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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에 관한 작가의 후기를 읽고는 나는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에 대한 선입견에 사로잡혔던 것 같다. 무언가 눈물 나도록 벅차거나 감동적인 순간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의 이미지를 그렸는데, 소설에서 나오는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은 정말 다른 이미지로 다가왔다. 그렇다고 그 이야기 속에 나오는 ‘그 순간’이 결코 황홀하지 않게 느껴진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기존에 내가 가진 ‘그 순간’에 대한 통념이 작가에 의해 여지없이 깨지는 것을 ‘푸훗’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만끽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 에피소드는 소설이 아니고서는 그 참맛을 제대로 전달하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나 만화로 그 장면을 연출해서 소설을 읽으면서 웃음을 터뜨리게 만들었던 그 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성석제의 단편 소설집을 두 권 읽었는데, 일단 드는 생각은 작가가 맛깔나게 이야기를 잘 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술자리에서 무용담처럼 들려줄 법한 이야기 거리를 유치하거나 밋밋하지 않게, 그리고 읽는 이로 하여금 푸훗 하는 웃음이 터져 나오게 술술 풀어내는 솜씨가 정말 탁월한 것 같다.
다시 소설의 제목으로 돌아와서 작가후기에 나온 말이 참 가슴에 와 닿는다.
‘나는 안다. 내 성벽의 무수한 돌 중에 몇 개는 황홀하게 빛나는 것임을. 또 안다. 모든 순간이 번쩍거릴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겠다. 인생의 황홀한 어느 한 순간은 인생을 여는 열쇠구멍 같은 것이지만 인생 그 자체는 아님을’
우리의 인생은 하루하루가 벅찬 감동이나 평생 기억할 만한 일로 가득 차 있지는 않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광고 문구처럼 열심히 일하는 와중의 휴가가 꿀맛 같듯이 평범하고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 있기에 ‘그 순간’이 번쩍이고 황홀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항상 번쩍하는 순간으로 가득하다면 오히려 참 피곤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돌이켜보면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내 인생에 몇몇 그런 순간들이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도 그런 순간들을 새롭게 마주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번쩍하지는 않지만, 번쩍하는 그 순간을 더욱 번쩍하고 황홀하게 해 주는 내 인생의 소중한 순간들을 묵묵히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