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프랑켄슈타인 - 1818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메리 셸리 지음, 구자언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자신을 낳다가 죽은 엄마,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버린 사람의 자살, 그리고 자신이 낳은 아이들이 차례로 죽어나가는 걸 보며, 메리 셸리는 죽음으로부터 생명을 창조해냈다. 프랑켄슈타인.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창조한 이로부터 버림 받았으며, 혐오로 인해 악마가 되고, 창조자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차례로 희생시킨다. 마지막 소원이었던 자신의 동반자마저 완성 전에 잃고 나서는 창조자에 대한 복수로 불타오르나 결국 창조자의 죽음 앞에서 가장 커다란 슬픔을 맞닥뜨린다.


북극을 탐험하는 왈튼 선장이 빅터 프랑켄슈타인으로부터 기이한 이야기를 들으며 누이에게 전하는 편지, 빅터가 창조한 프랑켄슈타인 그리고 그의 독백, 다시 왈튼의 편지로 이어지는 상자 속의 상자 이야기. 아마 레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에서 메리 셸리를 알지 못했다면 머리에 이상한 나사를 꼽고 퀭한 눈으로 어기적 걸어다니는 프랑켄슈타인을 읽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릇 고전은 뭔가 의도치 않게 넉넉한 시간이 확보되었을 때(언젠가 복사뼈가 부러져 침대에 누워있어야 했을 때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악령> 총 6권을 완독했더랬지)나 읽는 것이 아니었던가. 열여덟 살에 쓰기 시작해 스무 살이 안되었을 때 완성한 소설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유명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딸이라는 사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남편이 죽고 자신이 낳은 아이들이 하나만 남고 모두 죽은 메리 셸리라는 인물에 이끌려 <프랑켄슈타인>은 읽기도 전에 내 안에 강력하게 자리잡았다.


자신이 태어나면서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은 자신을 바라보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더구나 그 엄마가 <여성의 권리옹호>라는 글을 쓴 진보적 지식인이자 페미니스트였다면. 그리고 그런 엄마와 달리 역시나 진보적 지식인이었던 아빠 윌리엄 고드윈이 새로 결혼한 여자가 자신을 핍박하는 여자라면. 아버지에 서재에 드나들던 제자와 사랑에 빠졌을 때 아버지로부터 의절을 당하고, 결혼을 앞두고서는 그의 전처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첫딸이 2주도 안 되어 죽고, 이후로 낳은 아이들이 차례로 죽어나간다면. 여자가 글을 쓰는 것은 금지되어있고, 설령 쓴다해도 조롱과 비난이 가득한 시대에 그가 살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건 아마도 프랑켄슈타인이라는 괴물을 창조해내는 일이 아니었을까. 


프랑켄슈타인은 사지를 이어붙여 흉측하게 태어났다. 프랑켄슈타인을 창조한 빅터는 창조하자마자 그에 대한 혐오로 가득하다. 프랑켄슈타인은 그런 혐오를 먹고 자라며 악마가 된다. 우연히 만난 선한 가족에게 친밀감을 느껴 그들을 위해 남몰래 도움을 주며 그들과 관계 맺기를 원하지만 그의 모습을 본 그들은 혐오에 치를 떨며 그를 때리고 그곳을 떠난다. 


“치명적인 편견이 그들의 눈을 가려 인정 많고 착한 천국의 모습 대신 혐오스러운 괴물의 모습을 볼 뿐입니다.”


우리가 괴물을 괴물로 바라보는 건 결국 우리의 눈이다. 아름다움이 보는 이의 눈에 달려있듯이(Beauty is in the eye of the beholder). 괴물이 되도록 만드는 먹이는 지극한 혐오. 자신을 혐오하는 이는 누군가를 지속적으로 혐오할 수밖에 없다. 혐오는 혐오를 낳고, 키우고, 자라게 만든다. 혐오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방법은? 프랑켄슈타인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그것만이 모든 비극을 마무리할 수 있는 처사라고 여긴 것이다. 


처음 이 소설이 나왔을 때나, 지금이나 이 책에 대해서 여전히 많은 해석이 분분하다고 한다. 과연 프랑켄슈타인을 어떻게 읽을지는 각자의 눈에 달려있는 일이겠지만. 나는 자신을 프랑켄슈타인이라고 여긴 한 창조자의 비극적 심상에 연민이 들었다. 종종 내 안의 괴물을 바라보면서 측은함과 안도감,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맛보듯이. 괴물이 더 자라지 않게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괴물의 성난 갈기를 가만히 쓸어주는 것, 괴물에게 먹이를 주는 혐오를 거두고 괴물이 괴물이 된 사연에 깊이 공감하고 위안하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 이외의 방법을 알지 못한다. 


메리 셸리 못지 않게 극적인 삶을 살았던 그녀의 엄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독자가 읽고 나서 저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책”이라고 극찬하며 실제 메리의 엄마와 사랑에 빠지고 메리의 아버지가 된 고드윈. 고드윈이 작가와 사랑에 빠지게 만든 책이 바로 <Letters Written During a Short Residence in Sweden, Norway, and Denmark>. 프랑켄슈타인을 쫓던 빅터가 왈터 선장에게 발견되는 극지방의 풍경은 메리 셸리의 엄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사랑하는 사람 임레이에게 버림 받고 그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향한 스칸디나비아 여행길에 쓴 글이다. 폭력적인 아버지, 여동생의 비극적 결혼으로 말미암아 고아나 다름 없게 된 조카들을 보살피고, 친구를 위해 자신의 생업도 내팽개치고 병구완을 했던,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의 사생아를 낳고 결혼에 회의적이었던 페미니스트가 두 번의 자살 시도 끝에 결혼했던 고드윈과의 짧은 결혼 생활을 마감하고 메리 셸리를 낳다가 죽은 바로 그녀.


물고 물리는 이야기의 인연들이 프랑켄슈타인이라는 불멸의 작품에서 만난다. 


그리고 나는 메리 울스톤크래프트의 북극 이야기에 매료되어 다시 자유롭게 오를 그 여행길을 상상하며 손에 잡히지 않는 오로라를 매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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