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차밤바의 '쓰디 쓴 승리'와 그 교훈
[한미FTA 뜯어보기 115 :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정치경제학(9)] 수자원 분쟁
2006-10-09 오전 9:20:11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이 벌어지는 국제 중재심판은 철저한 비밀을 원칙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누가 누구와 어떤 문제로 얼마의 금액을 놓고 언제 어디서 심판을 진행하는지에 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모으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공공이익과 관련된 큰 문제들에 대한 소송이어서 외부에 알려진 것들만 해도 그 수가 적지 않다.
이 장에서는 그 중 중요하고 또 유명도가 있는 사건들을 몇 가지 사안별로 묶어 살펴본다. 대충이나마 몇 가지 사안별로 묶어서 소개하는 목적은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가 결코 좁은 의미의 상업적, 금전적 문제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하고 얼마나 다양하고 핵심적인 공공이익의 쟁점들과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는가를 보이는 데 있다. 이번 글에서는 우선 수자원과 관련된 사건들을 살펴보자.
"물은 21세기 최고의 초국적 비즈니스 기회"
1990년대 이후 가장 크게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유화의 대상 중 하나가 물이다. 경제지 <포천(Fortune)>이 언젠가 이렇게 지적한 바 있다. "물은 최고의 비즈니스 기회를 제공한다. 21세기의 물은 20세기의 석유와 같은 위치를 가질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주로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의 국가들을 필두로 수자원과 상하수도 시설 운영권을 사유화해 그것이 결국 초국적 투자자들의 손으로 들어가는 일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인간의 존엄성 유지는 고사하고 인간의 물리적 생명과 생존에 가장 기본적인 자원인 물을 이용해 수익을 올리고, 또 그 수익을 어떻게든 보호해야 한다는 투자자의 목적과 그 물을 공공이익에 맞게 이용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민중의 목적은 서로 충돌하면서 실로 첨예한 분쟁을 낳게 된다.
① 벡텔 대 볼리비아 사건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라는 것은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이 주도했던 구조조정(structural adjustment)이라는 거시경제 차원의 지구화 전략에 이어 미시적 차원에서 각종 사회적, 자연적 관계를 자본의 수익성에 맞게 재편하는 1990년대 이후의 새로운 지구화 전략임을 앞에서 이야기한 바 있다. 미국기업 벡텔과 볼리비아 민중 사이에 몇 년에 걸쳐 벌어진 싸움은 이 두 개의 지구화 전략이 결합해 작동하면서 빚어진 최악의 사례이자, 제3세계 국가에서 외국 투자자가 얼마나 극단적으로 이윤추구를 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극적인 사건이다.
볼리비아도 외채와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IMF는 1999년 이 나라에 1억3800만 달러를 융자하기로 결정하고, 그 대신 '구조개혁'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이 프로그램에는 아직 남아있는 공기업들을 모두 매각하라는 요구가 들어 있었고, 매각대상 공기업 중에 코차밤바(Cochabamba) 지역의 상하수도 시설도 포함되어 있었다. 같은 해 6월 세계은행에서 나온 한 보고서는 볼리비아가 구조개혁을 완수하려면 확실한 재정지출 삭감을 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코차밤바 지역 상하수도 시설에 대한 일체의 보조금을 없애야 한다고 권고한다.
이를 기회 삼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유명한 미국 건설기업 벡텔(Bechtel)이 뛰어든다. 벡텔은 19세기 말에 설립된 이래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규모의 건설기업으로 성장해 왔지만, 지금도 증시에 상장되지 않은 채 벡텔 가문의 개인적 소유로 되어 있으며 그 사업내역이나 내부구조 등은 거의 비밀의 장막에 싸여 있다. 벡텔은 특히 레이건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은 바 있으며 지금도 체니 부통령을 비롯해 미국 정계 곳곳에 소위 '벡텔 맨'을 심어 놓고 미국정부와의 강력한 유착 속에서 온갖 국제적 음모의 산실 역할을 해 왔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기업이기도 하다.
엄청난 압력 속에서 별다른 방도가 없던 볼리비아 정부는 결국 코차밤바의 상하수도 시설을 매각하기로 하고 입찰을 개시한다. 그런데 이 입찰에 뛰어든 회사는 아구아스 델 투나리(Aguas del Tunari) 하나뿐이었고, 결국 2만 달러도 채 안 되는 헐값에 상하수도 시설 운영권이 이 회사로 넘어가게 된다. 이 회사는 일종의 국제 컨소시엄 형태를 띠고 있었는데, 그 소유구조를 보면 벡텔이 100% 소유한 자회사인 인터내셔널 워터 리미티드(International Water Limited: IWL)가 55%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사실상 벡텔의 손자회사라고 할 수 있었다.
벡텔은 상하수도 시설 운영권을 따낸 지 단 1주일 만에 수돗물 가격을 급격하게 인상했다. 그 인상폭은 코차밤바 지역의 서민들이 감당하기가 힘든 정도였다. 당시 볼리비아 전체의 최저임금은 월 70달러 정도였는데, 한달 물값이 20달러를 넘게 되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물을 사야 할지 어머니 약을 사야 할지'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 벌어졌던 것이다. 게다가 벡텔은 땅 위의 물 뿐만 아니라 공기 중의 물까지 잠가버렸다. 강수량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자기 집 지붕에 떨어지는 빗물을 받는 것까지 금지하는 법을 만들도록 한 것이다.
마침내 그 다음 해 2000년 2월에 상하수도 사유화를 취소하고 벡텔의 상하수도 시설 운영권을 빼앗을 것을 요구하는 대중봉기가 일어나 시내 전체가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정부는 코차밤바에 경찰을 보내어 고무탄환과 최루탄으로 시위대를 강제진압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175명이 다치고 2명의 아이를 포함해 6명이 사망하고 말았다. 사태가 악화일로를 걷게 되자 볼리비아 정부는 4월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투입했다. 이때 또다시 17세의 소년 빅토르 우고 다자(Victor Hugo Daza)가 얼굴에 총을 맞고 사망한다. 벡텔의 자회사 IWL은 봉기를 일으킨 군중은 코카인 범죄조직의 사주를 받은 폭도들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마침내 4월 10일 볼리비아 정부는 굴복하고 민중의 모든 요구를 받아들일 것을 서약했다. 벡텔도 상하수도 운영권을 빼앗기고 나라 밖으로 쫓겨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후 볼리비아 곳곳으로 '물싸움'이 번져나갔다.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수자원 사유화에 맞서 싸우는 환경운동가들에게는 이 사건이 '2000년 4월 대첩'으로 불리며 승리의 대명사가 된다.
실로 극적인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의 주제인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와 이 사건은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싸움의 2라운드는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에 근거한 국제 중재심판으로 옮겨간다.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볼리비아에서 쫓겨난 벡텔은 1992년에 네덜란드와 볼리비아가 맺은 양자 간 투자협정의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를 근거로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로 가서 볼리비아 정부를 상대로 2600만 달러 규모의 소송을 건다. 문서들이 공개되지 않아 자세한 내용은 알 길이 없지만, 나중에 드러난 바에 따르면 벡텔과 그 자회사가 볼리비아에서 지출한 비용은 100만 달러가 채 안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2600만 달러라는 배상청구액은 상하수도 시설 운영권을 통한 미래 예상수익을 근거로 추정된 '자산가치'로부터 계산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네덜란드와 볼리비아의 양자 간 투자협정이 왜 여기서 나오는가? 벡텔은 미국회사다. 그리고 당시 아우구스 델 투나리의 소유구조를 보면 4개의 볼리비아 회사가 각각 5%, 스페인의 어느 건설회사가 25%를 소유하고 있었고, 그 나머지 지분을 소유한 벡텔의 자회사 IWL은 당시 케이맨 제도에 등록되어 있었다. 아무리 봐도 아우구스 델 투나리는 네덜란드의 선량한 투자자가 투자한 회사는 아니지 않은가? 소유구조의 내력을 다시 살펴보자.
벡텔은 볼리비아에서 사태가 벌어지기 전인 1999년 11월 4일에 자사가 100% 소유하고 있던 IWL의 주식 중 절반을 이탈리아의 전력회사인 에디슨(Edison S.p.A.)에 매각했다고 한다. 그 후 IWL은 등록돼 있던 케이맨 제도에서 사라지고, 대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복판에 본사가 있는 아이엔지(ING Trust)라는 기업의 자회사인 인트라 베헤르(Intra Beheer B.V.)라는 지주대행업체(holding agent) 사무실 안에 인터내셔널 워터 홀딩스(International Water Holding B.V.)라는 명패를 걸고 일개 '우편 사서함'만의 존재로 세상에 다시 나타난다.
따라서 아구아스 델 투나리는 이제 기술적으로 벡텔만의 소유가 아니다. 벡텔은 이 회사의 지분 55%를 소유한 IWL의 지분 중 절반만을 갖고 있었던 것이니 결국 아구아스 델 투나리에 대한 벡텔의 지분은 27.5%뿐이었다. 따라서 암스테르담의 '사서함'이 벡텔과 동등한 지분을 가진 공동 최대주주이니 네덜란드와 볼리비아의 양자 간 투자협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지럽게 해서 죄송하다. 하지만 머리가 아픈 것은 독자들만이 아니라 필자도 마찬가지이니 용서하시기를 바란다. 어쨌든 ICSID는 이러한 벡텔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이 회사가 제기한 소송을 '수용'과 관련된 사건으로 접수했다.
잠시 옆길로 빠져 참고삼아 말하면, 바로 이 벡텔-IWL(인터내셔널 워터 홀딩스)는 현재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전역에 걸쳐 8개의 수자원 관련 사업체를 가지고 있는데, 그 모두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사서함'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벡텔은 '수자원이야말로 지구상의 마지막 인프라'라는 흐름을 타고 최근 들어 세계각지의 수자원에 대한 각종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어쨌든 이 사례에서 다음과 같은 점들은 음미할 만하다. 첫째, 외국 투자자를 어수룩하게 보아서는 안 된다. 아직도 우리 사회의 얼치기 '미국통' 중에는 미국의 모든 것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우호적이라는 터무니없는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둘째, 벡텔의 투자가 어떤 성격의 것인지를 생각해 보자. 벡텔이 투자해 획득한 것은 볼리비아 정부로부터 넘겨받은 시설운영권, 즉 사업권(concession)이라는 무형자산의 일종이다. 이런 투자는 볼리비아 경제의 생산력에 어떤 보탬이 되었는가? 이 '투자'는 물이라는 볼리비아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밑바닥 자원을 독점하고, 물을 써야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높은 독점가격을 매겨 수익을 뜯어내는 사회적 기득권이 되었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 이득 계산의 문제를 훨씬 넘어서는 심각성을 가진다. 앞에서 설명한 바 있듯이 '자산'이란 어떻게든 현금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모든 사회적 사실관계다. 그렇다면 가장 안정적으로 현금수익을 창출해줄 투자대상은 말할 것도 없이 사회조직의 가장 기초적인 부분에 해당하는 사실관계들일 것이요, 이는 자연환경이나 보건과 밀접하게 연결된 부분일 공산이 크다. 벡텔의 이른바 '투자'는 바로 이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셋째, 볼리비아 정부가 소홀히 했다고 벡텔이 주장한 '투자자 보호'라는 것의 성격을 생각해보자. 벡텔이 직면하게 된 상황은 '탐욕스런 정부가 선량한 외국 투자자의 자산을 빼앗은' 사건이 아니라 거의 자연재해나 마찬가지의 불가항력적인 사회적 사건이었다. 이는 볼리비아에서 벌어진 유혈사태와 죽음들을 볼 때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그 상황은 모든 사업에 따르게 마련인 위험(risk)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볼리비아 민중의 분노가 벡텔로 향했던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민중봉기에 대한 벡텔 스스로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벡텔은 그 모든 사태가 정부에서 투자자 보호를 소홀히 하여 벌어진 일이며, 따라서 상하수도 시설 운영권을 다시 빼앗아 간 것은 '수용에 맞먹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런 점을 보면 투자자들에게 상식이나 양심 따위를 기대할 일이 아니다. 배상을 받을 확률이 어느 정도 있다면 그들은 어떠한 논리나 주장이든 내세워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를 활용할 것이다.
넷째, 배상액의 크기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600만 달러라는 절대 액수만으로 보면 그렇게 큰돈은 아니라고 생각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에서 요구되는 액수는 소송의 대상이 된 국가의 경제규모와 배상을 해야 할 정부의 예산규모에 비교해봐야 한다. 볼리비아는 가난한 나라다. 이 나라에서 2600만 달러라는 돈은 공립학교 교사 1만2천 명의 1년치 봉급 총액에 해당된다. 이런 계산을 우리나라에 적용하면 4억 달러에 육박하는 큰돈이다.
마지막으로 다섯째, 어쩌면 가장 심각하고 예측할 수 없기에 더욱 위험한 문제가 있다. 기상천외한 소유구조 변경을 통한 초국적 자본의 현란한 재주에 주목하자. 실질적으로 초국적의 소유구조가 형성돼 있는 오늘날에는 어느 기업이든 그 국적을 따진다는 것이 거의 무의미하다. 벡텔뿐만 아니라 이 기획연재의 앞부분에서 보았던 로널드 라우더와 CME의 경우도 그렇다.
이제는 어느 나라의 투자자가 어느 나라의 투자협정을 이용해 어느 정부를 겨냥해 공세를 취하게 될지를 쉽게 예측할 수 없다. 이는 숱하게 많은 이들이 지적한 점, 즉 초국적 자본이 분쟁 상대국을 공격할 때 자기에게 가장 유리한 투자협정을 골라서 이용하는(이를 위해 돈을 주고 뭔가를 사는 매수행위가 끼어들게 마련이다) '협정 쇼핑(Treaty Shopping)'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이미 체결한 FTA들에도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가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나라와 FTA를 체결한 나라들은 자본의 크기가 제한되어 있다. 이와 달리 초국적 자본들이 집결해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와 FTA를 체결해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가 시행되도록 하는 것은 어쩌면 도둑이 들끓는 거리를 향해 대문을 활짝 열어놓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을지 모른다.
에필로그는 이 사건의 결말을 소개하는 것으로 하겠다. ICSID는 벡텔의 주장을 이치에 닿는 것으로 받아들여 접수했지만, 세계각국의 시민들이나 환경운동가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벡텔이 볼리비아 정부를 고소했다는 소식은 가뜩이나 악화되어 있던 벡텔에 대한 반감을 세계적으로 폭발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샌프란시스코의 벡텔 본사에는 항의의 우편물과 이메일이 쇄도했고, 본사 건물 앞에서는 시위대가 거의 상주하다시피하면서 출입구를 차단하고 로비를 점령하기도 했으며, 한 환경운동가는 암스테르담의 벡텔 사무실에 쳐들어가 죽임을 당한 소년 빅토르 우고 다자의 이름을 내걸었다고 한다. 또 42개 나라에서 300개 이상의 조직이 공동으로 ICSID의 상위조직인 세계은행에 볼리비아 사건에 대한 조사를 공개적으로 진행할 것을 촉구했다. 또한 이 사건은 초국적 기업이 저지르는 횡포의 대명사가 되어 수십 개의 관련 논문이 발표되는 등 대표적인 국제 스캔들이 되고 만다.
결국 '2600만 달러의 배상금을 타내느냐, 기업 이미지의 계속적인 악화냐'를 놓고 고민했을 벡텔은 마침내 올해 1월 볼리비아 정부와 2볼리비아노스(300원 정도)를 받고 고소를 취하하기로 합의했다. 이 사건은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에 의한 국제 중재심판의 폐쇄성과 비민주성에 대한 경각심과 분노가 어느 정도의 범위와 강도로 지금 세계에 확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었고, 세계의 민중과 시민사회의 자발적인 운동이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의 발동을 미연에 막아버릴 수 있음을 보여준 소중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② 비방디 대 아르헨티나 사건
프랑스의 복합기업 비방디(Vivendi)는 1994-5년에 아르헨티나 투쿠만(Tucuman) 지역의 상하수도 운영권을 확보하고 사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곧 투쿠만 지역의 주민들, 지방정부, 지역 정치인들과 비방디 사이에 수도값과 서비스의 질 등을 놓고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됐고, 아예 지방정부가 나서서 주민들에게 수도값 지불을 거부하라고 촉구하기에 이른다.
이에 비방디는 프랑스와 아르헨티나의 양자 간 투자협정을 근거로 1996년 ICSID에서 아르헨티나 정부를 상대로 한 중재심판에 들어간다. 이 사건은 우여곡절을 거쳤음에도 2006년 현재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길고 지리한 싸움으로 알려져 있다. 싸움이 이토록 길어진 것은 2000년에 내려진 ICSID의 중재심판에서 나온 재정(판결)과 그것을 둘러싸고 벌어진 역전극 때문이었다.
2000년 당시의 판결에 의하면, 중재심판소는 비방디가 제기한 문제가 양자 간 투자협정을 어긴 것인지를 판단하려면 먼저 투쿠만 지방정부와 비방디가 맺은 사업운영권 협약(Concession Agreement)의 의미를 정확하게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운영권 협약에 의하면, 그 의미를 정확하게 해석할 권한은 명시적으로 투쿠만 지방정부에만 있는 것으로 판단됐다. 따라서 이 문제는 일차적으로 투쿠만 지방정부의 법원으로 가야 할 일이며, 그 전에는 ICSID의 중재심판소가 어떤 개입도 할 수 없으니 소송을 각하한다는 판결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순순히 물러날 비방디가 아니었다. 비방디는 곧 ICSID에 이러한 중재심판소의 판결을 무효화할 위원회(Annulment Committee)를 소집해 달라고 신청한다. 앞에서 잠깐 보았지만, ICSID는 자신의 주관 하에 내려진 중재심판소의 판정이 심각한 절차상 결함이 있는 5가지의 경우에 한해 그 판정의 일부를 무효화할 수 있다. 작동되는 일이 많지 않던 이 위원회가 드디어 소집됐다. 위원회의 판단은 중재심판소가 갖고 있는 권한을 최대한 활용하지 않았다는 것이었고, 이는 기존의 판결을 무효화할 사유에 해당된다는 것이었다. 위원회에 의하면, 중재심판소는 지방정부의 법원에서 해결해야 하는 운영권 협약 따위에 얽매이지 말고 국제법이나 투자협정을 위반한 사안인지 여부를 독자적으로 판단해야 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극적인 반전으로 싸움의 2라운드가 시작됐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가급적 무효화 판정을 뒤집으려고 노력했고, 비방디는 이제 결함이 있다고 판정된 첫 번째 중재심판소를 해체하고 새로운 구성으로 중재심판소를 다시 짜야 한다고 주장하며 기세를 올렸다. 최근 알려진 바에 따르면, 마침내 비방디의 주장대로 새로 구성된 중재심판소가 이 사건을 맡아 2005년에 소송을 속개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국제 중재심판소가 각국의 국내 법해석에 대항해 자신의 영역권을 주장하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국제 투자자들이 자신들에게 열려 있는 모든 기회를 끝까지 얼마나 집요하게 이용하는지도 이 사건은 보여준다.
한편 프랑스의 상수도 운영회사인 CGE와 연결돼 있는 비방디는 베올리아(Veolia)라는 초국적 수자원 회사를 설립하고 이를 통해 세계 곳곳의 상수도 운영권을 따내고 있다. 최근의 보도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정부가 상수도의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드디어 인천의 상수도 사업본부가 바로 이 베올리아와 함께 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노동시민단체 "물 사유화 저지 공동행동" 발족'(인터넷신문 <레디앙>, 2006년 9월 21일).
③ 아주리 대 아르헨티나 사건
아주리(Azurix Corporation)는 원래 저 유명한 미국회사 엔론(Enron Corporation)에서 분사(spin-off)된 기업인데, 1999년에 아르헨티나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 지역의 수도를 30년간 운영할 권리를 따낸다. 그 뒤의 이야기는 낯익은 줄거리로 진행된다.
우선 주민들은 수돗물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고생해야 했고, 2000년 봄에는 수돗물의 질을 놓고 난리가 벌어진다. 수돗물에서 독성 박테리아가 쏟아져 나오는 극악한 사태가 발생한 것이었다. 이에 부에노스아이레스 지방당국은 보건위생 차원에서 주민들에게 수돗물을 마시는 것은 물론 수돗물로 몸을 씻는 것조차 최대한으로 자제하라고 당부하게 된다. 이 지역의 공중보건 단당 관리는 "내가 25년이나 이 일을 해 왔지만, 이렇게 끔찍한 물 위기는 처음 본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주리는 이 모든 잘못의 원인이 원래 운영권 협약에서 약속된 기간시설을 지방당국이 제공하지 않은 데에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2001년에 운영권 협약이 종결되자 아주리는 미국과 아르헨티나의 양자 간 투자협정을 근거로 하여 아르헨티나 정부의 규제는 '수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5억5천만 달러가 넘는 규모의 소송을 걸었다. 이 소송은 2006년 현재도 진행 중이다.
④ 선벨트 대 캐나다 사건
미국의 캘리포니아 지역은 종종 심한 가뭄에 시달리는 등 물 부족 현상이 자주 일어난다. 그래서 샌타바버라에 자리 잡고 있는 회사 선벨트(Sunbelt)는 강과 호수가 많아 물이 풍부하며 가까이에 있는 캐나다의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에 차량을 보내어 그곳 물을 수입한다는 대담한 계획을 세운다.
선벨트는 브리티시컬럼비아 주로부터 제한된 양의 물 수출 허가를 받아 놓고 있는 캐나다 회사 스노캡(Snowcap)과 '합작사업(joint venture)'를 하기로 계약을 맺고, 스노캡의 물 수출량을 늘릴 수 있도록 1991년에 새로이 허가를 신청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사업을 추진하는 기업은 선벨트만이 아니었다. 이에 따라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의 주민들 사이에 자칫 지역의 수자원이 순식간에 고갈돼버리는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팽배하게 됐다. 마침내 같은 해에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정부는 기존의 물 수출 허가까지 취소해버리는 '물 모라토리엄'을 선언한다. 이와 함께 주정부는 물 수출 허가를 내주었던 캐나다 회사 스노캡과는 33만 캐나다달러 정도로 배상액을 합의한다.
그런데 갑자기 1999년에 선벨트가 나섰다. 선벨트는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의 그런 조치가 자사가 하려고 했던 사업에 대한 '수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캐나다 정부를 상대로 UNCITRAL(유엔 산하 국제상법위원회)에 소송을 제기하고, 자사의 사업이 성사됐을 경우의 수익 추정을 근거로 105억 달러라는 거액의 배상을 요구한다.
이 소송은 법률가들 사이에서 그다지 정당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았고, 그 후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알게 해줄만한 소식도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 사건은 수자원보호라는 그야말로 기초적인 공공이익과 관련된 사안도 얼마든지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홍기빈/국제정치경제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