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 이후 오퍼스 10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잔혹한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노출시키는 사진을 중심으로 하여 특히 이미지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피사체가 된 타인들의 고통에 대하여 느끼는 반응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의 내용을 단락별로 요약하거나 전체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제시하기는 무척 어렵다. 책을 절반이상 읽고도 전체적인 내용을 머릿속으로 그리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요즘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수많은 전쟁 관련 이미지, 제3세계 국가들의 기아에 관한 이미지 등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먼저 사진은 기계적 편집이 없는 한 그러한 사실의 역사적 실재에 대한 증명이 되지만 그러한 이미지 자체가 역사적 사실의 진실 자체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깨닫게 되었다. 사진 작가가 피사체를 선택하는 것, 그 사진과 함께 전시하는 다른 사진과의 관계 등 무수한 변수에 따라(작가의 의도가 개입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관람자는 사진을 보면서 실제 일어났던 일과 전혀 다른 이미지로 사진을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작가의 주관적 의도의 개입과 관련하여 초기 전쟁 사진들 중 상당수가 정교한 연출에 의한 사진이었고, 적 전사자의 얼굴은 사진에 노출시켜도 아군 전사자는 엎어져 있는 모습으로 촬영한다는 식의 검열기준이 있었다는 사실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또한 잔혹한 영상의 피사체로서 소위 서구와 제3세계의 차별성에 대한 문제제기도 한다 기아와 전쟁으로 고통받는 것은 언제나 아시아,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다. 대부분의 관람자가 속해있는 유럽이나 미국은 피사체가 아닌 관찰자로서 존재하고 그렇기에 그들은 더욱더 타인의 고통을 닮고 있는 잔혹한 이미지에 무관심해질 수 있게 된다.


저자의 보스니아인 친구의 말이다.1991년 세르비아인들이 부코바르를 부수는 광경을 텔레비전에서 봤을 때 정말 끔찍한 일이지만 저기는 크로아티아지, 이곳 보스니아에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야. 그리고는 채널을 돌렸다고. 그 이듬해 보스니아 전쟁이 발발하자 그녀는 다른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이제는 자기 자신이, 다른 사람이 힐끔 쳐다보고는 ‘아, 정말 끔찍한 일이군’이라고 말하면서 채널을 돌려버리는 그런 텔레비전 뉴스의 일부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p229)


관찰자들이 잔혹한 이미지에 무감각해지는 주요한 원인 중의 하나가 그러한 이미지들의 과잉 이외에도 관찰자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 공포, 무기력감이라는 저자의 지적에도 공감이 간다.(p153)


앞선 말했듯이 책 전체의 내용을 요약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저자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라 생각되는 부분을 옮겨본다.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 주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그렇지 않다면 부적절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p154)


정말이지 우리는 그들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우리는 전쟁이 얼마나 끔찍하며,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그런 상황이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리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p184)


이 책의 저자인 수전 손택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순전히 이책의 자극적 제목과 리뷰의 좋은 평가 때문이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기회를 갖게 된 것도 고맙지만 수전 손택과 같은 지식인을 알게 된 것이 사실 더 고맙다.


특히 부록으로 첨부된 글 중에는 9.11 공격 이후 미국사회와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의 핵심 - 전시를 가장하여 정부에 무제한적 권력을 허용해달라는 수사이자 명령 - 을 바로 집어내는 그녀의 날카로운 분석이 포함되어 있는데, 9.11 공격이 있고 2주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사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적(?)에 대한 분노와 맹목적 애국주의에 휩쌓인 미국 사회에서 제 목소리를 내었다는 점만 보더라도 그녀의 가치를 알 수 있었다.


논란이 있는 국제적 이슈에 대하여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 수전 손택의 목소리를 유용한 판단 기준의 하나로 삼을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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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포토저널리즘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 시선 <타인의 고통>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08-07 03:48 
    타인의 고통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이후(시울)전반적인 리뷰2007년 8월 5일 읽은 책이다. 이 책의 리뷰를 적으면서 처음 안 사실이 지금 현재 내가 갖고 있는 책의 표지와 지금의 표지가 다르다는 것이다. 뭐 이 책의 발간일이 2004년 1월이긴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에는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것을 보면 기존의 책 표지 자체도 타인의 고통을 드러내는 그림이었기에 이 책에서 얘기하고 있는 바와 약간은 상충되는 부분도 없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