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 일본이 사는 법 - 10년 앞선 고령사회 리포트
김웅철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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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및 초고령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뉴스는 종종 들리지만, 의료나 부동산 측면에서 피상적인 내용만 다루어져, 사회 전반적으로 어떻게 변해야 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감이 서지 않는 느낌이었다. 


미래 사회 변화의 가장 강력한 변수가 되는 인구 변화를 먼저 겪고 있는 일본은 어떤 모습일까, 단순한 호기심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삽시간에 둑이 무너져 물바다가 되는 것처럼 어느 순간 사회 변환이 극치에 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막연한 두려움도 독서에의 의지를 거들었다. 


조바심을 수용하면서도 꼼꼼하게 손가르치는 것처럼 사려 깊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무래도 목차의 구성이 아닐까 싶다. 단순히 초고령 사회의 풍경을 열거하면서 제시하는 대신 초고령 사회의 신풍경, 유쾌한 시니어의 등장, 간병의 품격, 시니어 비즈니스의 막오름 등으로 구성되어 체계적인 훑어보기가 가능하다고 할까. 


가장 뚜렷한 장면은 아무래도 노인의 개념에 액티브 시니어가 추가된 부분이다. 평균 연령 62세의 대학 개설, 폐교 위에 세워진 어른들의 학교, 스마트 시니어 네트워크, 시니어들이 즐길 수 있는 고급 카페, 매장, 여행 등 앙트러 살롱 문화, 웰 다잉을 추구하는 종활 문화 등은 초고령 사회의 어두운 면만 강조하는 우리의 시선이 일부 수정되어야 함을 암시한다. 


일본 사회의 문제나 특유의 문화 등이 초고령사회와 맞닿으면서 나타나는 새로운 현상도 소개하는데, 치매 머니의 보호, 중장년 히키코모리의 부모 사후 플랜, 유산의 기부, 정년제 및 연금 문제는 우리도 깊이 고민해야 할 문제.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은 노인의 신체적, 정신적 특성에 기인하여 사회를 재편하고 있다는 점이다. 슬로 계산대라든지, 반려견의 고령화 대비, 주문형 교통의 등장 등은 흥미롭다. 간병 문화에서는 입주자 모두 자신의 힘으로 배변이나 배뇨 활동을 하도록 신체적 강건함 유지에 주안점을 두어 기저귀 없는 요양원을 지향한다거나, 비데형 기저귀를 적용하여 배설 케어의 진화를 도모하는 부분은 놀라움을 넘어설 정도다. 수동적인 보건의료 중심의 케어가 아니라 한 마을이 나서거나 스타벅스 같은 굴지의 기업과 연계하는 등 사회 전반의 시스템 변화로 이행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해야 할 점이다. 


시니어 비즈니스로 빈집 문제, 도시락 배달 서비스, M 세대와의 동거, 디지털 헬스 벤처 사업, 시니어를 위한 편의점의 변신, 성인 기저귀 재처리 회사의 등장 등 새로운 시장의 도래 역시 흥미롭다. 


피해갈 수 없는 초고령 사회를 맞이하면서도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막막한 부분이 있는데, 사회 전체의 시스템 변화나 노인에 대한 새로운 정의, 보건의료 체제의 개선, 새로운 시장의 창출 등 후발 주자로 나선 우리에게 전략적 시사점을 준다. 


40세가 되면 모두 회사를 떠나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20년을 기본 계약 기간으로 하고 각자 사정에 따라 연장하면 된다...중략..20-40세, 41-60세, 61-75세로 20년씩 3구간으로 나우어 인생에서 두세 번 정도의 전직이 일반화되는 사회를 만들자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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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름꾼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7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재필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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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삶의 본질을 한 마디로 축약하고, 다시 그 의미를 품어 상징으로 풀어낼 수 있다면, 그런 작품을 쓸 수 있다면 어쩌면 소설가는 몽사할 수도 있지 않을까. 막된 생각은 여느 때처럼 멱차올랐다. 


책의 말미에 실린 작품 해설에서는 위대한 작가의 구상에 대해 세세히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작품을  27일만에 완료했지만, 실은 자신의 경험을 살려 3년 전부터 구상했다는 것이다. 내 시선을 끈 것은 당연히 도스토예프스키가 직접 스뜨라호프에게 이 작품의 구상에 대한 설명한 대목이었다. 


그는 이 소설이 <죽음의 집의 기록>과 대비되는 작품이 되기를 희구하면서, 일종의 지옥을 묘사하는 장치로 도박을 선택한다. 그러면서 많이 발전했지만 모든 점에서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인간, 믿음을 잃었으면서도 감히 믿음을 저버리지 못하는 인간, 권위에 항거하여 일어나면서도 권위를 두려워하는 인간을 그리겠다고 호언 장담한다. 이를 위해 주인공은 겉은 노름꾼이지만, 실상은 모험에 대한 요구가 자신을 고결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시가 천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시인을 그려낼 것이라고 담대한 계획을 전한다. 러시아와 러시아를 둘러싼 유럽의 관계, 러시아가 나아갈 길에 대한 예표와 관련된 포부도 밝히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전술한 부분에 끌릴 수 밖에 없었다. 


룰레텐부르크의 몰락한 장군 고랸스끼는 모스크바에 사는 할머니의 유산 상속만을 기다린다. 그의 목적은 프랑스인 후작 드 그리외에게 빌린 돈을 갚고 자신의 애인 블랑슈와 사랑의 결실을 맺는 것이다. 고랸스끼 장군 가의 가정교사인 알렉세이 이바노비치는 자존심 강한 청년으로 고랸스끼 장군의 양녀 뽈리나에게 끌린다. 그녀는 프랑스인  드 그리외뿐만 아니라 영국인 미스터 에이슬리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데, 그 누구도 그녀의 마음과 행동을 예상하지 못한다. 그녀를 결코 차지할 수 없으리라 생각하면서도 그녀에게로 향하는 마음을 접을 수 없기에 오히려 미워하는 마음까지 드는 알렉세이 이바노비치는 도박에서 돈을 따달라는 뽈리나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또 그녀는 그저 웃고 싶다면서 독일의 명망가인 남작 부부를 능멸하도록 그를 부추기고, 그는 어리석은 짓임을 알면서도 충동에 휩싸여 실행하면서 곧 해고의 위기에 놓인다. 


이 때 모스크바에 살고 있는 할머니가, 곧 돌아가실 것 같다는 소식을 뒤엎고 룰레텐부르크에 직접 나타나 고랸스끼 일가에 충격을 안긴다. 그녀는 알레세이 이바노비치를 마음에 들어하면서 그와 함께 도박판에 뛰어들어 순식간에 돈을 따는가 싶더니 곱다시 잃어버리고는 모스크바로 돌아간다. 


할머니의 소동과 퇴각으로 유산 상속의 꿈이 깨져버린 고랸스끼의 추락 속에서 뽈리나는 다시 알렉세이에게 도박에서 돈을 따서 가져오면 그의 사랑을 받아줄 것처럼 그를 들쑤시지만, 정작 그가 돈을 가져오자 돈을 버리고 미스터 에이슬리와 함께 떠난다. 그녀가 떠나고 알레세이는 고랸스끼와 소원해진 블랑슈와 파리를 전전하며 도박으로 모든 것을 탕진한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는 블랑슈와의 관계도 끝을 내게 되고, 그녀는 할머니의 사망 후 장군과 다시 결합한다. 


이후 알렉세이는 파리를 떠나 여러 도시를 돌면서  몇몇의 비서를 하지만, 결코 도박을 멈추지 않는다. 빚을 져 감옥에 들어간 적도 있었지만, 누군가 보석금을 내주어 풀려날 정도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미스터 에이슬리를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뽈리나가 진정으로 사랑한 사람은 알렉세이라는 말을 전해 듣게 된다. 그리고 에이슬리의 보호 아래 뽈리나가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에이슬리는 이제는 도박을 그만두라고, 돈이 필요하면 돈을 주겠다면서 지금 상태로는 얼마를 주든 다시 도박을 할 것이라면서 10 루이도어를 주고 떠나간다. 


에이슬리와 헤어진 알렉세이는 뽈리나와 에이슬리에게 새롭게 태어나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다짐하지만, 이내 주머니를 뒤지다가 1굴덴을 찾고는 다시 도박장으로 향하고,  백 70굴덴을 따고 나오면서 소설은 막을 내린다.


작가는 처음 구상의 계획대로 노름판을 세밀하게 묘사하면서 도박에 집중하는 사람들의 심리와 상황을 정확하게 그려낸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극적으로 과장되고 흥분되어 있는 군상들의 행동과 생각을 통해 삶을 도박판으로 바꾸어가면서 알게 모르게 한탕을 노리는 인간의 본질을 통렬히 드러낸다. 소설에서는 자신의 목표를 따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들이 배태하는 모든 관계, 재능, 심지어는 사랑까지도 왜곡되어 있다. 그의 단언대로 모든 것에서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인간은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는 죄수로, 그리고 이 소설에서는 노름꾼으로 그려지고 있다. 

프랑스인, 그러니까 파리 사람들의 민족적 형식은 아직 우리가 곰처럼 미련했을 때에 이미 우아한 형식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혁명이 귀족 정신을 계승했고 그래서 이제는 아주 저속한 프랑스인들까지도 매너와 태도와 표현들 그리고 생각에 아주 우아한 형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이러한 형식에 관여하는 데에는 아무런 창의력도 없고 또 정신이나 마음도 없습니다...중략..영국인들이란 대부분 모가 나고 우아하지 못합니다만, 러시아인들은 아름다움을 꽤 민감하게 구별할 줄 알고 또 그것을 갈망하지요. 하지만 영혼의 아름다움과 개성의 독창성을 구별해내기 위해서 우리 러시아 여성들은, 아가씨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독립심과 자유를 가져야 하고 또 어떠한 경우에도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합니다..중략..맞습니다! 고결한 나의 벗이여, 제가 늘어놓는 이 모든 비난들이 비록 고리타분하고 저속하고 또 통속적인 익살극 같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진실입니다.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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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위안 -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
보에티우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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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신곡>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책 표지의 소개보다 더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은 데 영향을 끼친 것은, 이병철 회장의 질문에 대한 차동엽 신부님의 답변이었다. 스치듯 지면에 짧게 인용되었지만 느낌만큼은 강렬해서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저자인 보에티우스는 귀족 가문인 아니키우스 가문에서 태어났고, 당대 유력자였던 심마쿠스의 입양자였다가 그의 딸 루스티키아나와 결혼한다. 그는 기독교 신앙을 로마의 인문학과 연계하려고 노력했던 심마쿠스의 영향을 받았고, 신학적 논의에 익숙했다. 명민한 명문가 출신답게 승승장구하여 오늘날의 대통령 비서실장 격에 해당하는 마기스테르 오피키오룸 직까지 역임했고 그의 두 아들은 10대에 집정관에 임명받을 정도로 탄탄대로를 걸었지만, 지나친 정의로움 때문에 오히려 억울한 누명을 쓰고 파비아에 유배되었다가 처형된다. 


그는 유배지에서 죽음을 앞두고 이 책을 쓰면서 형이상학적인 질문들을 통해 철학에서 신학으로 인도되는 여정을 그려내면서, 죽음의 운명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탐색한다. 이 책은 보에티우스와 철학의 여신, 운명의 여신과 참된 행복, 참된 행복과 최고선, 신의 섭리와 운명, 신의 섭리와 자유의지 등 총 5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권은 시와 산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1권은 매우 흥미롭게 시작한다. 갑작스럽게 감옥에 갇힌 보에티우스의 비참함을 시와 음악의 여신들이 달래주는데, 탄식의 말을 끊임없이 넣어주는 시의 여신을 질책면서 어느날 철학의 여신이 그에게 찾아온다. 그녀는 시의 여신들은 슬픔과 고통을 덜어주지 않고 감정을 질식시켜, 냉철한 이성을 통해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을 가로막는다고 힐난한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도 무고로 죽었지만 끝까지 철학을 붙들고 승리를 거두었다면서, 보에티우스만 억울한 죽음을 맞는 것이 아니라면서 어리광을 부릴 필요가 없다고 단언한다. 그녀는 이 세상의 바다에서 온갖 풍파를 겪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야 하며 그것이 무분별함과 어리석음에 맞서는 이성적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 같은 것이라고 규정한다. 


보에티우스는 정의를 위해 싸우면서 숙청파들의 음모와 기만을 있는 그대로 적었고 억울하게 유배왔다고 항변하지만, 철학의 여신은 인간은 그 누구도 다른 이들을 유배시킬 수 없으며 다른 사람이 아니라 그 자신 때문에 유배 생활을 계속하는 것이라며 다그친다. 그리고 만유가 무작위가 아니라 신적인 이성에 따라 운행되고 있다는 믿음을 되찾아야 하며, 그를 속이는 비탄, 슬픔, 무기력함 등이 소용돌이치는 어둠에서 벗어나도록 약을 처방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녀가 처방한 첫 번째 약은 운명의 여신이 가진 속성을 드러냄으로써, 그가 운명의 여신에 기대 거짓된 신념에 사로잡혀 있음을 깨닫게 하는 데 집중한다. 철학의 여신에 따르면, 운명의 여신은 누구에게나 온갖 선물 보따리를 풀어 혹하게 한 후 안심하고 지내면 어느 순간 등을 돌려 떠나므로 고통을 안겨주는데 이런 식의 행보가 운명의 여신의 속성인데도, 유한한 인간은 운명의 여신이 주었던 생의 조건이 마치 처음부터 자신의 것이었던 것처럼 착각한다고 일갈한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이 태어났기에 어떤 권리도 없다는 것이 자명하므로, 운명의 여신이 주는 조건과 환경의 변화에 따라 요동치는 어리석음을 직시하고, 오히려 모든 운명의 순간을 당연하게 여기며 마음의 평안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러면서 인간이 추구하는 참된 행복의 본질을 파고들기 시작한다. 물질, 권력, 명성, 육체적 쾌락 등 운명이 주는 것들이 참된 행복이라면 육체의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은 끝이 나지만, 참된 행복은 소유하는 것이나 물질, 권력, 명성에 있지 않다는 점을 차근차근 설명한다. 


그녀는, 참된 행복은 모든 선하고 좋은 것들 중에서 최고의 것이어서 그 자신 속에 모든 선하고 좋은 것들을 다 담고 있으며 완전하다는 점을 부각한다. 이에 반해 부, 권력, 명성, 육신의 쾌락 등은 채우면 채울 수록 더 갈망하게 하는 불완전한 행복, 즉 거짓된 행복임을 설명해 나간다. 불완전한 선과 대비하여 완전한 선, 즉 최고선이 존재하며, 그 존재가 바로 신이라는 데 논리적 귀결의 방점을 찍는다. 사람이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은 찬찬히 살펴보면, 결국 만족과 연결되어 있고, 만족은 그것이 선이라고 생각하는 결과에 따른 것이므로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것의 정수는 결국 선과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한편 인간이 추구하는 것들은 서로 다르고 그 추구하는 각각의 것들은 완벽한 선을 가져다 줄 수 없으므로, 최고의 선이라면 각각의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선이어야 하며  단일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도 설득해 나간다. 선을 이루는 각각의 구성 요소들이 떨어져 나가면 완전성을 잃어버리기에 하나로 존재하는 단일성이 그 속성일 수 밖에 없으며, 만물이 원하고 추구하는 것이 선이기에 만물의 목적은 선이라는 점도 유추한다. 이를 통해 만유는 선의 지배를 받는다는 점을 추리하고, 그러므로 하나의 선, 완전한 선이자 최고의 선인 신이 만유를 다스린다는 데까지 보에티우스의 인식을 견인한다. 


신의 존재를 증명한 철학의 여신은 억울한 보에티우스에게 신이 과연 정의를 베푸는 것인지 가르친다. 보에티우슨는 만유를 다스리는 선한 신이 존재하는데 악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벌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 의문을 품는데, 철학의 여신은 힘의 관점에서 그의 의문을 풀이해 나간다. 인간의 행위를 이루는 의지와 능력을 예로 들어 행복은 선이므로, 선을 추구하고 선을 얻어야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악은 선을 추구하는 본성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여 선을 얻지 못한 채 흉내만 내고 있으므로 참된 함이 없다는 점을 간파한다. 선을 추구하고 선을 얻을 수 있는 미덕을 갖는 것이 참된 힘이며, 그러므로 오히려 악은 악을 실행에 옮겨 실제로 이룰 수 있을 때 선에서 더 멀어져 더 불행해지고 비참해지는 역설에 놓여 있다는 점도 가르친다. 


또한 철학의 여신은 신의 섭리와 자유의지가 모순되지 않는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놀라운 통찰을 보여준다. 시간과 공간에 갇힌 인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평면의 도면을 걸으면서 조건적 필연성으로서 자유의지를 얼마든지 펼칠 수 있으나, 신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삼차원의 세계 밖에 있으므로 평면에 놓인 인간의 모든 행보를, 순수한 필연성의 관점에서 언제나 현재의 시점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을 설명한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영원'의 개념은 미래가 계속되는 것으로 인식되는 반면, 신에게는 영원이 언제나 '현재'로써 인식된다는 점을 들어, 낮은 차원의 우리는 더 높은 차원의 신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만들어가는 섭리를 다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을 일러준다. 


죽음을 앞둔 보에티우스는 철학적 사유를 통해 신의 존재를 확신하면서 인간이 궁극적으로 얻어야 할 참된 행복의 본질을 깨닫고 흔들림 없는 평안함으로 자신을 다잡는다. 정적에 의해 육신은 유배되었지만, 정신과 영혼은 자유로워 세기의 걸작을 집필한 그의 지성과 집념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또 지면이었지만 차동엽 신부님께 좋은 책을 추천 받은 것 같아 감사하다. 

이렇게 그것은 본질상 하나이고 동일해서 여러 부분들로 나뉠 수 없는데도,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된 생각에 의거해서 그것을 구분하고 나누어서 그 중의 한 부분을 얻으려고 애쓰지만, 그 부분이라는 것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이어서 결국에는 그 부분도 얻지도 못하고, 그 전체를 얻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 자체도 얻지 못하게 된다..중략..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부를 추구하는 사람은 권력을 얻으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고 도리어 자신이 모은 돈을 잃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않기 위해 많은 즐거움들, 심지어 자연스러운 본성적인 즐거움들조차 포기하고서 이름 없이 살고자 한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살면, 그 사람은 비록 부를 지녔다고 해도 만족을 얻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권력도 없고 즐거움도 누리지 못하며 명예도 없어서 멸시받고 명성도 없이 비천하게 살아가기 때문이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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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우지 않고 통으로 이해하는 통유럽사 1 - 그리스 시대부터 중세까지, 개정판 외우지 않고 통으로 이해하는 역사
김상훈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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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일단들을 모아 연혁을 추적하고 흥망성쇠를 기록하는 역사만큼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면서도 쉽게 충족되기 어려운 분야가 있을까, 일념은 자연스럽게 떠오르곤 했던 것 같다. 시험처럼 특정한 목표를 앞두고 익히다 보니 단편을 억지로 엮어낼 수는 있었지만, 어떤 배경을 깊이 있게 이해하거나 스스로  교훈을 맞뚫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런 맥락에서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전적으로, 저자의 '외우지 않고 통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한 두 가지 역사적 사건만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대신 각국의 역사적 사건을 바라보며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는 주장에 설득된 까닭이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설득은 옳은 것으로 판명되었는데, 저자는 개별적인 사건에 집중하기 보다는 역사적 흐름으로 이어지는 맥락 간 관계를 추적하는 데 그악스러우면서도 융통성을 발휘하여 스스로의 약속을 꼼꼼히 메웠다.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유럽사에서 늘상 헷갈렸던 부분이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과 프랑크 왕국, 신성로마제국의 탄생과 이슬람의 침략 부분 등이었는데 나름 맥락을 잡고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또 그리스와 로마의 식민지 건설의 목표가 달랐다는 점은 새롭게 알게 된 부분인데, 그리스는 늘어난 피지배층의 수용과 공물의 상납지를 확보하기 위해 해안 지역에 식민지를 만들었고, 농업의 발달로 농지를 마련하기 위해 로마는 내륙에 식민지를 건설하게 되었다는 점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게르만 민족의 이동 이후 노르만 민족의 이동에 따른 러시아의 건설과 슬라브 민족의 남하에 따른 동구권 국가의 탄생 배경 역시 흥미로웠다. 


이 책의 장점은 역사를 단순히 시간 순서에 따라 연대기적으로 나열하는 대신 공간, 민족, 정치, 종교, 경제의 다양한 배경을 사안들과 접목시켜 입체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지각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다. 가령 봉건제도의 탄생을 식민지 개척의 역사와 연결하면서 분권화가 강화될 수 밖에 없었던 까닭을 제시한다. 


또 두 권이기는 하지만 짧은 지면 탓에 모든 것을 교과서처럼 담기는 어려운 한계가 있으나, 중요한 역사적 전환의 국면에서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을지 유추할 수 있도록 친절한 이야기 형식으로 소개함으로써 의외로 많은 역사적 가르침을 상기하게 한다. 즉 경제적 축적과 평등이 사회 전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또 시대와 사회를 관통하는 명분이 정치에 있어서 얼마나 민감하게 작동하는지, 기득권층의 이합집산이 이성적인 결과를 가져올 때도 있지만 훈족의 등장처럼 도무지 상상하지 못했던 요인들이 역사의 궤를 완전히 틀어버릴 수 있다는 점에 능긍할 수 밖에 없다. 


그 밖에 민족 분쟁, 종교 전쟁, 각국의 패권 전쟁의 시초가 되는 연관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저자의 주장대로 그동안 유럽사에서 제대로 다루어지지 못한 마이너 리그 격인 역사를 간과하지 않고 다루어준 점도 두드러진다. 덕분에 로마 제국 초기에 영향을 끼친 에트루리아나, 초기 철기 문명이 시작된 오스트리아의 할슈타트 문화, 발트해로 진출하려는 러시아와 스웨덴의 대립, 강대국 사이에서 거듭된 영토 분할의 피해국이 된 폴란드 등 기존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새로운 역사적 사실에도 눈을 뜨게 되었다. 


한번의 독서로 모든 것을 흡수하는 것은 어렵지만 적어도 다각적으로 구성된 역사적 실체를 맛봄으로써 더 확장된 공부에의 의욕을 북돋우는 데 도움이 된다. 

세계사 공부의 기본은 이와 같습니다. 넓은 시야를 가지고 각국의 역사적 사건을 바라보며 연관성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 무턱대고 한두 가지 역사적 사건만 집중적으로 공부하면 세게사 흐름의 큰 틀을 놓칠 수 밖에 없습니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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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고래는 행복하다 - 인생의 샬롬을 이루어 가는 21일 묵상
류인현 지음 / 두란노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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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효율과 성과, 능률과 성취를 기반으로 삼는 치열한 세상 가운데 은혜의 복음에 붙들린 성도들이 어떻게 살고 또 살아내야 할지 21일간의 묵상을 제시함으로써 잠잠히 가르친다. 


구원, 속죄, 은혜의 복된 소식이 부, 명예, 건강, 성취 등의 기복으로 변질되면서 죄로부터의 구원에 따른 영생과 부활은 그대로 계승하면서도, 소위 세상 부귀 영화도 놓치지 않는 끈덕진 욕심을 갈라 터뜨린다. 


코로나 시기를 겪으면서 저자가 묵상한 내용을 '느리게 그리고 행복하게, 소박하게 그리고 풍요롭게, 자유롭게 그리고 용기있게'의 세 부분으로 구분하고 각각의 파트에 7가지 주제를 배치하여 총 21일동안 묵상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러한 체계 덕분에 독서의 부담감을 줄이면서도 각 내용은 알차고 단단해 밀도있게 느껴진다. 


저자는 제목을 붙일 때 '고래'를 선택한 이유로 혹등고래의 삶을 제시하는데, 그에 따르면 혹등고래는 다른 고래보다 느리지만 춤을 추고 노래를 많이 부르면서 일상을 즐기는가 하면, 바다의 수호 천사를 자처해 물개며, 다이버 등을 천적으로부터 보호해준다고 한다. 거기에 바다의 유기물을 순환시켜 플랑크톤의 광합성을 돕기도 하고 나무 1천 그루만큼 탄소를 흡수할 뿐만 아니라 죽고 나면 심해 생물에게 먹이로 제공해준다고 하니, 동물계의 예수님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이 책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시선은 세상이 추구하는, 효율 및 성과 사회가 압박하는 주된 테제인 '자기'로부터의 벗어나 '하나님'으로부터의 자세를 강조하는 것. 행복 강박, 자기 추구의 매몰은 결국 자기 연민으로 이어져 은혜의 복음이 허락하는 진정한 삶 살기를 가리우고 있다는 진단이다. 성장과 성취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선을 따르면서 다시 사랑하고 일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쉼을 잃어버리고 자족이 엷어진 까닭은 주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삶을 성찰하고 돌보는 소박함을 잊어버린 까닭이라는 주장에 공감할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존재적 가치를 되찾고 주어진 삶을 참되게 사는 방법은, 서로 사랑하면서 우정을 나누고 공감하며 감사하고 주어진 오늘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하는데, 복음 안에서 흠결 없는 참 이치가 아닐 수 없다. 


키에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을 들어 구체적인 자아, 이상적인 자아에는 집중하면서도 우리의 상황이나 성취와는 아무 상관 없는, 하나님 안에서 진실한 평안을 얻는 진정한 자아를 등한시 한다는 지적이나, 스티븐 버글라스의 <성공 신드롬>에 따른, 모든 것을 성취한 성공한 이들이 걸리는 병인 네 가지 증상, 즉 오만, 지독한 외로움, 파괴적인 모험 추구, 간음 등을 소개한 대목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모든 것을 뒤로 남겨두고 오직 성취의 목적만을 향해 나아갈 때 마주하는 결과가 얼마나 허망하고 두려운 것인지 생각하면, 복음과 함께 일상의 행복을 누리고 소박하고 느리면서도 함께 어우러지는 참된 삶으로 진척하지 못하는 행보를 회개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열심히 노력했지만 열매를 맺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아는 것, 내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이 해결해 주신다는 믿음으로 기다리는 것이 오래 참음이다. 기다리다 보면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 그러나 주를 바라보고 믿는 사람은 강하고 굳은 마음으로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주 앞에서 오래 참을 수 있다. 아무리 억울한 일, 어려운 일을 당해도 믿음을 지키고 주 앞에서 오래 참으면 복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안심할 수 있다. 결말을 알면 인생은 쉽다.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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