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의 삶은 9.11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질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9.11테러는 미국인들의 삶을 엄청나게 바꾸어 놓았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심장부에 테러리스트의 여객기 자체가 미사일처럼 꽃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을 어떻게 미국인들이 잊을 수 있을까? 물론 9.11테러 자체의 조작가능성을 주장하는 견해들도 많고(대표적으로 마이클 무어의 ‘Hey, Dude. Where's my country?' 등..) 개인적으로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9.11 테러를 계기로 미국의 극우세력들이 미국인들의 공포심을 악용하여 테러를 방지한다는 미명하에 전 사회적인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러한 사건이 자작극인지 여부에 관계없이 9.11 테러 현장 또는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그 사건은 정말 충격적이고 아마 평생 동안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은 채 삶의 패턴을 바꿔 놓을 것이다.
논의가 약간 벗어 났는데 9.11 테러나 역사적인 화재나 비행기 참사의 경우 반응할 여유도 없이 죽음을 맞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대피할 상당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행동을 취하지 못하여 죽음을 맞는 경우도 많이 있다고 한다. 타임지의 이 기사는 9.11 테러를 중심으로 바로 그러한 대참사의 순간에 살아날 기회가 있는 경우에도 사람들이 얼마나 소극적으로 반응할 수 있고 그 결과 처참한 결과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9.11 테러 당시 제1타워 73층에 있던 제대뇨씨는 폭발소리를 들었고 건물이 흔들리며 쓰러져버릴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제대뇨씨는 무슨 일이냐고 소리쳤지만-그녀가 본능적으로 재빨리 빠져 나온다는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내심 다른 사람이 그녀에게 다가와 ‘아무것도 아니야. 걱정하지마. 그건 니가 착각한 거야.’라고 말해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이상한 반응은 9.11 테러에서만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다행히 제대뇨씨는 건물 밖으로 재빨리 대피하라는 동료의 고함소리를 듣고 건물을 빠져나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우리의 삶에서 9.11 테러나 큰 화재사건은 지극히 비일상적인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평소에 그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정작 그런 극히 예외적인 불행이 닥쳐올 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날 리 없어.’라는 생각으로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의심하고 부인하려는 반응을 보인다. 이것을 정상상황선입견(normalcy bias)이라 하는데 이러한 경향은 사람들이 화재 등의 경우 건물에서 재빨리 빠져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흔히 발생한다.
예상치 못한 재난 상황에서 10-15%의 사람들은 냉정을 유지하고 재빨리 가장 효율적으로 대처한다. 또 다른 15% 정도의 사람들은 냉정을 읽고 울거나 비명을 지르면서 대피를 지연시킨다. 나머지 70-75%의 사람들은 놀라고 당황스러워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두뇌는 새로운 상황, 특히 그런 상황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경우에는 주어진 정보를 분석하고 상황에 대처하는데 있어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인간행동 전문가의 말처럼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할지 아는 경우에 훨씬 더 적절하게 행동한다. 따라서 화재나 테러와 같은 예상치 못한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그런 돌발상황이 발생하였을 때 어떻게 할 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결국 그에 관한 교육이 필요하다.
화재와 같은 재난상황을 경험해 보지 못한 내가 지하철을 타고 있던 중에 대구 지하철 참사와 같은 상황이 발생했다고 치자. 처음에 연기가 발생하면서 매쾌한 냄새가 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사실을 인지하고서도 섣불리 소리를 치거나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지 못할 것이다. 성격이 소극적이라서 먼저 그런 행동을 하기도 쉽지 않겠지만 불길에 직접적인 위협을 느끼거나 다른 사람들이 대피하는 등 행동을 취하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단순한 기계 고장이겠지. 뭐 별일 있겠어?’라는 생각으로 적절한 행동을 취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것이 지극히 당연한 행동이다. 그런데 그렇게 낭비한 몇 분 또는 몇 십초에 내 생사가 갈릴 수도 있는 것이다.
조그만 연기나 싸이렌 소리에도 극단적인 공포심을 느끼면서 과도한 반응을 보이거나 서로를 불신하게 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현재 미국 사회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을 보고 있노라면 세계를 선도하는 민주국가 미국이 맞는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많다. 그러나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사건, 수많은 화재 참사 사건을 겪은 우리 나라의 경우 그러한 참사를 겪으면서 실질적으로 어떠한 개선책이 마련되었는가 의문이다. 형식적인 소방규정의 강화 외에 정말로 필요한 것은 그러한 예상치 못한 재난이 발생했을 때 개개인이 어떻게 반응하여야 하는지 교육을 하고 실제로 훈련을 하게 하는 것 아닐까. 전국민에게 공포심을 조장한다는 비판도 있긴 하지만, 그래서 미국에서와 같은 전문적인 연구나 그에 따른 학교와 현장에서의 교육을 기대하기는 불가능 하지만, 적어도 그런 시각에서의 연구와 교육은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재난 상황에 놓고 상상해 보자. 그리고 어떻게 반응할지,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떠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