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이 살아 있는 미술관 이야기
클레르 다르쿠르 지음, 신성림 옮김 / 비룡소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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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술관이나 명화에 대한 어린이 책들이 최근 들어 참 많이 쏟아져 나왔다. 대부분의 책들이 어린이들에게 명화를 이해시키는데 치중했다고 볼 수 있겠다. 이 책은 조금 색다른 시도이다. 인류와 역사를 공유하며 살아왔고 인류의 미술에 꾸준히 나타난 동물들의 그림과 조형물만을 소개하고 있다.

  연령이 낮은 어린이들에게는 단순하게 동물그림이나 동물형상을 표현한 다양한 작품들을 보여줄 수 있는 책이며, 좀 더 나이든 어린이들에게는 동물을 그리거나 조형물로 표현하는 다양한 방법들에 대한 창의적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책을 보는 것이 가능하다.

  책 뒤편에는 각각의 그림에 대한 시대적인 설명이나 미술사 속에서의 위치들에 대한 소개, 그리고 예술가에 대한 흥미 있는 일화도 소개하고 있어서 전문적인 단계의 지식까지 심화가 가능하다. 

  인류가 동물을 그린 것에 대한 논의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는 의미에서의 그림, 사냥기술이나 시기에 대한 지식 전수를 위한 방편,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심미적 만족 등등이다. 어떠한 이유이든 우리와 지구를 함께 쓰며 함께 살아오는 동물들에 대해 인류의 지속적인 관심이 있었던 것만큼은 확실하다.

  ‘예나 지금이나 미술은 늘 노아의 방주 안에 있다.’고 말한 프랑스의 소설가 에르베 바쟁의 말은 간결하면서도 많은 의미를 포함한다. 예술 속에서 나타나는 생물들은 지구상에 살고 있는 생물들의 기록이며, 지구상에서 사라져버린 앞으로 사라질 위험에 처해있는 생물들에 대한 기록인 것이다.

  인간이 표현하는 대상으로서의 동물뿐만 아니라 인간으로 인해 위험에 처하기도 하는 또 다른 종으로서의 동물들에 대한 생각도 아이들에게 심어준다면 더욱 의미 있는 책읽기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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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물 고개 비룡소 전래동화 9
소중애 글, 오정택 그림 / 비룡소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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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옛날 옛날 한 옛날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렇게 시작하던 이야기를 할머니로부터 듣고 싶어서 졸랐던 기억이 난다. 최대한 자연의 리듬을 그대로 따르던 농촌생활은 해가 지면 이른 저녁을 먹고 곧 불을 끄고 자리에 눕는 생활이라서 어둠 속에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이 피기 일쑤였다. 할머니께 이야기를 청하면 할머니는 어서 자라고 두어 번 거절을 하시지만 꼭 ‘옛날 옛날 한 옛날에’ 하며 마치 노랫가락같은 특유의 음률을 만들어내며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바로 그런 구수한 구전의 리듬을 작가가 최대한 살리고자 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어머니가 뭐라고 말을 해도 “이예”라고 하는 착한 총각의 대답도 읽을수록 재미있는 하나의 리듬이 된다. 총각이 어디를 가든지 가져가는 주먹밥도 리듬이 된다.

  나무하러 가는 총각 지게 다리에는 보리 주먹밥이 대롱대롱
  (...) 총각의 괭이자루에는 주먹밥이 대롱대롱

  노모와 총각만 등장하며 재미난 리듬 속에서 총각의 효심을 강조하던 이야기는 갑자기 총각이 고갯마루에서 단물샘을 발견하면서 달라진다. 단물장사가 잘되어 돈을 벌게 된 총각이 돈 계산하고 그 돈으로 무엇을 할까 궁리하느라 도무지 노모의 봉양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이야기의 리듬도 초기의 느긋한 리듬과 달리 조금도 급박해진다. 결국 총각은 단물에 더욱 욕심을 부려 단물샘을 쾅쾅 파게 되지만 단물샘이 말라버린다. 단물 팔 일이 없어진 총각은 노모에게 돌아간다. 허망한 결말이지만 효심을 강조하고 허황된 욕심을 경계하는 교훈을 주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아이들의 예쁜 동화책을 보면서 예쁜 책이 많아서 참 부럽다는 생각을 하지만, 책이 없는 대신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는 옛이야기에 대한 간절한 갈증이 없다는 점에서는 조금 안타깝기도 하다.

  이 책은 외형에도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하다. 옛 이야기의 분위기를 살리고자 한지 분위기가 나는 미황색의 내지를 사용했으며 우리의 민화등에서 볼 수 있는 전통문양을 이용한 판화그림을 차용해서 우리 정서를 반영하고자 했다. 두고 두고 펼쳐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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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터는 뭐든지 자기 멋대로야 비룡소의 그림동화 135
케빈 헹크스 지음, 이경혜 옮김 / 비룡소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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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을 보면 무슨 내용의 책일지 짐작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책의 안타까운 점이다. 제목을 보고 이 책은 아마도 어린이들의 생활습관 바로잡기 책 쯤으로 짐작했었다. '자기 멋대로'라는 표현이 주는 부정적 어감때문이다. 짐작은 빗나갔고, 간단히 말하자면 서로의 개성을 다 존중해주는, 아니 더 나아가서 서로의 개성마저도 모조리 흡수해서 좋아해버리는 체스터식 친구사귀기 이야기다.

  책의 초반부에는 체스터의 별난 '자기 멋대로'이야기들이 나열된다.:

          샌드위치는 언제나 세모꼴로 잘랐고,
          침대에서는 언제나 한쪽으로만 내려섰고,
          밖에 나갈 때면 반드시
          신발 끈 매듭을 두 겹으로 묶었지.


  체스터의 친구 윌슨도 마찬가지다. 둘은 '자기 멋대로'인 서로를 닮아서 두 친구는 항상 자전거를 같이 타고, 같이 책을 읽고 등등 누가 누구인지 헷갈릴 정도로 똑같은 행동을 하며 잘 지낸다.

  그러던 어느날 그 동네에 릴리가 이사를 온다. 릴리도 역시 '자기 멋대로'하는 아이였기에 책을 읽고 있던 나는 릴리로 인해 체스터와 윌슨에게 어떤 위기가 닥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어른의 생각이다. 릴리의 신기한 행동들에 관심을 가지던 두 친구는 릴리가 하는 '자기 멋대로'의 행동들을 모두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릴리도 두 친구들이 지금까지 공유해온 놀이들을 배운 것은 물론이다. 이제  체스터, 윌슨, 릴리 이렇게 세사람이 친구가 되어 또다른 공동의 문화를 다시 만들어간다.

  아이들이 가진 무방비적인 흡수력과 호기심을 잘 표현하면서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친구사귀기의 미덕을 가르쳐주는 책이다. 귀여운 생쥐 캐릭터로 표현되는 주인공들도 너무나 사랑스럽다.

  모쪼록 아이들이 이 놀라운 긍정의 힘을 더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이 세 친구들에게는 그들의 '자기 멋대로'의 행동을 그 아이만의 특별함으로 바라봐주는 부모님들이 있다는 것도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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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그리는 페인트공 쪽빛문고 12
나시키 가호 지음, 데쿠네 이쿠 그림, 고향옥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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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의 마음을 읽어 상대가 주문하는 색보다도 더 마음에 드는 색을 칠해주는 페인트공에 대한 이야기이다.

  페인트공으로 일하는 싱야는 주문한 색을 칠해주지만 늘 불평인 손님들때문에 몹시 어렵다. 그러다 싱야는 '불세의 페인트공'이었던 아버지의 묘비를 방문하기 위해 프랑스로 떠난다. 프랑스로 떠나는 배안에서 '위트릴로의 흰색'으로 배를 칠해달라는 싱야의 아버지를 안다는 신비의 여인을 만난다.:

  "그래요, 기쁨과 슬픔, 들뜬 기분과 쓸쓸한 기분, 분노와 포기의 감정이 모두 담긴 위트릴로의 흰색. 세상의 혼탁함도, 아름다움도, 덧없음도 모두 머금은 위트릴로의 흰색 말이에요."(p.24)

  아버지의 묘비는 찾지 못했지만 신비의 여인에게서 아버지의 붓을 전해받고 온 싱야는 그때부터 손님이 원하는 것보다도 더 손님의 마음에 드는 색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아버지의 붓을 머리맡에 두고 잠들면 그는 꿈 속에서 손님의 진짜 마음을 알 수 있는 장면들과 만나게 되고, 그것을 힌트로 자신만의 색을 창조하여 손님의 주문을 완수한다.

  외로움을 느끼는 아가씨에게는 활기를 주는 레몬옐로우 색으로, 현관문을 칠해달라는 손님에게는 행복한 추억이 스미는 색으로, 자유로워지고 싶은 영혼을 가진 이에게는 갈색에 가까운 빨강색을 테라스에 칠해준다.

  그렇게 몇십년이 지나고 싱야는 위트릴로의 흰색을 주문했던 여인의 방문을 받는다. 그 여인의 손을 잡고 싱야는 떠난다. 그것이 바로 이 생의 마지막이다.

  신비로운 전설같은 분위기를 띠는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떠한 교훈을 알아야 한다고 강요하지도 않으며, 어떠한 슬픔을 느끼라 강요하지도 않는다. 무엇을 느껴야 한다고 숨긴 것도 없다. 진짜 이야기의 재미, 신비로움에 빠질 수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 이야기만이 가진 매혹의 힘을 알게해주는 이야기이다.

  삽입된 일러스트들이 모두 빛바랜 벽화들처럼 신비롭고 오묘한 색채들을 띠고 있어 이야기의 신비감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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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 5 - 리듬 편 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 시리즈 5
최승호 지음, 윤정주 그림 / 비룡소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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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시가 출제됐는데, 나도 모두 틀렸다’
  2009년 수능이 끝나고 최승호시인은 이렇게 말하며 우리나라의 문학교육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었다. 시인은 낱낱이 글자를 해석하고, 행간을 뒤져 시대적 의미와 숨은 비유를 찾는 데 열중하는 언어교육에서 놓치고 있는 바를 강조하고 싶었던 듯 하다.:

  ‘시를 몸에 비유해 보자. 시의 이미지는 살이고 리듬은 피요, 의미는 뼈다. 그런데 수능 시험은 학생들에게 살과 피는 빼고 숨겨진 뼈만 보라는 것이다. 그러니 틀리는 게 아닌가 싶다.’
  ‘예를 들어 내가 쓴 ‘너구리, 너 구려. 너 구린 거 알아’라는 시를 보자. 이게 모국어의 맛과 멋이다. 그런데 이 시의 주제가 뭐냐. 시의 사조(思潮)가 뭐냐. 시인은 어느 동인 출신이냐 묻는 게 수능 시험이다. 그런 가르침은‘가래침’같은 거다.(2009. 11월 중앙일보)

  언어를 배우는 것은 어린 시절에 저절로 익혀지는 점을 생각하면 참 쉬운 것이면서도, 또 바르고 아름답게 사용하기를 배우는 데에는 평생이 걸리니 참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특히 외국어를 배우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무리 배워도 모국어를 하는 사람들의 말 맛을 따라가기가 힘들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단어를 외울 수는 있지만 그 단어를 이용해서 리듬있는 시를 짓거나 농담을 하라고 하면 힘들어진다.

  말놀이 동시집 시리즈의 다섯번째 책인 이 책의 주제는 리듬이다. 우리말을 이용해서 만들 수 있는 리듬을 익히고 그 리듬에서 생겨나는 또다른 말의 재미와 우연잖게 생성되는 중의적 의미를 알아차리는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한마디로 다 ‘말장난’들이다. 다시 말하면 시인이 말했던 ‘모국어의 맛과 멋’이다.
  ‘깨비 깨비 도깨비’. ‘달, 달, 달팽이’ 같은 반복을 이용한 리듬만들기가 가장 많이 나온다. 다음은 동음이의어를 이용한 말놀이들이다. ‘달 뜨면 달 이고/ 더듬 더듬/ 밤길 홀로 가는 달팽이(p.12)’나 ‘자네가 지게를 지게(p.72)’등이다.
  단어를 분절하거나 합체하여 리듬의 재미를 살리는 동시에 또 다른 뜻을 유도하는 시들도 있다. ‘간장 항아리에 장맛비/ 무슨 장맛이냐 장맛비(p.128)', '등대에 등 대/ 등 대/ 사진 직어 줄게(p.134)’

  짐작하겠지만 소리내어 읽으면 말들이 꼬이며 만들어내는 기묘한 리듬들에 혀가 간지러워 웃게 된다. 어떤 시들에서는 캘리그램(calligram)같은 효과를 주어 글자가 만들어 내는 그림을 보게 된다. 띄어쓰기의 묘미 또한 알 수 있다.
  이 책의 또 다른 강점은 그림이다. 시인이 시를 통해 보여주는 상상력 가득한 이야기, 그 이상의 것을 그림이 보여준다. 시의 코믹한 내용을 그린 그림을 보고 웃게되는 작품들도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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