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배우고 기억하는가 - 하버드 최고의 뇌과학 강의
제레드 쿠니 호바스 지음, 김나연 옮김 / 토네이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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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통해 내용을 한 마디로 압축하여 표현하기란 쉽지 않은 역량인데, 저자는 꼼수 부리지 않고 정직하게 제목으로도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분명하게 그 의도를 드러낸다.

 

정보의 범람 속에서 수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다시 필요한 부분을 재생하고 출력해야하는 일상의 학습이 많아진 요즘,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정보를 처리하고 가치 있게 재가공할 수 있을 것인지, 그 질문에 대한 뇌과학의 답변 격이다.

 

이 책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목차와, 각 장마다 배치된 한눈 요약 부분이 아닐까 싶다. 뇌과학을 통해 밝혀진 학습의 기전, 근거 등을 서술하는 정보가 많다보니, 사실 책을 덮고 나면 오히려 저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상당 부분 휘발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목차는 각 장의 제목과 더불어 세부 목차를 꿈꼼하게 배열하고 있다. 또 각 장의 내용을 다시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한눈 요약이라는 부분으로 제시하고 있어 언제든지 필요한 부분을 다시 찾아 읽을 수 있도록 편의성을 제공한다.

 

눈 여겨 읽게 된 대목은 시각과 청각의 결합을 통해 인지하는 원리를 담은 2장이었던 것 같다. 시각과 청각이 따로 제시되는 것보다 시각과 청각의 공감각이 결합될 때 더 효과적으로 인지하고 학습할 수 있다는 결론은 쉽게 예측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거꾸로 시각과 청각적 자료가 동시에 제공되는 현재의 수많은 영상 정보의 유익과 폐해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기도 했다. 수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처리하는 효율성은 극대화할 수 있는 대신 인지가 곧바로 사고력과 연결될 수 없다는 사실은 큰 시사점을 제공하기도 한다.

 

저자의 솔직함은 멀티태스킹의 환상을 분명하게 지적한 대목이다.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일을 처리하고 싶은 인간의 욕심에 쐐기를 박는다. 멀티태스킹이 아니고 작업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뿐이며 일정 부분의 높은 성취를 위해서는 상당한 학습이 전제되어야한다는 사실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느낌과 감정의 변화에 대한 사례를 제시하면서 현상 자체가 아니라 해석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경각심을 일깨우는 부분이기도 하다. 단, 현상 자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방식에 대한 기술이 미흡한 점은 아쉽기도 하다. 어쩌면 이 부분은 생리학적 관점에서 뇌를 연구하는 뇌과학의 한계를 넘어서는 독자의 무모한 욕심인지도 모르겠다.

 

전반적으로 밀도 있는 서술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은 뇌의 각 영역과 기능에 대한 총론 격의 설명과 안내 없이, 곧장 흥미로운 주제를 설정하고 뇌과학의 연구 결과나 사례를  제시하다보니, 전반적으로 구슬은 잘 만들어져 있으나 전체적으로 꿰어지지 않은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맥락이나 이야기로 엮어지는 강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 같다. '학습'이라는 주제로 내용을 한정했으므로 당연한 한계일수는 있지만, 저자의 이력과 역량을 살펴보건대 훨씬 더 쉽게 내용을 각인할 수 있는 뇌과학 서적을 찾는 독자에게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마음 속에 서로 단절되어 존재하는 사실들은 서로 연결되지 않은 웹사이트 페이지와도 같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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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 정치인류학 논고
피에르 클라스트르 지음, 홍성흡 옮김 / 이학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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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기쁨은 앎의 즐거움으로 연결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정진을 위한 배신과도 맞닿게 된다. 인류의 역사란 문명을 건설하고 국가를 조직하며 사회의 위계가 세워지는 일보의 전진이었다는 학습 효과는 너무 단단해서 깨질 수 없는 일종의 철옹성 같은 개념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인류의 보편적인 역사의 여정은 정해진 수순을 따르게 되어 있고, 그 틀 안에서 조금이라도 더 진일보한 제도와 사상을 만들어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일종의 관념은 좀처럼 빈틈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가정었다. 그런데, 저자는 다양한 인디언족 문화와 풍속을 연구하면서 흔들림 없는 허상의 중심에 치명적인 균열을 가져왔다.

 

그의 질문은 국가 사회와 권력이 없는 사회에서 정치적 사회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단절, 불연속, 급격한 도약을 발견할 수 없는 데, 이러한 상황에서 다양한 사회를 일종의 틀로 분류하는 것은 오히려 명령-복종이라는 권력이 전형적인 사회의 현상인가에 대해 질문을 품지 못하게 된다는 문제의식으로 시작한다.

 

앞 장은 상당 부분 그간의 연구가 보여준 독단에 따른 편견, 통계의 오류 등을 짚어내는 데 할애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가진, 권력이 있는 국가 사회가 역사의 진보에 따른 결과라는 확고한 가정은 인디인들이 가진 다양한 문화와 사회의 특징을 왜곡한다는 점을 드러낸다.

 

클라스트르는 중간 정도부터 본격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게 되는데, 송두리째 기존의 지식을 뿌리뽑는 삽화들 때문에 책을 내려놓을 수 없을 정도로 조바심이 날 지경이 된다. 그에 따르면 인디언 사회는 한 마디로  치열하게 권력에 대항하고 지배를 배척하는 사회다.

 

그가 발굴한 여러 삽화들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특징들로 가득하다. 가령 사냥의 결과물은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냥꾼의 식용품이 된다. 즉, 최선을 다해 사냥을 하지만 다른 이들의 결과로 종속되고, 다른 이들의 노력이 나의 결과로 주어지도록 사회가 설계되어 있다. 내가 최선을 다하는 만큼 상대도 최선을 다해 사냥하리라는 믿음의 기초 안에서 소유를 교차시키고 있는 것.

 

말과 권력에 대한 삽화도 인상깊다. 인디언족의 추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권력자라기보다는 조정자, 화해자의 역할을 감당하며 추장의 말은 명령과 지배의 의미가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어야 하는 의무의 언어라고 소개한다.

 

과라니족의 사상은 흡사 성경책을 읽는 것처럼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어 놀라기도 했다. '모든 사물은 전체 속에서 하나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을 원치 않았던 우리에게 모든 사물은 악이다' 이러한 주장은, 세상은 불완전한데 이 뿌리가 모든 사물이 전체 속에서 하나라는 사실로부터 온다고 믿는다.

 

사람이 사람일뿐인 동일성의 원리가 엄격하게 적용되는 장인 이 세계에서는 만물에 한계를 짓고, 유한성과 불완전성을 인정하게 된다는 것. 그들이 생각하는 완전성은 인간은 신이면서 동시에 인간일 수 있는 하나이면서 동시에 다른 어떤 것일 수 있고 동시에 둘다 실로 완전한 존재가 되는 것이라는 의미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그들은 불완전한 세상을 벗어나 이상향의 세계를 향해 늘 떠난다. 그들의 시선으로 보면 우리는 만물-심지어는 인간도-을 하나의 존재로 고정시키고, 머물러 있도록 종용하므로 불완전한 세계에 적극적으로 합일하고 불행의 대지에 그대로 남아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성년식 문화는 경계 존중과 자유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온 몸에 나뭇가지 등을 꽂고 손을 대지 않고 저절로 빠지면 마침내 성년으로 인정하는데, 그 때는 그 누구도 지배할 수 없고, 그 누구에게도 지배 당하지 않는 온전한 경계, 권력이 침투되지 않는 그 자유를 인정해준다. 그러므로 일부 전투에서는 그 자유를 온전히 지켜주느라 몇 몇만 참여하기도 한다. 이겨야만 하는 결과를 앞에 두고도 결코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 개인의 자유라는 무게의 엄중함. 어리석은 처사라고 쉽게 비웃을 수 있을까.

 

먹을 만큼만 사냥하고, 나머지 시간은 온전히 자신의 삶을 누리는 그들에게 진보를 위한 도약을 일으키지 못한 미개한 족속이라는 타이틀이 과연 옳을까. 그들은 권력이 찬탈하는 자유의 침탈, 국가가 종용하는 개인의 몰락, 부가 불러오는 인간의 소외를 꿰뚫어보고, 온 힘을 다하여 국가와 권력에 대항해왔다는 것이 클라스트르의 결론이다.

 

권력의 본성을 꿰뚫어 힘껏 저항하고 인간의 진정한 자유를 실현해온 인디언족들의 삶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오래된 미래가 아닐까.

역사를 가진 사람들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적어도 그것돠 똑같은 정도의 진리로서 역사 없는 사람들의 역사는 국가에 대항하여 싸우는 투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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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세계문학 42
프란츠 카프카 지음, 권혁준 옮김 / 창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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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좋아하며 갈망하는 것 중에서 자유만큼 매력적인 개념이 또 있을까. 어떤 지배도 없고 복종도 없는, 그러므로 나의 나됨이 온전이 실현되는 그 시공간을 위해서 내달렸는데 돌아보니 자꾸만 제 자리에 서 있고 출구는 없으며 다가갈 수록 온전히 멀어지는 그 벽 앞에 끝없이 절망할 수 밖에 없다면.

 

권력은 너무 세밀해서 파악할 수가 없고 지배는 밀착되어 도무지 분리해 낼 수 없는 좌표, 관료주의가 지배하는 공권력이 삶으로 침습한다는 것의 의미, 한 눈에 포착되지 않으니 보여줄 수 없고 손아귀에 잡히지 않으니 실체를 설명할 수 없는 그 살갗을 영민하게 뜯어내고 속살을 파고드는 투지는 카프카가 아니었으면 도무지 시작조차 못했을 것 같다.

 

카프카는 법학 전공자답게 법의 지배가 구체화되어 현실로 투영되는 관료주의의 특성과 폐해를, 이야기를 빌어 날카롭게 제시한다.

 

주인공 K는 백작의 토지 측량 기사로 명을 받아 성을 향해 출발하지만 뜻하지 않은 난관에 봉착한다. 여관에 들렀다가 자신이 성이 고용하여 토지 측량 기사로 임명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성에서 확인되는 자신의 임명 사실은 오히려 또렷하지 않다. 여관에 모인 농부들, 주인, 마을 사람들로부터 배척된 K는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길을 나서고, 여정 도중 자신에게 명령을 내리는 클람의 애인이었다는 프리다와 사랑에 빠진다.

 

또 자신의 원래 조수들 대신 예레미아스와 아르투르가 조수로 고용된다. K는 자신의 임용 사실을 증명하기 위하여 면장을 찾아가지만, 산더미 같은 서류 속에서 목적을 성취하기란 난망하다는 점만 확인하게 된다. 다만, 면장은 K가 프리다와 조수들을 거느리고 살 수 있도록 학교의 직원 자리를 추천한다.

 

교사들의 명령을 순순히 따르지 못한 K는 조수들까지 해고하면서 학교 밖으로 나오고 자신에게 클람의 명령을 전달해준 바르나바스 가족과 함께 머물게 된다. K는 바르나바스 가족 역시 성으로부터 미움을 받아 마을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있는 상황을 알게 된다.

 

K는 클람의 비서가 자신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면서 다시 프리다를 만나고, 수많은 서류가 배달되는 방에 갇힌 성의 관리의 비서들도 만나게 된다.

 

소설의 줄거리는 꽤 단순하다. 카프카의 사망으로 소설은 중간에 맥락없이 끝맺지만, 완성했다 하더라도 큰 줄거리가 별로 달라 질리 만무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한마디로 K라는 인물이 성의 임용을 받아 성을 향해 나아가지만, 그 여정에서 임용 사실을 인정받지 못하므로, 자신의 임용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투쟁하는 일종의 여행기다. 줄거리의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소설 내내 묵직한 여운이 남는 이유는 성의 인증이 없는 한, 실체로 존재하는 데도 불구하고 K가 전혀 존재하는 인간으로써 받아들여지 못하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까닭일테다.

 

더 두려운 것은 성의 권력에 의지하여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려는 K가 자신도 모르게 조수에게 명령하고 자신의 의지를 투사하는 권력자로 변해가는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묘사되어 있다는 것.

 

성이라는 권력, 그 권력의 인증을 갈구하면서, 때로는 대항도 마다하지 않으며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려는 K와 어떻게든 성의 호혜를 벗어나지 않으려 몸부림치며 성의 그늘 밖으로 누군가 몰려나도 관심 없는 마을 사람들, 프리다에게 호감을 느끼고 K를 고소하는 조수, 수없이 날아드는 서류에 압도당한 관리의 비서들, 서류 뭉치에 둘러 쌓여 진실을 제대로 끄집어내지 못하는 면장.

 

현대 사회의 관료주의가 잉태하는 인간 군상들은 권력과 지배의 이면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관료주의의 속살처럼 끈적이게 들러붙는 문장들, 시간과 공간이 비약되어 단순한 이야기가 되었다가 질펀한 연결고리가 되는 서사들. 소설은 주제의식만큼 형식면에서도 독특하다.

그건 아직 분명하지 않아요. 먼저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물어봐야 하거든요. 이를테면 성 밑의 이곳 마을에서 일하게 된다몀 여기서 묵는 편이 현명하겠지요. 게다가 저 위 성 안의 생활이 내 성미에 안 맞을까봐 염려되니까요. 나는 언제나 자유롭고 싶어요.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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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발견 - 예일대 감성 지능 센터장 마크 브래킷 교수의 감정 수업
마크 브래킷 지음, 임지연 옮김 / 북라이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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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왕따의 경험,  자녀를 사랑했지만, 감정을 제대로 다루도록 교육하지 못하신 부모님, 다행히도 감정을 표현하고 이해하도록 도와준 삼촌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되는 서두는, 예일대 교수의 화려한 이력에 저서 한권을 추가하는 무미건조한 목적으로 쓰여진 책이 아님을 확신하게 한다.

 

자신의 쓰린 경험으로부터 출발하는 저자의 주장은, 그러므로 현실적이면서도 실천가능성을 높이는 효과성에 대한 기대도 한껏 높인다.

 

저자는 우리 삶의 많은 문제, 성공과 실패가 감정과 연결되어 있지만, 감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제대로 이해하며 대응하는 데 미흡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특히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감정을 상황과 맥락에 맞게 다루는 법을 익히고 실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역량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그리고 교육과정에서 제대로 다루어지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깝게 여긴다.

 

감정은 일종의 정보이며, 학습능력, 관계, 의사결정, 건강, 창의성 등 수많은 부분과 연계되어 있으며 감성지능이라고 불리울 정도록 인간의 역량을 표현하는 중요한 능력이라고 단언한다. 특히 감성 능력은 감정을 정확히 인지하고 표현하며 감정과 관련된 지식을 이해하는 한편 정서적이고 지적인 성장을 촉진하는 감성 지능, 장기적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끈기와 열정인 그릿, 회복탄력성을 넘어서서 지혜롭고 창의적인 사고를 이끌어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도 더 좋은 결과를 얻도록 하는 능력이라고 주장하면서 결코 감상적인 측면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감성능력은 누구나 습득해서 적용해야할 능력으로 과학적인 방법으로 접근하고 사고하여 응용할 수 있어야 하기에 우리 모두는 감정과학자처럼 그 과정을 배울 수 있다는 데 상당한 지면을 할애한다.

 

눈에 띄는 것은 단연 무드미터였다. 쾌적함 정도를 나타내는 가로축과 활력 정도를 나타내는 세로축을 기준으로,  4분면 각각에 쾌적함과 활력 정도에 따라 감정을 시각화한 것으로 인간의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감정을 그래프로 나타낸다. 무드미터를 명확하게 이해하여 실시간으로 자신의 감정 상태를 명확하게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 된다.

 

저자가 제안하는 감성능력의 다섯가지 요소는 감정 인식하기, 감정 이해하기, 감정에 이름붙이기, 감정 표현하기, 감정 조절하기로, 무엇보다 감정을 스트레스라는 식으로 뭉뚱그려서는 안되고 감정을 끝까지 파고들어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대목이 인상깊었다. 무드미터의 같은 분면에 있더라도 명확히 다른 감정을 구분하고 이름을 붙이는 것은 자기성찰의 훌륭한 방편이 될 수 있겠다.

 

학교, 직장, 가정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상황을 상정하고, 실제 세미나, 프로그램 등을 통해서 감성능력 신장을 교육한 감정과학이자 교수로서 저자의 권고 중 새겨들을 것은, 학교에서의 교육부분. 몇 시간짜리 단편적인 프로그램이 아니라 학교 구성원 모두가 감성 능력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한편 정규 교육과정으로 편성하고, 실제 문화를 바꾸어가야한다고 주장한 대목이었다.

 

아쉬운 점은 가정, 학교, 직장에서 실제 실시한 프로그램이나 세미나의 개요, 방법, 참여자 특성, 성과와 개선 사항 등을 그대로 수록했더라면 훨씬 더 실용적이면서도 학술적인 시사점을 제공하지 않았을까 싶다.

 

감정에 이름 붙이기에 사용하는 단어 하나하나가 자아성찰을 위한 여유를 만들어 준다. 내가 이 감정을 정말 강렬하게 느끼고 있나? 아니면 그리 극단적이지 않은 다른 감정을 느끼는 걸까?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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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생 - 죽음 이후의 삶의 이야기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지음, 최준식 옮김 / 대화문화아카데미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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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견해는 역사와 시대에 딸라 달라지겠지만, 최근의 경향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되는 것 같다. 죽음은 뇌의 작동이 멈추면 정지되는, 일종의 물질의 완전한 소멸이라는 주장과 육체라는 물질은 멈추지만 그 차원을  너머서는 새로운 생으로의 출발이라는 관점. 이 상반된 견해는 자칫 과학과 신학-비과학-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퀴블러 로스는 정신의학을 전공한 '과학자'로서 두 번째 주장을 견지한다는 데 특이점이 있다. 즉, 과학의 지평에서도 죽음은 신학의 주장과 맞닿아 있다고 부각함으로써 과학과 신학의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담당한다.

 

저자는 수많은 사람들의 임종을 관찰하고 근사 체험을 연구하면서 죽음은 고치가 나비처럼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가는 통로일뿐, 단순한 소멸로 규정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녀는 죽음은 3단계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죽음은 그저 한 집에서 더 아름다운 집으로 옮겨가는 것이라고 소개하면서, 고치(몸)가 회복불능 상태가 되면 나비(영혼)이 태어나는 1단계를 먼저 거치게 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고치가 나비로 변하는 1단계에서는 물질적 에너지를 얻게 되고, 2단계에 이르면 정신적 에너지를 받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 때 정신적 에너지를 받으면서 새로운 인식 능력을 갖게 되는데, 주변 사람들의 행동, 상황 등을 정확하게 인식하게 되고, 더불어서 육체 이탈과 더불어 온전한 몸을 갖게 된다는 것. 또한 두 번째 단계에서는 시공간 감각이 사라지면서 생각의 힘만으로도 그리운 사람들과 함께 있을 수 있어 그 누구도 고독하게 죽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 때는 에테르체라는, 물리적인 몸이 아닌 새로운 몸을 갖게 되어 장애나 불구가 없고 고통이 없는 완전한 조화를 경험하게 된다고 소개한다.

 

두 번째 단계를 거치면서 죽음은 또 다른 삶으로의 변화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고, 영원한 존재로 변화하기 전 터널이나 다리를 거치게 된다고 설명한다. 이후 터널이나 다리  끝에서 빛에 에워싸이게 되고 장엄하고 조건없는 사랑의 세계로 들어가는데, 이 빛 을 본 후 돌아오지 않으면 고치와 나비의 연결이 단절된다고 본다.

 

완전한 사랑의 세계, 하나님이든 무엇이라고 부르던 그 출현 앞에서 자신의 삶 전체를 반추하게 되고 온전한 '앎'을 획득하면서, 자신의 지난 삶이 우리의 성숙을 위해 존재했던 편린이었음을 이해하게 되는 3단계를 거치게 된다는 것이다.

 

퀴블러 로스는 죽음의 연구를 통해서 근사체험에서 나타나는 경험이 스스로 간절히 원하던 소망사고의 투사가 아니냐는 의문에도 단호한 입장을 취한다. 사고 소식을 몰랐는데도 미리 인지했던 경우나, 시각장애인이 급박했던 상황을 세밀하게 묘사한 경우 등을 사례로 들어 반박한다.

 

그녀가 주창한 죽음학의 백미는 단연, 과학자로서 죽음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점이다. 그녀는 죽음의 상황, 종교, 인종, 연령 등을 뛰어넘어, 모든 사람의 죽음은 우리의 성숙, 새롭고 완전한 세계에 적합한 인격으로의 변화를 위한 단계라는 따스한 시선을 고수한다. 그녀에 따르면우리는 모자이크 조각처럼 각자 맡은 사명이 있고, 그 사명안에서 성숙함을 완성하면 사후생을 위하여 떠나는 것. 이해할 수 없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과학자의 올곧은 연구는 죽음으로부터 출발하는 삶의 닻이 되고, 신앙의 뿌리 깊은 정수를 가리키는 나침반이 된다.

 

책의 말미에는 이 책의 역자인 최준식 한국죽음학회장의 '한국인의 죽음관'이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철저한 현세 중심의 죽음관에서 비롯되는, 삶에 대한 빈약한 인식을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죽음에서 출발하는 삶의 소중함과 가치, 삶에서 확장되는 죽음의 의미와 의의를 되짚어보는 성찰을 통해 확장된 세계관이 필요한 이 때, 개정판이 더없이 반갑다.

논리적으로 죽음의 경험은 출생의 경험과 같다. 죽음은 다른 존재로 새롭게 탄생하는 것이다. 우리는 수천년 동안, 죽음 후의 세상과 관계된 일들을 무조건 믿어야 했다. 그러나 죽음 후의 세계에 대한 이해는 믿고 안 믿는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앎의 문제다. 죽음에 대해 제대로, 그리고 정말로 알기를 원하는가. 나는 말할 준비가되어 있다. 이런 건 알고 싶지 않다고 해도좋다. 어차피 한번은 죽게 마련이고, 그 때는 누구나 알게 될 것이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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