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물이 플라톤을 만났을 때 - 생물학과 철학의 우아한 이중주
김동규.김응빈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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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순식간에 사회가 공포와 불안의 도가니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목도하면서, 분절된 학문과 체계로 분석하고 결론짓는문제 해결 방식의 한계를 절감하는 요즘이다. 학문 간의 통섭, 시야의 교차, 논쟁의 융합이야말로 지금 코로나 사태를 마주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처방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생물학의 미생물을 철학으로 들여다보는 동시에  미생물을 매개로 철학을 생물학으로 해석하는 유연한 변주가 아닐까 싶다. 저자들의 겸손과 교류는 서로의 전문성을 인정하는 동시에 공통의 사유를 뽑아내는 데 탁월하다.

 

미토콘드리아 이야기로부터 공생의 삶, 구별과 분리로부터 파괴와 공멸을 견인하는 면역의 역설, 바이러스와 예술을 통한 개성있는 공공성 회복의 필요성, 밈과 도킨스의 한계, 카르페 디엠과 메멘토 모리, 인간중심주의의 함정, 과학시대의 철학의 중요성, 진리, 자유, 사랑을 향한 생명의 삼위지향성 등 총 12장으로 구성되어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진중하게 생각할 거리를 제시한다.

 

저자들의 문제의식은 한 마디로 미생물이 색출하여 박멸해야할 대상인지, 아니면 공생으로 나가야할 동반자인가에서 출발하여, 진리, 자유, 사랑을 함께할 연대의 주체임을 역설한다.

 

가장 인상깊었던 내용은 예술과 바이러스를 비교하면서 한나 아렌트를 인용, 자유가 박탈된 사적 영역, 즉 친밀감으로 얽혀진 개인, 가정에서 벗어나 개성있는 공공성을 실현할 공적 영역의 확대에 대하여 언급한 부분이다. 아렌트는 사람들이 진정한, 그리고 바꿀 수 없는 자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인 공적 영역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역설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공과 사를 가르는 기준인 자유가 구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녀에 따르면 자유는 자연적 욕구와 경제적 욕구로부터의 자유가 있는데, 이는 이미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유를 갖추었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둘째는 다른 시민들과의 평등한 관계 위에서 논의되는 자유로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고 평등한 상태에 놓여진다는 의미로서의 자유다. 셋째는 평등한 상태에서 타인과 경쟁하여 '차이에의 열정'을 마음껏 발휘한다는 의미에서의 자유다. 넷째, 이러한 자유를 통해 공적 사안에 대해 자신의 가능성을 최대한 실현하는 자유를 위미한다.또 아렌트는 공공성이란 타인과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광장 같은, 타인과 함께 공유하는 실제 세계로서의 공공성이자, 인간에게 불멸의 길을 제공하는 공공성, 즉. 법, 제도, 철학, 예술 등 공정 세계를 구축하는 공공성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녀의 주장에 비추어보면 코로나 19 사태가 보여주는 미생물의 역습을 두고, 우리는 과연 생존, 공정, 수용, 헌신 등이 허용되는 공적 존재로서  서 있는가 반문하게 된다. 공적 존재로서의 일련의 자유가 공고하지 않은 상황에서, 불확실한 사태에 대한 사적 존재들의 만인의 투쟁 같은 즉각적인 대응들은 그나마 존재하던 우리 사회의 공공성을 퇴보시키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소위 전문가라는 이들의 공허한 자문, 일률적인 정책과 정치의 한계 속에서 감염병의 주체이자 대상인 시민들의 목소리는 명멸하거나 침묵으로 이어진다. 광장과 공적 세계의 와해는 사적 영역의 각자도생과 맞닿아 일련의 대란으로 귀결된 느낌마저 든다.

 

의학적인 처치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감염병 대유행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해답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해결책의 방향은 정확하게 제시하는 그런 책이 아닐까 싶다. 성찰과 반추, 토론과 논의가 사라진 일방적인 대응의 문제점을 돌아보게 하는데도 유익한 단서를 제공한다.

살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생명은 어디에 있는가
지식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지혜는 어디에 있는가
정보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지식은 어디에 있는가 -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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