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대타협? 삼성을 보세요"
  [정치와 사람들① 진중권] "지지하는 대선후보는…오바마!"

2007년 대선 정국이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정초(定礎)선거'라고 말들을 하지만 미래에 관한 이야기는 눈에 별로 띄지 않는 역설적 특징이 지배합니다.
  
  지식인들은 이런 정치현실을 개탄하면서도 말을 아끼고, 대중들은 아직도 마음줄 곳을 찾지 못해 부유합니다. 은퇴한 '올드보이'들의 컴백, 각 세력들의 '묻지마 이합집산'이 그 틈을 비집고 활개를 칩니다. 40일이 채 남지 않은 올해 대선은 아마도 그런 재미없는 이야기들이 줄거리를 엮지 않을까 싶어 걱정입니다.
  
  우리사회 각 분야에서 나름의 '눈'을 가진 인사들의 '입'을 통해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해보려 합니다. 권력교체기의 정치란 현역 정치인들만의 전유물은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와 사람들>은 그런 취지에서 기획됐습니다. 선거, 그리고 우리사회의 변화에 대해 독자 여러분들도 한번쯤 생각해 볼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편집자>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처럼 대중들의 호오가 뚜렷하게 갈리는 지식인도 드물다. 그에겐 '팬'이 많다. 동시에 그를 아주 미워하는 사람도 많다. 그는 두 가지 장점을 가진 사람이다. '합리성'과 '풍자'.
  
  박정희, 수구 냉전주의, 마초이즘, 기독교 근본주의, 좌파 내 전체주의적 경향, 황우석…. 지난 몇 년간 진 교수가 상대한 우리 사회의 우상들이다. 상식과 합리의 가치가 걸린 싸움터엔 항상 그가 있었다. 논리와 풍자로 담금질한 언어의 검을 날렵하게 휘두르며 상대를 제압했다. 그에 대한 상찬과 증오는 그런 전투의 결과다.
  
  정치평론에서도 일가견이 있는 그이지만, 처음 인터뷰 요청을 받고는 거절 의사를 밝혔다. "정치평론에선 은퇴했다. 정치 얘기는 안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제안을 수정했다. 문화 평론에 초점을 두고 우리 사회를 진단해보자고 했다.
  
  그는 황우석 사태와 '디 워' 논란에서 우리사회 '대중'들의 정신적 단면을 읽었다. 딱 떨어지는 정치 얘기가 아니어도 '대중의 욕망'에 기반해 그가 읽어낸 황우석과 심형래, 이명박 현상은 엄연히 정치적이다.
  
  지난해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한참 치솟을 때 논평가들은 "불가사의하다"고 했다. '합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왜? 이유는 단순하다. 유권자들의 판단이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왜 합리적으로 판단하지 않을까? 진 교수를 '정치 인터뷰'에 초대한 이유다.
  
  황우석, 심형래, 이명박의 공통점
  
  "제 관심도 거기에 있어요. 별 볼 일 없는 영화 그 자체가 아니라 별 볼 일 없는 영화 때문에 대중이 동원됐고, 동원된 대중이 폭력적인 양상을 보였다는 것, 그러면서 지성을 추방하려는 경향을 보였다는 것 말이에요."
  
  진 교수가 '디 워' 논란에 뛰어든 이유다. 그다운 직설화법이다. 그는 황우석 사태와 '디 워' 논란에서 우리 사회의 병리적 징후를 본다고 했다.
  
  "대중의 독재라는 현상이 나타났어요. 대중이 몰려다니고 패악질 하는 것이죠. 영웅이 아닌 전문가 집단에 대한 불신들, 그리고 '전문가들을 타도하자'는 구호들이 나오고 있어요. 일종의 디지털 파시즘 현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인터넷이라는 게 대중에게 권력을 준 것이거든요. 파시즘도 일종의 대중 독재였습니다. 비슷한 현상이 디지털 버전으로, 하나의 패러디처럼 나타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과거의 파시즘과 비교하는 건 뭐하지만 메커니즘은 상당히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 ⓒ프레시안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 <문예중앙> 가을호에 실린 글에서 진 교수는 '과개발된 인터넷과 저개발된 인문성'을 원인으로 꼽은 바 있다.
  
  "지금 대중을 움직이는 이데올로기는 독재시대의 그것과 같습니다. 국가주의와 민족주의, 영웅주의에요. 첨단 매체가 과거의 수구적인 이데올로기에 철저하게 포섭된 결과 양자가 결합돼서 나타나고 있어요. 그게 문제라는 거죠. 과거에는 정권이 대중을 동원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대중들이 스스로를 동원한단 말이에요. 황우석 사태 때도 노무현 대통령은 오히려 말렸어요. 그런데 대중들이 스스로 (동원)했단 말이죠. '디 워' 논란도 마찬가지죠. 대중들의 자기 동원이라는 면에서요."
  
  사회심리적인 요인은 없을까. 대중들이 황우석 박사와 심형래 감독에게 갖는 정서적 연대감의 실체는 뭘까.
  
  "일반적으로 대중은 자신이 당한 고통과 억압의 원천을 인식하기 힘들 때 다른 방식으로 출구를 돌려버립니다. 반대급부를 얻는 거죠. 자기들 스스로 허구를 만들어요. '심형래가 약자다, 심형래가 소외 당했다, 무시 당했다'고 하죠. 그런데 이건 (심형래가 아니라) 대중들의 일상적인 체험입니다. 대중이야말로 많은 경우에 소외 당하고 억압 당하고 무시 당한단 말이죠. 이걸 심형래에 투사해버리는 거죠.
  
  심형래가 과연 소외당한 약자냐? 아니거든요. 최고의 인기 연예인이고, 소득도 가장 높았고, 대한민국 영화 제작자 중에서 가장 많은 자본을 모았고, 홍보에서도 가장 높은 미디어 노출도를 보여줬고, 대중으로부터 그렇게 사랑 받은 감독이 어디 있습니까. 그는 결코 약자가 아니에요. 심형래와 대중은 급이 다릅니다. 심형래는 스타고 대중은 스타가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겐 자신의 처지를 투사할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했고, 거기에 심형래가 몇 마디 해준 말('내가 만든 건 아무도 보지 않아')이 빌미가 된 것이죠. 나머지는 대중이 만들어낸 허구입니다. 황우석 사태 때도 똑같은 레토릭이 있었어요. '황우석은 의대가 아니라 수의대다', '서울대 다른 학자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있다', '누가 황우석 박사를 도와줬느냐' 하는 식이었죠."
  
  "예를 들어, 한국타이어에서 여러 명이 죽었습니다. (원인은) 누가 봐도 뻔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거기서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얘기해보라고 하니 얘기를 못하죠. 블랙리스트에 오를까봐. 이런 독재구조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겁니다. 그리고 삼성 비자금 문제 터진 것 보세요. 그걸 폭로하기 위해 사제관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대중에게는 그런 공포감이 있다는 겁니다. 평소에 겪는 이런 공포들, 이것들은 어디론가 분사돼야 합니다. 그래서 분출될 명분을 찾는 겁니다. 그러다 분출될 곳을 찾았다 하면 이제 사실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허구를 구성해서 사실로 만들어 버리고 또 믿어버리고, 그렇게 해서 공격성을 분출하는 데 대한 명분으로 삼게 되는 거죠."
  
  황우석 박사, 심형래 감독의 경우와 성격은 좀 다르지만 이명박 후보도 대중들로부터 제법 오랜 기간 높은 지지를 받았다. 그 요지부동의 지지율 고공행진을 보고 사람들은 '묻지마 지지'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세 사람은 공통점이 있다. 모두 '성공시대'를 약속한다는 점이다. 그걸 구체적인 수치로 표현한 게 300조원(황 박사), 8조원(심 감독), 747(이 후보)이다.
  
  "GDP 2만 달러를 넘었다고 하지만 양극화는 심해지고 고용의 안정성은 뚝 떨어졌단 말이죠. 사람들에겐 그에 따른 불안감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불안감을 해소시켜줄 누군가를 바라는 거죠. 그것만 해소시켜 준다면 도덕성이고 뭐고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명박의 도덕성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듯이 심형래 영화에서는 미학성이 아무런 문제가 안 되는 거예요. 돈만 벌어주면 된다는 거죠. 문제는 도덕성 없이 경제가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선진국은 도덕성이 깨끗하잖아요. 커뮤니케이션이 효율적이라는 얘기거든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피드백이 잘 된다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영화로 돈을 벌려면 영화가 (제대로) 되어 있어야 될 거 아닙니까. 그것도 없이 돈만 벌겠다고 하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죠."
  
  대중의 욕망
  
▲ ⓒ프레시안

  황 박사와 심 감독은 '경쟁력'의 신화다. '우리도 미국을 이길 수 있다'는 것. 광개토대왕을 출연시킨 한미FTA 홍보 광고의 메시지와 정확히 일치한다. 황우석 사태와 '디 워' 논란은 한미FTA 논란을 전후한 우리 사회의 어떤 정신적 상황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사람들은 구질구질한 현실이 짜증나는 거예요. 역사적으로 우리 주변을 보세요.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 어디 하나 만만한 나라가 없지 않습니까. 우리는 약자죠. (그래서 그런지) 거대함에 대한 선호가 존재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국가 모델은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처럼 작지만 잘 사는 나라가 아니에요.
  
  한미FTA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죠. 대중은 수세적인 게 아니라 치고 나가자는 정부의 선전을 믿고 싶어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것하고 실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건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그런데 양자가 혼동되는 거죠. 될 수 있다는 건 현실입니다. 됐으면 좋겠다는 건 바램이고요. 원망과 현실에서 대중은 현실을 직시하는 게 아니라 원망을 본다는 거죠. 대중들에겐 욕망이 있어요."
  
  한미FTA에 대한 정부의 선전을 '믿고 싶어 하는' 대중의 심리상태가 존재한다는 것. 한미FTA 반대론자들은 대중이 협상의 진상을 알게 되면 여론이 달라질 것이라고 한다. 진 교수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럴까 싶은 생각도 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유경쟁 이데올로기가 굉장히 강하거든요. 국가주의, 경쟁과 시장주의, 위아래로 사람 가르는 위계적인 문화. 이 세 가지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회적 유전인자가 되어버렸어요. 한미FTA 협상의 실제 내용이 대중에게 제대로 알려졌다고 해서 여론이 지금과 크게 달랐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토론이 되는 걸 본다면 결과가 다를 수 있겠지만,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진 교수는 김정란 교수의 '디 워' 평론이 모종의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평론가는 대중을 고려하는 게 아니다. 평론가는 작품만 상대하는 사람이다"고 말했다. 내친 김에 그가 생각하는 지식인의 상을 들어봤다.
  
  지식인은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책임을 지면 되는 겁니다. 난 (평론가로서의) 내 일을 했고, 미국에서 ('디 워'가 거둔 성적으로) 입증됐듯이, 제대로 했습니다. 심형래 감독은 자기 일을 제대로 못한 거죠. 그걸로 끝난 겁니다. 대중이 스스로 보면 되는 겁니다. 대중이 올바른 견해를 받아들이기 거부한다면 그건 대중의 문제이지 내 문제는 아닙니다. 그들 손해지 내 손해가 아니에요."
  
  계몽적 지식인이 아니라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기능적' 지식인을 말하는 듯 하다. 지식인의 계몽적 역할을 마다하는 그의 활동이 두드러진 계몽적 효과를 낳는 건 역설적이다.
  
  '디 워' 논란을 거치면서 진 교수는 좀 더 유명해졌다. 시쳇말로 대중적으로 '뜬' 것이다. '무르팍 도사'에서 출연제의가 들어오기도 했단다. 하지만 출연을 고사했다. "내 일의 연장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제가 웃길 때는 특수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웃기는 거예요. 그런데 개그 프로그램은 적어도 중학교 학생 이상은 웃겨야 되잖아요. 그건 또 다른 재주고 또 다른 재능입니다. 그리고 개그 프로그램의 웃음은 해학에서 나오거든요. 다 같이 웃는 거죠. 그러나 저는 공격을 통해 웃기거든요. 비평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현상을 보고 그걸 깨기 위해 까기 때문에 해학이 아니고 풍자입니다. 아프게 찌르는 거죠. 프로그램의 성격에 잘 맞지 않는 거예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들('디 워' 옹호론자)의 마지막 논거, '저 녀석 뜨려고 한다'는 논거를 부숴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뜰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놓음으로써 말이죠."
  
  황우석 사태나 '디 워' 논란을 보면 한국 사람들은 실체가 불분명한 거대한 이익에는 열광하는데 정작 구체적인 이해가 달린 타산에는 둔감한 것 같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저는 구술문화의 습성이라고 봐요. 예를 들어 보험을 파는 사람이 왔어요. 한 사람은 와서 '이 보험의 특성은 뭐고요, 저것은 어떤 혜택과 한계가 있고요' 하는 식으로 꼼꼼하게 약관대로 설명해요. 다른 사람은 와서 '아이구 이번에 아드님 중간고사 잘 봤어요?' 하고 물어요. 어느 쪽이 유리할까요. 후자란 말이에요. 그런 코드가 있다는 거예요.
  
  얼마 전 '맞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인 비판'인가 하는 책이 인터넷에 뜬 걸 잠깐 봤는데, 일본 사람이 재밌는 얘기를 했더라고요. 한국 사람하고 계약을 했는데 납기일 안에 납기가 안 됐답니다. 그래서 한국 사장에게 전화했더니 '우리도 밤을 새워가며 작업하고 있다', 그러더래요. 이 일본 사람은 황당한 거죠. '누가 너희들보고 밤새라고 했느냐'는 거지요.
  
  심형래 감독도 그러잖아요. '밤새서 라면 먹으면서 CG 만들었는데…' 이렇게 말하거든요. 왜 라면을 먹습니까, 밥을 먹어야지. 그리고 밤을 새면 안 되죠. 제대로 자가면서 8시간 노동해야지. 그리고 박봉. 박봉 주면 안 되거든요. 제대로 돈을 줘야 CG가 발달하지. 라면 먹고, 밤새 작업하고, 나중에 영화 잘 되면 30억씩 줄게, 이건 말이 안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이게 통한단 말이에요, 한국 사회에서는. 모든 문제에 대해 논리적으로 따지기보다는 정감적이라는 거예요. 이건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볼 때 효율적이지가 않잖아요."
  
  애국의 결실은?
  
▲ ⓒ프레시안

  진 교수는 지난해 11월 한 강연에서 '영상문화' 시대에 진보진영은 여전히 '텍스트' 혹은 '문자문화'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었다. 그런데 요즘 그는 '텍스트'가 거세되었다고 '영상문화'를 비판하고 있다. 진 교수는 '문자문화'의 성취에 기초한 '영상문화'를 온전한 문화적 진화로 보고 있다. 그를 기준삼아 강조점을 달리 하며 이쪽 저쪽을 비판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영상문화는 텍스트를 바탕으로 한 영상문화입니다. 텍스트 기반 없이 영상문화로 넘어가는 건 문자문화 이전으로 후퇴하는 겁니다. 반면 텍스트를 바탕으로 영상문화 시대로 넘어가게 되면 문자문화보다 진화한 의식상태로 넘어가는 거죠. 지금은 영상문화로 넘어갔지만 텍스트의 합리성이 없다보니까 신화적인 의식으로 퇴행하잖아요. 요즘 드라마를 보세요. 다 역사드라마잖아요. 반면 진보진영 같은 경우 아직 텍스트 문화에 머물러 있죠."
  
  그는 이제 '영상'을 읽어야 한다고 했다. '텍스트' 비판에서 '영상비판'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했다. 그게 '영상문화' 시대에 지식인과 비평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했다.
  
  "지금 문자를 못 읽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영상을 못 읽는 사람은 많아요. 로맹 가리가 '미래의 문맹자는 글자를 못 읽는 사람이 아니라 영상을 못 읽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했죠. 소통수단 자체가 영상으로 바뀌고 있어요. 그런데 영상은 항상 문자를 깔고 있다는 말이에요. 프로그램을 깔고 있는 거죠. 이 프로그램을 읽어내지 못하면 영화 '매트릭스' 속의 주민이 되는 겁니다. 남이 짠 프로그램을 자기의 세계로 알고 살아가는 거죠.
  
  생각해 보세요. '디 워' 논란으로 누가 돈 벌었겠어요. 내가 볼 때 쇼박스입니다. 심형래 감독 돈 번 것 하나도 없어요. 결과적으로 보면 한국에서 번 돈을 미국에서 마케팅 비용으로 다 썼어요. 거기다 영화 제작할 때 미국 배우 썼죠, 미국에서 음악 썼죠, 미국에서 CG 보정했죠, 미국에서 촬영했죠. 제작비도 미국에서 썼단 말이에요. '달러 벌어다 준다' 그랬는데, 실제로는 달러를 쓴 것이거든요. 그리고 ('디 워'가 미국에서) 한국 영화의 위치를 높였느냐. 그것도 아니죠. 쏟아지는 악평들을 봐요. 한국영화가 애써 쌓아놓은 것까지 깎아먹은 거 아닙니까.
  
  사람들 열심히 애국했잖아요. 그 애국의 결실을 누가 가져갔느냐는 거예요. 얼마 전 심형래 팬 카페 가보니까 '디 워' 열 번 보기 운동을 해요.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두세 번 보면 질리거든요. 고문이에요. 게다가 ('디 워'는) 서사가 복잡한 영화가 아니잖아요. 또 간접관람이라는 게 있더라고요. 뭐냐면, 아마도, 누군가 100번 봤다고 하는데, 표만 사는 것 같아요, 인터넷에서. 극장에 안 가고요. 심형래 감독을 돕는다고 그렇게 하는 건데, 그 돈이 심형래 감독에게 들어가느냐? 아니거든요. 돈을 버는 건 누구냐. 쇼박스와 극장이에요. 애국을 하는데 돈은 누가 챙기느냐는 겁니다. 이게 프로그램을 읽는다는 문제예요. 산수만 계산해도 나오는 문제인데, 이걸 못 읽는다는 말이죠."
  
  "예를 들어 미국 애들은 외국 영화를 안 봐요. 외국 영화의 전체 점유율이 2% 밖에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심형래 씨가 올바로 판단한 건 두 가지예요. 미국 사람들이 자막 붙으면 일단 안 본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괴수영화 같은 걸로 승부해야 한다는 것. 그런데 그것만 가지고는 블록버스터가 될 수 없죠. '괴수영화'는 특정한 취향의 영화잖아요. 그렇다면 목표를 현실적으로 가졌어야죠.
  
  전 세계를 대상으로 장사를 할 수 있는 영화는 미국영화 밖에 없어요. 왜 그러냐면 미국 문화가 전 세계 인간들의 문화거든요. 그런 저변이 있기 때문에 미국 영화가 전 세계로 나갈 수 있는 거예요. 한국영화가 그런 상태가 되어 있느냐?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 심형래 감독은 대본을 한국말로 써서 영어로 옮기면 될 것이라고 간단하게 생각하는데, 그게 얼마나 어색합니까. 쉽게 말하면 미국 사람하고 싸우는 데 멱살 붙잡고 '하우 올드 아 유' '유 해브 노 파더?' 하는 격이거든요. 이건 미국화 하는 게 아니죠.
  
  그리고 한국적인 것을 말하는데, 영화에 아리랑 넣으면 한국적인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아리랑은 우리한테도 멀어요. 우리가 요즘 아리랑 부릅니까. 오히려 영화 '괴물'에서 변희봉이 소녀 영정 앞에서 막 울면서 '네 덕분에 우리 가족이 다 모였구나' 하고 말하는 그 순간 '저거야말로 한국적이다'는 느낌을 받죠. 이런 게 감각이고, 또 어필하거든요.
  
  미국 시장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실질적으로 성공하기 위한 방법을 합리적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그런 건 하나도 없고 염원만 있어요. 그러면서 (성공을 위해) 실질적으로 해야 할 것, 깐깐한 비평, 수준 높은 관객, 이런 것을 갖출 생각은 전혀 안 해요. 얘기도 못 꺼내게 해요. 오로지 미국으로 나간다, 이런 게 주술적 태도라는 거죠. 주술시대에는 믿어버리면 돼요. 소원이니까. 자기의 원망을 실질적으로 이룰 길을 찾는다는 게 바로 문자문화의 합리성이죠. 항상 관찰하고 반복되는 패턴을 발견하고 법칙을 발견하고 그걸 이용해서 뜻을 이룬단 말이죠. 그런데 지금 보세요. 전혀 그렇지 않잖아요"
  
  "발터 벤야민이 기생충인가"
  
▲ ⓒ프레시안

  '디 워' 논란은 지식인들 간의 논쟁으로 확산되기도 했다. 출판사 '고래가 그랬어'의 발행인 김규항 씨는 '디 워' 논란은 평론가에 대한 대중의 반감이 폭발된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평론가란 '평론가와 평론가 지망생, 그리고 인텔리들끼리 읽는 평론'을 쓰는 평론가를 뜻한다. 그들은 대중의 취향을 '경멸'하는 것으로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확인한다. 일종의 문화적 '구별짓기'인 셈인데, '디 워'의 맥락을 떠나서 보면 이런 비판에 경청할 대목도 있는 건 아닐까.
  
  "나는 많은 비평을 접해보지 않아서 잘 몰라요. 그런데 어디에나 문제는 있죠. 90년대 사회비평에는 문제가 없습니까? 개별 비평이 잘 됐느냐, 안 됐느냐를 따져야지 포괄적으로 '쓸 데 없다'는 식으로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되는 거죠. 그리고 (90년대 이후) 운동권 출신들이 대거 비평으로 온 건 잘한 거예요. 그럼 뭐하라는 겁니까. 일본 같은 경우 전공투 세대가 다양한 문화 영역으로 갔기 때문에 일본 문화의 수준이 높아진 것이거든요. 지금 한국영화의 경우에도 386이니까 이 만큼이라도 나오는 겁니다."
  
  그의 비판은 김규항 씨의 '평론가론'에 관한 것으로 이어졌다. 진 교수 특유의 독설이 불을 뿜었다. 앞서 김규항 씨는 지난 8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평론가란 '생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생산에 기생하는 사람'이다"고 규정한 바 있다.
  
  "김규항이 평론가를 기생충이다, 이렇게 말했는데 그런 식으로 하면 자기는 메타 기생충이에요. 평론가를 씹으면서 크는, 그야말로 메타 기생충이죠. (김규항 씨가) 평론을 생각하는 게 굉장히 무서운 게, 평론은 그 자체가 생산입니다. 발터 벤야민이 왜 기생충입니까? 예술가들은 평론가들 아니면 못 떠요. 평론가들이 쓰는 평론, 그건 문학이에요. 그게 생산이거든요. 그런데 그걸 보고 기생충이라고 하면 심형래 지지자들하고 뭐가 다르냐는 겁니다. '네가 만들어봐' 이런 식이잖아요.
  
  자동차 검사하는 사람이 차를 보고 '이게 문제고 저게 문제고 그러니 교체해야 돼요' 했더니 '네가 만들어봐', '너는 기생충이야' 이렇게 말하는 게 말이 됩니까. 따져보세요. 국가주의 코드, 시장주의 코드, 영웅주의 코드, 떼로 몰려다니면서 패악질 하는 것, 이게 민중입니까, 파시즘적 군중입니까"
  
  "진보는 새들의 매스게임"
  
  지난해부터 진보 위기 담론이 계속되고 있다. 진 교수가 생각하는 진보란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는 선형적 시간관에 입각한 진보 관념은 타당성을 잃었다고 했다.
  
  "저는 '진보냐 보수냐' 하는 과거의 기준들은 타당성을 잃었다고 봐요. 역사주의 의식이란 건 약화될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 늘 그렇게 생각했죠. 과거를 기억하고 피억압자의 기억을 조직하는 게 과거의 역사이고, 그건 현재를 위한 것이고, 현재는 또 미래의 해방된 사회를 위해서 희생돼야 할 것이다, 하고 말이죠. 모든 것의 최종적 의미가 미래에 도달되는 사회에 있는 것을 '역사적 텔로스'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텔로스에 대한 믿음이 없어졌단 말이죠. 그럴 때 과연 과거와 같은 진보의 개념이란 게 성립될 수 있느냐는 거죠. 요즘 '수구진보'라는 말을 많이 하죠. 영상문화의 측면에서 보면 텍스트 문화에 있는 사람들이 덜 진화한 측면이 있는 거예요. 그걸 아마도 수구성이라고 부르는 거죠. 그러면서도 진보적이고요. '수구진보'라는 말은 굉장히 정확한 말입니다."
  
  그는 '진보'는 창의성의 경쟁이라고 했다.
  
  "가치판단이 다원화됐다는 거죠. 신자유주의를 해야 된다는 사람들의 판단이 있고, 해서는 안 된다는 사람들의 판단이 있고, 둘 중 어느 게 더 옳은가, 그른가 하는 건 참 대답이 안 나온다는 거죠. 이걸 인정해야 됩니다. '난 이게 옳다고 생각하지만 저 사람은 저게 옳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물론 옳고 그른 것은 싸워서 결판나는 문제이지만, 많은 경우 가치가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결판이 안 나거든요. 그런 싸움에서는 오히려 미학적 기준이 강화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생산하는 담론이 더욱 생산적이고, 내가 현실을 설명하는 방식이 현실을 보다 무모순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요. '내 담론은 네 것과 달리 아주 새로운 측면에서 보게 해 준다'든지, 정보가치가 있다든지, 이런 방향으로 경쟁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진보고요.
  
  요컨대, 담론은 새들의 매스게임이라는 거예요. 천수만에서 새들이 날아다닐 때 명령하는 새가 없죠. 옆의 새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할 것, 장애물이 나오면 피할 것, 하는 몇 가지 지식들만 있죠. 그처럼 서로 배운 독립된 개인들이 우리가 에티켓이라고 말하는 것만 유지한 채 각자 창의성을 발휘하면 그 결과로서 누구도 인풋하지 않았던 것이 나온다는 겁니다. 그걸 우리가 흔히 창발이라고 부르죠."
  
  정치 얘기는 사양한다는 그였지만 합리성과 풍자의 소양을 갖춘 몇 안되는 평론가를 만난 터라 방앗간 지나는 참새 같은 마음이 들었다. '이번 대선에서 지지하는 후보는 있나요?' "버락 오마바를 지지합니다." 그냥 같이 웃었다.
  
  "민노당을 찍을 뻔 했는데 민노당도 정파 문제가 걸린 거 아니에요? 이번에는 아마 안 찍을 것 같아요. 이회창을 찍을까 하는 생각도 있고(웃음). 이명박이 되면 운하를 팔 것 같단 말이야. 이 사람 운하 진짜 팝니다. 할 줄 아는 게 그것밖에 없기 때문에. 정말 '창'을 찍을까?(웃음)."
  
  비판적 지지론에 대해 물었다. 역시 그다운 답변이 돌아왔다. "비판적 지지? 그럼 '창(이회창)'한테 몰아줍시다. 어차피 정동영 안 되잖아. 그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그렇죠. 이명박 막으려면 창한테 몰아줘야지. 창한테 몰아줍시다. 정동영한테 표 보내주지 말고. 정동영은 사퇴하라고 해야죠(웃음). 코메디죠 코메디."
  
  "삼성을 보세요!"
  
▲ ⓒ프레시안

  마지막으로 바람직한 국가모델에 대해 물었다. "유럽식 사회국가모델"이라고 짤막하게 답한 진 교수가 갑자기 생각난 듯 "프레시안에 이종태라는 사람이 이상한 글('사회적 대타협을 위한 변')을 썼던데, 그 사람 왜 그래요?" 한다. 그러곤 곧 장하준 교수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진 교수는 언젠가 '쾌도난마 한국경제'의 공동저자인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 등과 TV토론을 한 적이 있다. 박정희 시대에 대한 평가를 놓고 두 진영이 충돌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진 교수는 "이 얘기는 꼭 써주세요. 내가 따로 글을 쓸 시간이 없으니까"라고 했다.
  
  "장하준 씨가 재벌과의 사회적 대타협 얘기하잖아요? 삼성을 보라는 거예요, 지금. 과연 대타협의 문제냐는 겁니다. 삼성이 노조를 인정 안 하는 겁니다. 타협 한 번 해보라고 해요. 어떤 타협안이 가능한지. 그리고 스웨덴에도 재벌이 있다? 스웨덴 재벌하고 한국 재벌이 같으냐는 겁니다. (재벌의 성격을 비유적으로 말하면) 스웨덴은 입헌군주국이고 우리나라는 봉건군주국이에요. 재벌 체제가 완전히 다른데 같다고 하고. 그리고 그나마도 스웨덴이 전 세계에서 유일한 겁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재벌 해체하자고 한다는데 해체할 힘이 있습니까. 해체 안 됩니다, 결코. 재벌 해체한다는 게 기업군을 해체한다는 게 아니잖아요. 다른 차원의 문제예요."
  
  진 교수는 국가의 경제조정적 개입을 사회주의적 요소로 보는 건 '황당하다'며 장 교수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박정희가 사회주의적이었다? 절대로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자본주의는 세 가지를 다 할 수 있습니다. 국가주의적 통제를 할 수 있어요. 파시즘처럼. 그러다 완전 자유주의로 갈 수도 있는 겁니다. 그 다음에 뉴딜식 사회복지 시스템을 만들 수도 있는 겁니다. 이 세 가지는 자본주의가 택할 수 있는 옵션에 속하지 '어느 게 사회주의냐', 이렇게 얘기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제가 생각하는 사회주의는 국가가 경제에 조정적 개입을 하는 체제가 아니라 사회복지적 개입을 하는 체제거든요. 그런데 저 사람들 얘기하는 건 경제조정적 개입이에요. 그걸 사회주의로 본다는 게 황당하다는 거죠."
   
 
  정제혁/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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