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사서 읽은 이래, 아니 책으로 책장이 들어차기 시작한 이래 책이 다시 나가 본 적은 거의 없다. 아니 아마도 없다, 라는 표현이 맞을거다. 적어도 빌려줬다가 분실된 책을 제외하고 내 의지로 내 책장에서 책을 들어내 본 기억은 없다. 이사를 다닐 때도 가장 먼저 책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이사짐을 푸를 때도 가장 먼저 정리를 시작했다. 이제는 좀 책을 덜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정말 덜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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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를 보낼 상자를 구하고 여의치가 않아 중고책을 보낼 수 있는 상자를 주문했다.
일단 첫 상자를 보내고 그 다음 날 배달 된 중고 박스 2개에 책을 가득채워서 보내고 어제 밤에 또 한 상자를 보냈다. 결심한 이래로 매일 책을 골라내고 있는데, 평균적으로 한 상자가 나갈 때마다 책이 10~15권 사이를 채우고 있다. 한 상자가 8kg정도 나가는게 평균인데, 힘에 붙여서 동생에게 들어달라고 해서 야밤에 편의점에서 보내고 있다. 그리고보니 거의 매일매일 비슷한 야밤에 책을 추려서 집 앞 편의점에서 택배를 보내고 있는데, 알라딘 중고 택배상자를 보는 알바생 표정이 조금 오묘했다. 오늘도 비슷한 시간에 책을 보내러 가야 하는데 이러다가 알바생이 '매일 택배보내는 사람'으로 기억할 까봐 조금 무섭기까지.
알라딘 중고박스에 가득 채우면 15권 정도가 최대로 들어가고 무게는 8.5kg정도 나가는듯. 지금까지 2개를 써봤는데 환불까지 잘 되면 흡족할거 같다. 오늘 3개를 더 주문했다. 3개 주문하고 이 중고박스가 담겨지는 택배상자까지 하면 일단 상자가 4개까지 확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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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경중이 있겠는가만(사실 당연한 말이지만 책에 경중은 있다)은 책을 담다가 덜어내는 책이 나오고 있다. '아 이 책 다시 한번 일어도 괜찮을거 같은데' 라던가 '아 그때 제대로 못 읽었었는데' 라던가. 이런 이유로 빼고, 저런 이유로 빼고 하면서 빠지는 책이 슬슬나오고 있다. 이런 식으로 빼다가는 얼마 못 덜어낼지도 모르는데, 마음이 독해야 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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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덜어내는 날 보는 가족의 반응은 대체로 한가지. "잘 하고 있다"이다.
어제 아버지는 무려 책을 정리하는 날 보시더니 내일부터는 택배상자를 구해다 줄까라고 물어보신다. 괜찮다고 알아서 구해서 보낸다고 했는데, 상자 큰걸로 몇개 구해서 한번에 보내버리라고 하신다. 알아서 덜어내겠다고. 매일매일 추리고 있고 보내고 있다고했더니 알았다고 하신다. 아 가족들 열의가 나보다 더 높아서 큰일났다.
지금까지 얼마나 덜어내고 싶었으면 저럴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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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개운하면서도 마음이 허한 매일매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