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시장 이야기 -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 상설시장 광장시장의 100년사!
김종광 지음 / 샘터사 / 201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것은 그러니까, 시장통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우리나라 시장통 역사를 통틀어 가장 오래 된. 사설 상설시장의 최고 언니이자,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도소매 시장인 광장시장. 이젠 '재래시장'이라고 불리는 가장 오래된 시장의 무용담. 


그래서 왁다글왁다글합니다. 여느 시장통을 떠올리면 그러하듯, 복작복작 고래고래 왁자지껄 업&다운. 소릴 질러 손님을 끌고, 한 푼이라도 더 받고자 하는 상인과 에누리하려는 손님 사이의 흥정이 꽃 핍니다. 빽빽한 시장통이 가지는 활력도 있습니다. 저잣거리는 늘 흥미로운 법이니까요. 모름지기 시장은 떠들썩해야 하는 법. 중구난방, 오도방정, 그게 또 시장의 매력이죠.  


그러다 보니, 시장에는 이야기가 꼬리처럼 따릅니다. 더구나 광장시장은 우리나라 최고의 역사를 자랑하는 곳.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피고 졌을까요. 100년 이상의 역사가 잉태한 이야기의 보물창고. 《광장시장 이야기》에 묻은 삶의 흔적, 사회의 변화는 고스란히 이야기입니다. 광장시장 자체가 하나의 사소하고 거대한 이야기의 집합체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 사람들이 살았고 여전히 살고 있으니까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 돈의 흐름을 간파할 수 있는 곳, 쌀값과 금값을 기준으로 해서 경제 동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파악할 수 있는 곳, 시장의 거상들의 동태로 호경기 불경기를 짐작할 수 있는 곳, 그리고 온갖 말발이 좌웅을 가리는 곳……"(p.221)


버스를 타고 오가는 길, 버스 안에서 늘 맞닥뜨리는 곳이 광장시장입니다. 직접 밟아보진 못하고 눈길에 담기만 하던 그곳. 《광장시장 이야기》를 통해 슬쩍 속살을 엿봤습니다. 광장이 '廣場'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니더군요. 광()교와 장()교의 사이에 있다하여 너르고 긴 '廣長'으로 시작, 넓은 곳집 '廣藏'으로 바뀐 역사를 만났습니다. 동대문시장으로 불렸다는 것도 알았고요. 왜 남대문시장만 있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광장시장이 동대문시장이었다니! 


광장시장. 최초의 사설 상설시장답게, 시장의 시장이었습니다. 광장시장의 위상, 생각보다 대단했더군요. 광장시장이 없었다면 사람들의 기본적인 삶이 불가능했을 거라는 말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하긴, 없는 게 없다는 말, 들은 적 있습니다. 사실 그곳에서 저희 커피하우스 컵도 만들었긴 해요. 제가 직접 안 가긴 했지만요. 다음엔 꼭 함께 가야겠어요. 뭣보다, '기록되지 않은 다수의 시장'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백호는 기록되지 않는 조선 사람 다수의 시장은 동대문이라고 생각했다. 대다수 조선 사람은 5일장이 유지되지 않으면 삶 자체가 불가능했듯이, 서울의 사람은 동대문시장이라는 재래시장이 없었다면 기본적인 삶이 불가능했다. 그것이 동대문시장이 확대될 수도 없었지만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종로의 화신백화점, 명동의 일본인 백화점, 그 최첨단 백화점들이 아무리 떵떵거려도 동대문시장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테다. 이 재래시장이 없으면 안 되는 조선 사람의 삶과 함께하기 때문이다."(p.55)


그래서일까요. '정치쇼'를 하기에도 제격이었을 겁니다. 정치인들이 이런 시장을 놓칠리야 없죠. 시장의 시장, 서민들의 온 삶이 묻은 곳, 오래된 역사와 이야기가 있는 곳. 충분한 이유가 있죠. 서울 시장이 꼭 얼굴을 들이밀고, 국회의원 나리들께서도 때가 되면 '서민용' 코스프레를 위해 사진(촬영)기자를 동반해 다녀가시죠. 


그러고 보면, 광장시장만큼 얼굴을 많이 판 시장도 없을 듯해요. 다만 재수없게, 이명박도 이곳에서 출마선언을 했었네요. 지금 아마 시장 상인들은 그걸 얼마나 수치스럽게 여길까요. 하하.  

 

"광장시장은 정치 1번지, 경제 1번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현재까지도 그 위상을 인정받고 있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도 광장시장에서 대통령 출마선언을 한 것이고, 서울 시장들도 광장시장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p.221)


하지만, 이제 이곳. 예전 같지는 않을 겁니다. 아니, 않습니다! '(대형)마트'라는 이름의 폭군 때문이죠. 이들, 거의 모든 시장을 울렸습니다. 거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가격경쟁력이라는 미명 하의 '가격후려치기(가치 떨어트리기)'로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그들이 내세우는 시장 현대화는 순전한 거짓말입니다. 유통을 교란하고, 낭비를 조장하며, 뭣보다 노동을 착취하는 구조. 자본의 쌩얼입니다. 


대형마트, 세상에 그 많던 시장을 '재래시장'으로 몰아넣고, 구닥다리처럼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지지고 볶는 재미를 빼았습니다. 편리하고 쾌적함을 내세웠지만, 그 이면에는 자기네들 이윤만 자리합니다. 소비자의 권리? 뻥카입니다.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을 교란시켜 주머니에서 낭비를 조장하겠다는 흉포한 생각만 똥처럼 차있습니다.   


그러니, 이젠 시장에 이야깃거리가 떨어집니다. 시장에서 좌판으로 아이들을 키워 시집 장가까지 보냈던 무용담은 과거지사가 됐습니다. 시장에서 꽃 피는 사랑도 흘러간 옛사랑이 됐고요. 학도병으로 전쟁에 나갔다가 손가락 두 개를 잃고 생선 가게 일을 주로 하는 지게 짐꾼 오빠를 사랑하는 신식 여성의 이야기는 더 이상 없습니다. 자리에도 앉지 못하고 제대로 휴식도 취하지 못한 채 비정규직의 고통과 슬픔만 남습니다.


재래시장의 축소는 곧 이야기의 축소입니다. 그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우린 불과 15~20년 전만해도 삶이 힘겹고 아플 때, 혹은 생이 느슨해졌다고 느낄 때, 시장을 찾았습니다. 그리곤 활력을 얻었다며 자랑스레 이야기했습니다. 시장은 그런 존재였습니다. 삶이자 존재가 부대끼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마트는 그렇지 않습니다. 자로 잰 듯한 구획과 어디에도 없는 부대낌. 지지고볶는 번잡함이 없습니다. 그저 잘 차려진 밥상입니다. 잘 줏어먹기만 하면 될 것 같은. 혹자는 마트를 가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던데, 글쎄, 그 기분은 쾌적함 같은 것이지, 시장이 주는 삶의 활력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 않나 싶기는 합니다. 


당시 최고의 직업이라는 은행원을 남편으로 둔 언니가 희순에서 했던 말에서 우리는 (광장)시장이 우리 삶에 어떻게 삼투했는지 엿봅니다.  


"나는 말이야, 사는 게 재미없어지면 나들이옷을 떨쳐입고 동대문시장으로 장 보러 가. 시장 사람들의 그 치열한 아우성과 싱싱하고 풍성한 푸성귀와 수산물이 내뿜는 활기를 쐬면 너무 좋아. 시장의 치열함과 활기를 쐬지 않고는 유지되지 않는 결핍이랄까. 내 안에 불균형이 있는 것 같아."(p.66) 


예능프로 <1박2일>에서 광장시장을 다뤘을 때, 꽤 화제가 됐었나 봅니다. 전 그때도 크게 당기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고선 광장시장에 진짜 발을 밟아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흔적을 찾아보고, 어떤 이야기들이 광장시장을 떠도는지 살펴보고 싶어졌어요. 


《광장시장 이야기》. 무난한 이야기에 광장시장에 대한 흥미를 살짝 북돋은 건 사실이지만, 좀 더 깊숙한 이야기, 정곡을 찌르는 무언가가 빈 느낌이에요. 글쎄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설명은 안 되는데, 소설도 아니요, 르포타주도 아닌 이런 방식은 광장시장 100년사를 압축해 놓은 나열에 불과한 것 같아요. 성실한 기록인 것은 알겠으나, 광장시장 사람들의 활기찬 역사가 오래도록 계속되었으면 좋겠다는 저자의 바람이 다소 공허하게 들리거든요. 좀 더 고민했으면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너무 무난해서 아쉬운 그런 책이었어요. 그래도 시장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점, 광장시장의 역사를 통해 우리의 시장(에 대한 의미)을 다시 길어올렸다는 점, 좋아요오~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작성됐다.

그러나 그런 사실에 영향을 받지 않고, 내가 느끼는 바 그대로를 긁적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