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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 리들리의 붉은 여왕
매트 리들리 지음, 김윤택 옮김 / 김영사 / 200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대개, 어느 오래된 무명 가수가 한 곡을 히트시키면, 음반사들은 즉시 이전 앨범들을 다시 찍어낸다. 그리고 덩달아 그 앨범들도 히트된다. 상업성이라는 구린 냄새와 거기에 휘둘리는 우리 모습에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긴 하지만, 그 덕분에, 훌륭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알려지지 않은 채 묻힐 뻔했던 수작秀作들을 건질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 겠다. 단,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경우에만!!!
이미 짐작이 됐겠지만, 국내에 소개된 메트 리들리의 두 저작 <게놈, 1999년 美 출간, 2001년 국내 번역판 출간>과 <붉은 여왕, 1993년 美, 2002년 국내>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근 10년 전 책인 만큼 이미 여기 저기서 인용도 많이 되었고, 또 그만큼 인정 받는 책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책 제목인 <붉은 여왕>은 성性의 존재 이유에 대한 생태학적 이론 중 하나이다. 성의 기원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은 바이스만(1834~1914)으로부터 피셔(1930)와 뮐러(1932)를 거쳐 <변절자 이론>이라는 이름으로 100년 가까이 통용된다. 성에 의한 유전적 혼합이 종의 다양성을 증진시켜 자연선택이 작용할 여지를 넓혀 주기 때문에 진화에 유익하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집단 선택’에 반발하여 ‘개체 선택’에 중점을 두는 윌리엄스(1966)의 <복권추첨 이론>이 제시되고, 이후 <뒤엉킨 강둑 이론>과 <붉은 여왕 이론>으로 변형된다. 각각 공간적 이질성(서식지)과 시간적 이질성(세대간)을 극복하기 위해 성이 진화된 것으로 본다. 반면에 성은 오히려 유전적 다양성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라는 개념으로, 분자생물학의 <유전자 수복 이론>과 유전학의 <돌연변이 이론 - 뮐러의 톱니바퀴>도 있다. 아직 정답은 모르지만, 저자는 <붉은 여왕>에 중점을 둔다 (당연하지 책제목인데...).
‘모든 진보는 상대적’이라는 이 <붉은 여왕 이론>은 성의 기원뿐만 아니라 책 전체에 걸쳐 남녀관계를 포함한 인간 본성에 대한 해석에도 많이 적용된다. 저자 에필로그에 잘 정리된 듯하여 좀 길지만 거의 그대로 옮겨본다 (솔직히, 다시 훑으면서 정리할 엄두가 안 난다. 난 여전히 생물학의 논지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간은 스스로 길들여진 동물이자 포유류이고 유인원인데, 그 중에서도 사회적 유인원이다. 즉, 남성이 짝짓기의 주도권을 쥐고 있고, 여성은 자신이 태어난 사회를 떠나야 한다. 남성은 포식자이고 여성은 초식성 채집인이다. 남성은 비교적 위계 질서를 이루고 있고, 여성은 비교적 평등주의자이다. 남성은 자식을 키우는 데 엄청난 투자를 하면서 자식과 아내에게 음식과 보호와 동반을 제공해 준다. 일부일처적 부부관계가 법칙으로 되어 있지만 많은 남성들이 아내 몰래 부정을 저지르고, 몇몇 남성들은 일부다처제를 누린다. 신분이 낮은 남편과 사는 여성들이 가끔은 신분 높은 남성의 유전자를 얻기 위해 남편 몰래 간통을 한다. 특이할 정도로 강렬한 상호 성선택의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여성의 여러 신체적 특징과 남녀 모두의 마음은 짝을 얻기 위한 경쟁에 쓰기 위해 발달되었다. 연상을 통해 배울 수 있고, 언어로 소통할 수 있으며 전통을 전수하는 새로운 본능의 특이한 영역을 개발한 유인원이다.’
이쯤에서 뒤가 구리거나 어깨가 으쓱해질 남자도 있겠고, 발끈하며 흥분할 페미니스트도 있겠다. ‘문화’, ‘학습’, ‘환경’, ‘지성’ 등은 어디로 갔냐고 따지고 싶겠지만, 결국 그것들 모두도 유전자(본능)의 산물이며 상호보완적이라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물론 이는 아직도 진행중인 오랜 논쟁거리이다. 저자는 나름대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을 뿐이고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자, 이제 마지막 문제 ; 과연 최근 히트곡 못지않은 명곡인가? 이미 저자의 출세작으로 명성을 누렸다는 점에서 대답은 ‘YES’이다. 단, 어쩔 수 없는 세월의 흐름이 못내 아쉽다. 진작 좀 나왔으면 괜한 오해도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