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영광
그레이엄 그린 지음, 이동진 옮김 / 해누리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이 소설은 맥시코의 군사정권이 천주교를 탄압하는 과정에서 한 인간으로서의 신부가 죽음의 위협을 피하면서 온갖 고초를 겪고 결국에는 깨달음을 얻으면서 최후를 맞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끊임없이 이 마을 저 마을을 떠돌면서 아무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그렇지만 미신적 이유로 아무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로 전락해버린 신부는 마지못해 자신의 신앙을 지키지만 이미 여러 면에서 세속적으로 타락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위스키 신부라고 불릴 정도로 술을 좋아하고 여인과 정을 통해 딸을 두고 있다. 너무나도 오래 계속되는 도피 생활에 지쳐 차라리 잡혀서 죽었으면 하고 생각도 한다.

하지만 결국 한명의 인간에 불과한 사제에게 술을 마시고 딸을 두었다는 것은 어쩌면 그리 큰 타락이 아닐지도 모른다. 인간이기에 계속되는 도피생활에 지치고 자신을 잡아 넘겨 현상금을 타내려는 교활한 사내에 대한 의심과 적개심을 품는 것 또한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는 경찰에게 잡혀 신분이 탄로날 뻔 하기도 하였으나 그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 죽음의 순간을 잠시 후로 미루게 된다.

그리고 다시 도망치는 길에서 자신의 얼굴을 아는, 자신이 사제인 줄 아는 유일한 사람인 혼혈사내를 만난다.  그리고 그는 그에게 뻔한 미끼를 던진다. 은행강도인 미국인이 배에 총을 맞고 죽어가는데 마지막으로 신부님을 찾고 있다고...신부는 고민한다. 함정일 것이 거의 확실하고 간다면 죽음이 기다린다. 하지만 죽어가는 미국인이 있다는 것도 확실하다.

신부는 함정인 줄 알면서도 목숨에 대한 미련없이 죽음을 향해 다가간다. 영혼의 무거운 짐을 짊어진 죽어가는 사람을 버려둘 수 없었기에. 결정을 내린 순간 그의 마음이 가벼워지고 온갖 집착이 사라진다. 죽음을 각오한 순간 무엇이 그를 괴롭힐 수 있으랴.

신부는 결국 잡히고 감옥에서 삶의 마지막 밤을 맞는다. 성스러운 결정을 내린 그이지만 아직도 그는 인간이다. 딸을 향한 사랑을 온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확대하려 노력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그는 인간이지만, '성스러운' 인간이다.  그리고 그는 최후를 맞이한다.

솔직히 스토리가 무척 흥미로운 것도 아니고 줄거리 전개가 좀 느린 듯한 느낌도 있지만 결국 작가가 그리고자 했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하나의 꺼져가는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내던지면서 깨달음을 얻는, 그러면서도 인간으로서의 한계는 여전히 지니고 있는, 사제의 모습은 적지 않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진정한 영광이 무엇인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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