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2 - 돌베개인문.사회과학신서 51
박세길 지음 / 돌베개 / 198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다시쓰는 한국 현대사 1권을 읽고 전에 알지 못했던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해서 2권을 주문해서 읽게 되었다.  어차피 이 책이 운동권의 필독서라는 것은 미리 알고 있었기에 어느정도는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역사관과 파격적으로 다른 내용이 전개되리라는 것은 각오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느낌은 많이 실망스럽다는 것이다.  사실 책 중간부분을 넘어서부터 정말 엄청난 짜증과 싸우면서 이 책을 끝마쳐야 했다.

책 초반에는 이승만 일당이 미국을 추종하고 그토록 협조적이었던 이유가 친일 전과가 단죄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고 그 대가로 이승만 정권이 막대한 정치, 경제적 특혜를 얻었고 이에 군고위 장교들과 매판 자본들이 동참했다는 사실을 기술하고 있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적어도 나에게는. 북한이 비교적 충실하게 친일파들을 숙청하여 역사청산을 이룬 반면 남한은 그런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친일세력이 해방후에도 권력을 잡았고 그래서 지금까지 과거사 청산 문제가 나오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 이후 남북한의 발전 과정을 그리는 부분에 들어가게 되면 아무리 좋게 보려해도 북한에 지나치게 치우쳤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북한에 인도적인 원조를 하고 있고 북한을 개방하려는 우리나라의 손길을 거부하고 고집스런, 비상식적인 행동을 계속하는 북한의 모습이 마치 6. 25. 직후의 한반도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저자의 주장에 쉽게 공감이 가지 않는 것은 단지 내가 수십년에 걸친 반공교육에 너무 길들여져 있기 때문일까? 그 당시에는 그런 모습이 있었을 것도 같지만 적어도 지금 남북한 국민의 삶의 질을 비교하면 북한에 대해서도 어떤 비판이라도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북한에서 자행되고 있는 극악한 인권유린과 수많은 모순점에 대해서는 (물론 남한 사회에도 수많은 모순이 존재하지만) 너무나도 관대한 저자의 태도는 이해하기 힘들다.

책 중간에 미국이 박정희의 쿠테타 저지를 위한 군대의 출동은 거부했으면서도 1964년 학생탄압을 위해 군대의 출동을 허가했다는 사실은 미국이 세계 각지에서 민주정부를 뒤엎고 군사독재를 은밀히 후원한 사실을 상기한다고 할지라도 꽤 충격적이었다. 물론 저자가 거짓으로 사실을 날조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다른 이의 저작물에 수록되어 있는 의견을 역사적 사실처럼 단정하여 기술하거나 인용되어 있는 사실적 자료를 재인용 표시없이 참고한 서적만 단순인용함으로써 오류의 가능성을 많이 남기고 있지는 않은지 의문이다.

외국자본의 유입으로 인한 경제 성장은 무의미한 것인지?(p163) 외국에서 들어오는 공장설비가 노동집약적인 산업에 적합한 것이고 산업설비가 노후되었다는 것은(p164) 자본의 논리에 의하면 당연한 것이 아닌지.박정희 정권의 무뇌아적으로 미국의 사주와 조정을 받는 꼭두각시로 묘사하는 것은 그 정권의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인권침해와 독재적인 요소를 고려하더라도, 그 당시 경제성장의 결과 현 우리 사회의 수많은 모순이 생겨났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누구나 그 당시 정권을 잡았더라도 지금정도의 상태는 되었을 것이라는 독단적인 가정에 근거한 편협하고 치우친 역사관이 아닌지.

매판자본이 비싼 원자재를 수입하여 헐값에 수출하여 아무런 이익도 남기지 못한 채 제국주의적 이익에만 봉사할 뿐이라는 주장(p173)도 그런 면을 일부 인정하더라도 지금 남북한의 현격한 경제력의 격차와 삶의 질의 차이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궁금하다.

이 책에 어느정도의 사실과 왜곡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김정일의 권력세습 마저도 김정일의 탁월한 능력과 인민의 사랑때문에 정당한 것이라고 옹호하고 북한의 외교, 경제분야에 대한 평가는 북한의 선전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우리나라의 모든 정책과 사회현상을 미제국주의와 그 조정을 받는 군사독재정권과 그에 항거하는 민중의 관점에서만 파악하는 것은 지극히 단세포적이고 편협한 시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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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9-05-20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을 쓴지 거의 5년이 다 되어서 내가 썼던 서평을 다시 읽으니 감회가 새롭다. 다만, 그때의 생각은 지금도 크게 변함이 없다. 책의 구체적인 내용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서평을 읽다 보니 저자는 남한사회의 모순에 대한 극도의 반감으로 균형감각을 상실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문득 며칠 전 100분 토론에서 진정한 보수주의자로 손꼽히는 이상돈 교수의 발언과 약간은 서평이 통하는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상돈 교수는 그날 너무 지엽적인 문제에 집착하는 것 같이 보였다. 평소 이상득 교수가 쓴 균형잡힌 여러 글에 비해서 그날 토론은 솔직히 좀 실망이었다. 그래도 적어도 이상돈 교수같은 진짜 보수도 이 땅엔 너무 소수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