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을 읽다가 전율이 오는 경우는 

최근 나오미 클레인의 <자본주의는 어떻게 재난을 먹고 괴물이 되는가> 이후에 처음이다.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영어로 된 한 문장을 읽고 감전된 것처럼 무릎을 치다가,

의미가 좀 모호할 때는 번역된 문장을 보고,

번역된 문장으로 몇 줄 읽다가 다시 영어로 된 문장을 찾아보고,

한 단락이나 한 페이지가 끝날 즈음에는 

다시 오더블(audible)을 켜고 기개 넘치는 내레이터와 입을 맞춰

큰 소리로 낭독을 한다.


문장 하나에 소환된 나의 옛 기억들은

다시 또 다른 글쓰기의 소재로 공책 한 바닥을 메우고,

스크리브너(Scrivener) 도큐먼트에 쌓이고,

오늘 아침 골목길에서 광속으로 질주하며

길을 건너는 내게 쌍욕을 퍼부은 낯선 남자에 대한 단상에 주석을 추가한다.


끝을 내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나의 역사, 나의 경험을 온전히 들여다보는 것이야말로

이 책을 통해 내가 가닿을 지점인 것 같다.


옮긴이 이정순은 보부아르가 ‘나에게 여자라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사적 고백록’에 그치지 않고 보편적 ‘여성 조건’의 연구하는 것으로 전환된 것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그녀의 엄청난 노작에 감사하면서도

보부아르의 사적 고백도 이 정도의 깊이라면 문학사에 길이 남을 역작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보부아르는 말한다. 어떤 편견 없이 인간의 문제를 다루는 건 불가능하다고.

그래서 자신이 택한 관점을 먼저 밝힌다. 실존주의 윤리관.

이를 통해 여자라는 사실이 우리의 삶의 어떤 면에 영향을 미쳤는지, 어떤 가능성이 부여되었고, 어떤 가능성이 거부되었는지, 우리 다음 세대에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고 우리는 어떤 방향을 가리켜야 하는지.


How will the fact of being women have affected our lives? What precise opportunities have been given us, and which ones have been denied? What destiny awaits our younger sisters, and in which direction should we point them? But it is no doubt impossible to approach any human problem without partiality.


The perspective we have adopted is one of existentialist morality.

Every subject posits itself as a transcendence concretely, through projects; it accomplishes its freedom only by perpetual surpassing toward other freedoms; there is no other justification for present existence than its expansion toward an indefinitely open future.


Every time transcendence lapses into immanence, there is degradation of existence into “in-itself,” of freedom into facticity; this fall is a moral fault if the subject consents to it; if this fall is inflicted on the subject, it takes the form of frustration and oppression; in both cases it is an absolute evil. Every individual concerned with justifying his existence experience his existence as an indefinite need to transcend himself.


Woman’s drama lies in this conflict between the fundamental claim of every subject, which always posit itself as essential, and the demands of a situation that constitutes her as inessential.


그간 남성들이 쓴 과거에 기반해 여성들이 열등하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해 온 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유대인이나 흑인처럼 소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반을 차지하는 여성들이 어떻게 그토록 오랫동안 착취 당했는지, 

어떻게 그런 ‘공모’가 가능했는지 남은 900여 페이지에서 밝힐 것이다.


그녀는 하나의 질문에서 출발했다.

What is a woman?


그리고 다음과 같이 질문을 쪼갰다.

How, in the feminine condition, can a human being accomplish herself? 

What path are open to her? Which ones lead to dead ends? 

How can she find independence within dependence? 

What circumstances limit women’s freedom and can she overcome them?


위대한 질문은 위대한 여정을 출발시킨다. 

얼마나 걸릴지 모를 출항을 시작한다.



여성, 시몬 드 보부아르, 페미니스트,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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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04 2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항해가 될 것입니다. 즐기소서!

나뭇잎처럼 2021-10-04 20:52   좋아요 1 | URL
멋진 항해에 즐거운 벗이 되어 주시길 ^^ 공쟝쟝님 리뷰 읽고 벌써 반했지만요. ㅎㅎ

다락방 2021-10-04 2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영어본과 함께 하시는군요!!! >.<

막시무스 2021-10-04 21: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출발부터 파도가 만만치 않은것 같지만 끝까지 함께 완독하시죠!ㅎ 응원할께요!ㅎ

나뭇잎처럼 2021-10-04 22:0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라는 느낌이 드니까 좀 힘이 납니다. 다 다락방님 덕분이죠 ㅎㅎ 저도 막시무스님 응원할게요. 서문에서부터 뭔가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죠? 막시무스님 글에서 딱 느꼈어요. 그거, 바로 그거! 하면서요. ㅎㅎㅎ

막시무스 2021-10-04 22:07   좋아요 0 | URL
한글로 한번, 영어로 한번! 두번이나 맞았죠!ㅎ
 
초판본 프랑켄슈타인 - 1818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메리 셸리 지음, 구자언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자신을 낳다가 죽은 엄마,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버린 사람의 자살, 그리고 자신이 낳은 아이들이 차례로 죽어나가는 걸 보며, 메리 셸리는 죽음으로부터 생명을 창조해냈다. 프랑켄슈타인.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창조한 이로부터 버림 받았으며, 혐오로 인해 악마가 되고, 창조자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차례로 희생시킨다. 마지막 소원이었던 자신의 동반자마저 완성 전에 잃고 나서는 창조자에 대한 복수로 불타오르나 결국 창조자의 죽음 앞에서 가장 커다란 슬픔을 맞닥뜨린다.


북극을 탐험하는 왈튼 선장이 빅터 프랑켄슈타인으로부터 기이한 이야기를 들으며 누이에게 전하는 편지, 빅터가 창조한 프랑켄슈타인 그리고 그의 독백, 다시 왈튼의 편지로 이어지는 상자 속의 상자 이야기. 아마 레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에서 메리 셸리를 알지 못했다면 머리에 이상한 나사를 꼽고 퀭한 눈으로 어기적 걸어다니는 프랑켄슈타인을 읽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릇 고전은 뭔가 의도치 않게 넉넉한 시간이 확보되었을 때(언젠가 복사뼈가 부러져 침대에 누워있어야 했을 때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악령> 총 6권을 완독했더랬지)나 읽는 것이 아니었던가. 열여덟 살에 쓰기 시작해 스무 살이 안되었을 때 완성한 소설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유명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딸이라는 사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남편이 죽고 자신이 낳은 아이들이 하나만 남고 모두 죽은 메리 셸리라는 인물에 이끌려 <프랑켄슈타인>은 읽기도 전에 내 안에 강력하게 자리잡았다.


자신이 태어나면서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은 자신을 바라보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더구나 그 엄마가 <여성의 권리옹호>라는 글을 쓴 진보적 지식인이자 페미니스트였다면. 그리고 그런 엄마와 달리 역시나 진보적 지식인이었던 아빠 윌리엄 고드윈이 새로 결혼한 여자가 자신을 핍박하는 여자라면. 아버지에 서재에 드나들던 제자와 사랑에 빠졌을 때 아버지로부터 의절을 당하고, 결혼을 앞두고서는 그의 전처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첫딸이 2주도 안 되어 죽고, 이후로 낳은 아이들이 차례로 죽어나간다면. 여자가 글을 쓰는 것은 금지되어있고, 설령 쓴다해도 조롱과 비난이 가득한 시대에 그가 살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건 아마도 프랑켄슈타인이라는 괴물을 창조해내는 일이 아니었을까. 


프랑켄슈타인은 사지를 이어붙여 흉측하게 태어났다. 프랑켄슈타인을 창조한 빅터는 창조하자마자 그에 대한 혐오로 가득하다. 프랑켄슈타인은 그런 혐오를 먹고 자라며 악마가 된다. 우연히 만난 선한 가족에게 친밀감을 느껴 그들을 위해 남몰래 도움을 주며 그들과 관계 맺기를 원하지만 그의 모습을 본 그들은 혐오에 치를 떨며 그를 때리고 그곳을 떠난다. 


“치명적인 편견이 그들의 눈을 가려 인정 많고 착한 천국의 모습 대신 혐오스러운 괴물의 모습을 볼 뿐입니다.”


우리가 괴물을 괴물로 바라보는 건 결국 우리의 눈이다. 아름다움이 보는 이의 눈에 달려있듯이(Beauty is in the eye of the beholder). 괴물이 되도록 만드는 먹이는 지극한 혐오. 자신을 혐오하는 이는 누군가를 지속적으로 혐오할 수밖에 없다. 혐오는 혐오를 낳고, 키우고, 자라게 만든다. 혐오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방법은? 프랑켄슈타인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그것만이 모든 비극을 마무리할 수 있는 처사라고 여긴 것이다. 


처음 이 소설이 나왔을 때나, 지금이나 이 책에 대해서 여전히 많은 해석이 분분하다고 한다. 과연 프랑켄슈타인을 어떻게 읽을지는 각자의 눈에 달려있는 일이겠지만. 나는 자신을 프랑켄슈타인이라고 여긴 한 창조자의 비극적 심상에 연민이 들었다. 종종 내 안의 괴물을 바라보면서 측은함과 안도감,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맛보듯이. 괴물이 더 자라지 않게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괴물의 성난 갈기를 가만히 쓸어주는 것, 괴물에게 먹이를 주는 혐오를 거두고 괴물이 괴물이 된 사연에 깊이 공감하고 위안하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 이외의 방법을 알지 못한다. 


메리 셸리 못지 않게 극적인 삶을 살았던 그녀의 엄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독자가 읽고 나서 저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책”이라고 극찬하며 실제 메리의 엄마와 사랑에 빠지고 메리의 아버지가 된 고드윈. 고드윈이 작가와 사랑에 빠지게 만든 책이 바로 <Letters Written During a Short Residence in Sweden, Norway, and Denmark>. 프랑켄슈타인을 쫓던 빅터가 왈터 선장에게 발견되는 극지방의 풍경은 메리 셸리의 엄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사랑하는 사람 임레이에게 버림 받고 그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향한 스칸디나비아 여행길에 쓴 글이다. 폭력적인 아버지, 여동생의 비극적 결혼으로 말미암아 고아나 다름 없게 된 조카들을 보살피고, 친구를 위해 자신의 생업도 내팽개치고 병구완을 했던,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의 사생아를 낳고 결혼에 회의적이었던 페미니스트가 두 번의 자살 시도 끝에 결혼했던 고드윈과의 짧은 결혼 생활을 마감하고 메리 셸리를 낳다가 죽은 바로 그녀.


물고 물리는 이야기의 인연들이 프랑켄슈타인이라는 불멸의 작품에서 만난다. 


그리고 나는 메리 울스톤크래프트의 북극 이야기에 매료되어 다시 자유롭게 오를 그 여행길을 상상하며 손에 잡히지 않는 오로라를 매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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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 호프 메소드 - 당신의 건강 본능을 리부팅하라
빔 호프 지음, 이혜경 옮김 / 모비딕북스 / 2021년 8월
평점 :
품절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살 수 있나. 지금처럼 간절히 원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어디 가서 맘껏 운동할 수 있는 편도 안 되고, 고작 할 수 있는 건 집에서 스트레칭을 하거나 공원을 걷는 정도. 요즘은 조금만 일하면 머리가 뜨거워지고 호흡이 얕아지고, 앉아있다 보면 고관절부터 엉치뼈까지 온몸 구석구석이 아프다. 나이 탓인가. 왠지 서글퍼진다.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수록 몸이 퇴화하는 게 자연스럽다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길 거부한 사람이 있다. 바로 빔 호프(Wim Hof. 영어로 읽으면 빔 호프지만 네덜란드 사람을 네덜란드 발음으로 읽는 게 맞는 듯) 그는 61세가 넘은 나이에 아기 같은 피부를 자랑하고, 여전히 한 손으로 자기 몸을 지탱하고, 날마다 찬물에 몸을 담근다. 인간이 쇠락하고 쪼그라드는 게 당연한 게 아니라 진리 안에 사람이 머물 때 빛이 나듯 어떻게 하면 자기 몸 안의 잠재력을 최상으로 끌어낼 수 있는지 자신의 몸을 이용해 적극 실험에 나선 사람이다. 


그는 차가운 얼음 수조에 자신의 몸을 담그고 체온과 신체지수가 어떻게 되는지 측정했다. 중심체온은 일정하게 유지되었고, 신체지수는 오히려 더 좋아졌다. 보수적인 과학계에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그는 그 ‘사실’을 다시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몸을 바쳤다. 유수의 대학에서 실험적인 생각을 가진 과학자들이 그의 몸의 변화를 측정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심지어 스콧 카니라는 기자는 빔 호프가 사기꾼이라는 걸 밝힐 의도로 폴란드에 있는 빔 호프의 훈련 캠프를 찾았지만 결국 그의 열렬한 신봉자가 되어 함께 킬리만자로를 오르고 <우리를 죽이지 못하는 것(What Doesn’t Kill Us)>이란 책을 쓰기도 했다.


그가 주장하는 빔 호프 메소드(WHM)의 요체는 간단하다. 찬물 샤워, 의식적인 호흡, 그리고 마음가짐. 너무 간단해서 이런 걸로 정말 드라마틱하게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단 10분이 걸리는 빔 호프 호흡을 3라운드 해보면서 그동안 한 20년 동안 틈날 때마다 앉아서 시도했던 복식호흡과 프라나야마, 뇌호흡 등 온갖 호흡법들을 뛰어넘는 ‘효과’가 났다. 단 10분 만의 호흡으로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안정되고 에너지가 차오르는 느낌. 많은 전문가들이 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빔 호프 메소드에 열광하는 것 같다. 오랜 수련 없이도 즉각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다는 것. 


본격적으로 빔 호프 메소드를 따라 하기 위해 앱을 다운받고 호흡을 해보았다. 리텐션(숨을 참는 시간) 시간이 처음에는 40초에서 조금씩 늘더니 어제는 2분 10초까지 늘었다. 빔 호프가 앱에 적어놓은 대로 숨을 참는 건 기록을 달성하거나 억지로 견디는 게 아니라고 했는데(Listen to your body, not. your ego), 여하튼 하루하루 폐의 기능이 좋아지는 게 보여서 나름 뿌듯하다. 폐 기능이 좋아질수록 심신도 안정되는 느낌이 든달까. 건강의 척도는 폐의 크기에 달려있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실감이 났다. 결국 우리의 삶이란 아이 때 온몸으로 호흡하다가 그 숨이 점점 얕아지면서 턱에 찬 숨을 거두는 아닌가. 


요가에서의 호흡도 숨을 참는 것이 핵심이다. 숨을 참은 만큼 생명이 늘어난다고 했다. 요기들이 프라나야마를 통해 수련하는 것도 결국 그 리텐션 기간을 점점 늘려가는 것이다. 왜? 숨을 쉬지 않는 동안 우리 몸이 자율적으로 활성화되고 혈액 속에 있던 산소와 영양분이 세포 조직으로 강력히 침투하면서 호르몬이 방출되고 염증반응이 억제되기 때문이다. 일시적인 과호흡 사이에 리텐션을 두는 빔 호프 호흡법은 좀 더 효과적으로 리텐션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요소가 된다. 과호흡을 통해 몸은 일시적으로 알칼리 상태가 되고, 그러면서 운동능력이 향상되어 킬리만자로도 오르고, 걷지도 못하던 사람이 팔굽혀펴기를 몇십 개씩 하게 되는 거다. 


과학적으로 분석하면 빔 호프 메소드의 신비가 민간요법이나 자가치료법 같은 것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그것을 더 신뢰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빔 호프가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건강법을 전 세계에 알리는 건 그가 지나온 삶의 당연한 귀결이기도 하다. 네 아이의 엄마이자 사랑하는 부인이 8층에서 떨어졌을 때 그는 과연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그는 우울증을 비롯한 온갖 질병이 정신과 신체가 결합되어 있다는 생각을 얻었고, 정신과 육체가 모두 건강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현대 의학에 의존해 값비싼 약을 먹고, 의료기술에 의지하여 자신이 가진 건강 능력을 오히려 퇴화시키고 있는 현실에 가슴 아파했던 것 같다. 


나는 오히려 빔 호프의 그런 태도가 마음에 든다. 과학이라는 것은 지금 당대 우리가 가진 지식이다. 그 지식은 언제든 새로운 지식에 의해서 부서지고 보완된다. 인간의 몸을 부분으로 해체해 보는 것이 아니라 홀리스틱하게 바라보는 것이 지식을 앞선 지혜라고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지혜는 사실 멀리 있지 않다. 우리의 호흡을 가만히 들여다볼 때, 우리를 극한적인 찬물에 가만히 두어볼 때, 일어나는 일들을 바라보면 지식이나 지혜를 능가하는 깨달음 또는 영성이 느껴진다. 우리 모두가 원래 갖고 있는 힘. 그 위대한 힘을 내가 편안한 온도, 편안한 상황에 꼭꼭 가둬둔 건 아닌지.


아마 그래서 도인들은 찬물 아래서 수련을 했는지도(그걸 이어온 할아버지의 냉수마찰이 이제사 납득?). 북쪽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아이들이 아프면 차가운 얼음물에 담갔는지도. 숨을 멈출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발견한 건 요기들만이 아니다. 전 세계 종교에서 오랜 호흡이 필요로 하는 만트라나 기도문이 생겨난 건 우연이 아니다. 오랜 철학과 종교에 담긴 지혜를 오늘날의 과학으로 풀어냈을 때 비로소 의심의 빗장을 내려놓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필요한 건 우리의 몸을 과연 어떻게 바라보는지 성찰하는 것. 나의 만족감과 행복감은 과연 어디서 오는지 바라보는 것. 내 몸의 건강을 이루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 내가 건강하다라고 느낄 때는 언제이고 그러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 꿰뚫어 보는 것. 


빔 호프 메소드는 단순히 건강해지기 위한 000에 머물지 않는다. 우리가 우리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해야 건강하고 만족한 삶을 살 수 있을지 빛과 혜안을 던져준다. 지금처럼 코로나로 제대로 숨 쉬지 못하고, 건강해지기 어려울 때, 그 어느 때보다 건강이 중요하게 느껴지는 지금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인 것 같다. 진정으로 건강해지고 싶은 열망을 가진 사람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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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 호프 메소드 - 당신의 건강 본능을 리부팅하라
빔 호프 지음, 이혜경 옮김 / 모비딕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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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공짜로 건강해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유익한 책. 건강이 그토록 가까운 곳에 있었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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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엠 아두니
아비 다레 지음, 박혜원 옮김 / 모비딕북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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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아두니가 내게 왔다. 

작가 아비 다레 작가에게 그랬듯이.


이 소설을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비극적인? 해학적인? 박진감 넘치는?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소설이다. 


웃다가 울리고, 울리다가 웃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점점 아두니의 엉뚱한 매력에 빠져들어간다. 

"얜 뭐지?" 이런 캐릭터가 어디 있었나? 생전 처음보는 캐릭터다. 

읽는 내내 예기치 못한 그녀의 인생 파노라마에 손에 진땀을 내며 응원하게 된다.


작가 아비 다레는 여덟 살 자신의 딸과 나이지리아 소녀 가정부 이야기를 하다가

이 소설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집안일 돕기 싫어하는 아이한테 ‘나이지리아에는 너만한 아이들이 

가정부 직업으로 하루 종일 노동을 한다’고 말하자 믿을 수 없어했다는 아이.

그날 밤 작가는 ‘주인이 끓는 물을 부어 심한 화상을 입은 소녀 가정부’ 뉴스를 접하고 그 아이에게 

꼭 목소리를 만들어주겠노라 다짐하고 3년 만에 소설을 완성했다고 한다.


소설을 쓰는 내내 아두니자 자신 앞에 앉아서 이렇게 써라, 저렇게 써라 일러주는 것만 같았다고 하는데,

읽는 내내 아두니가 내 앞에 앉아 <천일야화>의 세헤라자데처럼 도저히 멈출 수 없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 같았다. 

아두니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 너무 생생하고, 그녀가 헤쳐간 경로가 너무나 믿을 수 없이 박진감 넘쳤다. 

분명 비극적인 스토리인데 시종일관 감도는 강한 생명력 같은 게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서아프리카, 중동, 파키스탄은 어린 소녀들이 얼마 안되는 신붓값을 받고 물건처럼 팔리고 있다. 

이른바 조혼.

전 세계 여자아이들의 80%가 18세 이전에 결혼을 하고,

나이지리아 여자아이들의 17%가 15세 이전에 결혼을 한단다. 

결혼을 한 후 여자들은 가정폭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리고 그들의 삶은 담장 안의 일이라고 해서 사회나 국가가 쉽게 개입하지 못한다.


지금도 뉴스를 볼 때마다 정인이, 제2의 정인이 같은 아동폭력 소식에 가슴이 무너지는데,

조혼과 아동 노동 착취, 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일상을 겪고 있는 서아프리카 이야기가

이토록 뭔가 기운나게(?) 할 줄이야. 


맞다. 이 책은 잊고 있던 무언가를 떠올리며 다시금 희망의 힘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슬픔에 굴하지 않고, 폭력 따위에 무력해지지 않는 힘.

그래서 작게나마 손을 내밀어 누군가를 일으켜세우고, 

자신만의 삶을 위해 살았던 시간을 벗어나 국경 너머에 있는 누군가를 응원하게 만드는 책.


눈물 속에서 희망을,

절망 속에서 웃음을 기약하게 만드는 책.


오랜만에 참 뜨거운 소설을 읽었다. 

참고로 작가 아비 다레가 여덟 살 딸래미한테 들려주려고 쓴 소설이다.

진정으로 삶에서 가장 중요한 힘인 희망을 놓지 않는 게 어떤 건지 알려주고 싶은 엄마라면 

주저 없이 아이에게 읽어주어도 좋을 것 같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한 권씩 선물하고 싶은 책.

돈만 있다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모두 나눠주고 싶은 책.


영원히 아두니를 응원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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