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파이 이야기라는 소설을 처음 보았을 때에는 책 제목이 수학에 나오는 원주율인데다가 얼핏 접한 책의 내용이 소년이 호랑이와 함께 배를 타고 표류한 이야기라는 것이어서 이 소설이 고도로 은유적인 이솝우화 같은 내용일 것이라 생각했다. 소년이 조그마한 구명정에 호랑이와 함께 조난을 당한 것이 소설의 주 내용이라면 그 소설이 사실적인 소설일 리 만무했고, 한편으로는 그 단순한 이야기구조 가지고 어떻게 두꺼운 책의 분량을 모두 소모했는지도 궁금했다. 내딴에는 이 소설속에서 호랑이가 말을 하고 소년이 별을 보며 호랑이와 친구가 되어 지혜를 얻는다는 식의 예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작가가 인도 - 이 나라에 관하여 아는 것이 거의 없으면서도 괜히 은둔자의 나라라는 이미지 혹은 인도인들은 철학적일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 출신이였다는 점도 나의 예단을 부추겼다.


책의 전반부 - 파이가 조난 당하기 전 - 는 솔직히 약간은 지루했다. 이 소설이 왜 ‘파이 이야기’인지에 관한 중요한 설명도 나오기는 하지만, 일정한 플롯이 진행되지 않고 다양한 소재가 두서없이 나열되는 듯한 느낌이 없지 않았다. 그렇다고 전반부가 ‘꽝’이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저 그 부분을 읽으면서 집중이 잘 안 되었다는 것 뿐이다.


전반부에서도 유난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주인공 파이가 천주교, 힌두교와 이슬람교를 모두 믿음에 따라 각 종교의 사제들이 서로 파이가 자기들의 종교를 믿는 종교인라고 주장하면서 상대 종교에 관하여 비방을 하는 대목이다. 작가가 평소에 이와 같은 말을 하고 싶어 파이를 3개 종교를 모두 믿는 인물로 설정하지 않았나 싶다. 각 종교의 사제가 자신들의 종교의 교리를 설파하면서 다른 종교의 모순점을 꼬집으면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은 다른 사제가 이에 동조하여 함께 맞장구치고, 비판받은 종교의 사제가 다시 다른 종교의 모순점을 지적하면서 결국 각 종교의 모순점들이 모두 드러나게 되는 부분은 한편의 코메디 같았다. 분명 흑인의 신과 백인의 신, 한국사람과 아랍사람의 신이 다르지 않을텐데, 사람들은 그 신을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믿느냐에 너무나 집착하여 신의 근본 가르침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어디에선가 종교라는 이름으로 치러진 전쟁에 의한 사망자가 그 이외의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 수를 압도한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있다. 신의 가르침은 숭고하고 명료한데 인간이 이를 흐려 놓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파이가 실제로 조난을 당하는 부분을 읽기 전까지는 어떻게 구명정에 호랑이와 함께 남겨진 소년 이야기로 줄거리를 이끌어갈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가시지 않았다. 당연히 호랑이에게 소년이 잡아먹힐 것이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이 소설에서는 소년이 호랑이와 - 사실은 몇몇 동물이 더 있었지만 - 구명정에서 220여일을 함께 생활한 이야기를 지극히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어떻게 호랑이와 한 배에 탄 채 생활하는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릴 수 있을까라는 의혹은 책을 읽으면서 사그러들었고 작가가 실제로 조난 생활을 경험해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떻게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의 이야기를 이처럼 사실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가 하는 감탄으로 바뀌었다.


책에 나와 있듯이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다. 고로 파이는 살아남는다. 소설속에서 파이는 여느 소년과 다름없는 연약한 모습에서 생존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인간으로 변모한다. 그리고 파이를 그런 상황속에서도 생존할 수 있게 한 것은 삶에의 의지와 약간의 신앙심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동물원 주인의 아들이라는 점과 운좋게 구명정에 생존키트가 있었던 것도 큰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파이의 생존기를 읽고 ‘삶에의 의지가 정말 중요하구나.’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것 까지는 아니었다 할지라도, 인간이 무엇인가를 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또한 그런 상황에 처해 있으면 때로는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만들 수 있겠구나 라는 작가의 메시지는 확실하게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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