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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보, 내 인생 ㅣ 반올림 2
미카엘 올리비에 지음, 송영미 그림, 조현실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나라에서 비만은 단지 몸무게가 많고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뚱뚱한 사람은 미련하고 게으르며, 자기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열등한 인간 취급을 받는다. 영화 '코르셋'에서 뚱뚱한 여주인공이 '날씬하고 예쁜 애들이 공부 잘하면 못하는 게 없다고 칭찬하던 사람들이 뚱뚱한 내가 공부잘해 장학금 받으면 독한 년이라고 하더라.'라고 한탄하던 세태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뚱뚱한 사람에 대한 편견은 외국도 다르지 않은 듯 하다. 소설의 주인공 벵자멩 역시 뚱뚱한 청소년이다. 89kg 남짓으로 시작했던 벵의 몸무게는 소설의 뒷 부분으로 갈수록 무거워진다. 그러나 벵이 처음부터 자기 몸무게에 위기의식을 갖고 다이어트를 시작한 건 아니다. 먹는 걸 삶의 희열로 생각하는 사춘기 소년에게 다이어트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한 건... 바로 소녀 클레르이다.
소설은 처음으로 사랑의 떨림을 경험하는 사춘기 소년의 마음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수영장에서 클레르를 만난 벵이 자신의 뚱뚱한 몸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모습은 귀엽고 천진하면서도 안타깝다. 사랑을 느끼면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가, 거절당한 뒤 자포자기하여 방황하는 벵의 모습은 비만이 단순히 몸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과 정신의 문제이고, 식이요법과 운동만이 해결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클레르의 사랑과 더불어 벵의 마음을 움직이는 또 하나의 기둥은 가족의 사랑이다. 책에서는 크게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부모님의 이혼과 아버지의 외도는 사춘기 벵의 마음에 큰 상처로 남았을 터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의 애인과도 원만한 관계를 맺게 되고, 어머니 역시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꾸려가는 것을 보게 되면서 벵의 마음도 차분해지고 자기 자신을 돌아볼 여유를 갖게 되지 않았을까?
다만 아쉬운 것은 벵의 경우를 우리나라 청소년의 경우에 꼭 대입시키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비만 청소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이성친구를 사귀지 못하게 되는 것보다 학교에서의 집단 따돌림이나 취업 문제 아닐까? 우리나라 아이들이 보기에 벵의 고민은 사치스러워보일 수도 있다는 느낌이다.
그래도 이런 청소년 소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요즘 아이들의 행운이자 행복이다. 시험 때문에, 학원 숙제 때문에 제대로 된 청소년 소설을 읽지 못하고 살아왔던 우리의 아이들이 방학기간이나마 좋은 책을 벗삼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