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물'로 보이나
 
미디어오늘 | 기사입력 2007-07-17 08:25 | 최종수정 2007-07-17 11:00 기사원문보기

[경제뉴스 톺아읽기] '물 산업 육성 5개년 세부추진계획', 민영화 논란

정부가 16일 경제정책 조정회의에서 '물산업 육성 5개년 세부추진계획'을 확정, 발표했다.

전국의 상하수도 사업을 30개 이내의 대규모 민간기업이나 공사에 맡기는 구조개편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지자체와 수자원공사만 가능했던 수도사업자의 지위를 민간기업에도 개방하기로 했다.

이를 전한 17일자 경제신문과 한겨레의 보도·논평은 확연하게 달랐다. 서울경제는 1면 기사 <'브랜드 수돗물'도 나온다>와 4면 관련기사 <"물은 부 창출할 새 자원" 판단>에서 정부 방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매일경제도 27면 기사 <수돗물 관리 민간에 맡긴다>에서 "상하수도 사업자의 민영화·광역화가 세계적 추세"라는 이규용 환경부 차관의 말을 전했다. 과거에 공공서비스였던 수도에 대한 인식이 향후 산업적 서비스로 바뀐다는 표도 함께 실었다.

머니투데이도 4면 기사 <"차세대 국가성장동력은 물 산업">에서 "'블루골드'(Blue Gold)로 불리는 물 산업이 차세대 국가전략산업으로 집중 육성된다"며 "정부 구상대로라면 2015년에는 국내 물산업 규모가 20조원으로 확대되고 세계 10위권 기업이 2개 이상 나오게 된다"고 보도했다. 머니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코오롱그룹과 삼성엔지니어링, 한화건설이 물 산업에 뛰어든 상태다.

환경부 관계자는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소수 선진국이 장악한 물 시장에 우리나라가 성공적으로 진입해 글로벌 물 산업 강국으로 도약하는 기반을 조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상하수도 사업자의 민영화가 세계적 추세라는데, 과연 그럴까.

다른 언론 보도를 보자. 경향신문은 지난해 3월21일자 기사 <거대자본 물 독점…수십 억 명 '타는 목마름'>에서 "이 세상은 이제 '물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뉘고 있다. 이런 대립 속에서 피해자는 여전히 힘없고 돈 없는 약자들"이라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이날 다국적 생수회사의 물 독점과 상수도의 민영화로 대표되는 '물의 사유화'로 격렬한 시위가 일어난 멕시코시티 '제4차 세계 물포럼(WWF)' 현장을 전했다.

"기금 총액이 10억 유로에 달하는 '유럽연합 물 기금'은 아프리카와 카리브해, 태평양 연안 77개국의 상하수도 사업에 돈을 대고 있다. 벡텔, 수에즈, 비방디, 바이워터, 세번 트렌트 등 구미의 다국적 물관리 기업들은 1990년대 상수도를 민영화한 중남미와 만성적인 물부족에 시달려온 아프리카를 집중 공략했다.

이들 기업이 일단 상수도 관리권을 획득하게 되면 그 이후에는 이렇다 할 설비투자나 수도관 교체 없이 수도요금을 인상해 짭짤한 수입을 올린다. 인도 델리 남부의 물 공급을 맡은 영국계 기업 프라이스워터쿠퍼하우스(PwC)는 요금을 500%나 인상했다. 역시 영국계 기업인 세번 트렌트는 2003년 가이아나의 물 공급을 맡은 뒤 이듬해 곧바로 수도요금을 올렸다.

이렇게 턱없는 수도요금 인상, 그리고 불안정한 물 공급에 지역주민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1997년 이후 볼리비아 코차밤바의 상수도를 장악한 미국계 기업 벡텔은 물값을 300%나 인상했다가 '물은 상품이 아니라 생명이다'라며 2000년 1월부터 4개월 가까이 대규모로 시위를 벌인 주민들에게 결국 항복했다.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도 40년간 벡텔의 손에 좌지우지됐던 상수도를 국영화하겠다고 약속했다.

탄자니아 정부와 인도 방갈로르시는 바이워터와 수도공급계약을 체결했다가 취소했다. 아르헨티나의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대통령은 2005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상수도 관리권을 가지고 있던 수에즈사를 비난하고 수에즈가 내놓은 수도요금 인상안을 거부했다. 상하수도 시설 투자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외에도 베네수엘라, 가나, 방글라데시 등에서 물을 무기로 횡포를 부리는 다국적 기업에 맞서 물을 다시 국가 혹은 지자체에서 관리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상수도 민영화' 등 물과 관련된 여러 논란을 들여다보려면 환경운동연합 염형철 활동처장이 지난 3월 '물의 날'을 맞아 작성한 기사 <한국에 물 위기는 오는가>(http://kfem.or.kr/bbs2/view.php?id=hissue&no=2680)도 읽어야 한다. 염 처장은 정부와 일부 언론이 유포하고 있는 이른바 '물 위기 신화'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염 처장에 따르면, '한국, UN이 정한 물부족 국가'라는 것은 억지 주장이며 '한국인의 물 낭비는 심각하다'는 주장도 물 공급량 통계를 의도적으로 잘못 읽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수돗물 값은 너무 싸다'는 주장 역시 수돗물 가격 체계의 차이에서 오는 착시현상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이렇게 여러 잘못된 논리를 펼쳤던 정부가 이제는 다국적 물 기업 대열에 합류하자며 상수도 민영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한겨레는 17일자 사설 <상수도 민영화, 안 된다>에서 "겉만 물 산업 육성이지 내용은 상수도 민영화 혹은 물의 사유화"라며 "만병통치약으로 통하는 경쟁력과 효율성을 앞세워 시민사회의 반대와 우려를 돌파하자는 속셈"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한겨레는 "1990년대 재정 부족으로 초국적 기업에 상수도 사업을 맡겼던 제3세계 나라들에선 지금 물값 상승, 수질 저하, 관계자의 고용 불안 등으로 서민들이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다"며 "민영화 이후 우루과이는 물값이 10배 올랐고, 인도네시아는 2001년 35%, 2003년 40%, 2004년 30% 인상됐다. 물 산업 강국인 프랑스도 민영화 이후 150% 올랐다"고 전했다.

한겨레는 "물은 자연재이자 공공재다. 공기를 사유화할 수 없는 것처럼 물도 사유화해선 안 된다"며 "경쟁력도 좋고, 시장 확대도 좋다. 그러나 생명의 근원이자 국민의 재산인 물을 자본에 넘겨 상품으로 팔아먹도록 할 순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 2003년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한겨레 기자와 만난 후안 아발 메디나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 교수는 이 나라 수도사업 민영화를 겨냥해서 이렇게 말했다. "조용히 이뤄졌다. 하지만 어떤 비극적인 결과가 다가올지 모른다."
김종화 기자 sdpress@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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