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클리드의 창 - 기하학 이야기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지음, 전대호 옮김 / 까치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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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이 이 책을 추천했을 때, “오호, 기하학이라~~, 머리 좀 아프겠군. 한번 덤벼 볼까나?”했었다. 결과는? 전혀 머리 아프지 않게 술술 잘 읽혔다. 마치 할머니가 어린 손자에게 “호랑이 담배 먹던 옛날 옛날에 유클리드란 녀석이 살았는데...”로 시작하는 옛날 얘기를 해주는 듯 하다. 쉽고 재미있다는 말인데, 달리 보면 깊이에서 좀 아쉬운 면도 있다.

우선, BC 300년경 유클리드 [기하학 원본]의 제5공리부터 시작하는 게 맞겠다. 일명 평행선 정리는 ‘두 직선을 가로 지르는 선분이 있어서, 선분을 기준으로 같은 쪽에 있는 교차 내각의 합이 두 직각보다 작으면 두 직선은 결국 만난다.’이다. 너무 뻔한 얘기라고? 그런데 수학에서는 그게 아닌가 보다. 이걸 증명해야 한다고 2C 프톨레마이오스, 5C 프로클로스, 9C 타비트, 17C 월리스가 (내가 보기엔) 잘 얘기한 듯 한데, 그게 또 아니란다. 순환논법이라는 오류를 저지른 것이다.

그 이후 서구 과학 정신은 암흑시대가 1,000년 이상 계속된다. 암흑시대만 없었다면 1969년이 아니라 969년에 사람을 달에 보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는데, 만약 그랬다면 우리와 서구 문명의 차이는 상상도 못할 만큼 벌어질 뻔했다. 우리는 말타고 오랑캐와 싸우는데 저쪽에선 로켓타고 달에?!! 그럼, 2002년엔 어떤 모습이?! 옆길로 샜는데, 하여튼 14C 오렘의 개념을 이어받은 데카르트가 그래프를 발견함으로써 기하학을 대수학으로 재구성한다 [방법에 관한 논의 1637].

그후 한 100년쯤 뒤, 너무나 뻔해 보였던 유클리드의 평행선 정리에 시비를 거는 사람이 나타난다. 평행선이 만난다고? 삼각형 내각 합이 180도가 아니라고? 원주와 지름의 비가 3.14 (π)가 아니라고? 이렇게 엉뚱한 생각을 갖은 15살 가우스에 의해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탄생한다. 결국은 평행성 정리가 유클리드 체계 속에선 증명이 불가능하고, 따라서 필연적으로 3차원의 공간은 휠 수밖에 없다는 얘기인데 (2차원의 평면이 아니라), 우리를 곤혹케 하는 이 생각에 의해 물리학은 혁명을 겪게 된다. 유클리드 이후 2,000년이 지난 후다.

가우스로부터 프앵카레의 쌍곡선공간과 리만의 타원공간 개념이 도출되었고, 드디어 우리의 아인슈타인이 리만 기하학을 이용하여 1915 일반상대성이론을 완성한다. 공간과 시간을 연결한 4차원 시-공간이 물질(질량) 분포에 의해 휘어진다는 것인데 이게 바로 우리가 느끼는 중력의 효과란다. 슬슬 머리가 약간씩 아파질 수도 있겠다. 공간이 휜다고? 4차원이라고? 천만에, 4차원만이 아니다!!!

아인슈타인 직후 칼루차와 클라인이 차원을 하나 더 더해서 시공간은 5차원이 되고, 1984 슈바르츠와 그린에 의한 1차 초끈이론 혁명에선 칼라비-야우 모양이 6차원 형태로 숨겨져 있단다. 그래서 총합은 10차원이다. 아직 끝이 아니다. 1995 초끈이론의 2차 혁명에서 위튼은 11차원을 주장한다 (M-이론). 물리 전공인 사람들은 익히 알겠지만, 칼라비-야우 공간에 따라 5개의 끈이론 후보가 있고 거기에 11차원 초중력 이론까지 아우르는 게 M-이론이다.

지금까지 수학, 과학의 역사를 기하학 관점에서 훑어왔다. 재미 있었는지? 재미를 못 느끼겠다면 그건 전적으로 졸필 탓이고, 책은 정말 재미있다. 저자 유머도 한 가닥 한다. 더군다나 기하학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을 스스로 찾아온 독자라면 이 정도의 수학 얘기에 큰 부담을 느낄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아쉽다. 욕탕 물이 너무 뜨거울까 봐 발만 살짝 담은 느낌이다. 그냥 한번 머리 끝까지 푹 담가서 화끈하게 데어 봤더라도 괜찮을 텐데.. 적어도 (지적)자극은 받을 수 있었을 테니.. 저자가 설명과 그림을 너무 아꼈다. 각설하고, 저자 에필로그로 마무리 하자. ‘과학은 그리스의 기하학자들이 열어놓은 길이며, 수학은 과학의 도구이다 (이 부분은 동감하지 않는다. 수학은 자체로도 존재가치가 있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 석). 그리스인들 이래로 수학은 과학의 심장이며 기하학은 수학의 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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