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사 (양장)
에른스트 H. 곰브리치 지음, 백승길.이종숭 옮김 / 예경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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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하기보다 더 어려운 게 있다면, 아마 미술보기가 아닐까 싶다.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지만, 미술은 뭔가 독특하고 구별된 이들의 전유물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분명 있는데, 아마도 작품과 작가를 외우고, 심지어는 감상하는 방식마저 암기의 편린으로 가르친 학교 교과교육의 폐해도 큰 몫을 차지할 것 같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시대별로 작품을 구분하고, 작가와 작품의 특징을 모조리 명렬화 해서 근사한 도표처럼 만드는 대신 시대별 미술의 효용성, 미술의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 특정 미술이 나타나게 된 시대적 배경과 문화를 중심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문장들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끝이 날 것 같지 않는 저자의 유려한 배경 지식을 늘어놓거나 사족을 붙여 스스로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를 것 같은 잡다한 이야기를 과감하게 배제한 놀라운 절제미가 책 전반에 드리워져 있다.

 

그러므로 책을 읽고 나면 미술에 대한 배경 지식이 특별히 늘었다는 지적 허영심에 사로잡히거나 실제로는 전혀 느낀 바가 없는데 저자의 설득에 못이겨 무슨 큰 감상평이라도 얻은 듯 우쭐함에 사로잡히지 않게 된다. 대신 어떤 건축물이나 회화, 조각을 보게 된다면 앞으로 이런 점을 찾아 볼 수 있겠구나, 관점의 지평이 늘어난 것처럼 느껴진다. 또 미술을 보면서, 왜 철학이 가능하며 미학이 발전할 수 있었을지 유추도 가능해지면서 관련된 더 많은 책들, 미술을 넘어서는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해보고 싶다는 자연스러운 욕망이 생긴다. 저자가 미술을 살펴보는 방식을 훑다보면 미술 뿐만 아니라 하나의 사유가 여러 영역과 연결되고 융합되면서 자연스럽게 어떤 통렬한 핵심 가치를 발견하는지 그 방법을 읽는 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 

 

그만큼 겸손하고 성실하게, 유명한 작품부터 눈여겨보지 않던 미술의 세세한 분야까지 다채로운 설명을 덧붙여 들려준다.

 

가장 관심 있는 게 본 것은 이집트 미술과 인상파 미술의 등장 부분이었다. 이집트 회화는 우연한 각도에서  물리적으로 보이는 대로 그리는 대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인체를 그렸다는 데서 큰 영감을 준다. 이후 시대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회화가 발전하기는 하지만, 거꾸로, 보겠다는 의도를 통해 물리적인 시야를 극복하는 방식도 있다는 데 의미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사진의 등장과 함께, 본다는 것은 다시 무엇인가를 돌아보게 한 인상파의 등장도 흥미롭다. 이번에 다시금 눈여겨 본 작가는 세잔인데, 자신의 인상에 따라 본 대로 그리는 것과 더불어 완전한 균형과 견고한 단순성을 목표로 빛을 받으면서도 명확한 대상의 본질을 그림으로 그려낸 그의 예술혼에 대한 묘사는 재미있는 소설을 읽어내려가 듯 흥분될 정도였다. 책을 읽으면서 동시에 다른 주석을 찾아 보면서 세잔이 현상학의 등장과 연계된 부분을 찾고 나서는 더 신났던 것 같다.

 

저자의 탁월함은 작품의 설명을 위해 선명한 도록을 함께 실은 것도 한 몫 하는데, 다른 곳에서 많이 접하지 못했던 작품들도 대거 수록되어 있고 그 작품에서 드러나는 특유의 기법이나 미술적 진보 등을 함께 소개해주어 독자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단순히 미술을 감상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과 세계에 대한 관점의 지평과 사유를 확장하도록 하는 데 좋은 자극이 되는 책이다.

미술가가 얻으려고 하는 효과가 무엇인지를 미리 예견해서 알아낼 수는 없기 때문에, 이러한 종류의 규칙을 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중략..그림을 많이 보면 볼수록 이전에는 발견할 수 없었던 장점을 보게 된다. 우리는 각 시대의 미술가들이 이룩하려고 고심해온 그런 종류의 조화에 대한 감각을 발전시키기 시작한다. 이러한 조화에 대한 우리의 느낌이 풍부해질수록 그만큼 더 그런 그림들을 감상하는 것을 즐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것이 제일 중요한 점이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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