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산자부 3월31일 ‘위해성 평가 생략 등 추진한다’
‘미, 우리 입장 따라 양허개선’ 섬유와 연계 시사


<한겨레>가 입수한 협상단 내부 문건(‘한-미 자유무역협정 연장 1일차 협상계획’)을 보면, 협상이 타결되기 직전에 섬유 관세양허(개방)와 유전자 조작 생물체(LMO)가 연계돼 논의됐다는 정황이 명백히 드러난다. 또 한국 협상단이 섬유 관세양허 품목을 더 확보하려고 엘엠오의 위생검역 절차 간소화 합의를 추진한 것으로 나와 있다. 하지만 정부는 잇따른 해명자료를 통해 이런 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문건에 나온 표현들을 통해 정부 해명의 허구성을 짚어본다.

‘섬유-엘엠오 연계’ 없었다?=산업자원부는 ‘섬유-엘엠오 연계’ 의혹에 대해 6일 해명자료에서 “섬유협상에서 미국 쪽으로부터 엘엠오의 수입규제 완화를 조건으로 자국의 섬유시장 개방을 확대하겠다는 제안을 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또 “미국 쪽이 섬유산업 희생을 바탕으로 다른 분야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김종훈 한국협상단 수석대표도 5일 밤 <문화방송> ‘100분 토론’에 출연해 “엘엠오 문제는 전문가들끼리 기술협의에서 논의됐지, 섬유분과나 수석대표 차원에서 거론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협상단 문건에는, ‘어제(3월30일) 퀴전베리 미 섬유수석협상관은 엘엠오에 대한 우리쪽 입장 개선 여부에 따라 양허 개선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돼 있다. 또 ‘향후 엘엠오 이슈는 잔여 핵심쟁점인 농산물·섬유 등과 연계되어 논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나와 있다. ‘3월30일 수석대표 회의 때 미국이 (엘엠오) 수정안을 제시했다’는 표현도 있어, 김종훈 대표 발언의 사실 여부도 의심스럽다.

실제로 미국의 섬유 관세철폐 수준은 8차 협상 때까지 대미 수출액 기준 35%에 불과했는데, 최종 합의는 61%였다. ‘섬유-엘엠오 연계’ 의혹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엘엠오 위생검역 절차 간소화 합의 없었다?=산자부는 지난 4일 해명자료에서 “엘엠오 사안은 에프티에이와는 별도로 기술협의가 추진됐고, 협의 결과는 회의록 양식으로 정리했다”고 밝혔다. 또 “협의에서 국내 제도 변경 관련 사항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관철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문건을 보면, 미국 쪽은 8차 협상 첫날인 지난달 12일에 이어 최종 장관급 협상이 진행중이던 30일 양국 수석대표 회의 때 엘엠오 관련 수정안을 제시했다. 이는 ‘미국에서 안전성이 확인된 식용·사료용·가공용 엘엠오 수출 때 한국내 위해성 평가 생략’ 등 국내 안전검사와 수입승인 권한을 무력화시키는 조항 6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달 31일 새벽 1시 산자부는 미국 쪽의 수정안에 대해 우리의 최종 입장을 전달했는데, 핵심 쟁점인 한 가지만 제외한 나머지에 대해서는 ‘양국간 원칙적으로 내용에 대해 이해를 같이하고 문안에 대한 세부 합의를 추진한다’고 문건에 명시돼 있다. 다만 양쪽의 합의가 실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는 이 문건에 나와 있지 않다. 김수헌 기자 minerva@hani.co.kr






* 유전자 조작 생물체(Living Modified Organisms: LMOs) = 유전공학 기술을 적용해 다른 종의 유전자를 섞거나 변형시켜 자연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는 형질을 지니도록 만들어진 생물체다. 이런 유전자 뒤섞기는 종은 물론 식물과 동물의 경계까지 넘나든다. 해충에 저항력이 강한 작물을 만들기 위해 미생물의 독소 유전자를 집어넣는 것이 그런 예다. 그 과정에서 변형된 유전자가 인간과 환경에 위험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국제적으로 생산과 유통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는 추세다. 지엠오(Genetically Modified Organisms: GMOs)란 이런 유전자 조작 농산물의 줄임말이다.






정부 · 협상단 궁해진 해명
“설명했다” → ‘협의‘ ‘합의’로


미국의 유전자 조작 생물체(LMO) 수입과 관련해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테이블에서 어떤 합의를 해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정부가 실체적 진실을 감추고 있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이렇게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정부 스스로 제공했다. 관련 당사자들의 발언이 서로 맞지 않고, 심지어 같은 사람의 입에서 어제와 오늘 다른 말들이 나오기까지 하고 있다.

애초 이 문제와 관련한 보도(<한겨레> 4월2일치 1면 참조)가 나온 뒤, 담당 부처인 산업자원부 실무자는 “에프티에이와는 별도의 양국 위생검역 관련 기술협의를 통해 국내 관련 제도의 변경을 설명해 줬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다가 이틀 뒤인 4일 산자부는 해명자료를 내, “기술협의가 추진되었고 협의결과를 회의록 양식으로 정리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같은 날 김종훈 협상단 수석대표가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좀더 진전된 발언을 했다. 그는 무소속 최재천 의원이 정부의 대외비 협상 문건을 보여주며 추궁을 하자, “(합의는) 사실이다. 그 부분은 별도 합의됐고 유관부서에서 별도 합의문 형태로 작성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다만) 6개 항 중 5개 항은 전혀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고 나머지 1개 항은 생물다양성 협약으로 우리가 현재 가입하려 하고 있는데, 가입한다는 전제 하에 이행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계류중”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엘엠오 수입 조건과 관련해 애초는 “설명했다”고 했다가 점차, ‘협의’와 ‘합의’ 등으로 수위가 높아진 셈이다.

환경운동연합 임지애 생명안전본부 부장은 “정부의 대외비 문건을 보면 미국의 섬유시장을 좀더 개방하려고 국민들의 식탁 안전과 생명을 팔아먹지 않았느냐는 의혹이 든다”며 “정부가 이런 의혹을 씻으려면 엘엠오 작물과 관련해 한-미 에프티에이 협상 과정에서 오간 문건들을 모두 공개하고, 필요할 경우 감사원 감사나 국회 차원의 국정감사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순빈 기자 sbpark@hani.co.kr




표시 없애고 국제규제강화 허물기
미국이 LMO에 목매는 까닭은


미국이 에프티에이 협상과 ‘유전자 조작 생물체’(LMO) 문제를 연계시킨 것은 점차 두터워지는 유전자 조작 생물체에 대한 국제적인 규제 장벽에 구멍을 내는 한편으로, 최근 몇년 사이 감소해온 대한국 ‘유전자 조작 작물’(GMO) 수출을 늘려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미국은 세계 최대 유전자 조작 작물 생산국이자 수출국이다. 세계 유전자 조작 농작물 생산면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승인된 유전자 조작 작물 품목수도 2006년 1월 말 현재 111건으로 세계 최대다.

이런 생산·기술력 우위는 미국 내에서 유전자 조작 농산물이 일반 농산물과 구성성분, 특징 등의 면에서 큰 차이가 없을 경우 안전성 면에서도 두 가지를 동일한 것으로 보는 ‘실질적 동등성의 원칙’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원칙에 따른 미국의 유전자 조작 작물 수출은 세계 곳곳에서 소비자들의 저항에 부닥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은 유럽연합, 일본과 함께 유전자 조작 작물의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는 한 위험성이 있다고 간주하는 ‘사전예방의 원칙’에 따라 유전자 조작 농산물 표시제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다. 미국이 한국에 실질적 동등성의 원칙 쪽에 기울어 있는 세계무역기구(WTO)의 기준을 따르라고 요구하는 것은 바로 이 ‘사전예방의 원칙’을 허물려는 의도가 숨겨진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유전자 조작 작물 표시제가 완화될 경우 감소 추세인 대한국 옥수수와 콩 수출량이 증대될 것이라는 계산도 깔려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국은 옥수수 자급률이 1%에 불과한 한국에서 2001년까지 브라질과 함께 수출국 1위를 다투었다. 하지만 2001년 67만1438t이던 미국의 대한국 옥수수 수출량은 2005년에는 5만9136t으로 10분의 1 이하로 줄어들었다. 유전자 조작 작물에 대한 소비자들의 거부감이 확산되면서 대한국 콩 수출량만 해도 2003년 118만6645t에서 2004년 101만2650t, 2005년 79만4322t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이번 협상에서 유전자 조작 생물체 문제를 연계시킨 또다른 의도는, 한국의 유전자 조작 생물체에 대한 관리가 현재보다 강화되는 것을 막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국내 ‘유전자변형생물체법’ 발효 이전에 미국과 별도 협정을 체결하라는 요구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한국의 유전자 조작 작물 수입검사는 서류심사로만 진행되며, 유전자 조작 농산물의 비의도적 혼입률도 유럽연합의 3배인 3%까지 인정해 주는 등 허술하게 이뤄지고 있다.

김은진 환경농업단체연합회 정책위원은 “환경·소비자 단체들에서는 바이오안전성 의정서 비준 뒤 이뤄질 하위 규정 정비 때 시험재배 의무화와 비의도적 혼입률 축소 등을 이뤄내겠다고 벼르고 있다”며 “미국이 이런 움직임을 파악하고 쐐기를 박으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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