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정치학 - '사면은 좋으나, 망각은 거부한다.‘; 아담 미흐니크

사실상 대중 독재의 과거를 청산하고 극복하는 문제는 사법적 차원에서 죄의 유무를 추궁하는 문제를 넘어서, 그 과거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도덕적 죄의식과 수치심을 뼈아프게 자각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역사를 심판함으로써 정의가 구현될 수 있다는 생각은 순진한 생각일 뿐이다. 역사적 진실의 정치성은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 드러냄의 대상이다. 법정의 심판을 통해 과거를 단죄하고 청산하는 방식을 넘어, 과거를 드러내 살아 있는 사회적 기억으로 만들 때 비로소 과거는 극복될 수 있는 것이다.(p242)


이등 국민과 비국민(p64)

세습적 희생자 의식과 결합된 이 일등 국민의 지위에 대한 회한과 욕망은, 이등 국민인 자신이 만주와 동남아의 비국민에게 가한 ‘새끼 식민주의 sub-colonialism'적 억압에는 눈을 감고, 식민주의의 다층적 억압 구조를 일본인(일등 국민) 대 조선인(이등 국민)의 구도로 환원시키는 경향을 드러낸다. 이 구도에서 비국민에 대한 이등 국민의 억압과 차별, 그리고 이등 국민이 일등 국민이 되었을 때 가질 수 있는 잠재적 식민주의에 대한 고려의 여지는 별로 없다....


세습적 희생자 의식은 해방 직후 식민주의의 청산 논리에 이미 배태되어 있다. 식민주의와 결탁한 소수의 친일파를 가해자로 규정하고, 나머지 대다수의 신생 ‘국민’은 식민주의의 피해자라는 논리가 그것이다. 한줌 친일파의 인적 숙청을 통해 식민주의가 청산될 수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적지 않은 수의 식민지 조선인들이 가졌던 제국과 근ㄴ대에 대한 선망과 동경, 그리고 일등 국민이 되고픈 사회적 욕망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소할 것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 의식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닌가 한다.


고구려사 논쟁과 시대착오주의(p106)

고구려사 귀속을 둘러싼 한중간 논쟁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시대착오적이고 비역사적인 싸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건 2000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당시에 중국이라는 실체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한국이라는 실체가 있었던 것도 아니지요. 있었던 것은 그저 고구려일 따름입니다. 그런데 그 2000년 전에 존재했던 고구려에 (근대 동아시아의 경우) 20세기에서야 등장한 근대 국민 국가라는 개념을 그대로 투영시켜 버리는 것이 지금의 논쟁 구도인데, 이건 시대착오입니다.


민족은 근대 이후에 형성된 개념이다: 민족이라는 개념은 ‘우리는 하나’라는 구성원 간의 동질감을 그 전제로 하는데, 신분제/반상제가 존재했던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 과연 그게 형성될 수 있었을까요?...임진왜란 때 오희문이 남긴 기록 중에 ‘쇄미록’이라는 게 있는데, 거기 보면 이런 한탄이 나옵니다. 왜군이 쳐들어왔는데 저 아랫것들이 의병 모이라면 하나도 안 모이고, 일본군 환영해서 걱정이라는 것이지요. 그때 일본군 점령 정책이 동네마다 쌀 나눠주고 먹을 것 나눠주는 것이었거든요...(자신들을) 사람 취급도 안 하고 착취나 하는 양반들이 물러가고, 갑자기 쌀 나눠주겠다는 놈이 들어온 건데 굳이 거부해야 할 이유가 없잖아요. ‘이민족이 쳐들어올 때마다 관민이 일치단결해서 싸웠다’는 건 거짓말입니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들어오기도 전에 서울의 궁성을 불태운 건 노비들이라는 사실만 봐도 그렇지요. 이런 것들이 지킬 것이 있는 집단과 지킬 것이 없는 집단의 차이입니다.(p110)


적대적 공범관계

- 한국의 민족주의와 일본의 민족주의 또는 빈 라덴과 부시가 서로 대립하는 것과 같은 외양을 띠면서도 사실은 서로의 존재에 의해 자신의 힘과 권위를 강화시키는 공범관계에 있다는 주장. 부시가 빈 라덴을 제거하려면 할수록 이슬람에서의 반미주의는 강화되고 이는 빈 라덴의 힘을 강화시켜 준다. 반대로 빈 라덴이 테러로 미국을 위협할수록 테러에 대한 전쟁을 주축으로 한 부시의 정책은 더욱 힘을 받게 된다.


민족혁명(p234)

대중 독재의 체제적 성공과 효율성은 대중의 자발적인 참여와 동원이 전제될 때만 가능한 것이었다. 민족 공동체의 정치에 대한 국민적 참여를 이론적으로 정당화하고 보장한 ‘국민 주권’ 개념은 대중 독재 프로젝트에 대한 대중의 자발적 참여와 동원을 이끌어내는 사상적 기제였다....물론 이는 주권 독재가 대중 참여 민주주의를 현실로 보장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대중 참여 민주주의가 실현된 것은 ‘대문자 현실’이 아니라 ‘인식된 현실’ 혹은 ‘사회적으로 해석된 현실’의 영역에서였다. 인민 주권론이 대중에게 정치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현실 속에서가 아니라 민족 공동체에 소속되어 정치에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통해서였다...인간의 실천을 유도하는 것은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인식된 현실’이기 때문이다.(p235)...민족주의는 이러한 의미에서 다른 믿음이나 가치들을 구조화하고 위계를 만드는 대중 독재의 ‘메타 신앙’인 것이다. 지켜지지 않은 약속에 대한 배반감과 기대에 못 미치는 일상적 삶에 대한 다양한 차원의 불평, 불만에도 불구하고, 민족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이 유지되는 한, 체제에 대한 일반적 동의 수준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p237)


민중 없는 민중 사학(p294)

민중 역사학이 민족 모순과 계급 모순의 올바른 결합이야말로 한국 근현대사를 이해하는 관건적 문제라고 파악하는 한, 그래서 민중의 내적 역동성을 민족 모순과 계급 모순의 변증법이라는 추상적 담론 속에 가두는 한, 그것은 민중 없는 민중 역사학으로 남을 위험성이 컸다. 근대화와 진보에 대한 맹목적 믿음, 민족 모순과 계급 모순의 변증법에 대한 과학적 이해의 추구, 해방의 거대 담론에 대한 집착 등은 사실상 역사적 행위자로서의 민중을 배제하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엄격히 말하면, ‘민중을 위한 역사’는 있었지만 ‘민중의 역사’는 없었던 것이다. 이때 무엇이 민중을 위한 역사인가를 결정하고 보장하는 것은 민족 모순과 계급 모순의 변증법에 대한 과학적 이해였다. 과학적 인식을 추구하는 입장에서는, 인식론적 상대주의와 구성주의의 시각이 설 땅을 잃어버린다. 때때로 선험적 도식성과 경직된 획일주의가 논의와 해석의 다양성을 덮어버린 느낌이 드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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