전의 보수 논리와 차별화된다. 해전사가 우파 반공이데올로기를 비판하며 좌파 민족주의를 일으켰다면, 재인식은 다시 이를 비판하면서 새로운 우파 탈민족주의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양상이다. 탈민족주의를 전파해온 박지향(서울대 서양사) 교수는 "최근 발표된 한국 근현대사 연구물 가운데 대표적인 28편을 엄선했고, 각 필자들이 대폭 가필해 실었다"고 밝혔다.
◆ 좌파 민족주의 비판=박 교수는 해전사를 '민족 지상주의와 민중혁명 필연론'으로 규정하며 비판했다. 총론 격인 첫 번째 논문 '왜 다시 해방 전후사인가'를 쓴 이영훈 교수는 해전사의 역사인식을 "민족과 혁명의 이중주"라고 단정했다. 해전사류의 인식은 과거의 역사를 이분법적으로 재단하고, 현재의 잣대로 과거의 시행착오를 비난하는 오류를 범했다는 비판이다.
해전사가 민족 지상주의로 도배돼 있다면 재인식은 탈민족 혹은 민족 해체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 교수는 민족이란 말 자체가 20세기에 만들어진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민족과 탈민족의 시각은 식민지시대와 친일잔재 청산, 한국전쟁과 이승만 평가 등에서 모두 대립각을 세운다.
친일잔재 청산의 경우, 해전사는 북한에 비해 남한의 청산이 미비해 부끄러운 역사를 이어왔다고 한 반면, 재인식은 남북 모두 단절보다는 식민지시대와의 연속성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총독부 산하 각급 관료기구와 학교 등에서 복무한 테크노크라트적 협력자들은 해방 후 국가 건설에 크게 기여했다"며 "박정희 같은 인물들이 성장한 사실에서도 식민지 유산을 찾아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 20세기 문명사관 제시=이 교수는 문명사관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일제 식민지시기를 "조선의 전통문명과 일본을 통해 들어온 서유럽 기원의 근대문명이 상호 융합하는 시대"로 보고 있다. 그리고 해방.분단.건국.전쟁.복구.한미동맹, 그리고 4.19로 이어지는 해방 전후사의 후반을 "나라 세우기 과정으로 이해하고 평가하자"고 제안했다.
문명사관은 결국 식민지 근대화론과 연결된다. 식민지 시절의 자본주의와 경제 발전을 인정하는 논리다. 박 교수는 "1910~40년 세계 자본주의가 침체와 위기를 겪는 동안 조선은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였고 산업 구조도 근대화했다"고 했다. 그는 또 "식민지 시절 대중의 일상적 삶은 협력과 저항, 친일과 반일의 잣대로 구분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다층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 이영훈 교수, 진보학자 실명 비판=이영훈 교수는 해전사의 주요 필자인 강만길(전 고려대 교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장과 최장집 고려대 교수의 실명을 거론하며 강하게 비판해 눈길을 끌었다. 강.최 두 교수는 진보 성향의 역사.정치학계의 간판으로 꼽히는 학자다.
이 교수는 강 위원장의 '해방전후사 인식의 방향'(해전사 2권)과 최 교수의 '해방 8년사의 총체적 인식'(해전사 4권)을 비판했다. 각각 '민족 지상주의'와 '혁명의 이념'이란 비판을 받았다. 이 교수는 최 교수의 글에 대해 "진정한 의미의 실증에 바탕을 둔 근대적인 역사학이라고 평가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강 위원장의 민족주의 강조에 대해서는 "모든 역사를 제쳐 놓고 민족만이 역사 쓰기의 유일무이한 단위가 되어야 한다는 법이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 학계는 신중한 반응=해전사 필자인 한 진보학계 중진 교수는 "우선 책을 구해 충분히 검토한 다음 적절한 대응 방안을 찾아보겠다. 현재로서는 아무것도 밝히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진보 성향 역사학계의 중진 서중석 교수(역사문제연구소장) 역시 "책을 본 학자들 간에 평가 논의가 있을 것이다. 기다려 보자"고 말했다.

배영대 기자<balance@joongang.co.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