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 - 완결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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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 감염병이 던진 화두 중 하나는 우리 삶의 방식이 꼭 이렇게 허둥지둥 앞만 보고 달리는 모습이어야하나, 경제가 휘청이면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하나, 이 두 가지 질문 사이에서 솟아나는 갑작스럽고 불안한 당혹감이 아닌가 싶다. 산업화된,자본주의적 삶의 중심을 파고든 코로나 19의 역습, 생명과 경제가 맞붙은 전장에서, 불현듯, 몇 번이고 도전했지만 이상하게도 매번 끝까지 읽지 못하고 덮어버렸던 <월든>이 다시 읽고 싶어졌다.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 월든 호숫가에 직접 오두막을 짓고 2년여의 삶을 살면서 소로는 다른 방식의 삶, 느릿하게 향유하면서도 훨씬 깊고 풍성하게 지어나가가는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니까. 문명의 진보와 부의 축적 속에서 빈곤의 쇠락은 가속도가 붙고, 더 발전하고 더 부유해져야한다는 의식은 강박증처럼 사람들을 파고들어 불나방처럼 더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어가게 한다는 통찰은, 역설적이게도 문명과 부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 그의 낡은 오두막에서 그가 경험한 원시의 삶이 내어준, 정직한 활자들이 엮어낸 문장들에서부터 비롯된다.

 

그는 드라마틱하고 낭만적인 삽화들을 내세워 자신의 경험을 허세로 꾸며내는 대신, 면밀한 관찰과 풍부한 지성으로 고요하고 정적이지만 어느 누구보다 격정적이고 동적인 사상을 이끌어낸다. 욕심을 버리고 직접 집을 짓고 먹을 것을 기르며, 가령 빵제조법 같은 생활에 필요한 기술에 대해 스스로 익히고, 시간을 정해 평소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공부를 따로 하는 등 생태학적인 삶을 통해 우리가 꿈꾸어왔던 적확한 그 좌표를 짚어낸다.  

 

그는 30달러가 안되는 비용을 들여 오두막을 직접 짓고, 오두막 옆에 작물을 길러 8달러 남짓 이문을 남기면서 시간과 영혼을 팔아도 점점 더 가난해지고 있는 도심의 삶과 비교하지만, 문명에서 완전히 떠난 야생의 삶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문명 속에서도 어떻게 야생의 삶을 살 수 있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판단하는 편이 더 옳을 것이다.

 

또 문명의 세계 속에서 숱한 소리를 듣고 있지만, 소리를 의식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들춰내면서 다양한 자연의 소리에 경청할 것을 강조한다. 숲과 호수를 통해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 철도와 교회 종소리의 조화 속에서 "보는 것"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듣는 것"에 귀기울여야 함을 강조하기도 한다.

 

소로는 오두막에서 혼자 살았으면서도 철저한 고립 대신 사람들과의 진실한 교류와 소통에도 큰 관심을 기울인다. 고독과 적막을 마주하였기에 그는 자신을 찾아오는 타인에 대한 진실한 배려, 소중함, 진정한 소통을 경험하는데,  숱한 사람을 만나고 빠른 관계맺기에 길들여져 있지만 더더욱 소통이 어려워진 우리에게, 그러므로 더 큰 울림을 준다.

 

겨울 호수의 측량을 계산한 대목, 콩을 쌀로 바꾸기 위해 콩을 싫어하면서도 농사일에 매달렸다거나 각종 동물과 식물의 생태와 분류를 기록한 장면, 겨울 난방을 위한 공사, 바른 독서에의 예찬 등과 관련한 꼼꼼한 기록을 읽다보면, 짧다면 짧았던 그의 생을, 단순한 물리적 시간들로 계산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문명과 야생의 경계에서 생각하고, 살고, 다시 살고, 생각하는 삶. 지속가능한 순환으로 이어지며 소박한 감사와 존재로서 온전히 채워지는 삶,  그러한 삶의 모습을 담백한 기록으로 더 깊고 더 넓게 펼쳐보인 그의 역량은, 어떤 숭고함마저 느끼게 할 정도다.

 

감염병 팬데믹의 공포 속에서 더 많은 발전과 더 빠른 개발을 위하여 야생을 잠식해나가는 문명의 광폭은, 그동안 수없이 놓쳤던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탐욕과 과시로 재현되고 축적되는 삶의 양태들. 잠시 멈춰서서 돌아봐야한다면, <월든>을 다시 읽는 데서 출발해야하지 않을까.

때때로 내 생활을 다른 사람의 생활과 비교하면 나는 분에 넘칠 정도로 신의 총애를 받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마치 아무도 지니지 않은 허가나 보증을 하늘로부터 받은 듯한, 신의 특별한 가호를 받는 듯한 기분 말이다...작은 잣나무 잎 하나하나가 나와 교감을 나누며 자라나고 부펄어 올라 우정의 손길을 뻗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황폐하고 쓸쓸해 보이는 풍경에도 깊고 생생한 인연을 느끼게 되었고, 나아가 자신과 가장 가까운 혈연관계에 있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적이라 생각되는 것은 결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이제 어떤 곳에 가더라도 위화감을 느끼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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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을 위한 서양 철학 이야기 - 신앙과 이성의 만남
크레이그 바르톨로뮤.마이클 고힌 지음, 신국원 옮김 / IVP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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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에게 왜 철학이 필요한가, 정면으로 묻는 일은, 어쩌면 그리 놀랄만한 질문이 아닐 수도 있다. 순수하게 신앙을 고백하고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마음이 중요한데, 철학과 같은 개별적인 초등(?)학문이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는 극단적인 의견이 주류처럼 느껴지는 요즘에는 더더욱.

 

그러나 저자들이 문제의식을 가진 것처럼,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선교적 관점으로 세상을 살아나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기독교 철학과 신학의 기초 아래 다양한 학문적 발전과 진보를 경주할  책무가 있는데, 이런 지적 풍토를 만들어가자는 취지에서 본다면,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목표에 충실하기 위해 진지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저자들은 알 월터스를 인용하여 철학과 세계관의 관계 모델을 배격, 병립, 완성, 만들어냄, 동일로 설명하면서 세계관의 토대 위에서 철학이 만들어지고 발전한다는 관점을 차용한다. 즉 기독교 세계관을 기초로 다양한 학문을 분석하고 발전시키는 방편이 필요한데, 오히려 철학 분야를 보자면 일반 철학을 통해 기독교 세계관 자체가 흔들리는 모순을 들춰내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저자들은 시대별로 특정 철학이 가지고 있는 내재적 모순을 살펴보고, 철학자의 작업을 복음의 맥락 속에서 살펴보는 데 집중한다.

 

저자들이 서문에서 소개한 대로 전체 철학의 얼개를 그려나가기 위해 첫째, 고대 그리스 시대의 철학의 기원을 살펴보고, 이후 그리스도 사건과 철학의 의의, 초기 기독교 설립 이후 복음과 그리스 철학의 종합, 후기 중세 이후의 철학과 복음의 해체, 계몽주의에서 시작된 근대적, 자율적, 인본주의적 철학의 출현을 살펴본다. 이후 현재 기독교 철학의 발전과 현황, 주요 쟁점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다만 아쉬운 점은 방향성과 전개방식의 탁월함에도 불구하고 계몽주의부터 출현한 철학 사상 분야에 대한 분석이 취약하지 않나 싶다. 다양한 철학자가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지면의 한계 때문에 각각의 철학 사상을 아주 짧게 묘사한 데다 저자들의 분석이 아니라 다른 학자들의 비평을 각주처럼 설명해 덧붙이는 기술 방식 때문에, 각 철학이 가지고 있는 내재적 모순을 드러내는 데 한계가 있다. 번역본이라는 한계도 저자들의 분명한 주장을 파악하는 데 일부 어려움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가치는 마지막 3부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기초 지식이 부족해서 기독교 철학자들의 사상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만, 무엇보다 도이어베르트의 양상 계층구조는 다차원적이고 통합적인 기독교적 사고가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 분명하게 제시함으로써, 세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세상엔는 15가지 양상 측면 또는 존재 방식이 있고, 모든 구체적 사물은 15가지의 양상 측면 또는 존재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모든 구체적인 사물은 크게 인간, 동물, 식물, 사물로 구분할 수 있고, 15가지 양상은 신앙적, 윤리적, 정치적/법률적, 심미적, 경제적, 사회적, 언어적, 역사적/형성적, 분석적/이성적, 감각적/감정적, 생물적/생, 물리적/에너지와 물질, 움직임, 공간적, 수적 양상이 포함된다.

 

다시 각 양 상은 의미와 핵의 관계로 재정의할 수 있는데, 신앙적-신앙, 윤리적-사랑, 정치적/법적-응보, 심미적-조화, 경제적-절약, 사회적-사회적 교섭, 언어적-상징적 의미, 역사적-형성력, 분석적-구분, 감각적-느낌, 생물적-생기, 물리적-에너지, 운동적-운동, 공간적-지속적 운동, 수적-양으로 구분된다.

 

도이어베르트는 개체성 구조라는 개념을 도입해 다양한 실재가 양상 측면들 속에서 어떻게 기능하는지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질서를 이해하게 된다고 본다. 바위는 물리적 실재로 작동하고, 나무는 생물적 실재로, 말은 감각적 실재로 존재하는 게 그 예이다. 그런데, 그는 여기서 멈추는 대신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실재를 15가지 양상 모두에서 가능하도록 세상을 만들었다는 데 착안한다. 즉 나비를 심미적이고 영적인 차원까지 인식하는 것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실제이며, 이를 통해 모든 실재가 연결되어 하나가 되는 것은 진짜라는 것이다.

 

 단순히 개체성 구조에 맞추어 다양한 실재가 놓이도록 하는 것을 넘어서서, 우리의 인간됨으로 응답함으로써 세상의 모든 실재가 15가지 양상으로 기능하도록 실제화하는 그것, 하나님의 창조의 본래 모습으로 돌이키도록 인식하고 행동하는 것, 거기에 기독교 세계관과 철학함의 목적이 있다는 인식은 좀처럼 듣고 보지 못했던 사상.

 

3부를 읽으면서 기독교 철학자들의 다양한 사상을 좀더 구체적으로 더 알아보고 싶다는 욕심은 독서 후 얻게 된 뜻밖의 선물이다.

이는 그리스도인은 비기독교 철학자를 접하지 않아야 하며 그들로부터 배울 것이 하나도 없음을 의미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지적했듯,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이며, 그리스도인은 진리가 어디서 발견되건 그 진리를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 가장 세속적인 철학자들에게서 나온다 하더라도 말이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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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 (양장)
에른스트 H. 곰브리치 지음, 백승길.이종숭 옮김 / 예경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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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하기보다 더 어려운 게 있다면, 아마 미술보기가 아닐까 싶다.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지만, 미술은 뭔가 독특하고 구별된 이들의 전유물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분명 있는데, 아마도 작품과 작가를 외우고, 심지어는 감상하는 방식마저 암기의 편린으로 가르친 학교 교과교육의 폐해도 큰 몫을 차지할 것 같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시대별로 작품을 구분하고, 작가와 작품의 특징을 모조리 명렬화 해서 근사한 도표처럼 만드는 대신 시대별 미술의 효용성, 미술의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 특정 미술이 나타나게 된 시대적 배경과 문화를 중심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문장들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끝이 날 것 같지 않는 저자의 유려한 배경 지식을 늘어놓거나 사족을 붙여 스스로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를 것 같은 잡다한 이야기를 과감하게 배제한 놀라운 절제미가 책 전반에 드리워져 있다.

 

그러므로 책을 읽고 나면 미술에 대한 배경 지식이 특별히 늘었다는 지적 허영심에 사로잡히거나 실제로는 전혀 느낀 바가 없는데 저자의 설득에 못이겨 무슨 큰 감상평이라도 얻은 듯 우쭐함에 사로잡히지 않게 된다. 대신 어떤 건축물이나 회화, 조각을 보게 된다면 앞으로 이런 점을 찾아 볼 수 있겠구나, 관점의 지평이 늘어난 것처럼 느껴진다. 또 미술을 보면서, 왜 철학이 가능하며 미학이 발전할 수 있었을지 유추도 가능해지면서 관련된 더 많은 책들, 미술을 넘어서는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해보고 싶다는 자연스러운 욕망이 생긴다. 저자가 미술을 살펴보는 방식을 훑다보면 미술 뿐만 아니라 하나의 사유가 여러 영역과 연결되고 융합되면서 자연스럽게 어떤 통렬한 핵심 가치를 발견하는지 그 방법을 읽는 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 

 

그만큼 겸손하고 성실하게, 유명한 작품부터 눈여겨보지 않던 미술의 세세한 분야까지 다채로운 설명을 덧붙여 들려준다.

 

가장 관심 있는 게 본 것은 이집트 미술과 인상파 미술의 등장 부분이었다. 이집트 회화는 우연한 각도에서  물리적으로 보이는 대로 그리는 대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인체를 그렸다는 데서 큰 영감을 준다. 이후 시대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회화가 발전하기는 하지만, 거꾸로, 보겠다는 의도를 통해 물리적인 시야를 극복하는 방식도 있다는 데 의미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사진의 등장과 함께, 본다는 것은 다시 무엇인가를 돌아보게 한 인상파의 등장도 흥미롭다. 이번에 다시금 눈여겨 본 작가는 세잔인데, 자신의 인상에 따라 본 대로 그리는 것과 더불어 완전한 균형과 견고한 단순성을 목표로 빛을 받으면서도 명확한 대상의 본질을 그림으로 그려낸 그의 예술혼에 대한 묘사는 재미있는 소설을 읽어내려가 듯 흥분될 정도였다. 책을 읽으면서 동시에 다른 주석을 찾아 보면서 세잔이 현상학의 등장과 연계된 부분을 찾고 나서는 더 신났던 것 같다.

 

저자의 탁월함은 작품의 설명을 위해 선명한 도록을 함께 실은 것도 한 몫 하는데, 다른 곳에서 많이 접하지 못했던 작품들도 대거 수록되어 있고 그 작품에서 드러나는 특유의 기법이나 미술적 진보 등을 함께 소개해주어 독자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단순히 미술을 감상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과 세계에 대한 관점의 지평과 사유를 확장하도록 하는 데 좋은 자극이 되는 책이다.

미술가가 얻으려고 하는 효과가 무엇인지를 미리 예견해서 알아낼 수는 없기 때문에, 이러한 종류의 규칙을 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중략..그림을 많이 보면 볼수록 이전에는 발견할 수 없었던 장점을 보게 된다. 우리는 각 시대의 미술가들이 이룩하려고 고심해온 그런 종류의 조화에 대한 감각을 발전시키기 시작한다. 이러한 조화에 대한 우리의 느낌이 풍부해질수록 그만큼 더 그런 그림들을 감상하는 것을 즐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것이 제일 중요한 점이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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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이 세계라면 - 분투하고 경합하며 전복되는 우리 몸을 둘러싼 지식의 사회사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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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은 현실을 객관적으로 반영할 수 있을까, 배제되고 소외되어 지식의 테두리 안으로 포섭되지 않는 영역이 있다면, 지식의 발전은 온전히 현실을 개선할 수 있을까, 지식이 생성되는 과정과 구조가 뒤틀려 있다면 그로 인해 생산되는 지식을 신봉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저자는 저작을 통해 답을 하기보다는 질문하기로 작정한 것처럼 써내려간 것이 아닐까, 의문마저 든다.

 

진리를 추구하며 현실을 최대한 반영하는 이론과 지식 생산을 위해 몰두하는 이 때, 지식인의 윤리, 지식의 생성과정을 추적하면서, 기울어진 세상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이 무엇인지 그 방향성을 뒤쫒는다.

 

담배회사의 이면을 보여줌으로써 흡연이 단순한 기호품일 수 없으며, 마케팅 전략의 일환으로 생성되는 연구 결과의 진실성에 의문을 던진다. 일제강점기의 의료보건 발달이 조선인의 건강증진이 아니라 제국주의의 필요성을 뒷받침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었다는 점이나 건강 불평등을 통해 건강이 사회적 산물임을 역설하기도 한다. 과학적 연구의 필요성과 더불어 데이터를 근거로 하는 근거중심의학의 발전과 과제에 대해서도 소상히 진술한다.

 

다만, 근거중심의학의 발달로 데이터로 치환되지 못하는 치료나 간호 등에 대하여 어떤 전망과 자세가 필요한지, 그와 관련한 기술이 부족한 부분이 아쉽다. 가령 우리가 마주한 위험사회에서의 위험은 오히려 데이터로 추적하기 어려운 속성이 있는가 하면, 근거가 아니라 해석학적 상상력으로 효과를 발휘하는 영역은 없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지식이 권력이 되는 시대, 지식의 바른 민주화를 위해서 필요한 의제들을 통찰하는 데 예민한 단서를 제공한다. 안타깝게도 연구 과제 선정에서부터 예산 지원, 연구 발표까지 자신의 경험을 진솔하게 토로한 마지막 에필로그에서는, 구석구석 막혀 있는 우리 연구 풍토의 척박한 지형을 고스란히 확인함으로써 속쓰리지 않을 수 없다. 

부조리한 사회로 상처받는 사람들의 고통을 과학의 언어로 세상에 내놓는 것은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해보겠습니다. - P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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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이 플라톤을 만났을 때 - 생물학과 철학의 우아한 이중주
김동규.김응빈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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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순식간에 사회가 공포와 불안의 도가니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목도하면서, 분절된 학문과 체계로 분석하고 결론짓는문제 해결 방식의 한계를 절감하는 요즘이다. 학문 간의 통섭, 시야의 교차, 논쟁의 융합이야말로 지금 코로나 사태를 마주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처방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생물학의 미생물을 철학으로 들여다보는 동시에  미생물을 매개로 철학을 생물학으로 해석하는 유연한 변주가 아닐까 싶다. 저자들의 겸손과 교류는 서로의 전문성을 인정하는 동시에 공통의 사유를 뽑아내는 데 탁월하다.

 

미토콘드리아 이야기로부터 공생의 삶, 구별과 분리로부터 파괴와 공멸을 견인하는 면역의 역설, 바이러스와 예술을 통한 개성있는 공공성 회복의 필요성, 밈과 도킨스의 한계, 카르페 디엠과 메멘토 모리, 인간중심주의의 함정, 과학시대의 철학의 중요성, 진리, 자유, 사랑을 향한 생명의 삼위지향성 등 총 12장으로 구성되어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진중하게 생각할 거리를 제시한다.

 

저자들의 문제의식은 한 마디로 미생물이 색출하여 박멸해야할 대상인지, 아니면 공생으로 나가야할 동반자인가에서 출발하여, 진리, 자유, 사랑을 함께할 연대의 주체임을 역설한다.

 

가장 인상깊었던 내용은 예술과 바이러스를 비교하면서 한나 아렌트를 인용, 자유가 박탈된 사적 영역, 즉 친밀감으로 얽혀진 개인, 가정에서 벗어나 개성있는 공공성을 실현할 공적 영역의 확대에 대하여 언급한 부분이다. 아렌트는 사람들이 진정한, 그리고 바꿀 수 없는 자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인 공적 영역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역설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공과 사를 가르는 기준인 자유가 구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녀에 따르면 자유는 자연적 욕구와 경제적 욕구로부터의 자유가 있는데, 이는 이미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유를 갖추었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둘째는 다른 시민들과의 평등한 관계 위에서 논의되는 자유로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고 평등한 상태에 놓여진다는 의미로서의 자유다. 셋째는 평등한 상태에서 타인과 경쟁하여 '차이에의 열정'을 마음껏 발휘한다는 의미에서의 자유다. 넷째, 이러한 자유를 통해 공적 사안에 대해 자신의 가능성을 최대한 실현하는 자유를 위미한다.또 아렌트는 공공성이란 타인과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광장 같은, 타인과 함께 공유하는 실제 세계로서의 공공성이자, 인간에게 불멸의 길을 제공하는 공공성, 즉. 법, 제도, 철학, 예술 등 공정 세계를 구축하는 공공성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녀의 주장에 비추어보면 코로나 19 사태가 보여주는 미생물의 역습을 두고, 우리는 과연 생존, 공정, 수용, 헌신 등이 허용되는 공적 존재로서  서 있는가 반문하게 된다. 공적 존재로서의 일련의 자유가 공고하지 않은 상황에서, 불확실한 사태에 대한 사적 존재들의 만인의 투쟁 같은 즉각적인 대응들은 그나마 존재하던 우리 사회의 공공성을 퇴보시키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소위 전문가라는 이들의 공허한 자문, 일률적인 정책과 정치의 한계 속에서 감염병의 주체이자 대상인 시민들의 목소리는 명멸하거나 침묵으로 이어진다. 광장과 공적 세계의 와해는 사적 영역의 각자도생과 맞닿아 일련의 대란으로 귀결된 느낌마저 든다.

 

의학적인 처치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감염병 대유행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해답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해결책의 방향은 정확하게 제시하는 그런 책이 아닐까 싶다. 성찰과 반추, 토론과 논의가 사라진 일방적인 대응의 문제점을 돌아보게 하는데도 유익한 단서를 제공한다.

살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생명은 어디에 있는가
지식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지혜는 어디에 있는가
정보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지식은 어디에 있는가 -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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