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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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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강인호가 무진의 새벽 안개를 거슬러 아내와 함께 떠난 것을 확인했을 때, 나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리고 소설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강인호를 그렇게 떠나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성숙'해졌기 때문이라는 답변을 읽고, 더욱 마음이 놓였다. 언제부턴가 나는 강인호는 꼭 떠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겼었다.

 그저 눈에 보이기에 함께 할 수 밖에 없었던 그가, 정말 끝까지 남아서 싸웠다면, 돌아서지 않고 함께 했다면, 아마, 나는 숱한 정점에서 돌아서고자 했던, 그 발길들을 용서하지 못했을 것이다..누구나 가슴을 부여잡고 자부심 하나로 버틸 수 있는 서유진이 아니고, 기득권을 향해 몸살라 나아갈 수 있는 최요한 목사가 아니니까..


정의를 위해 싸우려던 투사도 아니었고, 먹고 살아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찾은 무진. 더구나 서른 넷, 가장이 되어버린 강인호는 늙은 강인호와 젊은 강인호가 치열하게 맞부딪히는 전형적인 이 시대의 사회인이다. 그런 그에게  사고처럼 놓여져버린 성폭력 사건. 그저 여린  제자들이 불쌍해서 나서게 되었고, 얼결에 앞장서게 되었으며, 그리고 포화의 중앙에 서 버렸다. 그런 그에게, 도망침, 말고 무엇을 짊어지게 할 수 있단 말인가..손 놓고 앉아 있는 내가 무슨 권리로.

 
세상이 자신을 바꾸지 못하도록 싸우고 있다는 서유진과 그를 돕는 최요한 목사. 그들을 닮기엔, 용기가 부족하고, 삶의 의미는 쉽게 잡히지 않는다.


대신 교회를 쩌렁쩌렁 울리는 담임 목사의 선동과 한 순간에 주님의 어린양으로 탈바꿈하는 성폭행범 교장과 행정실장..그들의 편에 서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쉽다. 그들 곁에 서면 모든 맥락은 부드럽고 세련되게 정리되며,  모세혈관보다 더 섬세한 연맥들이 안온감까지 선사한다....

 
안개 밖으로 사라진 강인호와 안개 속에 남겨진 서유진. 서른 넷 강인호와 서른 다섯 즈음 서유진. 두 가장은 전혀 다른 길을 택했다..아내가 있고, 딸이 있는 강인호는 탈출했으며, 남편이 없고, 심장 약한 딸이 있는 서유진은 남았다.. 

결국, 선택하는 것..서유진에게 시선을 두고, 강인호의 몸짓으로달려가는 서른 넷..강인호의 떠남이 오히려  위로가 된다.그래, 이것이 성숙일테다. 강인호가 되든, 서유진이 되든, 안개 속에서 때로는 바둥거려도, 그렇게 다르게 살 수도 있음을 긍정할 수 있는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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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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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춤없이 달리고 싶은 욕망은 어쩌면 모든 사람들의 본능일런지 모른다. 불행하게도 본능에 충실하게 반응하며 사는 이들은 적지만.. 

 <상실의 시대>를 읽고, 뱉어내야할 것을 뱉어내지  못하는 젊음이 안타까웠던 시절이 있었다.
일상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끝끝내 이어나가는 묘사를 읽어나가면서, 일본 작가의 무신경-그것이 의도되었든 그렇지 않든-에 질식될 것만 같아 책을 내던지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기도 했었다. 

 그 즈음 국내에서 발표된 문집들을 읽으면서 예정이라도 되었던 것처럼 무기력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엇비스한 문체, 스토리 전개..소설에서 이야기는 사라졌고, 모두가 하루키처럼 발음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루키의 그늘에 안착한 것만 같은 소설을 읽는 것이 지겨워졌다. 하루키는 새롭게 말하는 방식을 찾아냈고, 선포했으며, 규정했다. 

 근 6년만인 것 같다. 책을 읽게 된 것은 순전히 호기심때문이었다. 소설가의 소설이 아니라, 삶을 엿보는 일은 흔치 않은 기회이므로.


100KM 달리기를 하면서, 몸이 먼저 나가고 의식이 뒤따랐다는 대목에서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몸을 아끼느라 의식을 앞세우고 있는 내 일상의 공회전을 들킨 것 같은 기분은 내내 계속되었다. 
 

소설의 재능을 일생을 통해 고르고 지속적으로 펼쳐보이고 싶은 욕망. 그 악착스런 소망을 위하여, 하루키는 모든 것을 참고, 달리고 또 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달리기의 초점은 소설쓰기에 조준되어 있었다. 반복되고, 축적되는 행동의 습관은, 때때로 허무와 우울로 굴절되는 의식을 되잡아 통제한다. 삶의 이유를 묻는 질의에 깊은 위안과 미덕의 답변이 되기도 하고. 되풀이되는 행동은 흐트러지는 의식을 기가막히게 진정시킨다. 

하루키는 달리면서도 소설을 생각한다. 소설을 쓰면서도 달리기를 고민했다. 삶의 균형감각을 위하여, 의식의 대척점에 달리기란 행동을  배치하여, 영리하게도 비척거림을 방지하고 있다. 그리고, 달리는 까닭을 반복적으로 각인하면서 소설가의 모범적인 궤도를 이탈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하루키가 묻는다..너는 무엇을 둘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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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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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젼을 그만 두고, 이제는 인도적 지원에 관한 석사과정을 공부하기 위해 또 떠난다고 한다. 그녀는. 

끊임없는 독서와 멈춤없는 일기,  간편하고 단순하게 디자인하는 삶, 그리고 그 덮개를 드리우는 생에 대한 세세하고 풍부한 사랑.그녀의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일상과 주변 과 재난현장의 어려운 사람들을 잇는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힘을 북돋고, 격려하고, 다시 일어서는 동력을, '사랑'이라고 당당히 정의하는 그 자신감이
부럽다. 
 

축 쳐지고, 답답해질 때, 주위를 둘러보게 하고 삶이 얼마나 아름다고 숭고한 것인지 다시 돌아보게하는 활자들. 벌써부터 그녀가 또 어떤 열매를 가지고 돌아올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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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 - 당신의 미래는 오늘 무엇을 공부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시형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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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미래는 오늘 무엇을 공부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순전히 이 문구가 주는 마케팅에 넘어간 셈이다. 다행히 불을 붙이는 데는 아주 그만인 책. 

효율적인 공부의 요령, 잠과 휴식의 비밀, 뇌 호르몬의 다양한 역할..이 모든 내용보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단연 이시형 박사님의 담백한 고백. 일주일에 4-5권의 책을 사서 읽고, 지난 20년간 1000여권의 책은 족히 읽었다는 지독한 노력파. 공부가 이쯤되면 이제 제일  좋은 휴식이라는 말씀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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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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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학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그것들을 잘 모른다는 데서 시작된 묘한 열등감은 어느 순간부터인지, 거의 동시에 침습하기 시작했었다. 큰 대지를 가로지르는 질주를 통찰하지 못하고, 작은 땅뙈기만 열심히 파대고 있는 것 같았던 나날들..마음은 허했고, 가슴은 뜨거웠으나 식힐 수 있는 방안도 내게는 따로 없었다. 그리하여 시작된 체증은 오랫동안 나를 괴롭혀왔다.좋은 책이 그렇듯이,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친절하고도 부드럽게 체증의 점도를 묽힌다. 

 많은 정보와 지식을 수렴한 이들의 용기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신자유주의를 외치면 기득권은 더 보호될 수 있고, 철옹성은 그 누구도 무너뜨리지 못한다. 독점하고 독주하며 독식할 수 있는 그  신나는 유혹을 벗겨낼 수 있는, 지식인의 용기는 그러므로 장엄하게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세계가 결코 편평해질 수 없다고 외치는 소리는, 아이러니하게도, 무엇이든 신자유주의의 올가미만 씌우면 바로 목소리를 잃을 수 밖에 없었던 날들의 기억을 되살린다. 

  신자유주의의 회오리가 예상보다 너무 커지면서, 그것을 차단하려는 작은 시도조차 감히 시작할
수 없을만큼 한 때 전선은 얼어붙어버렸고, 오그라들었다는 사실, 교수님은  알고 있을까.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기 위한 공정한 룰을 찾아 보자는 제안, 가슴 떨리도록 아름다운 주장이다.
다만 눈 똑바로 뜨고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은, 그 "주의"에 대한 지나친 경계가 공포로 변하는 순간, 진짜 현실에서 대응할 어떤 논리도 힘도 축적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그 룰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이 살아 움직일 수 있도록 약자들의 연대의식을 어떻게 불러일으킬 것인지 진중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또, 신자유주의의 물결로 점령된 파고 속에서는, 뚫고 나아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중간 단계들조차도 얼핏 보면 신자유주의적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숱하게 연출될 텐데, 그것을 어떻게 구별하고,  극복해나갈 것인지, 그런 구체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것도 중요한 과정이리라 생각해본다. 안타깝고, 불행하게도 일상을 점령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과민반응이 쉽사리 끝날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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