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죽음의 연대기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 민음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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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케스의 책은 대학 시절 꽤나 열심히 읽었다. 우와 라고 감탄하며 무릎을 치며 읽었던 그의 마지막 책은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었다. 그 뒤로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을 읽고서는 심드렁했고 [꿈을 빌려드립니다]도 읽었으나,  [꿈을 빌려드립니다]는  이야기간에 호오가 너무 극명하게 갈리는 이야기가 많았고 중편 정도의 이야기들이라 무언가 설명할 수 없지만 2%즈음은 부족한 그런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다시 그를 만난거다.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라는 이름으로.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는 한 청년의 죽음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엄청나게 호화롭고 모두들 즐거운 결혼식날 신부가 처녀가 아니라는 이유로 친정집으로 보내진다. 결혼식에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신부의 두 쌍둥이 오라비는 동생에게 그녀의 순결을 빼앗은 남자가 누구인지를 묻고, 동생이 지목한 그 남자는 두 쌍둥이 형제에게 살해된다. 그것도 벌건 대낮에 마을에서, 아니 정확하게는 자신의 집 앞에서. 기막힌 점은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그의 예고된 죽음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는 말이다. 


화자는  이 사건을 기록하는 제 3자이며, 죽은 자와는 그리 멀지도 아주 가깝지도 않은 인물이다.  화자는 과거에 벌어졌던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산산히 흩어진 사건을 하나의 그림으로 이어나간다. 결국 2가지가 겹쳐진 부분이었는데, 마을 사람들의 방관과 실제 살해당안 남자의 불운이 겹쳐진 결과임을 기록한다. 


첫 번째로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마을사람들의 방관은 그들의 기억을 더듬어 서술한다. 누군가는 쌍둥이 형제의 뜻에 공감했기 때문에 침묵했다. 마치 실추된 처녀의 명예는 원인 제공자의 죽음으로만 해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흡사 명예살인과 비슷하다. 물론 둘은 비슷하지 않아 보일 수도 있지만 소위 집안의 실추된 명예를 해결하는 방식은 궁극적으로 그 실추된 명예의 원인을 이유도 묻지 않고 제거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어떤 자들은 범행을 알고 있었으나, 실없는 말대로 정말 그럴 줄은 모르는 사람도 있었고, 누군가는 그들을 말려보려 했지만 시간이 엇갈리고 길이 엇갈려 버린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을 따라가봐도 어떻게 도무지 쌍둥이 형제의 살인예고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방관했는지 - 결론적으로는 방관이 아닌가 - 놀라울 뿐이다. 두 번째로 제기된 청년의 불운은 기막히다는 말 외에는 말이 필요없다. 모든 불행에는 그런 후일담이 붙게 마련이다. 그가 그 날 아침에 있었던 일 중에 하나만 안 했으면 그런 일을 결국 벌어지지 않았을텐데 라는.


의도를 했건 아니건 모두가 침묵한 가운데 그야말로 예고된 죽음이 한 청년에게 찾아들어 버린 이야기와 기록. 제목이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라고 출판되었는데, '연대기'라는 제목이 정말 본문의 제목인지가 꽤 궁금해졌다. 제목에 붙은 저 '연대기'라는 단어 하나 만으로 책의 무게감이 얼마간은 - 사실은 꽤 - 커졌으니 말이다. 매우 적절한 단어이다. 딱 맞는 단어랄까. 아주 오랜만에 다시 마르케스에 대한 감탄을 다시금 느끼게 한 책,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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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06
앤토니어 수전 바이어트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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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전공 수업 중에 시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2학년 때는 영국시 수업, 3학년 때는 미국시 수업을 들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영국시 수업은 처참했으나 미국시 수업은 꽤 나쁘지 않았다. 사실 2학년때는 뭣도 모르고 시 수업을 들어갔는데 - 무려 한글로 된 시도 잘 읽지 않는 내가 말이다 - 미국시 수업을 듣고 1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다시 읽으니 조금 어렴풋하게 알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제대로 시를 읽을 준비가 되지 않았던 내가 처음 접한 영국시는 나를 기겁하게 만들었지만, 다시 읽은 시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아, 이래서 시를 읽고 쓰고 연구하는거구나. 1세기도 전에 사람들이 고민하던 이야기와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구나, 아직도 이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았구나, 아니 어쩌면 영원히 해결되지 않겠구나. 그리고보니 그 시수업을 전공하셨던 교수님은 자신이 하고 있는 연구와 시에 대한 열정, 학생을 가르치는 일에 대한 애정이 분명히 묻어나는 내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그 교수상에 가장 부합하는 분이었다.  [소유]를 읽으면서 아주 오랜만에 잘 기억나지도 않는 그 시절 내가 그리고 그 선생님이 기억났다. 


[소유]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 가상의 시인 랜돌프 헨리 애쉬와 그 시인의 숨겨진 사랑이었던 크리스타벨 라모트의 사랑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부인에 대한 사랑으로 유명한 애쉬의 책에서 한 여인에게 보내는 절절한 편지 초안을 발견한 주인공 롤런드 미첼이 R.H.애쉬와 애쉬의 사랑이었던 C.라모트의 사랑을 추적하는데, 그 과정에서 C.라모트의 전문가인 모드 베일리의 도움을 받게 된다. 미첼과 모드 베일리 모두 각자 R.H.애쉬, C.라모트의 전문가인 그들은 함께 그들의 편지를 찾아나서고, 그 둘이 함께 했던 여행길을 따라 걷고, R.H.애쉬 주변인들의 일기와 남겨진 편지를 더듬어가며 그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조각을 맞춰나간다. 그들의 사랑이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타올랐는지, 어떻게 끝이났는지. 그들은 마냥 자신들의 발견에 감탄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당연히 롤런드와 모드 주변에는 그들이 발견한 내용을 탐내는(?) 학자도 있으며 그 학자를 피해 자신들이 알아낸 내용을 끝까지 추적하고 이야기를 맞춰나가는 이들의 모습을 흥미로움 그 자체이다.


이 책의 백미는 구성이다. R.H.애쉬와 C.라모트의 사랑을 추적하는 롤런드 미첼과 모드 베일리의 이야기가 서로 엇갈려서 등장하기 때문인데, 심지어 두 사람간에 보여주는 미묘한 감정에서도 그 엇갈림과 충첩은 계속된다. 미첼과 베일리가 시작한 순수한 학문적인 호기심으로 시작한 추적이 주변인들에게 오해를 사고 - 그들은 가장 편하게 분류하자면 남자와 여자가 아닌가 - 그 오해를 부정하다가 결국 서로에게 끌리고 있음을 인정한다. 재미난 점은 미첼과 베일리가 서로에게 보이는 호의와 애정이 정말로 사람들이 흔하게 말하는 사랑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부분이다. 내게는 미첼과 베일리의 관계를 사랑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사건을 추적하는 동료애에 가깝게 보이기 때문이다. 기존 연구를 모두 뒤짚을 수 있는 엄청난 발견 앞에 그들의 연구와 추적은 동지애에 훨씬 가깝게 시작한다. 물론 후반으로 흘러갈 수록 이런 동지애에서 애정으로 발전하는 모습이 간간히 포착되지만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도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애정보다는 동지애에 훨씬 가깝다. 극단적으로 미첼에게 있던 연인 발과 베일리의 가장 큰 차이점은 미첼의 정신세계를, 그의 학문을 이해해 줄 수 있는냐가 가장 크게 눈에 들어오는 점이라고 생각되니 말이다. 


사실 이러한 애정은 R.H.애쉬와 C.라모트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R.H.애쉬와 C.라모트의 관계는 시인으로서 서로 시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이 되었다. 물론 그 시작이 플라토닉한 관계에서 애로스적인 관계로 계속 발전을 해나가지만, 두 시인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을 사랑이라는 단어로 정의했을지는 의문이다. 또한 미첼의 여인인 발이 R.H.애쉬와 C.라모트의 관계에서는 애쉬부인이 맡고 있다는 점도 흥비롭다. 모드 면에서 두 시인의 이야기와 두 학자의 이야기는 명확하게 같은 구조를 취하고 있다. 미첼과 베일리의 모습처럼 - 아니 어쩌면 R.H.애쉬와 C.라모트의 관계가 먼저일지도 모르지만 - 둘의 애정은 정신적인 면이 훨씬 더 부각되는 점은 소설 내내 강조된다. R.H.애쉬와 C.라모트의 사랑이 미첼과 베일리의 사랑과 조금 다른게 다가오는건 그들의 사랑에 어쩌면 그들도 끝내 알지 못했을 결실이 남았다는 점이다. 당사자들 조차도 알지 못했지만 소중하게 기억될 그 따스한 기억을 말이다. 


소설 [소유]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육체가 아닌 서로의 정신세계에 반한 사랑에 대해서, 그리고 그 사랑의 발전에 대해서. 이 이야기를 공고하게 쌓아 올리기 위해 빅토리아 시대 시인의 섬세한 시와 그 시인들의 편지, 그 시대의 일기, 그리고 시인들에 대한 논문과 , 산문들이 겹겹히 쌓여서 하나의 오래 잊혀지지 않을 이야기를 만들어내었다. 만만치 않은 두께의 두툼함으로 다가오는 이야기지만, 오랜 시간을 공들여 읽을만한 분명 가치가 있는 소설이다. 사실 이 소설의 모든 이야기는 마지막 3페이지를 위한 이야기 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 마지막 3페이지는 거진 10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은 사람만이 읽어낼 수 있는 따스한 이야기일테니 말이다.


+ 참고로 동명의 영화가 존재한다. 나도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꽤 영화가 괜찮다는 평인데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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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 -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107
앤토니어 수전 바이어트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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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야기는.. 어쩌면 마지막 단 3장을 위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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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8-27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꺅! 다 읽었군요!!

하루 2012-08-27 09:32   좋아요 0 | URL
깍! 다 읽었어요!
마지막 단 3장의 위한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어요!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 시칠리아에서 온 편지
김영하 글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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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직도 작가 김영하에 대해서 마냥 좋아하지도 않고, 싫어하지도 않는다. 이를태면 [빛의 제국]이나 [검은 꽃]을 읽을 때면 '우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지만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던지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는 아무도]같은 책을 만나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요컨에 들려주는 이야기와 풀어내는 방식에 따라서 아직도 난 이 작가에 대한 호오가 들쭉날쭉이다. 작가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표할 수 없기 때문에, 작가 김영하는 읽고 나면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당혹스러운 작가이다. 그렇게 김영하의 소설에 지쳤을 무렵, 이 사람의 산문집을 처음으로 읽어봐야겠다 라고 생각했다. '소설가 김영하가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소설가 김영하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산문집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안정적인 삶을 정리하고 유랑민으로 - 그는 지금도 미국에 있다고 알고 있다 - 살아가는 시발점에서 씌여진 이야기이다. 안정적인 한국에서 삶을 일단락하고 타국에서 살기로 결정하고 나서, 소설가로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결정한 그 시점의 여행기.  그 시점에 그에게 날아든 시칠리아 여행기가 이 산문집이다. 사실 [제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는 정확하게 내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여행기의 조건을 충족한다. 내가 알고 있는 가장 기막힌 여행기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우천염천]와 [먼 북소리]인데, 이 두 권과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는 굉장히 흡사하다. 적당한 여행이야기와 그 여행을 하는 작가가 동시에 여행에서 한발 물어서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여행기 말이다. 도무지 이 이야기를 듣고 여행을 가고 싶어질까라는 생각이 들만큼 건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여행과 그 안에 생각을 담아내는 균형을 자 찾은 책이다. 사실 우리가 작가의 여행기를 읽을 때 어떤 정보를 얻으려는건 아니지 않은가. 여행지의 정보를 얻으려면 블로그를 찾는게 훨씬 빠르다. 


그래서 이야기는 부인과 함께 시작한시칠리아 여행기이지만 사실 이 책은 시칠리아의 멋진 곳이라던가 그런걸 설명하지는 않는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보다는 한국에서의 삶을 일단락하고 타국에서 살아가기로 작정한 한 소설가의 담담한 고백이 담겨있다. 왜 떠나기로 했는지, 떠나서 무엇을 하고자 하였는지, 그 곳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했는지 말이다. 같은 곳을 여행했지만 그의 부인은 느끼고 그는 느끼지 못했던걸 들려주기도 하고, 별 기대없이 갔을지도 모르는 시칠리아서 그들은 무엇을 만나고 왔는지 책에서는 그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이 책을 읽고 시칠리아로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는건 나뿐만은 아닐거다. 분명히. 두박자쯤 느리게 살아가는 그들의 삶은 지금 나의 삶과는 굉장히 다르고 색다르기 때문이다. 왜 시칠리아라는 이곳을 선택했는지 마지막 장을 엎으면서 알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기분이랄까.


김영하의 팟케스트를 빼놓지 않고 듣는 애청자이기 때문인지, 이 산문집을 꼭 그가 자신의 목소리로 읽어주는 기분이 들었다. 팟케스트에서 자신의 소설을 한번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준 적이 있었는데 정말 매력적인 방송이었던걸로 기억한다. 김영하씨가 이 책을 꼭 한번 자신의 팟케스트에서 직접 읽어주었으면 하는 그런 생각을 해봤다. 본인도 꽤 지금 다시 읽으면 새로울텐데 말이다.


+하지만 역시 저 제목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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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06
앤토니어 수전 바이어트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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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을 다시 읽는 기분으로 혹은 기억으로. (하지만 정말 이 책을 읽으면 제인 오스틴을 다시 읽고 싶어진다) 현대의 연구가가 과거의 두 시인을 찾아가는 여정은 멋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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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8-23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하권의 마지막 부분을 정말정말 좋아해요. 그 부분 때문에 이 책이 좋을만큼요.

랜돌프 해리 애쉬(이 이름이 맞던가요?)가 소녀에게 말을거는 장면요.

하루 2012-08-23 00:13   좋아요 0 | URL
앗 이런이런 아직 하권을 못 읽었다구요.
이런 스포일로 곤란해요. 마구마구 기대하게 된다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