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강남에서 만나기로 했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서 교보에서 책을 보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교보문고에 들어나면 항상 습관적으로 왼쪽으로 몸을 트는데, 몸을 돌리자마자 나오는게 문학코너이다. 그리고보니 큰 서점들은 대부분은 출입구에 문학코너가 많은듯 한데, 역시 문학책을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구입하는건가? 아무튼 문학코너를 어슬렁거리는데 시간에 에밀 아자르가 눈에 띈다.
난 에밀 아자르 보다는 로멩 가리를 좋아하는데, 에밀 아자르라고 해도 반가운건 어쩔 수 없다. 그리고보니 로멩 가리의 글을 처음 읽었을 때와 에밀 아자르를 처음 읽었을 때, 그리고 그 둘이 같은 작가라는걸 알았을 때 그 말도 안되는 충격이 생각나는군. [자기 앞의 생]을 읽었을 때 작가의 시선이 너무 따땃해서 - 뜨끈은 아니고 따땃해서 - 마음에 들지 않았던 기억이 나는데, 읽고 또 읽고 하다보니 아 이 정도 따땃함은 살아가는게 필요한건가보다 싶기도 하더라. 그 이후로 거의 처음 읽는 에밀 아자르인거 같은데 읽고 있는데 너무 좋았다.
또 내가 몹시 좋아하는 단어가 있다. 택시를 운전할 때면 나는 갖고 다니는 휴대용 뷔데 사전에서 종종 그 말을 찾아보곤 한다.
불멸의 Immortel 죽음의 노예가 되지 않는.
이 단어는 언제나 나를 기쁘게 해준다. 그 말이 거기, 사전 안에 있는걸 확인하면 마음이 놓인다. 나는 그런 상태를 마드무아젤 코라에게, 그리고 솔로몬씨에게 주고 싶다. 솔로몬씨의 여든 다섯 번째 생일에는 사전을 하나 선물해야겠다. (p.76)
친구를 기다리면서 한 50페이지 정도 읽었는데, 친구가 와버렸다. 아 이런 이럴 때는 시간을 잘 지켜서 오는구나 라고 비난해줬다. 주문을 하고 배송을 받고 기다릴 수가 없어서 결국 그 자리에서 구입했다. 카드값이 무서운데 일단 어쩔 수 없다. 일단 읽고 나서 카드값 걱정을 잊어버려야겠다.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책은 언제나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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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다. - 그럼 가을이겠냐 - 어머니가 옥상에 심어놓은 고추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듯 하고, 날씨는 더워서 조금만 움직여도 정신을 차릴 수 없을만큼 더운 날씨가 계속되는걸 보면 확실히 여름이 맞는가보다. 사실 추위보다 더위를 엄청나게 타서 조금 더우면 정신을 못차리는 타입인데, 올해는 유독 너무 덥구나 싶다. 그래서 여름이 싫습니다, 는 아니지만 빈말이라도 이 정도 날씨면 괜찮아요 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그런 여름에서 나쁘지 않다는게 있다면 하나는 햇볕에 마른 빨래 냄새이고 다른 하나는 과일주스가 풍성하다는 점이다. 과일주스는 제철 과일이면 뭐든 좋다 정도인데, 올 여름은 길거리에 레몬 음료가 굉장히 유행인가보다. 동네에도 레몬과즙을 바로 짜주는 음료를 팔던데, 회사 근처에 엄청나게 신 - 먹기 전에는 몰랐다 - 레몬 음료를 팔고 있는 가게가 있어서 하나 사먹어봤다. 신걸 원체 못 먹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정말 머리가 띵해질 정도로 신 맛이라서 안에 얼음이다 녹아도 쉽게 먹을 수 없는 그런 음료인거다. 홀짝홀짝 마시면서 '그래도 여름이니까 이런 것도 먹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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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옥상에 이불을 하나씩 빨아서 널고 계시는데, 밤이 되면 이불에서 햇볕냄새가 난다.
아 좋다 좋아. 이불에서 햇볕 냄새가 나는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