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말들 - 수많은 실패를 통해 성장하는 배움을 위하여 문장 시리즈
설흔 지음 / 유유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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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공부란 학문탐구를 의미한다. 처음엔 자녀교육서인가 싶었으나 그건 아니다. 옛 성현(주로 조선 유학자)의 글을 왼쪽에, 그 글과 관련된 이야기를 오른쪽에 실어놓았다.

문장에 대한 깊이있는 해설은 아니지만 옛 성현들의 사소한 에피소드와 학자들 간의 친분과 교류 이야기, 작가의 재치가 더해져 읽을수록 재미있다. 책을 찬찬히 읽다보면 옛 성현들이 어떤 자세로 학문에 임했는지, 그들이 이런 글을 남긴 시대적 배경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원문이 없는 게 아쉬웠지만 책의 맨 뒤에 글의 출처는 간단히 적혀있다. 이덕무와 유만주의 글을 꼭 찾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남았던 부분을 옮겨적어 본다.

- 공부도 혼자 하는 것이고 글도 혼자 쓰는 것이다. 그러나 공부와 글쓰기는 결국 세상을 상대로 하는 것이다. 그때 가장 필요한 건 진정성이다. 내 실력을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넘치면 넘치는대로 세상과 대화하는 것이다. (81쪽)

- 어떤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한다. 자신이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실감한다. (중략) 공부란 나의 미숙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민낯 그대로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85쪽)

- 공부는 어렵다. 공부 방법을 아는 건 더 어렵다. 공부 방법을 남에게 설명하는 건 더 어렵다. (107쪽)

- 사람은 왜 책을 읽고 왜 공부를 하는 것일까? 길을 잃고, 돌아올 방법을 잊어버리기 위해서라고 답할 수도 있겠다. 위험하다고? 물론 위험하다. 세상에 위험하지 않은 독서는, 공부는 없다. (139쪽)

- 파격에 약하다는 건 공부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자기만의 논리를 갖추지 못해 남들의 시선을 의식한다는 뜻이다. (147쪽)

- 이익은 수십 년 동안 직접 벌을 키우고 관찰했다. 그 과정에서 나온 글이 [벌의 역사(봉사)]이다. (중략) 이익이 벌을 기른 이유는 무엇일까? 이익의 또다른 글에서 답을 찾아본다. '선비들은 책에 있는 것을 외우기만 할 뿐이다. 스스로 체험하고 실천해서 세상에 기여하려고 하지 않는다.' (159쪽)

- 말 잘 하는 사람이 권위 있고 실력있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세상을 보며 나는 이황과 제자들이 주고받았던 편지를, 이익과 안정복이 주고받았던 편지를 생각한다. 공부란 어쩌면 말을 조금 줄이고 글을 조금 더 쓰는 것, 생각하며 또 글을 고치는 것, 글을 고치며 생각하고, 생각하며 또 글을 고치는 것,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2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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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이미정 옮김 / 북스토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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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보지 못했고, 책만 읽었다. 한글판과 영문판이 함께 있는데 일단 한글판만 읽었다.

노인의 몸으로 태어난 벤자민 버튼... 가족과 이웃들의 충격과 수근거림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인생을 꾸려나간다. 사랑을 하고 자식도 낳고 공부도 하고 군 생활도 하고 향락에 젖기도 하면서... 그러다 아기가 되어 죽음을 맞는다.

사실 재밌다는 생각없이 그냥 읽어내려가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멍~해졌다. 젊어 한 때 인생의 황금기를 맞다가 노년이 되어 맞는 죽음이나 거꾸로 흐르는 시간 속에서 아기로 맞는 죽음이나 결국 죽음의 모습은 다르지 않다.

죽음앞에서 화려했던 날들에 대한 기억을 잃어가는 벤자민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허망하고 덧없는 삶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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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들 주세요 사계절 중학년문고 2
앤드루 클레먼츠 지음, 양혜원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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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등장하는 단어는 누가, 어떻게, 왜 만드는 것일까? 또 그 단어는 어떤 과정을 거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상식으로 굳어져 정착되는 것일까?

이 책은 이런 심오한 질문에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해답을 보여준다. 호기심 많고 기발한 한 소년이 펜을 프린들이라고 부르면서 생기는 일련의 사건들이 긴박하게 이어져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특히 이 책에서 기억에 남는 인물은 그레인저 선생님이다. 프린들이란 신조어를 가장 반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닉의 파격을 누구보다 응원했던 인물... 제자를 위해 악역을 자처하고 정말로 열심히 그 역할을 완수한 그의 사명감이 존경스러웠다.

책을 다 읽고나니 문득 페터 빅셀의 <책상은 책상이다>가 떠올랐다. 자신만의 언어로 사물의 이름을 바꿔부르다 결국 세상과의 소통에 실패한 남자의 이야기와 <프린들 주세요>의 이야기가 다르면서도 묘하게 맞닿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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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까, 먹을까 - 어느 잡식가족의 돼지 관찰기
황윤 지음 / 휴(休)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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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식 축산(밀집사육)과 지나친 육식의 문제점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찍기 위해 돼지를 관찰한 이야기, 우리나라의 공장식 축산업에 대한 비판이 담겨있다.

우리가 생각없이 먹는 고기가 실은 살아있는 동물의 사체이며, 그 동물들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기쁨과 슬픔, 고통과 두려움을 가진 생명체라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또 우리가 육식을 하기 위해 살아있는 생명을 가둬 밀집사육 하면서 얼마나 잔혹한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직시하게 한다.

책 속에는 우리나라의 축산업에 대해 저자가 발로 뛰며 보고 경험한 현실부터 외국의 여러 사례와 통계결과까지 다양한 자료가 포함되어 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인간인 게 부끄럽고, 생태계에 해를 끼치지 않는 윤리적인 식습관이 무엇일지 진지하게 고민을 하게 된다.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큰 울림을 준 책 중 하나.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 우리는 정말 우리가 먹을 음식을 선택할 권리를 보장받고 있나? 식당, 급식, 방송, 광고... 온통 육류로 둘러싸인 세상에서 우리가 선택하는 음식들은 정말 우리의 선택인가, 아니면 시스템이 강요하는 선택인가? 공장식 축산이 아닌 농장에서 인도적으로 기른 동물을 먹을 권리는 주어지는가? 또 동물을 먹지 않을 권리는 존중되는가? 다른 것을 먹을 선택권은 주어지는가? (119쪽)

- 도살장과 자동차 조립 라인은 자동화, 기계화, 분업화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차이가 있다면 자동차 공장은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면서 부품에서 완성된 자동차로 '조립'되어 가지만, 도살장은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면서 하나의 온전한 생명체가 조각조각 '해체'되어 간다는 점이다. (139쪽)

- '무엇을 먹느냐'는 오랜 세월 권력의 문제였고 또한 취향의 문제였는지 모르지만, 어느순간 윤리와 정의의 문제가 되었고, 이제는 절박한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중략) 인간이 할 일은 분명하다. 덜 키우고, 덜 먹고, 생명을 생명으로 대우하는 일. 개인의 변화는 물론 법과 제도의 변화로 더 큰 변화를 일으키는 일이다. (231쪽)

- 고기를 먹기 위해선 누군가는 동물을 죽여야 한다는 전제를 우리는 너무 쉽게 잊는다. (281쪽)

- 아이들의 먹을 권리를 논하기 전에 이 사회가 알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동물이 어디서 어떻게 사육되고 도축되는지 알려주는가? 공장식 축산과 육식 위주의 식습관이 지구와 우리 자신을 병들게 하고 지구촌 이웃들을 기아와 빈곤으로 내몰고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알고 있는가? 무엇을 먹어야 사람과 동물, 지구가 건강할 수 있는지 아이들이 배우고 있는가? 부모와 학교의 잘못이 아니다. 어른들조차 알 권리를 존중받지 못한 채 살아왔다. (340쪽)

- 우리는 비인간 동물들의 편에서 증언자가 되어야 한다. 여성의 몸을 출산도구, 성욕 만족의 도구로 보는 폭력에 저항하여 여성들은 '나의 자궁은 나의 것'이라 외친다. 그렇다면 동물의 몸을 출산도구, 고기생산 도구로 보는 폭력에 저항하여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자궁은 나의 것, 그리고 너의 자궁은 너의 것'이라고. (3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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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처럼 문지 스펙트럼
다니엘 페낙 지음, 이정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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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 다니엘 페나크의 에세이. 강압적인 독서교육을 비판하고 책 읽기의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교육서적이 아니라 에세이이기 때문에 문체가 화려하고 그야말로 문학적이다. 번역체가 적응 안 돼 초반엔 고전했지만 읽을수록 깊은 맛, 감칠맛이 어우러진다.

작가는 아이들이 독서에 흥미를 읽게 된 것이 교사나 부모가 독서를 강요하고 책을 학습이나 시험의 도구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즐거움 이외의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 '무상성'이 보장돼야 독서의 즐거움을 되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두껍진 않지만 차분하게 곱씹으며 정독하기 참 좋은 책, 올해 만난 책 중 가장 즐겁게, 집중해서 읽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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