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영어로 인사를 건넸다. 가슴이 뭉클해왔다. 이렇게 히말라야 너머 먼 곳까지 찾아와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뜻하지 않은 아름다운 눈망울들과 해후를 하게 되다니.. 남루함을 지탱케 해주는 힘은 그 이면에 내재해 있는 순수, 곧 영혼의 창인 눈동자라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 나이, 이때까지 새속에 젖어 살아온 내가 어떻게 저토록 순수한 눈매들을 응시할 수 있을까 싶으니 자괴감이 앞섰다.-30쪽
나의 천성이 게으른 탓도 있겠지만 물 사정이 아주 열악한 이곳에서는 세수할 때 물을 충분히 사용할 수 없어 피부가 서서히 거뭇거뭇, 데데해져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은 수치스럽게도 손톱 밑에 때가 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당나귀와 놀던 손 그대로, 소똥 만지던 손 그대로 밥을 먹고 잠자리에 든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불결하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는다. 당나귀는 물론 소똥도 그 속에는 거름으로서 농작물의 성장을 촉진시킬수 있는 힘이 깃들어 있고, 실내를 따뜻하게 덥힐 수 있는 가슴 뜨거운 인자가 내재해 있어 하나의 아름다운 생명체로 여져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기가 나간 후 때가 낀 손으로 촛불을 밝힐 때의 외경감이란.. 이것이야 말로 천사의 날갯짓보다도 아름답고 경건한 `궁핍의 미학`이 아닐까.-31쪽
그러면서도 저녁 시간이면 일 나갔던 식구들이 모두 돌아와 어두운 부엌에 모여 앉아 눈동자를 반짝이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참으로 따뜻해 보인다. 라다키 버전의 행복이란, 가족들이 밖에 나가 이웃과 다툼을 하지 않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를 할 때의 그런 모습이 아닐까.-80쪽
마르카 계곡은 한국에서 온 이방인이 접하기엔 너무나 낮설어 하나의 거대하고 알수 없는 생명체처럼 그 앞에 서면 불현듯 외경감을 느끼게 된다. 예측을 불허하는 산의 정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산에 대한 다양한 억측과 함께 혼미한 무속적 상상을 떠올리게 하며 고통을 겪게도 한다. 그러한 이유때문에서인지 라다크에서는 악귀와 미신에 얽힌 무서운 설화들이 많이 전해져 내려온다.거대한 자연도 자연이려니와 이는 아마도 인구 밀도가 희박한 데서 온 결과가 아닐까 싶다. 살아가면서 건강한 영혼(사람)들과 함께 보낼수 있는 시간이 많아야 할 텐데 그렇질 아니하고 홀로 억측으로 지어낸 귀신들과 교감을 하다 보니 그러한 설화가 만들어 지는 것 같다. 도회에서는 삶의 번뇌가, 대자연 속에서는 삶의 두려움이 싹튼다. 인간에게 삶의 터전도 자양분을 제공해주는 고마운 자연도 그 기운이 과도하면 때로는 마군으로 탈바꿈하여 사람들을 두려움 속으로 몰아넣는다. 그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서라도 자구책으로서의 기도와 신앙이 싹트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번뇌란 삶에 대한 고도의 통찰과 수행으로 극복 가능한 것이나 자연으로부터의 두려움은 초월적인 존재를 불러들이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대자연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스레 신앙인이 되도록 한다. 마르카 계곡. 나로서는 처음으로 경험해보는 대자연이었고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뒤늦게 체험해본 원시 신앙이었다.-1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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