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 자본주의라는 이름의 히드라 이야기
페르낭 브로델 지음, 김홍식 옮김 / 갈라파고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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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역사 분야에 노벨상이 있다면 페르낭 브로델이 수상자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독서를 하지 않을 이유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의 연구에 대한 학술적 근거와 개요를 설명하면서도 역자의 깊이 있는 해제까지 더해져 가독성까지 확보한 책이라니, 독자에게 이보다 더 감사한 일이 있을까. 


브로델이 주는 가장 큰 감명은, 인간의 일상 생활을 소외시키지 않고, 샅샅히 살펴보면서 그 흔적을 역사의 가장 중요한 근간으로 상정했다는 점이다. 흔히 자본주의는 물질의 축적과 더불어 인식의 변화 등을 통해 시장 경제가 발달해 나타난 일차원적 개념으로 인식하기 쉬운데, 도시와 화폐의 출현은 물론 자급자족을 넘어서서 생산과 소비를 잇는 시장경제를 통해 오랫동안 자본주의의 배지가 이미 마련되고 있었다는 점을 규명하면서 자본주의 태동의 입체성을 확보한다. 즉, 인간 삶의 축적이 구조화되면서 인간의 행위를 구속하기도 하면서, 전혀 새로운 현상을 발현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다. 


브로델은 관념적이고 사변적으로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특정 관점을 최대한 배제하면서 관찰하고, 추적하며, 그려보는 과정을 집요하게 수행하면서, 일상이 시간의 축적을 통해서 물질생활이라는 장기 구조를 형성하고, 그 위에서 교환이 이루어지는 시장 경제라는 경제 생활이 중기 구조로 층화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두 구조의 토대 위에 자본주의라는 현상이 최상위층에 나타났다고 본다. 


그는 다수의 행위자들 사이에 경쟁이 일어나고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 경제와 자본주의는 다르다는 점을 명확히 하면서, 마르크스가 생각한 대로 하부구조에서 생산양식으로서의 자본주의가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상부구조에 존재하는 자본주의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자본주의를 명확히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일련의 특징적인 현상이 나타난다는 점을 밝혀낸다. 자본주의는 경쟁과 분업을 하지 않으며 일종의 특권층처럼 독점하면서 오히려 반시장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주장한다. 이익이 난다면 국가와 경계를 넘어서서 활동하며 잇속을 위해 게임을 왜곡할 수 있는 수천 가지의 방법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구가한다. 또한 지식, 정보, 문화면에서 누리는 다양한 우위를 바탕으로 무엇이든지 장악하며, 높은 이익이 발생하는 분야라면 닥치는 대로 뛰어들어 독점할 뿐 전문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자본주의는 상부구조의 현상이고 소수의 현상이며 높은 곳에서 이루어지는 현상으로, 단순히 경제 시스템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사회 질서를 이용해 생존하고, 국가와 대등한 지위에서 맞서기도 하며 공모하기도 하면서 사회 구조를 지탱하는 문화로서의 역할도 감당한다. 동시에 여러 지배 계급과의 결탁을 도모하기에, 단순히 경제적 문제로만 국한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자본주의는 다양한 영역으로 침투하기에 명확히 경계를 지을 수 없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3층 구조의 맨 꼭대기에서 독점을 통해 높은 이익을 추구하는 활동으로 사회질서, 위계, 국가, 문화 온갖 영역에 침투하여 사회적 구조를 생성하고, 그와 결합해 존재하는 실체로,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하는 변신의 귀재라는 것. 


카멜레온과 히드라처럼 변화무쌍한 자본주의에 대한 그의 견해는, 기존의 시장 경제, 마르크스주의와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자본주의를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경제의 경계에 자본주의를 가두어 재단하는 대신 이익을 위해서 사회 전체에 걸쳐 작동하는 거대한 현상이며, 상층부에서만 이루어지기에 투명하지 않다는 그의 일침은, 왜 우리가 사회 전반의 영역에서 자본주의에 민감해야 하며, 그 독점과 불투명성에 대한 균열에의 의지를 가져야 하는지 상기시킨다.  

이익이 콸콸 쏟아지는 고전압이 흐르는 곳, 예나 지금이나 바로 그러한 곳에서만 자본주의가 존재한다. 예나 지금이나, 산업혁명 이전이나 이후나 반시장이야말로 자본주의란 실체가 존재하는 곳이다. 자본주의적 과정은 원거리 무역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자본주의란 것은 본질적으로 가장 높은 곳의 경제 활동에서 비롯된다. 자본주의는 물질생활과 촘촘한 시장경제를 겹으로 깔고 앉아, 높은 수익이 나는 영역을 대변한다.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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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탱고 - 2025 노벨문학상 수상 알마 인코그니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조원규 옮김 / 알마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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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작품이라는 사실보다 더 흥미를 끈 것은, 오롯이 제목과 강렬한 표지의 색감이었다. 21세기 소설 제목으로 통용하기에는 뭔가 어색한 '사탄'이라는 단어와 더불어 붉은 색 바탕에 철심으로 그어댄 것 같은 삭삭한 선들이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붉은 표지에 균열이라도 낼 것처럼 꾹꾹 눌러댔을 법한 뾰족한 선들은 표지에 선명한 자국을 남기는 동시에, 표지를 뚫을 것 같은 강한 강도를 가늠하게 하는데,  '사탄'이라는 단어와 기묘하게 어울리는 디자인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여튼, 표지와 제목에 사로잡힌 순간부터, 독서는 별 모를 의무감이 아니라 어떤 갈망같은 추적이 되었다. 현재의 텍스트를 읽으면서도 동시에 다음 문단을 열망하는 방식으로 읽게 하는 몰입감에 압도되지 않을 수 없었다. 


폐허가 된 헝가리의 집단 농장에서 마을 사람들은 아무런 희망이 없이 살아간다. 슈미트 부인과 함께 있던 후터키는 종소리를 듣고 깨어 때마침 집으로 돌아오는 슈미트의 인기척을 듣게 된다. 불륜 장면을 들키게 될 우려에도 불구하고 후터키는 재치 있게 슈미트의 약점을 파고 드는데, 그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번 돈을 크라네르와 함께 빼돌리려 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건수를 잡은 후터키가 슈미트와 돈을 나누려는데, 헐리치 부인이 찾아와, 죽었던 이리미아시와 페트리너가 마을로 오는 것을 보았다는 말을 전한다. 뜻밖의 소식을 접한 일단의 무리는, 자신들에게 구원자이자 지도자 역할을 했던 이리미아시의 꿈과 영광을 상기하면서 술집으로 몰려가 그를 기다린다. 


한편 이리미아시와 페트리너는 죽은 것이 아니라, 군의 대위 아래에서 정보를 수집해서 보고하는 하수인으로, 대위의 신뢰를 잃고 마지막 기회를 살리기 위해 마을로 향한다. 권력의 말단에서 마을 사람들을 감시하면서도 들키지 않고 그들에게 위대한 영도자로 추앙받았던 과거를 부활시켜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려는 데 여념이 없다. 


이리미아시에 대한 집착과도 같은 맹신과 희구 속에서, 일단의 무리들과는 짐짓 멀리 떨어져 무너져 가는 마을과 사람들의 일상을 세세히 기억하고 기록하는 의사는, 적어나가는 데 천착하는 인물. 평소에도 자신의 시중을 들어주는 최소한의 인물과만 접촉할 뿐 마을 사람들과의 교류조차 없었었던 그는 한 차례 쓰러지지만 기어이 일어나 모두가 떠난 마을로 돌아와 과거를 상기하면서, 부재하는 인물들을 재구성하는 일에 몰두한다. 이리미아시의 감시와 결은 다르지만, 그는 집단 내부에서 동향을 파악하는 데 주력한다. 그러나 그의 지식과 정보는 공동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다만, 그는 와해되어 가는 세계와 인물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해야 한다는 일념에만 도착되어 어떤 교훈도, 소망도 제시하지 못한다. 


일단의 무리들이 몰려든 술집은 매일 매일 거미줄이 쌓이는 곳으로, 그들은 제각각 이리미아시를 기대어 삶의 도약을 꿈꾼다. 그들의 속내는 욕정, 탐욕, 허튼 기대감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결국 이리미아시를 붙들기만 하면 삶은 송두리째 바뀔 수 있다는 공통된 믿음으로 점점 취해간다. 그리고 취한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탱고를 춘다. 


반면 이리미아시를 동경하는, 소년 서니의 여동생 에슈티케는 가족들에게조차 사실상 방치된 소녀로, 선뜻 자신에게 친절을 베푸는 오빠를 신뢰하지만, 끝내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목숨을 버린다. 


마을로 돌아온 이리미아시는 에슈티케의 죽음을 화두로 꺼내면서 그의 죽음에 모두의 책임이 있다는 선동을 통해 수금하고, 이곳을 떠나 주변의 성으로 모일 것을 명령한다. 자신이 도시에 다녀와 새로운 삶을 보장할 소명을 줄 것임을 약속하는데, 의사를 제외한 마을 사람들은 모두 질척대는 길을 따라 성으로 나아간다. 


이리미아시와 페트리너, 서니는 성으로 가는 도중 에슈티케의 환영을 보게 되며 잠깐 혼비백산하지만, 부활을 믿지 않는 이리미아시는 가까스로 정신을 가다듬고, 마을 사람들이 이리미아시 일당에게 속았다고 힐난하는 순간 영웅처럼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을 모두 도시로 이동시키면서 각각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배정한다. 그리고 서로 연락하지 못하도록 지침을 주면서, 감시의 부역자로써 자신의 촉수 역할을 하도록 맡긴다. 


소설의 말미에서 집단 농장에 남은 의사는 종이 없는데도 울리는 종소리를 듣게 되는데,  탱고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처럼 처음 후터키가 종소리를 들었던 시점으로 되먹이된다. 


작가는 거짓 구원자인 이리미아시 일당과 참된 회복 대신 한탕을 노리는 탐욕의 무리, 어떤 진리도 외치지 못하는 맥 빠진 지식인, 한 순간 꺾여버린 순수한 에슈티케, 감시와 보고로 연명하는 지배층, 그리고 다시 이들의 각전투구가 어떻게 자기 파괴의 기만 속으로 침강해 가는지 오싹할 정도로 정밀하게 드러낸다. 


치우친 제도와 관습, 일련의 악당이 난무하는 구도가 아니라, 모든 것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악의 심원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기제를 여지없이 보여준다. 


우리에게 참 희망이 사라지고, 부활과 회복이 흐트러지는 까닭, 과연 그들 때문이고 정치, 사회의 폐단 때문인가. 매번 제자리로 돌아오는, 훼파된 세계를 향한 작가의 예리한 시선은 회피할 수 없을만큼 날 서 있다. 

우리 아버지...음, 거기 하늘에 계신, 에...주님을 찬양하라, 우리 주님, 아니..거룩하시고..거룩하시고..거룩하신..주님 이름, 그리고 이루어지게 하소서..모든 게 당신 뜻대로 이루어지도록..하늘에서도..땅에서도, 당신 손 닿는 모든 곳에서...땅 위에서..그리고 하늘에서..아, 꺼져라, 지옥으로. 아멘.. - P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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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 최한기 : 실학에 길을 묻다 지식인마을 18
임부연 지음 / 김영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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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으로부터 시작되었다면 무엇이든 찬양하고 고양하는 태도를 갖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역사를 배우면서 나도 모르게 우리 안에는 우리의 문제를 타개하거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심상 자체가 빈약하다며 근거 없는 자괴감을 갖기도 했었는데, 정규군 대신 의병이 일어나고 합심해야 할 때 정쟁만 하다 무너졌다며 섣부른 결론을 내면화한 까닭도 있었던 것 같다. 부끄럽게도 시대의 물꼬를 트는 사상적 기반이 연약하므로 상황에 휩쓸리며 순간의 기지나 영웅의 출현에만 기대어 왔다며 독단적으로 조소했던 적도 있었다. 


이 책은 순전히 최한기에 대한 호기심으로 선택했는데, 내 오랜 편견을 산산히 깨뜨리기에 충분했다. 단순히 자국 우월주의에 잇댄 감성 발언이 아니라, 오히려 연구 기반과 인프라가 연약한 탓에 뛰어난 사상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할까. 실학이라고 뭉뚱그려 묶어 듣고는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채, 게으름과 일천한 지식으로 결론을 재단하는 못된 습성이 빚어낸 편견은, 저자의 매우 정확하고도 정직한 방법적 기술 앞에서 와그리 무너졌다. 


단순히 정약용과 최한기의 사상을 비교하고 대조하는 방식을 넘어서서 후반부에는 선거 유세라는 상황 설정을 통해 각각이 추구한 사상의 핵심 쟁점을 짚어냈기에 사전 지식이 부족하더라도 엇나가지 않고 이해하는 데 수월하다. 


정약용은 성리학이 추구하는 유교적인 인륜 질서와 형이상학적 정당화가 사변화되면서 소수의 지식인들에게 지적인 만족만을 주었을 뿐, 일상에서 조우하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맺어지는 구체적인 윤리적 실천을 소홀히 하는 경향을 만들어냈다고 비판하면서 선을 추구하려는 본성의 욕구는 외부 존재와의 관계를 통해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천주교의 교리를 자신의 사상적 발전에 적용하는데, 상제는 만물을 만들고 주재하는 인격적 존재이지만, 우리의 성찰적 양심으로 발현되며 숭앙할 대상은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천주교의 영향을 받아들였더라도 효도와 공경 등 유교의 덕목을 받아들이기에 제사 금지에 반대하며, 천당과 지옥을 믿지 않는 점을 들어 자신의 사상은 천주교와는 다르다고 일축한다. 


이러한 사상적 배경 하에 그는 군자의 학문에서는 자기 수양이 반이고, 백성의 통치가 나머지 절반을 차지한다는 식견을 필두로, 여를 만들어 공동 소유와 공동 경작을 통해 생산물을 분배하는 여전제나 지역, 귀천의 차별 없이 유능한 인재를 선발해야 한다고 설파한다. 정약용은 본성이란 성리학에서 주장하는 우주적인 원리나 마테오 리치가 말한 이성적인 추론 능력이 아니라 선을 좋아하는 윤리적인 욕구이며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충족할 수 있기에, 본성의 실천이야말로 삶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정약용은 상제가 본성을 내려주었으며 일상 생활에서 시시각각 명령을 내린다고 가정하는데, 성령님의 역할과 흡사하다. 그리고, 상제의 관심은 사람이 그 명령에 따라 인륜을 실천하는 것으로 타인을 섬기는 것이 곧 하늘을 섬기는 것이라고 본다. 두려움은 상제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면서 동시에 바르게 살기 위해 긴장을 유지하는 수양 방법으로 이해하는데, 왜 정약용이 천주교에 심취했는지 유추해볼 수 있다. 


최한기는 일종의 에너지라고 할 수 있는 기에 주목하면서, 기에 대해 알려고 노력하는 사람의 정신 작용이 추측이라고 본다. 그는 세계는 기라는 보편적인 요소에 의해 형성되며 기야말로 진정한 실재로, 존재하는 모든 것은 기의 양태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기는 영원불변의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운동하며, 이치란 실재하기 보다는 인간의 경험을 통해 구성한 추측의 결과물이라고 본다. 


그에 따르면 기는 생명력을 가지고 자발적인 운동으로 순환과 변형의 능력을 발휘하는 성질이 있는데, 이를 활동운화라고 지칭하면서 자연의 차원에서 천지운화, 정치나 교육 등 사회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통민운화, 개체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일신운화로 구분할 수 있으며 일신운화와 통민운화 사이에는 교접운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일신운화는 통민 운화를 따르고 통민운화는 천지운화를 따르는 체계성을 강조하면서, 천지운화는 인위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고, 인간은 이를 받들어 따라야 한다는 관점을 보여준다. 


신기는 기의 신묘한 작용의 능력으로, 모든 존재 속에 들어 있는 기의 보편적인 구성 요소이며 인간에게는 지각의 주체로 나타난다고 본다. 칸트와 유사하게 우리가 감각 기관을 통해 경험한 외부 세계는 사람의 신기인 마음에 물들어 지각이 발생하며 지각은 단순한 감각이 아니라 사물과 사태에 대한 인식과 판단이라는 것이다. 최한기는 추측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추측은 앎을 넓히는 요체라고 주장하는데, 윤리적인 선은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천지운화에 기준을 두고 정당성을 획득하는 것이며 학문은 바로 이 추측을 배우는 것이라고 표명한다. 


그는 우리의 생명은 외부 세계와의 통함이 제대로 이루어질 때 보존되는 것으로써, 무엇에 통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신기가 유동적으로 변한다고 논하면서, 천지운화를 기준으로 인간은 원래의 부여받은 신기의 소통 역량을 실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끊임없는 변통은 결국 개인, 사회, 세계의 모든 것들과 대동하는 데 까지 나아가야 하며 인간의 문제를 인간만의 문제가 아니라 만물의 조화와 협력 속에서 풀어나가야 한다는 데 이르른다. 


최한기의 주장은 모든 학문의 통합, 서양과 동양의 병합에 대한 지향성 뿐만 아니라 현재 뇌과학의 추론 관점과도 유사한 부분이 있어 특히 흥미를 끈다. 더욱이 기존의 뇌과학이 일종의 신호 전달 체계의 확장처럼 보이면서 도덕이나 윤리는 그렇다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가, 에 대한 답변을 충분히 주지 못하고 있는 반면, 최한기는 추측의 과정을 윤리를 넘어서서 만물과의 조화까지 추구한다는 데서 더 넓은 지평을 보여준다. 


게다가 최한기의 기는 융의 집단 무의식이나 동시성과도 연결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데다, 본인은 인격적인 궁극의 실재로서의 신을 부정했지만, 오히려 신과 교통하며 만물에서 영감을 얻는 영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일종의 단서를 안겨주기에 참신하다.


우리 사상의 뿌리를 더욱 두텁게 할 최한기에 대해 더 깊이 있고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단순히 ‘기에 천착한 실학자’로 치부하기에는, 그의 탐구가 보여주는 치열함과 깊이가 결코 가볍게 평가되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정약용과 최한기 두 분과 대화함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배우는 학문, 우리가 지향하는 주체에 대해 성찰하는 기회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분들이 말하는 통합의 학문이나 윤리 주체는 개별 분과로 나뉜 우리 시대의 학문이나 무한경쟁의 신화에 내몰린 우리 사회의 소시민과는 다릅니다. 따라서 그분들의 설계도가 그대로 우리의 실존적인 해답이 될 수는 없겠지만, 정직한 만남과 대화는 우리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성찰하고 새로운 길을 찾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누군가를 진지하게 만나는 일은 사랑과 정성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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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루코스 혁명 - 좋아하는 음식을 즐기면서 과학적으로 체중을 줄이는 10가지 방법, 2023 세종도서 학술부문
제시 인차우스페 지음, 조수빈 옮김, 조영민 감수 / 아침사과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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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에 대한 관심과 기술의 발전은 뜻밖에도 전문가를 각성하게 하는 도화선이 되기도 하는데, 이 책은 실제 사례로써 좋은 본보기가 된다. 감수자인 조영민 교수가 언급한 대로 의료 서비스의 수요자가 공급자를 능가하는 데이터, 생각, 지식을 만들어 내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좋은 실례. 


  저자는 뜻밖의 사고와 수술을 경험한 후 건강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강한 신념으로 유전자 분석 스타트업에서 제품 매너저로 일하다가 24시간 혈당 모니터 프로젝트에 합류하면서 글루코스 관련 인스타그램을 운영하게 된다. 이로써 24시간 혈당 모니터를 통해 혈당이 갑자기 상승하는 혈당 스파이크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일반인이면서 의료인을 선도하는 혈당 전문가로서 변모한다. 


  저자의 강점은 과학적 사실을 정리하여 이해하기 쉽게 가시화, 구조화하는 데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과학적 사실에 대한 세부적인 천착으로 정확성을 기하다 보니 전체 개념을 도식화하는 데 취약점이 있는데, 이 약지점을 과감하게 뛰어넘어 큰 맥락을 단숨에 짚어낸다. 


  식물은 스스로 광합성을 통해 포도당을 만들고, 녹말의 형태로 저장한다는 데서 출발하여 인간이 활용하는 탄수화물의 종류를 대담하게 압축한다. 온갖 복잡한 종류와 현학적인 용어들을 물려내고, 혈당과 깊이 관련 있는 포도당, 과당, 자당, 섬유질로 응축해 조직화하는 작업부터 진행한다. 


  혈당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포도당은 췌장에서 분비되는 인슐린과 글루카곤을 통해 조절되며, 세포 내 미토콘드리아에서 에너지원으로 사용된다. 남는 포도당은 간, 근육, 지방 세포 등에 저장이 되고, 과일에 많이 들어 있는 과당은 최종적으로는 과잉될 경우 오직 지방으로만 변환되며, 자당은 과당과 포도당으로 나뉘어 앞선 경로를 따라 대사 과정을 거친다. 


  우리가 노화하고, 장기가 망가지며, 결국 죽게 되는 이유가 당화 때문이라는 점과 연계하여 혈당 관리가 왜 중요한지 설명한다. 또 알로스타틱 부하 모델을 들어 미토콘드리아가 불필요한 포도당의 늪에 빠지면 자유 라디칼이 분비되고, 이는 해로운 유전자를 활성화시키며 돌연변이를 일으킨다는 점도 제시한다. 일반적으로 적당한 양의 자유 라디칼은 우리 몸이 통제할 수 있으나 너무 많아지면 결국 산화 스트레스 상태로 이어진다는 점도 상세히 풀이한다. 


  과도한 양의 자유라디칼, 산화 스트레스, 당화 반응의 조합은 우리 몸을 염증 상태로 만들어 결국은 조직과 기관의 손상으로 이어지게 하므로, 자유 라디칼 형성과 당화 반응을 줄이기 위해서 과잉 포도당을 제거하는 일이 생존에 필수적이다. 우리 몸은  테트리스를 하듯 인슐린을 작동 시켜 과잉 포도당을 간, 근육, 지방 등에 저장을 하지만, 간과 근육은 저장 용량이 한정되어 있고, 무제한 저장이 가능한 지방이 늘어나게 된다. 단기적으로는 생존에 도움이 되는 작업이지만, 혈당이 높아지는 상황이 많아질 수록 인슐린 분비가 더 많아지게 되고, 췌장에 문제가 생기면서 더 많은 질병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혈당 곡선을 완만하게 만들어야 하고, 지방을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을 연소할 수 있는 몸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간과 근육에 저장된 글리코겐의 비축량을 사용하고, 지방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모드로 변화되어야만 살이 빠지고, 심각한 질환들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3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혈당 곡선을 완만하게 하는 방법, 즉 췌장이 지치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일하도록 돕는 방법을 제시한다. 24시간 혈당 모니터를 활용해 직접 경험하고, 사례자들의 실천을 통해 결과로 창출된 꿀팁은 요즘 의학계에서도 강조하고 있는 제안들이다. 


  첫째, 위배출 속도와 포도당 흡수를 늦추기 위해 채소를 먼저 먹고,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순으로 먹어야 한다는 것, 둘째, 모든 식사를 녹색으로 시작하는 것인데, 이는 칼로리가 더 적게 흡수되고 포도당이 흡수되는 양을 줄일 수 있다. 셋째, 모든 칼로리가 동일하지 않기에 칼로리 계산을 멈추고 소화하는 분자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기억할 것, 넷째, 건강한 아침 식사를 잘 할 때, 하루 종일 컨디션이 좋을 확률이 높아 혈당 관리에 용이하다는 점이다. 


 다섯째, 다 같은 설탕이므로 원하는 종류의 설탕을 먹되, 적당한 양으로 즐길 것, 여섯째, 달달한 음식은 간식보다는 차라리 디저트로 먹어서 간식으로 인해 혈당 스파이크를 일으키지 않도록 유의할 것, 일곱째, 식사를 하기 전 식초를 먹을 것, 식초의 아세트산이 근육이 포도당을 효율적으로 흡수하도록 하고 지방 연소 모드로 우리 몸이 전환되는 것을 돕는다고 한다. 


  여덟째, 식사가 끝나면 움직일 것, 운동은 염증과 산화 스트레스를 낮추고 근육량을 높여 혈당 수치 감소에 기여한다. 아홉째, 간식을 먹어야 한다면 덜 달게 먹을 것, 열번째, 탄수화물에 옷을 입혀 먹으라는 것으로 어떻게든 단백질, 섬유질, 지방 등을 곁들여 먹는 습관을 갖도록 권고한다. 


혈당 관리가 주로 습관의 변화에만 맞추어져 있고, 사회나 문화, 제도와 정책 등의 영향 요인에 대한 언급이 부족한 부분은 아쉽지만, 현대인의 쾌락 추구와 고혈당을 연계하는 시각만큼은 탁월하다. 


전문가가 아니기에 과단성 있는 도식화로 일부 정밀성은 떨어질 수도 있지만, 경험과 실험, 연구 근거를 통해 설정한 전체적인 담론은 혈당 관리뿐만 아니라 건강 관리에 대해 큰 변곡점을 제시한다. 

나의 목표는 최신의 객관적인 과학적 사실을 실천의 영역으로 가져오고, 편견 없는 연구를 현실적인 도구로 바꾸고, 당신을 몸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지식으로 무장시키고, 당신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이다. -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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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삶 세계기독교고전 7
성 테레사 지음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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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인도의 성녀라고 불리우는 마더 테레사의 기도에 관한 책일 것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에 차서 선택을 했기에, 저자가 뜻밖에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으면서도 여성 최초로 교회 박사 칭호를 받은 인물 중 한 분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 아빌라의 성 테레사로 불리우면서, 하나님 한 분만으로 족하며 기도의 신비적인 체험을 간증하는 글을 읽어 나가면서는 기도의 구체성과 체계성에 논의는 물론 영과 육, 혼의 균형을 지향하는 지혜로운 서술 때문에 다시 놀라게 되었다. 


영적인 기도를 한다는 것의 의미를 세세하고 명확하게 배운 느낌이라고 할까. 고답적이고 유려한 언어로 마음에도 없는 기교를 가득 채우거나 현실의 문제와는 유리된 기묘한 음성으로 채워넣는 기도가 아니라, 기도는 어떤 상태로 나아가는 것인지, 그리고 순간을 넘어서서 어떻게 전 인생과 영원으로 잇대어 가는 과정인지 자세하게 기술했기에, 왜 고전으로 추앙받는지 긍정할 수 밖에 없다. 


역자는 테레사 수녀님의 기도를 네 가지 측면에서 조망하는데, 그녀의 기도는 생활 속의 신앙을 보여주고, 겸손이면서 동시에 단순성을 의미한다고 단언한다. 삶의 모든 순간과 장면이 하나님과의 연합이라는 단순한 목적으로 귀결된다는 것. 마지막으로 생활 속의 기도를 통해 내적 존재의 계발한다는 것으로, 단순한 신비주의가 아니라 혀를 가지고 말하는 단계를 넘어서서, 감각과 지식이 무디어지는 하나님의 현존을 인식하는 데까지 진행된다는 데 주목한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몸이 병약했던 수녀님의 성장 배경이 기도에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성숙한 신앙의 형제, 자매, 올곧은 영적 지도자와의 교류 속에서 기도의 폭과 깊이는 더욱 확장된다는 점이 확인된다. 


테레사 수녀님은 기도에 필요한 요소로 사랑과 초연, 겸손을 꼽으면서, 영적인 사랑은 잘못된 동기에서 출발하지 않으며 지상의 일과 천상의 일을 분별할 수 있고,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모든 사람에게 부드러우며 사심 없는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고 본다. 주님과의 영적인 교제를 위해서는 초연이 중요한데,  끊임없이 우리의 자아를 포기하면서 지속적으로 초연해야 하며, 인생의 허무함을 항상 묵상하라고 조언한다. 겸손하다는 것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기억하는 것이며, 감사하며 항상 침착하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곧 겸손이라고 설명한다. 또 거짓된 겸손을 멀리하며 하나님이 주신 것의 유익함, 그리스도의 수난 등을 기억하라고 안내한다. 


기도에 있어서 영적인 성급함이 앞서서는 안되고 하나님을 기다리며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내어놓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순종 할 것을 촉구한다. 그녀에 따르면 결국 기도는 구체적인 결단을 필요로 하므로 하나님을 최우선시하고 어떤 일이 일어나든 물러서지 않는 대담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테레사 수녀님은 기도 생활을 정원에 물을 주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면서 우물, 물레방아, 시냇물, 주님으로부터의 비를 차용하여 설명한다.  처음에는 우물물을 퍼서 정원에 물을 주는 것처럼 고생스럽다고 표현하면서 혼자서 지난 날의 생활을 반성하는 데서 출발하라고 제안한다. 다만 이때 신체적 건강을 주의하면서 영혼만을 강조해서는 안되다고 주의를 준다. 격렬한 갈증이 있다면 열심을 주의해야 한다는 점도 가르친다.


 물레방아 기도에서는 영혼의 회상을 강조하는데, 이 단계에서는 의지가 더욱 더 하나님의 뜻에 가까워지며 영혼이 기쁨으로 가득 채워지고 모든 일이 위로가 되며 열매 맺힌 정원에서 누리는 안식과 새로워짐을 맛보도록 권유한다. 어떻게 하나님께 은총을 받았는지 기억하면서 굴러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알려준다. 


관개수로나 시냇물로부터 물을 얻는 기도는 주님이 정원사 스스로 모든 일을 하도록 도우시면서 은총의 바다가 너무 충만하며 주님께만 전적으로 몰입하고 하나님만 찬양하게 된다는 점을 제시한다. 샘으로부터 얻는 기쁨은, 섬김으로부터 오는 열매로 기쁨의 농도가 더 짙어지고 영혼이 확장되어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를 구가할 수 있게 된다는 점도 부연한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비는 세상의 쾌락을 경멸하게 하고 영혼에 최상의 열매를 남겨 놓아, 마침내 마음은 커다란 부드러움에 휘감기고 영웅적인 결단을 할 수 있게 된다고 간증한다. 


테레사 수녀님의 기도와 관련된 견해 중 가장 독특한 부분은 아무래도 내면의 성에 비유한 처소 중심의 접근이 아닐까 싶다. 우리 각자의 영혼은 성이며 그 성은 여러 개의 처소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우리 생명의 중심에 계시며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영혼을 참되게 하신다고 확신하면서 첫째 처소는 육신적인 일들에 의해 쉽게 더럽혀질 수 있어 많은 분별력을 통해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려고 애써야 한다고 말한다. 


둘째 처소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관상과 순복의 필요성이 있는 곳으로 인내, 이성, 믿음, 생각, 의지와 깨달음의 도움이 필요하며 마음을 굳게 할 것을 강조한다. 셋째 처소에서는 선하며 모범적이지만, 여전히 자기중심적인 삶의 속임수에 놓여 있으므로 양심을 훈련하며 하나님만을 의지하면서 자기 명성을 추구하는 일을 바라지 말 것을 권고한다. 또 하나님의 위로는 겸손함 가운데 나타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넷째 처소는 고요한 기도가 가능하며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만남이 시작되는 것으로 하나님께만 집중하고 하나님께 동화되어 극단으로 가지 않도록 주의하도록 촉구하면서 우리의 많은 고통은 우리 내면의 삶에 대한 불평 때문에 온다는 점을 깨닫도록 인도한다. 하나님의 신비한 위로를 받을 수록 더 쇠약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오히려 마귀의 방법이며 극심한 금욕적 삶을 경계하도록 일러준다. 


다섯째 처소에서는 하나님과 연합된 기도가 가능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경험하면서 세속적인 것, 마귀는 여기에는 들어오지 못한다고 선언한다. 이때는 분석이 아니라 이러한 경험의 수용이 중요하다는 점도 설명한다. 여섯째 처소는 친밀한 연합의 기도가 가능하며 그리스도와의 약혼과도 같은 것으로, 더 많은 고난을 포함하는 더 큰 영적 은총들이 나타난다고 제시한다. 고통을 견디며 점점 자아에 대해 무관심해진다는 점도 포착한다. 영혼에 상처가 나는 부르심 속에서 즐거운 고통을 맛보게 된며 오랫동안 기억되고, 영혼에 경외심을 주며 영혼에 위로가 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상상의 음성과 구별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일곱째 처소는 삶의 총제적인 이전으로서의 예수와의 혼인 기도로, 이러한 연합을 훼방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확신한다. 신비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일상의 삶을 계속하며 하나님을 위한 일에 더 열심을 내게 된다고 설명한다. 


수녀님은 여러 글들을 통해서 기도가 순간이 아니라 일상에서 평생 지속되어야 하는 것으로, 체험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동시에 신비주의나 극단주의로 치우치는 것을 경계한다. 또, 스스로의 경험을 자랑하거나 만용하는 데 할애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체계를 세워 누구나 시도할 수 있도록 일종의 이론화를 모색한다. 나아가 기도는 하나님과의 연합을 통해 하늘의 영광이 이 땅에 드러나도록 소명을 확인하는 통로이면서, 주님께 더 나아갈 수록 고통스러우면서도 영광스러운 하늘의 영광에 참예하는 특별 은총의 현시임을 보여준다. 

다른 사람의 허물에 신경쓰지 말고 우리 자신의 허물에 신경을 씁시다..중략..항상 침묵과 소망 가운데 살고자 노력하십시오. 우리 주님은 자신이 사랑하는 영혼들을 돌보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그에게 기도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의 이름을 영원히 송축합시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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