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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배꼽, 그리스 - 인간의 탁월함, 그 근원을 찾아서 ㅣ 박경철 그리스 기행 1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한창 안철수라는 이름이 한국 정치계에 새로운 이슈로 자리 잡기 시작할 무렵, 대중은 안철수의 이야기를 혹은 그의 생각을 듣고 싶어했다. 안철수에게서 만족할만한 답변이 나오지 않는다는걸 안 대중은 그의 가까운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다. 과연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냐고 그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 같냐고. 그 때 안철수와 청춘콘서트를 하면서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박경철에게 사람들의 관심을 쏠렸으나 그는 묵묵무답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그는 더 어느 순간 한국에 없었다. 그의 트위터에는 그가 그리스 어느 곳을 여행중이라는 사실만 간간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가 그리스를 여행한 결과물이 이런 책으로 출간 될 줄, 아니 그가 그토록 오랜 시간 그리스라는 땅을 열망한지 그때는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리스는 소위 조상 잘 만난 덕에 걱정없이 사는 나라라고 생각했다. 선조들이 하나씩 쌓아놓은 '그리스 신화'로 대표되는 국가, 선조들이 지어놓은 문화와 관광으로 나라의 부를 창출하는 나라, 그러면서도 경제 위기를 넘기지 못하고 유럽경제를 휘청이게 한다는 오욕을 짊어진 나라. 더도 덜도 말고 그리스는 딱 그만큼의 나라이다. 그런 그리스를 박경철은 이십년전의 꿈을 이루기 위해 배낭하나 매고 니코르 카잔차키스의 그리스를 자신의 걸음으로 더듬는다. 그래서 나온 책이 이 책이다. [문명의 배꼽, 그리스]. 이 책은 저자의 말에 따르면 앞으로 열권 이상의 시리즈로 기획이 되어 있다고 하는데 과연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처럼 일년에 한권씩 긴 호흡으로라도 끝까지 완주할 수 있을지 기대가 크다.
[문명의 배꼽, 그리스]는 기행문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인지 ,편년체가 아닌 공간중심의 서술을 택했다. 굳이 비교하자면 시오노 나나미의 연대기적인 서술로는 기행문이라는 양식을 포괄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미케네에서는 시간을 관통하는 미케네 문명의 시작에서 끝까지 연결된 이야기를, 페드라를 지나면서는 그리스 신화에 원형을 둔 비극과 영화 [페드라]이야기를, 스파르타를 지나면서는 영화 [300]과 스파르타 교육으로만 기억되는 스파르타의 진짜 모습을 서술한다. 그리스에 대해 잘 모르는 나지만 착실한 자료조사를 했음이 충분히 보인다. 역시 1권의 백미는 스타르타 이야기라고 볼 수 있는데, 여지것 지금까지 스타르타에 대해서 이렇게 자세하게 이야기한 책을 적어도 내 주변에 없었다. 물론 다른 역사책을 통해서 박경철이 적인 이야기가 얼마나 사실에 부합하는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가 그의 이야기인지를 구별하는 작업을 해봐야 할겠지만 - 그리스에 정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더 할지도 모르고, 혹시 그의 책이 정말 유명해지고 시리즈가 계속 나아간다면 좋든 싫든 학계에서도 이야기가 나오지 않겠는가 - 적어도 나같은 일반 독자에게 흥미를 일으키기를 목표로 잡았다면, 충분한 책이었다.
재미난 점은 박경철의 기행기는 '아는 만큼 보인다'의 완결판이라는 점인다. 그는 쉼없이 그리스 신화를 혹은 고대의 그들을 말하면서 오늘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리스신화가 그냥 신화로 끝나는 것이 아닌 끊임없이 변주되어 반복되는 이유를, 역사는 되새김질하는 이유를, 한 작가를 쫓아 그리스를 더듬어가는 그 과정을 그는 결국 오늘 이곳에서 살고 있는 나의 삶을 위해서라는 점이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지를 과거를 보고 지금을 고민한다. 역사의 먼지로 사라진 스파르타 이야기를 길게 꺼내는 것도, 풍성하다못해 입이 딱 벌어질만큼 그리스 신화를 풀어내는 것도 모두 결국 다 그 때문이다.
기대보다는 신화를 풀어내는 일에 초점이 많이 맞춰서 있었기 때문에 기행문과 '오늘의 그리스'를 읽고 싶었던 나에겐느 아쉬움이 있었지만, 시리즈의 시작으로는 나쁘지 않은 이야기였다. 열권을 달려가야 하는 이야기인데, 이 정도 선선히 둘러보는것도 좋겠다 싶은 기분이랄까. 그의 이야기속 그리스 신화와 비극들을 찾아 읽어보고 싶고, 그리고 곰곰히 지금 나를 둘러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