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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크로 이루어진 세상
한스 그라스만 지음, 염영록 옮김 / 생각의나무 / 2002년 10월
평점 :
품절
일반인을 위한 교양 수준의 물리학책은 많다. 어지간하지 않으면 진부하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이책은 참신하다. 판에 박힌 형식이나 내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수준까지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우선 참신하다는 평가는, 물리학 전반에 대해 저자 나름의 독특한 해석을 보이면서 동시에 근본적이고 사색적인 질문을 독자들에게 남겨준다는 점에서 꼽았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이 책에서 가장 많은 쪽수를 차지하고 있는 장이 ‘역학’, ‘양자론’, ‘열역학’인데, 우선 ‘역학’에서는 에너지 보존 법칙과 충격량 보존 법칙을 최정점에 두고 설명한다. 역학의 요점은 운동에너지와 여러 종류의 충격량이 속도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에너지와 충격량이 시간과 공간에 대해 동등한 속성으로 환원된다 (1918 에미 뇌터). 즉, 특별한 공간이나 시간이란 없다는 것 – 이런 해석이 독특하다.
계속해서 ‘양자론’편을 보면, 세상 만사를 조화함수의 모임으로 기술할 수 있고, 조화함수는 사실 수나 다름없으니, 이 세계 전체는 결국 단순한 수로 환원된다 – 약간의 환원주의 냄새가 나지만, 원칙적으로만 그렇다고 슬쩍 비껴간다. 또, 파동방정식의 형식 δ²l/δx² 을 보면, ‘시간’의 경과에 따른 가속도로 표시되는 뉴튼 방정식 F=ma=m·δ²l/δt² 이 그저 ‘공간’에 대해 표시된 것일 뿐이다. 입자가 파동이라면, 이 파동은 입자와 마찬가지로 요소적이다. 이 요소파동이 양자론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 (무한 파동의 에너지는 진동수의 제곱에 비례하지만, 유한 파동은 진동수에 비례; E=hν, p=h/λ).
게다가 일정 진동수의 요소 파동은 항상 동일한 에너지를 갖기에 원자가 안정을 유지한다 – 파동 에너지와 공간용적 에너지로 전자 여기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불확정성은 순수한 파동 수학일 뿐이다. 진동수를 정확히 재려면, 그 횟수를 충분히 셀 수 있을 만큼의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게 당연한 것 아니냐면서 하이젠베르크가 무슨 대단한 발견을 한게 아니라고 시비를 건다 – 과감한 도전이다. 소립자로서 전자가 힘을 느끼는 것이 아니며, 하나의 입자는 시간과 공간의 속성만으로도 완전히 기술된다 – 솔직히 여기에 심오한 뭔가가 있는 듯 한데, 이해는 잘 안된다.
마지막 ‘열역학’편. 사실 열역학을 일반인에게 소개한다는 것 자체가 참신하다. 열역학은 물리학의 여왕이네, 통계와 우연의 법칙일 뿐이네, 제2법칙은 결국 ‘수’를 다루는 것일 뿐이네, 등등은 그리 참신할 것 없겠다. 뒷부분에서 맥스웰의 악령(우주 엔트로피가 낮아지는 역설)과 관련한 정보이론을 언급하고 계속해서, 혼돈이론, 인공지능까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은 인상적이었다.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도 있다. ‘장’이란 비록 수학적인 상상이지만 어쨌든 실재하는 것이 아닌가? V=l/t 에서 무한 속도의 문제는 상대성 이론이 해결했지만, 중력 이론의 1/r² 에서 나오는 무한 힘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까? 독자 스스로 고민해 보시라~~
결론은, 참신하지만 독자를 이해 시키거나 설득할 만큼 충분히 들어가지는 못한 느낌이다. 겨냥한 독자층이 독일 청소년이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처음 물리학을 접하는 청소년들에게 저자 나름의 독특한 해석과 사색이 오히려 방향을 잃게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면, 내가 너무 신세대 수준을 낮게 보거나 스스로 아집에 사로잡힌 구세대 흉내를 내는 것인가? 하긴 교과서가 아닌 다음에야 아무려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괜히 이 부분에서 스스로 찔려 슬그머니 별점 하나를 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