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고속철 KTX’엔 꿈보다 ‘악몽’만이 가득했다

“꿈의 고속철을 이끌 땅 위의 스튜어디스”
“시베리아로 뻗어나갈 유라시아 고속철의 주인공, 여승무원들”

KTX 개통을 3달 앞둔 지난 2004년 1월.

13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KTX 여승무원의 자리에 오른 350명의 젊은이들이 있었다. 생활혁명을 이룰 ‘꿈의 고속철’에서 일한다는 자부심과 함께 이 고속철을 타고 머지않아 시베리아대륙을 누빌 수 있다는 꿈에, 그들의 포부는 누구와도 비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당찼다.

이런 그들에게 언론들은 너나할 것 없이 ‘고속철의 꽃’, ‘꿈의 서비스를 실현할 선로위의 프로’ 라는 별칭을 붙여주며 그 화려함을 부각시켰다. 때문에 KTX 여승무원은, 가뜩이나 취업하기 힘든 시기에 20대 젊은 여성들이 도전할 수 있는 선망 받는 직업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20일 서울역에서 열린 철도노동자 결의대회에 참석한 KTX 여승무원들 ⓒ철도노조


국회가 정상화 되어 비정규직 법안이 처리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지난해 12월 28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 KTX 여승무원들이 부당해고에 반발하며 정규직으로 전환해줄것을 요구하는 집회를 갖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옆에서 기차를 기다리던 할머니가 예쁜 여 승무원들의 구호 외침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다.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민원기 기자


민세원 KTX 승무지부장 ⓒEBS


하지만 ‘꿈의 고속철’ 이면에는 ‘악몽’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비정규·파견직’이라는 설움의 굴레가 서서히 그들의 목을 죄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희망찬 꿈은 ‘꿈의 고속철’이 내달리기도 전에 짓밟혀나갔다.

기자는 지난 1일 민세원 KTX 여승무원지부장을 만났다. KTX 여승무원의 정규직화와 철도공사의 여승무원 직접고용을 주장하며 거대한 철도공사와 한국철도유통(구 홍익회)에 맞서 지난 해 9월 30일부터 힘겨운 투쟁을 이끌어온 이가 바로 민세원 지부장이다.

지난 2년 간 겪었던 ‘악몽’을 차근차근 기자에게 설명해주는 그에게, 인터뷰 내내 미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기자로서 그간의 사정을 ‘모르고 살아온’데 대한 부끄러움이 마구 가슴을 찔렀기 때문이다.

KTX와 아무런 관계없는 KTX 여승무원들

KTX에서 근무하는 여승무원들은 모두 철도공사가 아닌 ‘한국철도유통’ 소속의 계약직 노동자다. 철도유통의 1년 단위의 비정규직이자 동시에 철도공사의 KTX에 파견돼 근무하는 파견직 신분이 바로 ‘고속철 꽃’들의 진짜 현실이었다.

한마디로 철도공사의 KTX와 여승무원들은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이다.

KTX 승무원들이 소속돼있는 한국철도유통은 승강장의 매점과 열차 안의 식당, 판매카트를 운영해온 예전의 ‘홍익회’다. 철도공사는 KTX 개통을 앞두고 ‘여승무원’직제를 만들어 철도유통에 망설임 없이 ‘위탁’해버렸다. 민세원 지부장은 “철도유통은 승무원들을 교육하거나 관리, 운영조차 해본 경험이 없는 곳”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변변한 사전 검증도 없이 한국철도유통에게 위탁을 맡긴 철도공사의 무책임성에 대해서도 민세원 지부장은 비판의 날을 세웠다.

“어떻게 철도라는 공공업무를 하고 있는 공사가 ‘승무’업무에 대한 기본 마인드조차 없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항공사에서 왜 높은 연봉을 줘가면서 승무원들을 고용하고, 많은 비용을 들여 철저히 교육시키겠나. 그 만큼 승무업무가 고객의 편의와 안전, 나아가 회사의 이윤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KTX에 고객을 위해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할 승무원들은 꼭 필요하다”

항공사와 달리 ‘경쟁사’가 없는 KTX를 운영하는 철도공사의 입장에선 고객의 편의나 안전보다는 아웃소싱을 통한 비용절감이 더 우선인 것 같다고 민 지부장은 덧붙였다. 철도의 공공성을 배제하고, 진정한 효율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무조건 ‘외주만 줘버리면 되는 줄 아는 것’ 같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무능력, 무경험 위탁회사 한국철도유통

이 덕분(?)에 민 지부장과 함께 2004년 처음으로 KTX를 타게 된 350명의 승무원들은 교육받을 곳도, 교육을 해줄 사람도 없어 결국 철도공사의 연수시설에서 철도공사 쪽 전문가들로부터 교육·연수를 받아야만 했다. 그것도 350명이나 되는 인원이 5개 그룹으로 나뉘어 ‘릴레이’형식으로 1월부터 3월말 까지 연수를 받았을 뿐이다.

항공사들이 많은 비용을 들여 자사 스튜어디스에 대한 교육을 철저하게 진행하는 것과 달리 땅 위의 스튜어디스들에겐 정말 ‘성의 없는’ 교육이 진행된 셈이다.

게다가 민 지부장에 따르면, 교육장에 나타난 철도유통 사장과 승무본부장은 승무원들에게 “무늬만 계약직이지 앞으로 시베리아대륙까지 뻗어나갈 KTX의 승무원으로서 정년이 보장될 것”이라며 책임지지도 못할 말을 던지기도 했다. 때문에 이때까지만 해도 앞으로 ‘비정규직’이란 굴레에 갇혀 설움을 받아야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못했단다.

철도유통의 ‘무능력’ ‘무경험’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민세원 지부장에 따르면, 4월 1일 첫 개통을 앞두고 당일 새벽까지 근무 스케줄이 나오지 않아 여승무원 전원이 밤새 ‘비상대기’를 해야 했다. 승무업무의 기본 중의 기본인 근무 스케줄을 짜는 일 조차 철도유통에겐 버거운 일이었던 거다.

‘요일’별로 휴무가 돌아오게 근무 스케줄을 나온 적도 있단다. 평일보다 주말에 열차이용객이 많은 만큼 주말근무는 승무원들에겐 평일근무보다 더 힘들다. 그럼에도 어떤 승무원은 주말마다 휴무고, 어떤 승무원은 평일이 휴무인 ‘희한한’ 상황이 벌어졌고 승무원 사이에 근무 형평성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제대로 된 급여를 받기도 어려웠다. 철도유통은 철도공사로부터 위탁도급계약비로 승무원 1인당 248만5000원을 받는데. 이중 30%가 관리비 명목으로 빠지고 70%인 174만원이 승무원들의 인건비로 지급된다.

하지만 174만원을 다 받는 것은 연월차와 같은 휴일을 하루도 쓰지 않았을 때만 가능하다. 업무수당과 직무수당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지 않고 기본급만으로 한정시켰기 때문이다.

민 지부장이 “많이 받는 승무원의 경우도 140만원 수준에 불과하다”고 밝힌 까닭이 여기 있었다.

따라서 연차를 쓰거나 휴일근무를 하지 않으면 급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주5일근무’는 승무원들에겐 별나라 얘길 수밖에 없다.


경력인정 명목으로 다음 기수 임금을 삭감하는 게 ‘운용의 묘’ ?

더 어이없는 일도 있다. 1기 다음 기수 승무원들은 ‘1기의 경력을 인정 해줘야한다’는 명분으로 급여에서 13만원이 빠진단다. 늘어난 경력만큼 1기의 임금을 올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다음 기수의 임금을 삭감하는 것이다.

민 지부장이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철도유통 측으로부터 들은 대답은 “이게 바로 ‘운용의 묘’다”라는 말 뿐이었다.

이와 함께 철도공사와 철도유통은 지난 1월부터 KTX 호남선에 대해 2인 승무제를 실시했다. 최소승무인원이 3명인 데 반해 경부선에 비해 탑승률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승무인원을 감축한 것이다. 3명이서 해야 할 일을 2명이서 하게 된 만큼 승무원들의 부담이 커진 것도 당연했다.

민세원 지부장은 “이전에도 경부선 승무인원이 부족할 경우 호남선 인원을 줄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만만한 게 호남선이다”며 “호남선 이용고객들의 안전과 편의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예비율이 현재 8.5%밖에 되지 않는다. 여전히 인력이 부족함에도 철도공사나 철도유통은 손을 놓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KTX 여승무원들은 노조를 만들어 지난 해 9월 30일 단체행동에 나서게 됐다. 유니폼에 표찰과 리본을 달고 철도유통과 철도공사의 부당횡포를 알리는 전단지 배포를 시작한 것이다.

KTX 여승무원들이 철도업무 외주의 첫 마루타!

그러나 철도 유통은 이 같은 정당한 노조활동에 대해 사장과 승무본부장이 직접 나서 게시문과 이메일을 통해 승무원들에게 ‘선별재계약’을 하겠다며 ‘해고’위협을 가했다. 또한 감사실에 승무원들을 불러 조사해 징계조치를 내려 계약해지의 빌미를 만들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한 승무원이 지쳐 쓰러지기도 했단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그간 ‘나 몰라라’ 했던 철도공사가 간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승무원들의 얘기에 귀 기울이는 척했던 철도공사 역시 KTX 승무원들의 직접 정규직으로 고용하라는 요구에는 절대 그럴 수 없다며 ‘본심’을 드러냈다.

민 지부장은 철도공사 관계자로부터 들은 말을 울분을 삭이며 이렇게 전했다.

“앞으로 철도운영에 있어 모든 직종을 외주를 줄 거다. 그 첫 케이스가 여승무원들 당신들인데 ‘마루타’가 됐다고 기분 나빠 하지마라”

이런 가운데 철도유통은 지난 달 12일 KTX 승무원들에 대한 ‘노무관리가 어렵다. 승무원의 단체행동으로 영업손실이 우려된다’는 내용의 홍보자료를 내고 위탁운영 사업을 포기했다.

철도공사는 이에 대해 “다른 자회사에게 KTX여승무원 운영 사업을 위탁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애초에 승무원 관리 운영을 할 수 있는 곳은 철도공사뿐인데도 또 다시 지난 2년의 시행착오와 고통을 반복하겠다는 생각이나 다름없다.

민세원 지부장은 “설 연휴에도 호남선은 2인승무를 했다.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럼에도 철도공사가 충원을 미루고 있는 것은 지금 충원했을 경우 공사 측이 직접 고용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며 공기업인 철도공사가 철도운영에 있어 꼭 필요한 ‘승무’분야를 하찮은 업무로 여기기 때문에 이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고 짚었다.

게다가 정부가 내놓은 공사 경영혁신 방안도 그 업무의 공공성과 필요성에 대한 깊은 성찰없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정규직 티오 제한에 몰려있다고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민세원 지부장이 활동 중인 KTX열차승무지부는 최근 철도노조에 가입했다. 그리고 최근 철도공사로부터 힘겹게 ‘실무교섭’테이블을 마련하겠다는 약속을 끌어냈다. 그간 노조활동을 하면서 예기치 못한 어려움을 많이 겪었던 KTX승무원들은 고통 끝에 작은 성과를 얻은 것이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민 지부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앞으로 새마을호 여승무원들과도 연대해 우리의 목소리를 키워나갈 계획이다. 비정규직이 아니고는 모르는 그 설움, 우리와 똑같은 처지에 놓여있는 새마을호 여승무원들과 함께 해나가겠다”


KTX 여승무원 베이스가 부산·서울 2군데인 까닭은?


민세원 지부장에 따르면, 한국철도유통은 KTX 여승무원 첫 공개채용 당시 광주, 목포, 부산, 서울 이렇게 4군데로 나눠 지원자를 모집했다. 승무원 베이스를 이 네 지역으로 나눠 운영하기로 한 때문이다. 따라서 지원자들 또한 연고에 따라 지원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개통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3월. 교육을 마치고 설레는 마음으로 개통을 기다리던 승무원들에게 날벼락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광주와 목포에 문제가 생겨 부산과 서울 2군데에서만 베이스를 운영하겠다”고 사측이 밝힌 것이다.

부산과 서울이 연고인 승무원들은 문제가 없었지만 광주와 목포 출신 승무원들은 졸지에 ‘객지생활’을 해야 했다. 처음부터 부산과 서울 베이스만 운영한다는 방침이었다면 미리 객지생활 준비라도 했을 거다.

‘베이스를 잃어버린’ 이들 승무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서울로 올라오거나 부산으로 내려갔다”며 당시의 안타까운 상황을 전했다.

그러나 개통을 앞두고 하루아침에 베이스를 취소해버린 사측은 이들에게 기숙사 제공은커녕, 월세 보조금 한 푼 지원해주지 않았다. 결국 광주나 목포에 비해 높은 집값 부담은 고스란히 승무원들에게 돌아갔다.

돈벌이 위한 KTX 입석 판매 대신 열차 수를 늘려라!

지난 설 연휴 당시 철도공사는 KTX와 새마을호에 대해 ‘입석’판매를 실시해 파문을 일으켰다.

철도공사는 지난 해 연말 설 연휴 기차표를 판매할 당시만 해도 ‘입석판매’에 대한 아무런 언급조차 없었다. 그러다 설 연휴를 며칠 앞둔 어느 날 갑자기 ‘입석판매’를 실시했다.

물론 고향 갈 차편을 마련하지 못한 이들에겐 입석판매가 ‘가뭄에 단비’와도 같았지만 입석판매로 많은 승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그 만큼 승객안전 문제도 커졌다.

민세원 지부장은 이에 대해 “시속 300Km로 달리는 KTX에 입석승객들이 객실통로나 열차 간 통로에 서 있을 경우 위험 가능성이 크다”며 “가뜩이나 좁은 객실통로에 승무원들마저 지나다니기가 어려운 경우도 많아 긴급한 상황에 대처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철도공사의 이번 입석판매는 “경쟁사 하나없는 철도공사가 고객에 대한 서비스 정신이 완전히 결여됐다는 것을 극명히 보여주는 사례”라며 “입석판매를 할 것이 아니라 열차 대수를 늘려 더 많은 승객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수송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현미 (99mok@dailyseop.com)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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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6-02-05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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