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 이탈리아 - 빠릿한 디자이너의 느릿느릿 이탈리아 관찰기
문찬 지음 / 컬처그라퍼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한국()과 이탈리아(), 비슷한 점이 많다고 말한다. 둘 다 반도에 자리한 나라이며, 남북이 갈라져 있으며(나라가 갈라졌든, 정서적으로 갈라졌든), 사람들은 승질급하고 다혈질이며, 정이 많다는 점 등을 든다. , 그럴 듯하다. 그렇게 따지자면, 최고 권력자들에 대한 공통점도 나온다. 독재자가 등장했거나 또라이같은 작자들이 한 나라의 최고 권력을 잡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는 것?

 

비슷하다는 거, 거짓말이다. 개뿔이다. 억지로라도 비슷한 점을 찾고 싶어서 그렇게라도 끼워 맞췄을 수도 있겠다. 슬로우 이탈리아를 보니 그 점이 더욱 확연해진다. 한국엔 투철한 준법정신이 국가의 강력한 기강이자 근본인양 허구한 날 지껄인다. 이 나라의 도덕수준이라는 것이 거리에서 휴지 버리는 것 여부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정도다. 이탈리아? 저자가 훑어본 이탈리아, 준법정신 따위는 개에게나 줘 버려~ (물론 개도 받지 않을 터이지만!)

 

대신 이들은, 물론 자본주의에 물든 것은 매 한가지이긴 하나, 성공이라고 일컬었을 때 그것이 금전적인 윤택함을 뜻하지 않는다. 자아실현이 성공이란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고, 하며, 자기 생을 자신이 기획하고 꾸려나가는 것. 남의 인생을 살지 않는 것이다. 잘 먹고 삶을 즐기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삶을 삶답게 사는 것 아닐까. 프랑스어로 사부아 비브르(Savior vivre).

 

한국에... 그것, 아예 불가능하다고 말하진 않겠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미치도록 애 쓰고 용을 써야 가능한 무엇이다. 뭣보다 오지랖 넓은 남들의 혀 끌끌 차는 시선도 견뎌내야 한다. 잘 먹고 삶을 즐기겠다는 목표 아래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만큼만 일을 한다는 것, 한국 사람들은 얼마나 알까? 이런 분위기가 만약 사회적으로 조성된다면, 게으르다고 타박하고 국가경쟁력 떨어진다고 기득권은 아주 개지랄을 떨어댈 것이다.

 

책은 부러운 이탈리아의 일면을 끄집어낸다. 이런 일기예보를 상상하니, 나는 당장이라도 이탈리아에 풍덩 빠지고 싶었다. 오늘 밤 하늘의 별을 어느 정도 볼 수 있는지 예보해준다고 한다. 저자는 남부 타란토 항구에 머물 때, 기상캐스터의 약간 상기된 어조의 예보를 듣고 밤 산책을 나가 별비를 맞았다고 했다. 그 장면을 떠올리자, 나는 이탈리아와 한국은 명백히 다르다고 나 홀로 판결 내렸다. 기상캐스터의 옷과 미모에 매달리는 한국에서 별빛예보를 듣는다는 건 상상불가!

 

저자는 이탈리아인들이 개인을 중시하고 자신만의 기준을 갖게 된 연유를 르네상스에서 찾는다. 자기 자신이 주체가 되어 스스로를 이끌어 가는 삶. 이런 정신을 싹트게 한 계기가 르네상스라고 하면서 깊은 것을 볼 줄 아는 이탈리아인의 안목을 언급한다. 제 아무리 뛰어나고 출중한 사람이라도 그것을 발굴하고 드러내 줄 안목을 지닌 사람이 없다면 그는 그저 장삼이사로 삶을 마감했을 터. 다빈치나 미켈란젤로가 자신의 재능을 키우고 발휘하며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이탈리아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나는 다빈치나 미켈란젤로가 우연히 나타난 것이 아닌 사회 전체가 만들어냈다는 저자의 시각에 완전 동의한다. 비범함을 알아보고 지원하며 갈채를 보내줬기 때문에.

 

한국의 권력자들이 웃기지도 않은 것도 이런 지점이다.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키워야한답시고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깝죽댄다. 창조경제, 창의적 인재 육성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아니 사실은 별로 그럴듯하지도 않은 용어인데, 사람들을 현혹한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를 만들어낸 사회적 분위기와 환경 등은 고려하지 못한다. 눈을 현혹시키는 시각적 요소가 아닌 적합한 역할에 맞추는 이탈리아 디자인의 힘이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들로부터 나온다는 저자의 깨달음에도 고개를 끄덕인다.

 

책을 읽으면 이탈리아, 발 딛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그러나 전제는 커피 만드는 사람으로서, 음식에 많은 관심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탈리아에 대한 로망이 우선하기 때문이다. 이십대 초반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발 디뎠던 이탈리아에서 내가 놀란 것은 오리지널 피자의 맛과 준법정신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이후 이탈리아에 대한 허기는 책 등을 통해 때우고 있다. 이 책도 그 일환이지만, 직접 만나는 것보다 좋은 게 있을라고.

 

전반적으로 심심한 책이다. 이탈리아에 사는 가장 보통의 사람들을 만나 그 이야기를 풀어냈으나 차라리 전공인 디자인이라는 창을 통해 이탈리아를 바라봤으면 어떨까 싶다. 여느 이탈리아 여행 책과 큰 차이가 없다. 비교할 건 아니지만, 박찬일 셰프의 어쨌든, 잇태리의 감질 맛 나는 이탈리아보다 맛을 제대로 내지 못했다. 이탈리아에 대한 책을 읽고 싶다면, 굳이 이 책을 권하진 않겠다.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를 제시할 수도 없다. 다른 책을 읽거나 이탈리아로 가서 부닥치는 것이 훨씬 낫겠다. 따라서 책에 좋은 점수를 주긴 어렵다.

 

어쨌든 저자도 이탈리아를 다시 찾을 것임을 예보(?)했다. 이탈리아를 다녀온 사람들이 다시 이탈리아를 찾는 이유도 제시한다. “. 느슨한 사회의 나른함을, 단단히 조여진 허리 벨트를 헐렁하게 늦추었을 때 느끼는 편안함 같은 이탈리아의 공기를 그리워하게 된다.”(p.27) 하긴, 잇태리에 대한 부정적인 언급을 일삼던 박찬일 셰프도 그것이 반어법임을 은근슬쩍 드러내며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혹시 이탈리아에 나쁜 감정이 있어서 절대 가볼 만한 나라가 아니야라고 반박하는 이가 있다면 나는 적어도 당신은 지옥 같은 한국을 떠나온 것이잖아라고 말하겠다.”

 

이 지옥 같은 한국, 아니 무간지옥 그 자체인 이곳만 아니라면, 어디든 좋지 않겠나. 그 어디가 이탈리아라면 브라보! 먹기 위해 이탈리아를 가는 것도 좋겠다. 나는 다시 이탈리아를 간다면 그것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생에서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맛있는 것을 먹고 건강하게 사는 것, 이탈리아와 나는 그것으로 통할 테니까. ‘라르테 디 아란자르시(어떻게든 만들어 내는 것)’을 외치면서. 내 오감을 열고 아템포(본디의 빠르기)’로 나는 이탈리아를 걷고 먹고 만날 것이다. 단언컨대 이탈리아는 가장 완벽한 먹거리가 있는 곳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았으나 내 느낌 그대로를 적었다. ‘주례사 리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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