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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을 위한 서양 철학 이야기 - 신앙과 이성의 만남
크레이그 바르톨로뮤.마이클 고힌 지음, 신국원 옮김 / IVP / 2019년 11월
평점 :
그리스도인에게 왜 철학이 필요한가, 정면으로 묻는 일은, 어쩌면 그리 놀랄만한 질문이 아닐 수도 있다. 순수하게 신앙을 고백하고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마음이 중요한데, 철학과 같은 개별적인 초등(?)학문이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는 극단적인 의견이 주류처럼 느껴지는 요즘에는 더더욱.
그러나 저자들이 문제의식을 가진 것처럼,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선교적 관점으로 세상을 살아나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기독교 철학과 신학의 기초 아래 다양한 학문적 발전과 진보를 경주할 책무가 있는데, 이런 지적 풍토를 만들어가자는 취지에서 본다면,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목표에 충실하기 위해 진지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저자들은 알 월터스를 인용하여 철학과 세계관의 관계 모델을 배격, 병립, 완성, 만들어냄, 동일로 설명하면서 세계관의 토대 위에서 철학이 만들어지고 발전한다는 관점을 차용한다. 즉 기독교 세계관을 기초로 다양한 학문을 분석하고 발전시키는 방편이 필요한데, 오히려 철학 분야를 보자면 일반 철학을 통해 기독교 세계관 자체가 흔들리는 모순을 들춰내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저자들은 시대별로 특정 철학이 가지고 있는 내재적 모순을 살펴보고, 철학자의 작업을 복음의 맥락 속에서 살펴보는 데 집중한다.
저자들이 서문에서 소개한 대로 전체 철학의 얼개를 그려나가기 위해 첫째, 고대 그리스 시대의 철학의 기원을 살펴보고, 이후 그리스도 사건과 철학의 의의, 초기 기독교 설립 이후 복음과 그리스 철학의 종합, 후기 중세 이후의 철학과 복음의 해체, 계몽주의에서 시작된 근대적, 자율적, 인본주의적 철학의 출현을 살펴본다. 이후 현재 기독교 철학의 발전과 현황, 주요 쟁점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다만 아쉬운 점은 방향성과 전개방식의 탁월함에도 불구하고 계몽주의부터 출현한 철학 사상 분야에 대한 분석이 취약하지 않나 싶다. 다양한 철학자가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지면의 한계 때문에 각각의 철학 사상을 아주 짧게 묘사한 데다 저자들의 분석이 아니라 다른 학자들의 비평을 각주처럼 설명해 덧붙이는 기술 방식 때문에, 각 철학이 가지고 있는 내재적 모순을 드러내는 데 한계가 있다. 번역본이라는 한계도 저자들의 분명한 주장을 파악하는 데 일부 어려움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가치는 마지막 3부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기초 지식이 부족해서 기독교 철학자들의 사상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만, 무엇보다 도이어베르트의 양상 계층구조는 다차원적이고 통합적인 기독교적 사고가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 분명하게 제시함으로써, 세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세상엔는 15가지 양상 측면 또는 존재 방식이 있고, 모든 구체적 사물은 15가지의 양상 측면 또는 존재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모든 구체적인 사물은 크게 인간, 동물, 식물, 사물로 구분할 수 있고, 15가지 양상은 신앙적, 윤리적, 정치적/법률적, 심미적, 경제적, 사회적, 언어적, 역사적/형성적, 분석적/이성적, 감각적/감정적, 생물적/생, 물리적/에너지와 물질, 움직임, 공간적, 수적 양상이 포함된다.
다시 각 양 상은 의미와 핵의 관계로 재정의할 수 있는데, 신앙적-신앙, 윤리적-사랑, 정치적/법적-응보, 심미적-조화, 경제적-절약, 사회적-사회적 교섭, 언어적-상징적 의미, 역사적-형성력, 분석적-구분, 감각적-느낌, 생물적-생기, 물리적-에너지, 운동적-운동, 공간적-지속적 운동, 수적-양으로 구분된다.
도이어베르트는 개체성 구조라는 개념을 도입해 다양한 실재가 양상 측면들 속에서 어떻게 기능하는지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질서를 이해하게 된다고 본다. 바위는 물리적 실재로 작동하고, 나무는 생물적 실재로, 말은 감각적 실재로 존재하는 게 그 예이다. 그런데, 그는 여기서 멈추는 대신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실재를 15가지 양상 모두에서 가능하도록 세상을 만들었다는 데 착안한다. 즉 나비를 심미적이고 영적인 차원까지 인식하는 것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실제이며, 이를 통해 모든 실재가 연결되어 하나가 되는 것은 진짜라는 것이다.
단순히 개체성 구조에 맞추어 다양한 실재가 놓이도록 하는 것을 넘어서서, 우리의 인간됨으로 응답함으로써 세상의 모든 실재가 15가지 양상으로 기능하도록 실제화하는 그것, 하나님의 창조의 본래 모습으로 돌이키도록 인식하고 행동하는 것, 거기에 기독교 세계관과 철학함의 목적이 있다는 인식은 좀처럼 듣고 보지 못했던 사상.
3부를 읽으면서 기독교 철학자들의 다양한 사상을 좀더 구체적으로 더 알아보고 싶다는 욕심은 독서 후 얻게 된 뜻밖의 선물이다.
이는 그리스도인은 비기독교 철학자를 접하지 않아야 하며 그들로부터 배울 것이 하나도 없음을 의미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지적했듯,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이며, 그리스도인은 진리가 어디서 발견되건 그 진리를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 가장 세속적인 철학자들에게서 나온다 하더라도 말이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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