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빅딜’ 아닌 ‘쪽박딜’로 간다
[한겨레 2007-02-16 05:09]    

[한겨레] 한국 ‘반덤핑 비합산 조처’ 요구 접어
미국 “자동차·의약품서 의미있는 진전”
농산물 큰폭 양보속 섬유쪽 실익없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타결 지점으로 성큼 나아갔다. 미국 워싱턴에서 14일(현지시각) 폐막된 7차 협상에서 양쪽 협상단은 나름대로 만족스럽다고 평가했다. 무역구제·자동차·의약품 등 좀처럼 이견을 좁히지 못하던 분야에서 타결의 실마리를 찾은 듯하다. 불과 한달여 전 서울에서 6차 협상을 끝낸 다음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라졌다.

이처럼 협상이 급물살을 타게 된 계기는 한국 쪽의 무더기 양보다. 이번 7차 협상에서 한국 협상단은 그동안 “총력을 쏟겠다”고 공언해 온 무역구제 분야에서 핵심 요구사항을 접었다. 바로 덤핑 피해 판정 때의 ‘비합산 조처’다. 이는 미국이 중국 등 동남아 국가 제품의 덤핑 피해를 판정하고 반덤핑 관세를 부과할 때 한국산 제품까지 함께 엮어서 취급하지 말아 달라는 요구다. 이는 그동안 미국의 반덤핑 제재에 시달려온 국내 수출업계의 숙원이기도 해 협상단은 자동차·의약품 분야의 미국 요구와 ‘맞교환’(빅딜) 거리로 삼을 정도로 중시해 왔다.

하지만 7차 협상에서 미국이 “법개정 사항”이라며 꿈쩍도 하지 않자 비합산 조처를 포기했다. 대신 자동차와 의약품 분야 협상에서는 미국 협상단은 “의미 있는 진전이 있었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자동차 분야에선 우리 쪽 협상단이 결국 미국의 요구대로 배기량 기준 자동차세제를 개편하는 안을 냈으며, 미국이 ‘비관세 장벽’이라고 주장해온 기술표준제도도 미국에 유리하게 고치기로 합의했다. 의약품도 약값 산정 때 미국 업체의 의견수렴 절차를 두기로 합의했으며, 신약의 특허권 연장도 원칙적으로 수용했다.

이밖에 6차 때까지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던 농산물 분야 협상에서도 진전의 실마리를 우리 쪽에서 제공했다. 시장개방의 마지노선이자 관세철폐에서 제외됨을 뜻하는 ‘초민감품목’ 수를 235개에서 100여개로 줄인 상태다. 이는 역대 최대 개방폭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맺은 에프티에이에서 농산물 예외품목은 한-칠레 에프티에이가 413개, 한-싱가포르 484개, 한-유럽자유무역연합(EFTA) 956개였다.

반면 농산물과 연계해 우리 쪽에서 공세를 펼쳐온 섬유 협상에서는, 미국이 세차례나 수정안을 냈지만 알맹이가 전혀 없었다. 김종훈 수석대표를 비롯한 우리 쪽 협상단 관계자들은 섬유분야의 미국 수정안에 “너무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한결같이 쏟아냈다.

결국 무역구제-자동차·의약품, 농산물-섬유 등으로 연계된 협상의 결과는 한국으로서는 ‘빅딜’이 아닌 ‘쪽박딜’로 치닫고 있는 형국이다.

워싱턴/송창석 기자 number3@hani.co.kr


김종훈 수석대표
“만족스럽게 보긴 어렵다”

김종훈 수석대표는 “(7차 협상에서) 상당한 진전이 있었지만 타결이 임박했다거나 만족스럽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렵다”는 단서를 달았다.

-커틀러 대표가 무역구제에 대해 한국으로부터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았다고 했는데?

=두 수석대표가 논의한 가장 큰 부분이 이것이다. 구체적 내용을 밝히기는 좀 이르다.

-8차 협상은 기존 협상과는 다르게 목요일(3월8일)에 시작하는 이유는 뭔지?

=돌아가면 서로 해야 할 과제가 있다. 새로 입장을 정리하고 다시 만나야 하는데, 월요일인 3월5일에 시작하기에는 양국 모두 준비기간이 너무 짧다는 생각에 조금 늦췄다.

-커틀러는 상당히 만족스러운 것처럼 말하는데….

=상당한 진전 있었다. 그러나 타결이 임박했다거나 만족스럽다고 보긴 어렵다.

-이번 7차 협상을 ‘타결의 시금석’이라고 했는데?

=타결 기반을 잘 조성한 것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이번 협상의 진도를 봐서는 적기 타결도 가능할 것 같다.

-미국이 낸 섬유관세의 철폐안 수준이 어떤지?

=우리 기대에 미흡하다. 대신 미국은 (중국산의 한국을 통한) 우회수출을 가능한 모든 방법을 통해서 막는 데 관심을 쏟고 있다.

송창석 기자 number3@hani.co.kr


웬디 커틀러 수석대표
“자동차분야 굉장히 좋은 논의”

웬디 커틀러 미국 쪽 수석대표는 7차 협상에서 “굉장히 좋은 논의가 있었다”고 밝혔다. 농산물에서는 어려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자동차와 무역구제에 대한 분과는 진전이 없었나?

=자동차는 굉장히 좋은 논의가 있었다. 세제개편뿐 아니라 다양한 비관세조처에 대해서도 논의가 있었다. 김종훈 수석대표가 무역구제에 대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냈는데 굉장히 좋은 안이었고 조심스럽게 살펴볼 예정이다.

-오늘 아침 의회 청문회에서 한 의원이 “한국에서 자라나지 않는 곡물에 대해서도 한국 협상단이 저항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 이것이 사실인지? 쌀에 대해 진전이 있었는지?

=농업분과 협상은 이번에 강도 높게 진행했다. 다양한 품목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상당한 진전이 있었지만 민감한 품목은 아직도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원산지 인정 문제는 논의했는지?

=(별 관심이 없다는 듯) 원산지 분과에서 논의됐는지 모르겠다. 분과장과 얘기해 봐야겠다.

-8차 협상은 어떤 형태로 얼마나 오래 하게 되나?

=협상의 구조나 형식은 논의 중이다. 무역촉진권한(TPA) 마감시한을 고려했을 때 가능한 한 많은 진전을 이룰 수 있는 방식으로 정할 것이다.

송창석 기자 number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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