칵테일 슈가
고은주 지음 / 문이당 / 2004년 8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사게된 계기는 솔직히 신문 지상의 신간 리뷰에서 이 책에 대한 소개를 읽었기 때문이었다.

그 리뷰의 내용은 대략 칵테일 슈가가 우리 사회의 해체된 가정을 죄책감 없이 벌어지는 무수한 불륜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냈다는 것이었고 내가 평소에 관심을 갖고 있는 영역이기도 했고 불륜에 대한 생생한 드라마를 기대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솔직히 리뷰에 나와 있던 칵테일 슈가의 만화책처럼 이쁜 북디자인도 내가 이 책을 구매하게 된 것에 영향을 전혀 미치지 못했다고는 할 수 없다.

나는 기본적으로 줄거리가 탄탄하고 묘사가 생생한 장편소설을 좋아하고 칵테일 슈가도 당연히 그러리라 예상을 했지만 기대와는 달리 칵테일 슈가는 단편소설집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책을 구매하기 전에 세심하게 살피지 못한 내 불찰이니...

스너프 필름을 찍게 되는 20살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 '유리'와 '너, 유리'는 소재도 독특하고 두개의 소설이 서로 다른 시점에서의 화자를 통해 진행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칵테일 슈가에는 모두 8개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는데 각각 독특한 시점과 화법으로 소설이 진행되고 항상 결말이 선명하지 않게 끝나면서 무언가 독자에게 여운을 남기는 듯한 구조로 되어 있는 것 같다. 내 감각이 무딘 탓도 있겠지만 소설의 내용이 좀 추상적인 면도 있어서 소설 한 편을 읽고 나서도 줄거리를 재구성하기 위해 소설을 다시 뒤적거려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긴 칵테일 슈가 자체가 줄거리가 중요한 소설은 아니니까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칵테일 슈가를 읽고 있으면 해체되고 껍데기만 남은 가정 - 그리고 그 중핵을 이루는 결혼이라는 제도와 부부관계 - 에 대한 노골적인 냉소와 절망이 느껴진다. 독백체의 서술에서 평소 우리가 타인에 대해 막연히 마음속으로 느끼던 냉소, 비웃음, 무관심 등의 생각의 단편들이 알몸이 드러나듯이 까발려지고 그런 부분을 읽으면서 카타르시스보다는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던, 마음속의 속물성이 드러나게 되는 것 같아 느껴지는 거북함이 더 컸다.

밝고 이쁜 책 표지와는 달리 칵테일 슈가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매우 어둡고 냉소적이다. 그런 것을 통해 작가가 우리 사회의 한 단면(어쩌면 사회 전반에 만연한 것일지도 모르는)을 부각시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겠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절망과 냉소만을 그려놓은 것 같아 책을 덮고 나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런 거북함은 소설의 내용 때문이 아니고 소설이 우리 사회의 현 상황을 너무나도 잘 묘사한 것이 아닐까라는 불안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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