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의 눈물 - 사라지는 얼음왕국의 비밀
조준묵 프로듀서 외 지음, 박은영 글, 노경희 스토리 / MBC C&I(MBC프로덕션)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북극의 눈물>을 책으로 접하기 이전 MBC창사 특별기획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로 본 기억이 있다. 취재진이 약 300여일간 북극에 체류하면서 북극 생태계와 이누이트(에스키모족)의 삶을 생생하게 다루어 지구 온난화로 무너져 내리는 북극의 위기상황을 보았던 기억이 절로 난다. 바로 이 책은 이러한 TV다큐를 책으로 편집하여 출간한 것이다. 특히 아동층과 청소년층이 이해 하기 쉽도록 각종 화보와 과학상식을 덧붙여 북극이 현재 처해있는 실재상황을 여실없이 말해 주고 있다. 

북극이라 하는 곳은 남극과 마찬가지로 지구상에 남아있는 오지 중의 대표적인 곳이다. 대체로 우리는 북극이라 하면 자연파괴자인 인간의 발이 닿지 않는 곳 그래서 빙하와 만년설로 지구의 오래된 역사가 마치 한장의 사진에 찍혀 있는 모습으로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왠지 북극은 황량한 얼음천국이 끊없이 이어지는 추운 겨울만 존재할 것 같은 생각을 한다.


그러나 막상 지금의 북극은 이러한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몸살을 앓고 있다. 그것도 아주 심각한 몸살을...
 

환경오염으로 인한 지구온난화 문제의 직격탄을 맞은 곳이 바로 북극이다. 비록 북극에서 직접적인 개발행위를 하지 않았는데 북극이 무슨 위험에 직면해 있을까 하고 반문할 수  있지만 지구온난화로 인한 지구의 전체적인 온도상승 특히 북극의 온도상승으로 인한 위험성이 극에 달하고 있다. 매년 줄어드는 빙하와 녹아내리는 만년설로 인해 북극의 생태계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비단 북극의 변화만이 아니라 해수면의 상승으로 인한 인류전체의 재앙이 될 수 있음을 과학자들과 환경보호운동가들은 이제 경고조차 하지 않는다. 경고의 수준을 넘어선 예정된 재앙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적인 견해이다.


이런 견해를 뒤받침 하는 것이 바로 취재팀의 300일간의 긴 취재를 통해서 사실로 증명되었고 이러한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 
 

북극의 만년설과 빙하가 녹아내림으로 해서 바다의 염도가 낮아지고 이로인해 플랑크톤의 감소 플랑크톤을 먹고사는 어류의 감소 이는 바로 바다표범이나 바다코리끼의 감소로 이어지고 북극의 제왕인 북극곰의 생존위험을 가져오는 파급효과를 낳고 있다. 또한 수렵을 주업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누이트들의 생존위험과 조상대대로 살아온 땅을 떠나야하는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북극의 현실이 바다만 아니라 땅에서도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식물한계선 넘어 툰트라지대의 변화로 인해 순록이나 사향소의 개체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북극은 다방면에 걸쳐 몸살을 앓고 있다. 작은 생명체에서 부터 북극곰을 비롯한 거대한 생물 그리고 그 정점에 있는 우리 인간의 삶이 위태롭다. 
  

이 책은 사계절이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북극의 사계절을 따라 그 변화를 카메라에 담고 있다. 기나긴 잠에서 깨어난 봄에서 시작하여 해가 지지 않는 여름 그리고 온통 어둠뿐이 겨울까지 북극의 계절변화와 그 변화속에서 살아가는 자연생명들의 삶과 북극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이누이트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기후이상으로 예전에 비해서 하루하루 살아가기 힘든 북극곰의 더딘 발자국과 이누이트의 사냥감의 감소로 인해 직업자체를 잃어가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는 비단 동물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마져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 온 것이다. 그래도 이누이트들은 조상대대로 살아온 터전을 지켜내고 싶어하고 힘든 상황에서도 배품의 삶을 사는 모습이 가슴 뭉클하게 느껴지게 한다.
 

<북극의 눈물>은 바로 빙하가 녹아내리고 만년설이 녹으면서 흘리는 눈물인 것이다. 이제는 북극의 눈물을 멈추기에는 너무 늦어 버린것 같다. 그나마 기후협정등을 통해 탄소배출량의 조절 및 그린에너지등의 화석연료 대체 에너지의 개발과 보존 프로그램등을 통해 북극의 눈물양을 줄여나가는 수 밖에는 없다. 북극의 눈물이 지금처럼 계속 늘어가면 결국 이 지구상에 사는 모든 생명체의 삶을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의 청소년이나 어린이들에게 환경파괴의 위험성이 얼마나 많은 파장을 가져오는지를 충분히 일깨워 줄 수 있는 내용들이 많이 담겨져 있다. 그리고 북극 생태계와 그 속에 살아가는 이누이트들의 삶을 보면서 환경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유기적인 협동만이 지구를 지켜내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것을 일깨워 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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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에게 고한다 5
데즈카 오사무 글 그림, 장성주 옮김 / 세미콜론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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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를 한시간에 비유하면 5분동안 평화로왔고 나머지 55분은 전쟁속에 지냈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전쟁의 역사와 인류의 역사는 동일선상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지구상에 존재했던 그 어떠한 생명체 보다 동종을 멸종의 위기로 까지 몰고 가는 잔혹한 행위를 하는 종이 다름 아닌 우리 인간들이다. 그것도 정의라는 기치하에 정당화하는 행위는 우리말고 그 어떠한 생명체도 시도해본적이 없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는 인간만이 왜 이렇듯 상식밖의 행동을 서슴치 않은 것일까?

여기에 대한 적절한 해답을 우주소년 아톰의 아버지인 데즈카 오사무는 <아돌프에게 고한다>라는 작품으로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그 해답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고 인간이라면 당연시 하는 가치 바로 다름아닌 정의라고. 인간이기 때문에 정의를 위해서 초개같이 목숨을 버릴수 있다는 궤변론적인 논리가 전쟁의 주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돌프에게 고한다>는 세계제2차대전을 배경으로 나치 독일의 총통인 아돌프 히틀러, 그리고 일본에서 살아가는 독일계 일본인 아돌프 카우프만, 그리고 유대계 독일인 아돌프 카밀이라는 각기 다르지만 이름이 같은 세명의 아돌프를 통해서 그들이 겪는 전쟁과 삶을 조명하고 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을 시작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파시즘의 원조격인 히틀러가 다름아닌 유대혈통이라는 픽션하에 출발한다. 히틀러 출생의 비밀이 담긴 문서를 되찾고자하는 나치스와 그 비밀문서를 세상에 폭로하여 나치즘을 종식시키고자 하는 양방의 묵숨을 건 사투와 그런 과정에서 서서히 정의라는 대의앞에 변해가는 주인공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너무나 잘 알듯이 당시의 세계는 파시즘과 나치즘 그리고 일본의 군국주의에 의해 세상은 일촉즉발의 위기속에 있었다. 그런와중에 한반도와 중국은 일본군국주의자들에 의해 식민지화 되었고 유럽은 이탈리아와 독일에 의해 숙대밭이 되었다. 결국 연합국에 패배 히틀러는 자살이라는 최후를 맞이하게 되지만 나머지 두명의 아돌프는 또다른 인생의 길을 걷게 된다. 유대인들의 염원이었던 독립국가가 설립되고 중동땅에서 이스라엘과 아랍연합간의 또다른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결국 유년시절 절친했던 두명의 아돌프는 중동의 사막에서 적으로 맞이하게 되고 서로 그렇게 죽어가게 된다. 

이 작품의 특징은 바로 이러한 시기를 직접 몸소 겪었던 작가의 경험담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한민족에게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안겼던 일본인의 시각으로 전쟁을 바라보고 있지만 전쟁기간 동안 일본이 자행했던 각종 만행에 대해서 작가는 있는 그대로는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전쟁기간 동안 민간인들의 삶을 보여주는 장면들은 전쟁과 무관한 삶을 살아가는 동시에 국가의 정의라는 힘 앞에선 어김없이 복종하고 순종할 수 밖에 없는 가련한 인간의 모습을 담으면서 과연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전쟁이라는 자체가 절대다수의 기본권과 행복을 배제하여야만 가능한 행위임을 일본인들이나 유대인들의 삶을 통해서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전쟁을 다룬 많은 작품들을 접해왔다. 영화나 소설등을 통해서 전쟁이 가져다 주는 잔혹함과 비참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의 전쟁은 이땅에서 살아져야 한다고 되뇌이고 있지만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정의라는 미명하에 버저이 전쟁이 수행되고 있다. 나치에 의해 인종말살이라는 곤역을 겪은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왕국을 위해서 또 다른 어쩌면 나치보다 더한 잔혹행위를 자행하고 있고 세계평화의 걸림돌이라 명명된 악의 축을 이루는 몇몇의 국가는 난데없는 전쟁속으로 휘말리는 상황에 쳐해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인 것이다.

과연 이러한 전쟁의 정당성은 그 어디에 있는 것인가? 작가는 작품은 통해서 민족, 국가라는 개념을 떠나 전쟁의 진실은 정의의 왜곡된 실현에 있다는 메세지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정의라고 명명된 집단의 신들림이 결국 정의라는 가면을 쓰고 같은 종에 가해지는 행태를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한국전쟁이라는 동족간의 전쟁을 치른 민족이다. 그 정의때문에 동족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분단이라는 길로 들어선지 반세기도 훌쩍 지나버렸지 않는가.

물론 이러한 전쟁이 몇몇 골수분자들에 의해 그 단초가 제공되는 것이지만 결국 대다수의 인민들 역시 정의라는 개념하에 철저하게 전쟁에 가담하게 된다는 것을 작가는 보여주고 있다. 결국 전쟁의 우리 모두의 책임인 것이다. 젊은나이에 독일 나치의 친위대로 수많은 유대인을 살해했던 아돌프 카우프만의 "온세상의 아이들이 정의라는 이름으로 살인을 배우면 언제가 세상 모든 인간들이 전멸하고 말거야"라는 독백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너무 태연하게 정의라는 단어를 잘도 갔다 붙이곤 한다. 몇 십년전 이땅에 정의사회구현이라는 명목하에 수많은 이들이 고통을 받았듯이 정의는 어찌보면 아주 위험한 단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의는 결국 모든 인류가 품고 가야하는 대의인 것이다. 단지 우리가 그 사용방법을 곡해하거나 오인하고 있을 뿐 정의는 항상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많은 작품들이 전쟁의 잔혹함과 비참함을 통해 경개의 대상으로 삼았다면 이번 <아돌프에 고한다>는 비록 만화의 형식을 통하고 있지만 상당히 수준 깊은 철학서라고 해도 무방할 것으로 보인다. 독자들로 하여금 전쟁과 정의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를 갖게 하는 책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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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에게 고한다 4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 장성주 옮김 / 세미콜론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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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를 한시간에 비유하면 5분동안 평화로왔고 나머지 55분은 전쟁속에 지냈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전쟁의 역사와 인류의 역사는 동일선상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지구상에 존재했던 그 어떠한 생명체 보다 동종을 멸종의 위기로 까지 몰고 가는 잔혹한 행위를 하는 종이 다름 아닌 우리 인간들이다. 그것도 정의라는 기치하에 정당화하는 행위는 우리말고 그 어떠한 생명체도 시도해본적이 없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는 인간만이 왜 이렇듯 상식밖의 행동을 서슴치 않은 것일까?

여기에 대한 적절한 해답을 우주소년 아톰의 아버지인 데즈카 오사무는 <아돌프에게 고한다>라는 작품으로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그 해답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고 인간이라면 당연시 하는 가치 바로 다름아닌 정의라고. 인간이기 때문에 정의를 위해서 초개같이 목숨을 버릴수 있다는 궤변론적인 논리가 전쟁의 주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돌프에게 고한다>는 세계제2차대전을 배경으로 나치 독일의 총통인 아돌프 히틀러, 그리고 일본에서 살아가는 독일계 일본인 아돌프 카우프만, 그리고 유대계 독일인 아돌프 카밀이라는 각기 다르지만 이름이 같은 세명의 아돌프를 통해서 그들이 겪는 전쟁과 삶을 조명하고 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을 시작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파시즘의 원조격인 히틀러가 다름아닌 유대혈통이라는 픽션하에 출발한다. 히틀러 출생의 비밀이 담긴 문서를 되찾고자하는 나치스와 그 비밀문서를 세상에 폭로하여 나치즘을 종식시키고자 하는 양방의 묵숨을 건 사투와 그런 과정에서 서서히 정의라는 대의앞에 변해가는 주인공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너무나 잘 알듯이 당시의 세계는 파시즘과 나치즘 그리고 일본의 군국주의에 의해 세상은 일촉즉발의 위기속에 있었다. 그런와중에 한반도와 중국은 일본군국주의자들에 의해 식민지화 되었고 유럽은 이탈리아와 독일에 의해 숙대밭이 되었다. 결국 연합국에 패배 히틀러는 자살이라는 최후를 맞이하게 되지만 나머지 두명의 아돌프는 또다른 인생의 길을 걷게 된다. 유대인들의 염원이었던 독립국가가 설립되고 중동땅에서 이스라엘과 아랍연합간의 또다른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결국 유년시절 절친했던 두명의 아돌프는 중동의 사막에서 적으로 맞이하게 되고 서로 그렇게 죽어가게 된다. 

이 작품의 특징은 바로 이러한 시기를 직접 몸소 겪었던 작가의 경험담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한민족에게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안겼던 일본인의 시각으로 전쟁을 바라보고 있지만 전쟁기간 동안 일본이 자행했던 각종 만행에 대해서 작가는 있는 그대로는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전쟁기간 동안 민간인들의 삶을 보여주는 장면들은 전쟁과 무관한 삶을 살아가는 동시에 국가의 정의라는 힘 앞에선 어김없이 복종하고 순종할 수 밖에 없는 가련한 인간의 모습을 담으면서 과연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전쟁이라는 자체가 절대다수의 기본권과 행복을 배제하여야만 가능한 행위임을 일본인들이나 유대인들의 삶을 통해서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전쟁을 다룬 많은 작품들을 접해왔다. 영화나 소설등을 통해서 전쟁이 가져다 주는 잔혹함과 비참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의 전쟁은 이땅에서 살아져야 한다고 되뇌이고 있지만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정의라는 미명하에 버저이 전쟁이 수행되고 있다. 나치에 의해 인종말살이라는 곤역을 겪은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왕국을 위해서 또 다른 어쩌면 나치보다 더한 잔혹행위를 자행하고 있고 세계평화의 걸림돌이라 명명된 악의 축을 이루는 몇몇의 국가는 난데없는 전쟁속으로 휘말리는 상황에 쳐해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인 것이다.

과연 이러한 전쟁의 정당성은 그 어디에 있는 것인가? 작가는 작품은 통해서 민족, 국가라는 개념을 떠나 전쟁의 진실은 정의의 왜곡된 실현에 있다는 메세지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정의라고 명명된 집단의 신들림이 결국 정의라는 가면을 쓰고 같은 종에 가해지는 행태를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한국전쟁이라는 동족간의 전쟁을 치른 민족이다. 그 정의때문에 동족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분단이라는 길로 들어선지 반세기도 훌쩍 지나버렸지 않는가.

물론 이러한 전쟁이 몇몇 골수분자들에 의해 그 단초가 제공되는 것이지만 결국 대다수의 인민들 역시 정의라는 개념하에 철저하게 전쟁에 가담하게 된다는 것을 작가는 보여주고 있다. 결국 전쟁의 우리 모두의 책임인 것이다. 젊은나이에 독일 나치의 친위대로 수많은 유대인을 살해했던 아돌프 카우프만의 "온세상의 아이들이 정의라는 이름으로 살인을 배우면 언제가 세상 모든 인간들이 전멸하고 말거야"라는 독백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너무 태연하게 정의라는 단어를 잘도 갔다 붙이곤 한다. 몇 십년전 이땅에 정의사회구현이라는 명목하에 수많은 이들이 고통을 받았듯이 정의는 어찌보면 아주 위험한 단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의는 결국 모든 인류가 품고 가야하는 대의인 것이다. 단지 우리가 그 사용방법을 곡해하거나 오인하고 있을 뿐 정의는 항상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많은 작품들이 전쟁의 잔혹함과 비참함을 통해 경개의 대상으로 삼았다면 이번 <아돌프에 고한다>는 비록 만화의 형식을 통하고 있지만 상당히 수준 깊은 철학서라고 해도 무방할 것으로 보인다. 독자들로 하여금 전쟁과 정의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를 갖게 하는 책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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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에게 고한다 3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 장성주 옮김 / 세미콜론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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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를 한시간에 비유하면 5분동안 평화로왔고 나머지 55분은 전쟁속에 지냈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전쟁의 역사와 인류의 역사는 동일선상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지구상에 존재했던 그 어떠한 생명체 보다 동종을 멸종의 위기로 까지 몰고 가는 잔혹한 행위를 하는 종이 다름 아닌 우리 인간들이다. 그것도 정의라는 기치하에 정당화하는 행위는 우리말고 그 어떠한 생명체도 시도해본적이 없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는 인간만이 왜 이렇듯 상식밖의 행동을 서슴치 않은 것일까?

여기에 대한 적절한 해답을 우주소년 아톰의 아버지인 데즈카 오사무는 <아돌프에게 고한다>라는 작품으로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그 해답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고 인간이라면 당연시 하는 가치 바로 다름아닌 정의라고. 인간이기 때문에 정의를 위해서 초개같이 목숨을 버릴수 있다는 궤변론적인 논리가 전쟁의 주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돌프에게 고한다>는 세계제2차대전을 배경으로 나치 독일의 총통인 아돌프 히틀러, 그리고 일본에서 살아가는 독일계 일본인 아돌프 카우프만, 그리고 유대계 독일인 아돌프 카밀이라는 각기 다르지만 이름이 같은 세명의 아돌프를 통해서 그들이 겪는 전쟁과 삶을 조명하고 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을 시작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파시즘의 원조격인 히틀러가 다름아닌 유대혈통이라는 픽션하에 출발한다. 히틀러 출생의 비밀이 담긴 문서를 되찾고자하는 나치스와 그 비밀문서를 세상에 폭로하여 나치즘을 종식시키고자 하는 양방의 묵숨을 건 사투와 그런 과정에서 서서히 정의라는 대의앞에 변해가는 주인공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너무나 잘 알듯이 당시의 세계는 파시즘과 나치즘 그리고 일본의 군국주의에 의해 세상은 일촉즉발의 위기속에 있었다. 그런와중에 한반도와 중국은 일본군국주의자들에 의해 식민지화 되었고 유럽은 이탈리아와 독일에 의해 숙대밭이 되었다. 결국 연합국에 패배 히틀러는 자살이라는 최후를 맞이하게 되지만 나머지 두명의 아돌프는 또다른 인생의 길을 걷게 된다. 유대인들의 염원이었던 독립국가가 설립되고 중동땅에서 이스라엘과 아랍연합간의 또다른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결국 유년시절 절친했던 두명의 아돌프는 중동의 사막에서 적으로 맞이하게 되고 서로 그렇게 죽어가게 된다. 

이 작품의 특징은 바로 이러한 시기를 직접 몸소 겪었던 작가의 경험담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한민족에게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안겼던 일본인의 시각으로 전쟁을 바라보고 있지만 전쟁기간 동안 일본이 자행했던 각종 만행에 대해서 작가는 있는 그대로는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전쟁기간 동안 민간인들의 삶을 보여주는 장면들은 전쟁과 무관한 삶을 살아가는 동시에 국가의 정의라는 힘 앞에선 어김없이 복종하고 순종할 수 밖에 없는 가련한 인간의 모습을 담으면서 과연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전쟁이라는 자체가 절대다수의 기본권과 행복을 배제하여야만 가능한 행위임을 일본인들이나 유대인들의 삶을 통해서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전쟁을 다룬 많은 작품들을 접해왔다. 영화나 소설등을 통해서 전쟁이 가져다 주는 잔혹함과 비참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의 전쟁은 이땅에서 살아져야 한다고 되뇌이고 있지만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정의라는 미명하에 버저이 전쟁이 수행되고 있다. 나치에 의해 인종말살이라는 곤역을 겪은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왕국을 위해서 또 다른 어쩌면 나치보다 더한 잔혹행위를 자행하고 있고 세계평화의 걸림돌이라 명명된 악의 축을 이루는 몇몇의 국가는 난데없는 전쟁속으로 휘말리는 상황에 쳐해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인 것이다.

과연 이러한 전쟁의 정당성은 그 어디에 있는 것인가? 작가는 작품은 통해서 민족, 국가라는 개념을 떠나 전쟁의 진실은 정의의 왜곡된 실현에 있다는 메세지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정의라고 명명된 집단의 신들림이 결국 정의라는 가면을 쓰고 같은 종에 가해지는 행태를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한국전쟁이라는 동족간의 전쟁을 치른 민족이다. 그 정의때문에 동족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분단이라는 길로 들어선지 반세기도 훌쩍 지나버렸지 않는가.

물론 이러한 전쟁이 몇몇 골수분자들에 의해 그 단초가 제공되는 것이지만 결국 대다수의 인민들 역시 정의라는 개념하에 철저하게 전쟁에 가담하게 된다는 것을 작가는 보여주고 있다. 결국 전쟁의 우리 모두의 책임인 것이다. 젊은나이에 독일 나치의 친위대로 수많은 유대인을 살해했던 아돌프 카우프만의 "온세상의 아이들이 정의라는 이름으로 살인을 배우면 언제가 세상 모든 인간들이 전멸하고 말거야"라는 독백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너무 태연하게 정의라는 단어를 잘도 갔다 붙이곤 한다. 몇 십년전 이땅에 정의사회구현이라는 명목하에 수많은 이들이 고통을 받았듯이 정의는 어찌보면 아주 위험한 단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의는 결국 모든 인류가 품고 가야하는 대의인 것이다. 단지 우리가 그 사용방법을 곡해하거나 오인하고 있을 뿐 정의는 항상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많은 작품들이 전쟁의 잔혹함과 비참함을 통해 경개의 대상으로 삼았다면 이번 <아돌프에 고한다>는 비록 만화의 형식을 통하고 있지만 상당히 수준 깊은 철학서라고 해도 무방할 것으로 보인다. 독자들로 하여금 전쟁과 정의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를 갖게 하는 책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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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에게 고한다 2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 장성주 옮김 / 세미콜론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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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를 한시간에 비유하면 5분동안 평화로왔고 나머지 55분은 전쟁속에 지냈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전쟁의 역사와 인류의 역사는 동일선상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지구상에 존재했던 그 어떠한 생명체 보다 동종을 멸종의 위기로 까지 몰고 가는 잔혹한 행위를 하는 종이 다름 아닌 우리 인간들이다. 그것도 정의라는 기치하에 정당화하는 행위는 우리말고 그 어떠한 생명체도 시도해본적이 없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는 인간만이 왜 이렇듯 상식밖의 행동을 서슴치 않은 것일까?

여기에 대한 적절한 해답을 우주소년 아톰의 아버지인 데즈카 오사무는 <아돌프에게 고한다>라는 작품으로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그 해답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고 인간이라면 당연시 하는 가치 바로 다름아닌 정의라고. 인간이기 때문에 정의를 위해서 초개같이 목숨을 버릴수 있다는 궤변론적인 논리가 전쟁의 주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돌프에게 고한다>는 세계제2차대전을 배경으로 나치 독일의 총통인 아돌프 히틀러, 그리고 일본에서 살아가는 독일계 일본인 아돌프 카우프만, 그리고 유대계 독일인 아돌프 카밀이라는 각기 다르지만 이름이 같은 세명의 아돌프를 통해서 그들이 겪는 전쟁과 삶을 조명하고 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을 시작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파시즘의 원조격인 히틀러가 다름아닌 유대혈통이라는 픽션하에 출발한다. 히틀러 출생의 비밀이 담긴 문서를 되찾고자하는 나치스와 그 비밀문서를 세상에 폭로하여 나치즘을 종식시키고자 하는 양방의 묵숨을 건 사투와 그런 과정에서 서서히 정의라는 대의앞에 변해가는 주인공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너무나 잘 알듯이 당시의 세계는 파시즘과 나치즘 그리고 일본의 군국주의에 의해 세상은 일촉즉발의 위기속에 있었다. 그런와중에 한반도와 중국은 일본군국주의자들에 의해 식민지화 되었고 유럽은 이탈리아와 독일에 의해 숙대밭이 되었다. 결국 연합국에 패배 히틀러는 자살이라는 최후를 맞이하게 되지만 나머지 두명의 아돌프는 또다른 인생의 길을 걷게 된다. 유대인들의 염원이었던 독립국가가 설립되고 중동땅에서 이스라엘과 아랍연합간의 또다른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결국 유년시절 절친했던 두명의 아돌프는 중동의 사막에서 적으로 맞이하게 되고 서로 그렇게 죽어가게 된다. 

이 작품의 특징은 바로 이러한 시기를 직접 몸소 겪었던 작가의 경험담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한민족에게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안겼던 일본인의 시각으로 전쟁을 바라보고 있지만 전쟁기간 동안 일본이 자행했던 각종 만행에 대해서 작가는 있는 그대로는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전쟁기간 동안 민간인들의 삶을 보여주는 장면들은 전쟁과 무관한 삶을 살아가는 동시에 국가의 정의라는 힘 앞에선 어김없이 복종하고 순종할 수 밖에 없는 가련한 인간의 모습을 담으면서 과연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전쟁이라는 자체가 절대다수의 기본권과 행복을 배제하여야만 가능한 행위임을 일본인들이나 유대인들의 삶을 통해서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전쟁을 다룬 많은 작품들을 접해왔다. 영화나 소설등을 통해서 전쟁이 가져다 주는 잔혹함과 비참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의 전쟁은 이땅에서 살아져야 한다고 되뇌이고 있지만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정의라는 미명하에 버저이 전쟁이 수행되고 있다. 나치에 의해 인종말살이라는 곤역을 겪은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왕국을 위해서 또 다른 어쩌면 나치보다 더한 잔혹행위를 자행하고 있고 세계평화의 걸림돌이라 명명된 악의 축을 이루는 몇몇의 국가는 난데없는 전쟁속으로 휘말리는 상황에 쳐해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인 것이다.

과연 이러한 전쟁의 정당성은 그 어디에 있는 것인가? 작가는 작품은 통해서 민족, 국가라는 개념을 떠나 전쟁의 진실은 정의의 왜곡된 실현에 있다는 메세지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정의라고 명명된 집단의 신들림이 결국 정의라는 가면을 쓰고 같은 종에 가해지는 행태를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한국전쟁이라는 동족간의 전쟁을 치른 민족이다. 그 정의때문에 동족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분단이라는 길로 들어선지 반세기도 훌쩍 지나버렸지 않는가.

물론 이러한 전쟁이 몇몇 골수분자들에 의해 그 단초가 제공되는 것이지만 결국 대다수의 인민들 역시 정의라는 개념하에 철저하게 전쟁에 가담하게 된다는 것을 작가는 보여주고 있다. 결국 전쟁의 우리 모두의 책임인 것이다. 젊은나이에 독일 나치의 친위대로 수많은 유대인을 살해했던 아돌프 카우프만의 "온세상의 아이들이 정의라는 이름으로 살인을 배우면 언제가 세상 모든 인간들이 전멸하고 말거야"라는 독백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너무 태연하게 정의라는 단어를 잘도 갔다 붙이곤 한다. 몇 십년전 이땅에 정의사회구현이라는 명목하에 수많은 이들이 고통을 받았듯이 정의는 어찌보면 아주 위험한 단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의는 결국 모든 인류가 품고 가야하는 대의인 것이다. 단지 우리가 그 사용방법을 곡해하거나 오인하고 있을 뿐 정의는 항상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많은 작품들이 전쟁의 잔혹함과 비참함을 통해 경개의 대상으로 삼았다면 이번 <아돌프에 고한다>는 비록 만화의 형식을 통하고 있지만 상당히 수준 깊은 철학서라고 해도 무방할 것으로 보인다. 독자들로 하여금 전쟁과 정의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를 갖게 하는 책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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