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 노자 : 道에 딴지걸기 지식인마을 6
강신주 지음 / 김영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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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노장 사상을 배우면서 자연과의 조화, 자유로운 삶에 대한 추구 등을 뒷받침하는 근간으로 이해했기에, 노장 사상에 대한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는 저자의 강경한 주장은 곧바로 독서를 시작하게 하는 온전한 촉매가 되었다. 


생태주의적 관점에서의 노장 사상의 이해는 오해이며, 오히려 노장 사상은 어지럽던 세상 중에서 탄생한 정치와 삶의 전략으로써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은 독서를 마치고 나서야 순전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저자에 따르면, 노자는 인간의 개입이 현실을 왜곡하고, 원래 존재하던 질서를 뒤흔다고 주장한다. 노자는 인간이 제도를 만들고 도덕을 논하면서 있음과 없음의 구분을 만들고 구별하면서 권력을 쟁취할 수는 있지만, 다스림을 유지하는 데는 취약하다는 예리한 통찰을 내세운다. 그러므로 노자는 작은 국가를 지향하지만, 통치자의 정책으로 능력 있는 사람을 등용하지 말 것, 백성이 죽음을 무겁게 여기고 거주지를 옮기지 못하게 할 것, 문자를 사용하지 않도록 할 것 등을 내세우고 있어 유토피아보다는 통치자의 권력 유지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는 점을 읽게 된다. 


노자가 주장하는, 무위라는 것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되어지도록 만드는 질서에 천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치자는 백성이 그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을 알 뿐, 그가 공을 이루고 완수하여도 백성은 모두 자신들이 그것을 이루었다고 말하도록 만드는 이라는 점도 분명하게 밝힌다. 노자는 권력과 지배의 관계를 수탈과 재분배로 설명하면서, 무위는 수탈을 폭력이나 강제로 보지 않고 자발적 복종으로 이해하는, 통치자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이상적인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노자는 또한 무는 형태는 드러나지 않지만 가능성이 있는 상태이며, 유는 현실로 나타난 구체적 행태라면서, 유와 무가 돌면서 세상이 변화한다고 가정한다.노자는 모든 개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보이지 않는 무의 계기를 지녀야 한다고 보면서 물그릇이 물을 버리기를 거부하여 물그릇으로 계속 남아있게 되면, 그릇은 더는 다른 것과 관계를 맺을 수 없기에 처음 만들어 진대로 비어 있는 상태로 돌아가야 그릇은 모든 것과 관계할 수 있는 잠재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확언한다. 


저자는 노자의 한계도 분명하게 제시하는데, 노자는 통치자를 남는 것이 있는데도 자연의 법칙을 따라 부족한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이해하기에, 남음과 부족이라는 위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통치란 결국 남음이 있는 사람이 어떻게 하면 남음이 있는 사람으로 지속될 수 있는지 고민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평도 과감히 남겨둔다. 


노자가 좋은 통치란 무엇인가에 마음을 두었다면, 장자는 통치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장자는 삶의 문맥 속에서 이루어지는 성심이 타자를 만나 다른 사람의 문맥에 폭력적으로 적용되는 것의 문제점을 드러내면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마음을 작동시키는 성심을 절대적 표준으로 삼는 사태에 대해 꼬집는다. 즉, 성심을 허심으로 바꾸어 유동성을 갖게 되면 타자의 복수성과 댜앙성을 올곧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자는 나비의 꿈을 통해 현실과 이상의 경계를 허물고 참과 거짓의 구획을 지워내면서 모든 것에 절대적인 것이 없다는 점을 설파한다. 절대성을 버리고 자유롭게 변형되면서 타자와 소통에 방점을 둔 그는, 변형은 단번에, 고정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항상 긴장하며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사상의 저변에는 만물이 도 안에서 모두 동등하며, 기존의 질서와 체계를 해체하고 모든 얽매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다. 


노자가 통치성을 위한 유연함을 강조했다면, 장자는 해체를 위한 해방을 부각한다. 노련한 전문가가 인도하는 치열한 논쟁을 따라가다 보면, 독서의 재미 속에서 폭염의 강포도 어느새 무색해진다. 

노자는 무엇보다 국가와 통치자에 자신의 관심을 집중했다. 그는 제국을 소유하려면 통치자가 무위의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반면에 장자는 험난한 시대를 사는 개인을 위해서 사유를 전개했다. 장자는 같은 시대 사람들에게 연못물 같은 맑은 마음, 즉 선입견이 젼혀 없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설파했다. 그렇게 해야만 풍속이 다른 공동체에 가서도 그 공동체의 규칙에 따라 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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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원의 인류학 - 몸-마음-자연을 연결하는 사유와 치유
김태우 지음 / 돌베개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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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곳에서든 'AI', '인공지능'이라는 단어가 빠지면 섭섭할 정도로 반복, 중첩되는 데다 나아가 인간 능력 밖의 효율성과 정확성이 거의 모든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낼 것이라는 장담을 듣다보니, 평소 잘 동조하다가 어깃장을 놓는 데 어느 정도 일가견을 갖춘 나로서는 일종의 반항심이 치밀었다. 


더구나 의료 분야처럼 정밀성과 정합성을 추구하는 학문은 AI를 힘입어 그야말로 날개를 달아 치료 성적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리라는 포부가 기정 사실인것처럼 확고해 보이기까지 해, 불편한 마음이 일기도 했다. 그러다가 문득, 그런데, 정말 인간의 건강, 질병, 몸과 마음이 그렇게 계산되고 분석될 수 있는 대상인가,에 생각이 이르니 무언가 중요한 전제를 놓친 채 부나방처럼 열풍에 올라탄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직관적으로 뭔가 핵심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문이 들 때, 이 책을 읽게 되었으니 나는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인가. 


저자는 의료는 인간들의 집단은 예외 없이 의료를 가져왔고 이 의료는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연결되어 있다고 공언하면서, 몸에 대한 이해 방식은 몸 밖 세계에 대한 이해 방식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서구 의료가 데카르트 이후 정신과 육체의 분리, 주체 중심의 세계 이해가 도드라지면서 발달해 온 반면, 동아시아의학, 특히 한의학은 기, 음양, 사상 등의 체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의료'가 아니라 '의료들'에 대하여 말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인간 존재의 다차원적인 양태를 어느 하나의 의료로만 접근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며 오히려 상호보완하면서 인간의 생로병사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의학에서의 진단 과정은 서구 의료와 사뭇 다른다. 서양 의학에서는 데이터 중심의 검사 결과가 이미 주어진 상태에서 환자를 만나지만, 한의학에서는 맥진부터 환자의 현상을 한의사가 직접 탐색하는 방식으로 진단이 이루어지기에 자세, 태도, 습관은 물론 질병의 서사까지 모두 포함하여 진단한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의학에서는 무엇보다 '병'의 독립성 보다는 '흐름'을 중요하게 여기기에 고정적인 질병 독립체 너머, 그것을 일으키게 하는 흐름의 양태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 


그 예가 "기"로, 기는 양상이며 물질적인 기반은 있으나, 물질 자체는 아니라면서 주먹을 쥐고 허공에 휘두를 때의 그 양상 속에서 파악되는 것이 '기'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전제는 인간의 공통된 특성을 고려는 하지만, 이를 분류하고 합치하여 독립된 질병체를 만들어 표준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특질이 더욱 고려되기 때문에 계산되거나 일률화 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대신, 환자의 서사와 양태, 습생, 자세를 포함한 모든 것을 종합하여 진단과 치료로 나아가기에 한의사마다 처방이 달라지고, 다른 진단도 내려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여기에서 내가 흥미를 가진 점은, 인공지능으로 해석하거나 판별할 수 없는 사유 체계, 그리고 수많은 자료와 정보 속에서 서사를 잃어가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환자의 지위가 다시금 정립된다는 것이었다. 즉, 서양 의료에서 질병의 하위로 전락하는 환자의 존재가, 한의학에서는 질병 위로 서는 존재로 부각될 수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 병의 이름 역시 몸의 한 공간을 차지한 독립체로서의 개체가 아니라, 몸의 전체와 연결된 흐름 속에서 일탈을 의미한다는 것도 새겨볼 만한다. 몸은 모두 연결되어 있고, 이 연결망을 흔드는 침 치료의 특성도 의미가 있다. 


생장수장(生長收藏), 풍화조한(風火燥寒), 혈자리, 경락, 부(腑, 담, 소장, 대장, 방광), 장(臟, 간, 심, 폐, 신)의 각 층위는 겹겹의 층을 이루어 가로와 세로를 넘나들며 연결망을 이루고 있고, 침은 이 연결망을 흔들어 기운의 변화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약 역시 서구 의료에서 사용하는 것처럼 화학식으로 이해하는 성분이 아니라, 성분을 넘어서서 약성으로 이해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약성은 본초와 사람이 만나는 관계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이므로, 가령 단순히 사포닌이 인삼의 주요 효능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고전 물리학과 양자역학을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고전 물리학이 입자를 분석하고, 하나씩 독립된 개체로써 이해했다면, 양자 역학은 입자를 관측이나 상호작용, 확률 등 전체 속에서 고려하는 대상으로 이해하며 고정된 실체이면서도 동시에 파동의 흐름으로 인식한다.


이와 같이 서양 의학이 장기, 세포, 병 등을 독립된 개채로서 구분하여 원인을 규명하고 치료하는 데 강점을 가진다면, 한의학은 기, 혈, 장부, 경락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인간 밖의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흐름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몸을 상정하기에, 단독 질병으로 포획되지 못하는 다양한 증상을 이해하고, 환자의 서사는 배제한 채 질병 중심의 동일화 과정으로 견인하는 의과학의 강포에 대항함으로써, 환자 역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가장 마음에 드는 단어를 꼽으라면, 무엇보다 "의료들"일 것이다. 다양한 차원과 복합적인 관점을 보다 더 허용하도록 개방하는 포용이 필요한 의료가  AI, 인공지능의 시대가 아닐까. 어쩌면 AI가 최정점에 다다른 거기에서야 '의료'만으로 돋아둔 무지를 깨달을 지 모르겠다. 인공지능이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질병을 더욱 정교하게 진단하는 시대일수록, 인간의 삶과 경험, 서사와 관계를 이해하는 다양한 의료의 관점이 오히려 더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만물은 이치를 공유하며 함께 호흡하는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존재의 고무적인 상태를 말하기 위한 이치는 단지 생리에 관한 것이 아니고, 몸 밖 더 넓은 세계의 이치와 맞닿아 있다. 육체의 힘을 강조하는 건강이나 체력과 같은 말로는 이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중략..동아시아의 관점은 건강에만 매몰될 수 없는 광의의 건강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존재의 좋은 상태를 말하기 위해 경계 지어진 몸 너모를 함께 포괄해야 하는 존재 이해의 방식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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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호르몬 - 비만과의 전쟁에서 발견한 질병 해방과 노화 종말의 서막
조영민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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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몬은 인간의 기계성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장으로써 끊임없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단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호르몬의 변화에 따라 생화학적 인과가 뒤따르면서 마치 몸은 거대한 기계가 입력과 출력을 주고 받는 시스템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동시에 생의 과정 속에서 다양한 변곡점마다 변주되는 호르몬의 면면은 오히려 어떤 장으로써 유동적이면서 흐르는 파동같은 의미로서의 몸을 상상하게 유도한다. 


이 책은 몸에 대한 기계론적 관점에서 노화와 비만 연구에서 획기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는, 위장관 호르몬인 인크레틴 호르몬을 다루고 있다. 위장관 호르몬은 다양한 장기와 상호작용하면서 우리 몸의 대사에 관여하고 있는데, 저자는 특히 당뇨병 치료의 권위자로써 위고비, 마운자로 등 현재 비만 치료제로 획기적인 성과를 보이는 약제의 주인공 격인 GLP-1과 GIP에 집중한다. 


GLP-1은 회장과 결장에서 주로 분비되는데, 인슐린 분비를 촉진해 혈당을 조절하면서도 동시에 저혈당을 방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음식을 인지할 때 GLP-1 제재를 투여하면 음식을 삼키지 않아도 배부름을 느끼게 되어 식사량을 줄일 수 있고, 위에서의 배출 속도를 늦춘다. 


GIP는 십이지장과 공장에서 분비되는 장 호르몬으로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면서 혈당을 조절하고, 지방 세포의 증식을 도와 지방 저장을 촉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GLP-1이 포만감을 조절한다면, GIP는 섭취한 영양분의 효율적인 처리를 돕는 것으로, 마운자로는 이 두 호르몬을 함께 활용하는 것이고, 위고비는 GLP-1을 활용하여 식욕을 억제한다는 것. 


흥미로운 점은 GLP-1이 심혈관 보호에도 효과를 보이고 있고, GIP의 경우에는 골 형성을 촉진한다고 한다. 


이들 호르몬은 다양한 질환에서도 치료 가능성에 청신호를 보여주고 있는데, 고지혈증, 신장병, 간질환 등에서 임크레틴 호르몬의 효과를 입증했고, 치매, 신경 퇴행성 질환에서의 가능성도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고 한다. 


혈당 스파이크를 막기 위한 식사법이나 천천히 먹기 등도 따지고 보면 GLP-1과 GIP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이니 바른 식습관이 천연 위고비나 마운자로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해도 비약적인 비유는 아닐 듯 하다. 


예전 어른들 말씀처럼 '밥심'의 기저에서 활동하는 위장이 어떻게 생명과 연결되는지 과학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흥미롭다. 다만, 기계론적인 관점만으로 슈퍼호르몬의 진면목을 모두 알아내어 제어하고 조정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은 의문이 남는다. 


개인적으로 기계적이면서도 동시에 장으로써 작동하는 우주론적 몸에 대한 관점에서 호르몬의 역할과 효능을 탐색하는 저작도 있었으면 좋겠다. 일상의 작은 습관들이 호르몬의 작동과 연계되어 변용되고 재구성되면서 생명 현상의 맥동과 파형들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추구할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 끊임없이 진동하면서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항상성이란 것도 고정된 것이 아니라 결국 생명 현상을 이루는 동력의 균형점을 맞추려는 시도가 아닐까 싶어서. 

이처럼 장 호르몬을 이용한 치료제 개발은 단순한 혈당 조절을 넘어, 체중 감량과 대사 개선까지 고려한 다각적인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다. 경구용 제재의 등장으로 환자의 편의성이 개선되고, 장기 지속형 치료제는 투여 빈도를 줄여 치료 순응도를 높이며, 다중 호르몬 타깃병과 병용 요법은 기존 치료 효과를 더궁 ㄱ그대화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러한 연구가 지속되리라 예상하며, 더욱 효과적이고 안전한 치료제들이 개발될 것으로 기대된다. - P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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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인간의 길을 묻다 (보급판) - 사기 130권을 관통하는 인간통찰 15
김영수 지음 / 왕의서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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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마천의 <사기>가 특별한 이유는 뭘까. 사건이나 영웅 중심의 역사에 익숙한 바, 권력가나 세도가는 물론 여성부터 치부한 자까지 다양한 인간 군상에 관심을 두고, 면밀한 삶의 길을 통찰한 방식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만큼 발군의 면모를 보인다. 


사마천의 인생을 한 마디로 압축한다면 '소명'이라고 할 수 있다. 태사령 사마담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젊은 시절부터 전국을 돌면서 지형, 다양한 이야기 등을 수집했고, 위대한 역사서를 쓰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가슴에 새긴다. 이후 흉노족과의 대결에서 투항한 이릉을 옹호하다 궁형을 받고 죽음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명예라면 목숨을 걸던 시대에, 그는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 이는 죽음을 이용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구차하더라도 끝까지 살아남아 역사서를 기술하는 데 천착한다. 


<사기>의 가장 큰 특징은 연대순으로, 왕을 중심으로 기술하는 역사 서술 방식을 버리고, 왕은 물론 권력 주변의 다양한 군상과 일반인까지 포집하고 이를 주제별로 엮어 교훈을 뽑아내는 데 주안점을 두는 기전체를 고안함으로써, 특별한 입체성을 옹립했다는 데 있다. 


더불어 권력을 지향하는 통찰뿐만 아니라 치부의 길, 비범하지 않았던 여성들의 삶까지 기록하면서 역사가로서의 시선을 권력의 정점에서 민중의 세세한 삶까지 포착하는 데까지 확장시키며 비범한 혜안을 보여준다. 


사마천의 지혜는, 자신의 삶은 물론이고 <사기>에 드러난 다양한 인물의 생을 단순한 권선징악의 구도 속에 가두고 있지 않는 데서도 발현된다. 


<사기>에서 표현되는 인물과 주제의 특색은 인물이 놓인 맥락 속에서 그 인물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현실을 읽어내고 생사를 넘어서는 바른 방향으로 관계를 맺어가는가를 교차시키면서, 올곧은 함의를 이끌어낸다는 점이다. 이러한 기술 방식을 통해 최선의 노력에도 뛰어넘을 수 없는 인간의 한계도 분명하게 추출하면서, 매 순간마다 달라지는 생의 궤적 속에서 찰나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상정하기에, 하나의 교훈만으로 만사형통할 수 없는 것이 인생임을 규명해낸다. 그러므로, <사기>는 늘 가까이 두고 나의 좌향과 정위를 가늠할 수 있는 이정표 같은 책임을 부정할 수 없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은 <사기>연구의 전문가가 직접 집필하면서 자신이 실제 방문하고 마주한 장소의 사진을 수록한 것인데, 사기를 읽고 나서 관련 장소를 임장하는 것도 의미있는 여행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는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고 과거와 현재의 변화를 꿰뚫어 일가의 말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 P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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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1~4 세트 - 전4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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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는 마음으로 투그리듯 읽어나가리라, 그렇게 마음 먹기까지 망설임의 시간도 꽤 흘러갔다. 바쁜 일상 속에서 의지를 다잡고 집중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 대한 의문도 있었지만, 톨스토이의 책을 진득하게 앉아 곱씹으며 읽지 않는 것은 뭔가 불경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것 같은 강박증도 한 몫했던 덧 같다. 


그럼에도 독서를 시작하게 한 힘은 순전히 작가가 드러내고 싶은 삶의 의미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은 어떤 열망의 추동이었다. 산란하는 가벼운 충고나 맥빠진 권고를 넘어서서 대문호가 포효하듯 쏟아내는 어떤 진실, 장문의 저작이 아니면 전달할 수 없는 묵직한 발견을, 지금이 아니면 체득할 기회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맹목적인 믿음 비슷한 감정도 일었던 것 같다. 


<전쟁과 평화>는 표면적으로는 피에르 베주호프, 안드레이 볼콘스키 공작, 마리야 볼콘스카야 공작 영애, 니콜라이 로스토프 백작, 나타샤 로스토바 등 세 가문을 대표하는 다섯명 주인공들의 성장기를 담고 있다. 


피에르는 사생아로 아버지의 죽음 후 러시아 최고의 부호 중 한 명으로 등극한다. 선량한 마음을 가졌지만 야무지기 보다는 상황에 휩쓸리는 청년으로 최고의 미녀인 엘렌과 사랑 없는 결혼을 시작하고, 방탕한 생활과 공허함에 지쳐 프리메이슨에 가입한다. 삶의 의미를 추적하던 그는 이를 통해 도덕적이고 선함을 추구하지만, 이내 흔들린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입 때 모스크바에 남아 포로로 잡히고, 포로 생활을 하면서 전쟁의 참상과 인간의 삶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나타샤와 결혼 후 다시 사회적 연대와 희망을 꿈꾼다. 


안드레이 볼콘스키 공작은 냉철하고 이지적이며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유형이다. 명예와 영광을 추구하는 인물로, 전쟁의 참화 속에서 두번이나 죽음의 고비를 맞는다. 아내의 죽음을 목도하지만, 그의 이상적 갈망은 멈추지 않는다. 처음 죽음의 고비를 맞으면서 적이지만 심취했던 나폴레옹의 졸렬함을 마주하면서 실망하게 되고, 이후 변심한 나타샤에 대한 번민과 적수에 대한 복수를 꿈꾸며 전장을 누비다가 죽음을 앞두고 나타샤와 극적으로 재회한다. 나타샤와 여동생의 돌봄을 받으면서 영광이나 이상의 허무함을 발견하게 되고, 죽음이 새로운 세계로의 문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나타샤를 용서하고 사랑을 받아들인다. 


마리야 볼콘스카야 공작 영애는 아버지에게 억눌리면서도, 안드레이의 어린 자녀를 돌보면서 기독교적 가치관을 삶에서 실천하는 인물로, 어떤 상황에서도 가정을 돌보고, 주변을 살피는 따스한 인품의 소유자다. 그녀의 외모는 뛰어나지 않지만, 니콜라이는 헌신적이고 신실한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하고, 마침내 그녀와 결혼한다. 


니콜라이 로스토프 백작은 밝고 낭만적인 청년으로, 친척인 소냐에게 결혼의 의지를 내보일 정도로 일견 충동적이지만, 로스토프 가문의 장남으로 나폴레옹과의 일전에 참여하면서 전쟁을 통해 명예를 얻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품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세가 기울자 집안의 경제적 책임을 떠 안고, 가족을 돌보면서 점점 책임감 있는 인물로 성장한다. 


나타샤 로스토바는 니콜라이의 여동생으로 밝고 아름다우며 재주가 많은 아가씨. 아무런 걱정 없이 자신을 표현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상처한 안드레이 볼콘스키와 사랑에 빠진다. 안드레이 공작과 약혼까지 했지만, 아나톨 쿠라긴의 유혹에 빠져 그와 도망치려는 계획까지 세우다 결국 파혼하게 된다. 감정에 솔직한 그녀는, 극적으로 죽어가는 안드레이 볼콘스키 공작을 만나게 되고, 그의 마지막을 지키게 된다. 이후 남동생 페챠의 죽음으로 부모님이 흔들리자 다시 생의 의지를 불태우며 일어서게 되고, 모스크바 탈환 후 피에르를 만나면서 부부의 연을 맺는다. 


이들 다섯명의 주인공은 <전쟁과 평화>를 관통하는 나폴레옹과의 전쟁을 통해 성장하는데, 이 배경이 되는 전쟁 자체가 또 하나의 주제를 펼쳐나간다. 톨스토이는 나폴레옹의 영웅화와 명령이 완벽하게 수행되는 전쟁을 그려내는 역사적 접근을 비판하면서, 전쟁은 결코 한 영웅적 인간의 의지나 천재적 면모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전장은 결코 명령대로 수행될 수 없음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소설적 장치로 피에르의 전쟁에의 자원이 중요한 삽화로 제시되는데, 명령 전달 체계는 물론, 러시와와 프랑스의 전쟁 목표, 지형적 입지, 병사들의 상태와 요구, 공과를 과장하려는 관행과 입신양명을 꿈꾸는 지휘관들의 욕망 등 세세한 요인들이 뒤엉켜 전장은 새로운 시공간으로 탈바꿈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러한 공간에서 무능하고 겁 많은 것으로 알려진 총사령관 쿠투초프가 오히려 지혜롭고 명민한 지휘관으로 묘사된다. 톨스토이는 전쟁을 이끄는 심연의 무언가를 포착하면서 나폴레옹의 붕괴를 예견하고, 끝까지 심연의 무언가가 도드라질 때까지 인내했다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쿠투초프의 혜안을 긍정한다. 


전쟁의 큰 흐름을 포착하는 노인의 안목과 더불어 중요한 인물은 러시아 병사 플라톤 카라타예프다. 피에르가 포로로 잡혔을 때 만난 카라타예프는 돌처럼 눕고, 빵처럼 일어난다면서 앞날을 알 수 없는 포로 생활 속에서도 단순하며 평온한 모습을 보여주며 피에르의 마음을 연다. 그는 죽음조차도 온전히 수용하는 인물로, 이동 중에 기력이 점점 떨어져 결국 총살된다. 


지휘관으로서의 쿠투초프만 전쟁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익명의 병사지만 전쟁 속에서 살고 죽으며, 자신의 방식대로 실존한 이들이 있었다는 점을 그려내면서, 톨스토이는 균형 감각을 잃지 않는다. 


이 소설에서 가장 특이하면서도, 소설의 주제를 드러내는 부분은 단연 <에필로그>와 <전쟁과 평화에 덧붙이는 말>이다. 역사가와 예술가의 역할에 대한 소회, 학문으로써 재단할 수 없는 실재의 삶에 대한 톨스토이의 주장은 흥미로우면서 동시에 엄숙하다. 어쩌면 그는 역사의 눈으로 재편되면 사라질 수 밖에 없는 다양한 삶의 편린들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사실이 아니라 진실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진짜 인간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전쟁과 평화>는 스토리로 읽는 소설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하다. 일부에서 소설이 아니라며 비판하듯 철학서이면서 새로운 역사서이면서 장엄한 서사시이기도 하다. 단순하고 소박한 삶, 수용하며 성장하는 생, 직면하며 인내하는 명. 역사를 이루는 모든 층위가 부딪히면서 개별적인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가며, 인간들은 부딪히면서 '전체의' 역사를 만들어 간다. 

"상거지보다 못하지 않은가. 저들이 강할 때 우리는 몸을 사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는 저들을 동정할 수 있다. 저들도 사람이다. 그렇지 않은가, 제군들?..중략..하지만 누가 저들을 이곳으로 불렀느냔 말이지. 자업자득이야. 개...자식들..."병사들은 아마 쿠투조프의 말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원수의 엄숙한 말로 시작되어 선량한 노인의 말로 마무리된 연설의 내용을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연설의 진심어린 의미는 전달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적에 대한 연민과 자신의 정당성에 대한 자각과 어우러진 위대하고 엄숙한 감정, 다름 아닌 노인의 이런 악의 없는 욕설로 표현된 바로 그 감정은 병사 한 사람 한사람의 영혼 속에 깃들었고 오래도록 그치지 않는 기쁨의 함성으로 표현되었다. - P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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