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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반양장) ㅣ 반올림 1
이경혜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유미는 어느 날, 오토바이 사고로 세상을 떠난 친구 재준이 엄마의 전화를 받는다. 재준이 엄마는 일기장 한 권을 건네주며 자신은 도저히 못 읽겠으니 대신 읽은 후 이야기를 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 집으로 돌아와 일기장을 펼친 유미, 일기장 첫 장에는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내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책은 유미가 친구 재준이의 일기를 읽으며 재준이와의 추억을 회상하는 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을 경험한 뒤 유미가 겪는 마음의 고통, 죽어가는 친구를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등이 잘 드러나 있다.
또한 일기 속에는 겉으로는 어리고 착한 학생이지만, 마음 속에 남몰래 깊은 사랑의 상처를 지니고 있던 재준이의 내면이 오롯이 담겨있다. 나이어린 학생이지만 진심어린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고, 거절당한 상처를 드러내지 못한 채 괴로워할 수도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이 책을 보며 새삼 깨달았다.
그러나 유미와 재준이를 각각 놓고 보면 감동적인데, 두 이야기가 어울려 있는 책 전반은 그다지 감명깊지 못했다. 두 아이가 서로의 마음을 열고 가까워지는 과정은 허술하고, 일기와 회상이 반복되는 구성은 지루하며, 일기를 다 읽은 후 갑자기 재준이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유미의 변화는 엉성하다.
180페이지 밖에 안되는데 너무 많은 내용을 우겨넣으려 한 것도 작품의 완성도를 떨어뜨린다. 작가는 이 짧은 소설 안에 결손가정의 문제, 학생을 이해할 줄 모르는 문제교사에 대한 비판, 학생의 개성을 존중하지 않는 공교육에 대한 불만, 죽음을 경험한 청소년의 심리변화를 한꺼번에 담고 있다.
정작 재준이의 죽음과는 별 관계가 없는 이런 주제로 작가의 시선이 분산되다 보니 주요 주제인 "죽음"에 대해 깊이있는 성찰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첫머리에서 "내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라는 도발적이고 진지한 질문을 던져놓고, 마지막에 "네 죽음의 의미는 내가 너를 다시 볼 수 없다는 뜻이지."라고 대답하는 것은 그야말로 '용두사미'라 아닐런지....
그리고 또 하나, 사소한 것이긴 하지만 요즘 중학교에는 사지선다형 문제도 없고, '정학'이라는 제도도 사라졌다. 문제는 모두 오지선다형이고, 정학 대신 교내봉사나 사회봉사와 같은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이렇게 바뀐 것이 10여 년이나 되었는데, 아직도 사지선다형 문제를 풀고, 정학당한 동생 때문에 속상해하는 유미와 재준이의 모습은 현실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청소년 소설에서 죽음은 다루기 힘든 내용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부족하고 엉성하고 아쉬움이 많아도 주제를 다루고 의미를 천착해가는 작가의 노력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한꺼번에 담으려 했던 많은 주제들을 하나씩 끄집어내어 깊이있게 다루면 감동과 재미, 교훈을 두루 갖춘 훌륭한 작품이 탄생할 수 있으리라.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